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유쾌한 반격 <망원동 브라더스>
<망원동 브라더스>를 떠올리자 슬쩍 웃음이 새어나온다. 엄마가 생각나서다. 찌질한 네 남자를 바라보며 엄마를 떠올리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같이 ‘엄마의 등짝 스매싱’ 유발자들이기 때문이고,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마냥 해맑은 네 남자를 보며 전의를 상실했을 엄마의 허탈한 표정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에는 엄마가 등장하지 않지만,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도 엄마는 찾아볼 수 없지만, 네 명의 주인공을 아들로 둔 엄마라면 분명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래가지고 네 앞가림이나 할 수 있겠어?!”
세상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만화가로 데뷔했지만 백수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영준, 캐나다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줘야 하지만 직업조차 없는 김 부장, 한 때는 잘 나가는 만화 스토리 작가였지만 이제는 ‘경제적 무능’을 이유로 아내에게서 이혼을 요구받는 영준의 싸부, 고시원을 전전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삼동이까지. ‘완벽에 가까운 루저들’을 향해 세상은 한숨을 내쉬고 혀를 찬다.
그러나 그런 값싼 동정 따위에 발끈할 망원동 브라더스가 아니다. 고개를 떨구고 움츠러들 그들이 아니다. ‘멀리 내다보기 좋은 동네(망원동)에 살면서 정작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처지’라며 사람들은 한심하게 생각할 테지만, 망원동 브라더스는 하루하루를 유쾌하게 살아낸다. 영준의 옥탑방에 눌러앉은 싸부는 ‘망원시장배 매운 라면 빨리 먹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주소 이전까지 불사한다. 그 열정(?)에도 불구하고 삼동이에게 1등을 빼앗기자, 그를 꾀어 우승상품인 TV를 옥탑방으로 옮겨오는 기지도 발휘한다.
이혼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라면 빨리 먹기 대회에 사활을 거는 싸부나, 공무원 시험 준비는 뒤로 한 채 자신이 경품으로 탄 TV를 보기 위해 남의 옥탑방에 들락거리는 삼동이나, 현실 감각이 없어 보이기는 매 한가지다. 김 부장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그는 기러기 아빠로서의 책무를 잊은 듯 영준의 옥탑방 마당에 월세 15만 원 짜리 ‘텐트’를 치고 지낸다. 군식구들 사이에서 치일대로 치이면서도 영준은 ‘그만 옥탑방에서 나가 달라’는 한 마디를 하지 못한다. 이제는 웹툰이 대세라고 아무리 말해도, 학습만화를 그릴지언정, 만화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영준이다.
망원동 브라더스처럼 살면 안 되나요?
묘한 것은, 이토록 철없고 이다지도 해맑은 네 남자를 지켜보는 일이 조금도 짜증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원작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가 그러했듯, 작품은 네 명의 루저를 ‘믿기 힘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존재들로 그리고 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좁은 옥탑방에 모여 젖은 빨래처럼 늘어져 있다가, 일당 9만 원 짜리 일자리를 구했다며 신나게 달려 나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거하게 술을 나눠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는 김 부장이 끓여준 해장국을 먹으며 행복해하는데도, 이상할 만큼 밉지가 않다.
오히려 관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 매료된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라고 외치고픈 마음은 슬며시 사라지고 ‘그래서는 안 될 이유도 없지’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게 된다. 어차피 버텨내야 하는 삶이라면, 끝을 봐야하는 외로운 싸움이라면, 잠시 걸음을 늦춰도 괜찮지 않을까. 잘못 들어선 길이라 한들, 그 위에 서있는 순간조차 나의 삶이니까, 조바심 내기 보다는 웃어넘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물며 “막막한 하루하루지만, 너희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지더라”고 말하는데, 그들이 택한 삶의 방식이 틀렸다고 누군들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도 꿈을 꾼다. 물론, 그조차도 쉽지는 않다. 김 부장이 시작한 포장마차는 매출이 시원치 않고, 싸부에게 이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며, 삼동이는 공무원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다. 영준의 연애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이 났다. “유명한 만화가가 되면, 나한테 와줄래?”라는 간절한 고백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내 꿈은 그렇게 소박하지 않아”라는 말 뿐이다.
늘 그렇듯 현실의 무게는 마음을 팍팍하게 한다. 망원동 브라더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라고 했던가. 힘겹게 버텨왔던 시간의 끝에서 또 한 번 좌절을 맛본 그들은 여유를 잃어갔다. 서로를 탓하고 서로에게서 벗어나길 원했다.
이대로 망원동 브라더스는 헤어지고 마는 걸까. ‘그래도 망원동 브라더스니까’ 다시 한 번 서로에게 기대어 세상을 견뎌낼까. 이야기의 결말은 소설 속에서도 극장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망원동 브라더스>의 진짜 눈부신 순간들은 끝이 오기 전에 만나게 된다. 내 맘 같지 않은 세상 속에서, 나를 규정하려는 시선들에 맞서가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가 중간 중간 숨어있는 까닭이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 “다음 라운드가 있으니까 툭툭 털고 일어나야지”와 같은 다독임은 그 어떤 결말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직 원작 소설과 만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를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극장을 나설 때,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에 대한 궁금증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이미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었다면 눈앞에서 생동하는 네 명의 ‘사랑스러운 루저들’과의 재회가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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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