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이르는 여정이 2집 < Man On The Earth >부터 비정규앨범 < Apollo >를 거쳐 4년의 시간을 지나 펼쳐졌다. 몸만 새로운 장소로 옮겨 온 것은 아니다. 기나긴 이동의 시간동안 떠나보내야 했던 추억들 그리고 새롭게 이고 가야만 할 짐들과 무게들도 이 여로에 함께 했다. < Man On The Moon >은 변해야 하는 것 그리고 변하고 난 뒤 남아버린 과거흔적에 대한 위로다.
성장에 대한 은유가 먼저 눈에 띈다. 「소년을 위로해줘」처럼 꿈꾸는 어린 주체였던 이들은 이루펀트의 첫 앨범 < Eluphant Bakery >에서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기를 추억했고(「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그 이후 < Man On The Earth >에서 「키덜트」로 변해버렸다. 나이 서른을 거쳐(「계란 한판」) 달에 다다른 이들에게 주된 이야깃거리가 격세지감 혹은 과거에 대한 추억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훨씬 많은 돈이 내 손을 채워주고 있지만 / 그건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 현실에 대한 보상쯤이란 걸 잘 알아”('MOTM')라는 허클베리 피의 가사처럼 환급받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은 앨범의 전후를 관통한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떤 절망이나 피로함이 아닌 담담함에 가깝다. 이사 도중 지난 일들을 떠올리는 소회처럼('이사하는 날') 의연하게 그 상실을 받아들일 뿐이다.
소울컴퍼니 혹은 신의의지 인디레이블 시절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힙합 신에서의 반성 및 회상 또한 앨범에 담겼다. 「잊음 (ISM)」은 힙합이라는 장르가 거대한 메이저의 물결에 동화되면서 망각해버린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거울에 정치판처럼 얼룩진 비즈니스에 대한 회의와 그 사이에서 잊혀져버린 작가주의에 대한 시선이 담긴다. 「B there」나 「People & places」와 같은 언어유희에서 이들의 행보를 오래전부터 지켜보던 팬들은 애틋한 향수와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등대」나 「꽃」처럼 위로라는 장기에서도 이들은 부족함이 없다. 특히 귀에 들어오는 것은 보컬 파트와의 협업이다. 전작부터 객원 보컬을 기용하면서 다양성을 넓혀왔지만 이번에는 이루펀트 본인들도 적극적으로 노래에 참여하면서 치유의 방식을 다양화 시켰다. 특히 김태우나 가을방학의 계피처럼 낯선 보컬과의 콜라보에서도 세밀한 감정선을 살리는데 성공하면서 범용성은 더욱 넓어졌다.
달에 다다라도 온통 시커먼 대기와 지워지지 않는 상처, 크레이터들만 온 곳에 산재한다. 이처럼 < Man On The Moon >은 적나라한 현실 위에 부유하는 추억들을 끌어 모아 한데 흩뿌린 음반이다. 과거를 곱씹어도 끝까지 남는 잔여물은 씁쓸함과 현실의 무게뿐인 것이다. 하지만 위로가 필요할 때는 이미 달에 도착한 이들이 그 하중의 반절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지구보다 가벼운 달의 중력으로.
2015/07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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