일본은 왜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을까
일본의 행보를 동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침략을 타파하고 일본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글ㆍ사진 김종성
2015.08.17
작게
크게

일본과 독일은 우리 시대의 전범 국가들이다. 두 나라를 떠올리는 여러 이미지 중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데 반해, 독일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게 있다. 그래서 독일은 괜찮은 나라고 일본은 파렴치한 나라라는 게 우리가 가진 인상이다.


과거사에 대해 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독일은 반성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반성하는데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 패권국이 된 미국은 독일과 일본에 대해 각각 다른 태도를 취했다. 독일은 범죄자로 다루었지만, 일본은 그렇게 다루지 않았다. 독일은 동과 서로 분단됐지만,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다. 또 독일에서는 기존의 정치체제가 와해됐지만, 일본에서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처음에 미국은 중국의 국민당 정권을 자국의 동아시아 파트너로 삼아 소련을 견제하려는 목표를 가졌다. 그러나 국민당이 패배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자,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패전국 일본을 자신들의 동아시아 파트너로 삼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일본은 독일처럼 가혹한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됐을 뿐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으로서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승전국 못지않은 중요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전범으로서 처벌 받지 않고,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며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따라서 독일은 반성하고, 일본은 반성하지 않는 것은 양국의 국민성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태평양전쟁.jpg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물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일본이 일으킨 일련의 전쟁을 일본의 대외 침략과정으로 이해하지만 일본인들, 특히 우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국을 전범으로 대하는 이웃나라들의 분위기에 맞서 2000년대 들어 역사 교과서 우경화로 응수하고 있는 일본 우익은, 19세기 후반 이후 일본의 행보를 동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침략을 타파하고 일본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본 우익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다나카 히데미치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이 제1차 아편전쟁을 통해 홍콩과 같은 거점을 마련하고 러시아가 제2차 아편전쟁을 계기로 조선과 국경을 마주한 상황에서, 당시 일본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와 가까웠을 뿐 아니라 일본에게 적대적인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고 이를 기회로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일본이 청일전쟁을 벌인 것은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열도를 방어하기 위한 자위적 차원의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에서는, 청일전쟁 직전까지 청나라가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공동 철수를 제안했지만 일본이 거절한 역사적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 또한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의 철수를 관철시키려고 어렵게 점령한 전주성까지 내주면서 조선 정부와 손을 잡은 역사적 맥락도 무시되고 있다. 오로지 일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였다고 서술하고 있으니, 당시 실제 상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지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러일전쟁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요동반도를 얻게 되자, 러시아가 프랑스ㆍ독일을 선동하여 일본의 요동반도 획득을 방해했고, 조선 정치에까지 개입해서 일본인들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다. 또한 1900년 청나라에서 발생한 반외세운동인 의화단운동을 빌미로 만주에서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일본을 압박하여, 일본으로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그의 논리다. 일본의 대외침략 과정을 단순한 정당방위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 우익이 쓴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일본의 대외침략이 있는 그대로 서술되지 않고 파렴치하게 미화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세계 2, 3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전쟁 포기’ ‘전력戰力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방위 목적의 자위대를 침략이 가능한 군대로 개편하려는 상황에서 일본 우익이 교과서나 역사서를 통해 ‘국민계몽’에 나서는 것은 조만간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상대로 명예회복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도를 표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img_book_bot.jpg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김종성 저 | 역사의아침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하는 이 책은, 한국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한국 역사 9가지, 중국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중국 역사 7가지, 일본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일본 역사 8가지를 소개하고, 세 나라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담긴 오류와 편견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지나친 국수주의를 경고하고 과도한 자기비하를 경계하며 더불어 바른 역사관의 정립과 역사적 진실의 규명,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추천 기사]

- 책읽기라는 낯설고 위험한 시간에 관하여
- 담배를 피우는 시간
- 아이의 시간
- 식구의 영정을 마주하는 시간
- 유령이 되돌아오는 시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역사 #한중일교과서 #김종성
0의 댓글
Writer Avatar

김종성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또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구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 읽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웅진씽크빅의 《생각쟁이》에 글을 싣고 있다. 《문화유산채널》에 명사 칼럼을, 《민족 21》 등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 강사로 삼성 신입사원들에게 역사를 강의했다. 기독교방송(CBS)의 〈김미화의 여러분〉에서 역사 코너에 출연했고, 교통방송(TBS)의 〈송정애의 좋은 사람들〉에서 역사 코너에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