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명왕성>은 발견과 같은 영화였다. 있을 법하지 않게 연출된 상황을 통해 개선될 여지없이 되풀이 되는 입시지옥의 처참한 속내를 고스란히 현실로 소환시킨다. 그렇게 신수원 감독은 비밀서클과 사제폭탄, 살인, 납치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 덜 자란 아이들을 던져놓고 끝내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의 슬픔과 그들에 대한 동정의 정서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품어낸다. 시니컬해 보이는 날선 감성 속에 약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숨어있는 셈이다. 칸 영화제가 먼저 주목한 <마돈나> 역시 감독 특유의 뚝심과 개성으로 충만한 영화다. 감독의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은 고교에서 더 잔혹한 성인들의 세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수위는 훨씬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외면하지 말고 눈 돌리지 말고 끝끝내 들여다보라고 들이민 자극적인 장면에도 불구하고 <마돈나>는 결국 숙연한 슬픔에 빠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감성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끝내 보고만 불편한 장면들이 못내 불편한 뒤끝으로 남는 이유는 부조리하고 자극적이며,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지금, 현재, 여기, 우리들 곁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일이라는 자각 때문이다.
VIP 병동의 간호조무사 해림(서영희)과 의사 혁규(변요한)는 병원에서 심장이식이 필요한 환자 철오를 돌본다. 철오의 아들 상우(김영민)는 아버지의 재산을 얻기 위해 억지로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쓴다. 어느 날, 미나(권소현)가 의식불명으로 실려 오면서 인물들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미나는 연고가 없는 만삭의 임신부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의 미래는 상우라는 부자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 상우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해림에게 미나의 가족을 찾아 장기기증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제안한다. 상우의 도움이 필요했던 또 다른 약자 해림은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미나의 과거를 되짚는다. 힘없고, 빽 없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미나의 과거를 통해 관객들이 만나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사회가 힘없는 자들을 대하고,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 그 자체이다. 그래서 ‘미나’ 혹은 ‘마돈나’는 다른 꿈을 꿀 여유도, 벗어날 자신도 없이 진창에 그저 주저 앉아버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약자들을 대변하는 이름이 된다. <마돈나>는 세상에는 결코 노력하지 않아서도 비겁해서도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란 사실을 강변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들여다본다.
미나 혹은 해림 혹은 약자들의 대립각으로서 상우는 힘과 돈과 권력으로 사람의 목숨을 흥정할 수 있는 강자로 표현된다. 그렇게 병원이라는 밀폐되고 숨겨진 작은 사회 속에서 보호받고 지켜내야 할 사람은 힘없고 약한 자가 아니라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회적 함의와 암묵적 동의는 버젓이 존재한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사람들의 태도는 미나를 통해 투명한 유리처럼 고스란히 투영된다. 미나의 과거를 쫓으면서 해림은 그녀를 향한 동정심과 심리적 연대, 그리고 결코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은 한 여인의 슬픔을 마주한다. 그렇게 약하디 약한 여성들 사이의 연대의식은 미약하지만 희망의 지푸라기 한줌과 같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삶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모질게 겪어온 운명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잔인한 현실은 늪처럼 그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당연히 <마돈나>는 남성관객들 보다는 여성관객들에게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미나의 삶을 통해 나와 주위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반추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앞서 <명왕성>을 통해 학교 내 최상위층의 계급 구조를 풍자적으로 보여준 신수원 감독은 <마돈나>의 VIP 병동을 통해 가지지 못한 자는 철저하게 짓밟히고야 마는 냉혹한 현실을 은유한다. 마치 희망 자체가 없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신수원 감독은 소소한 판타지를 통해 무너진 사회 속에서도 작은 연대를 통해 희망을 말할 수 있다고 속살거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나를 향한 해림의 동정심은 강한 연대가 되어 변화로 나아가진 못한다. 자존감을 상실한 미나라는 여인의 절망을 처연하게 연기하는 권소현과 해림의 날선 예민함을 과감하게 드러낸 서영희의 연기는 <마돈나>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아낸다. 냉정한 재벌 2세 상우 역할의 김영민은 강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를 통해 잔인하기만 해 보이는 한 남자의 처연한 슬픔을 녹여낸다. 김영민이라는 멋진 배우의 오랜 연기 내공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변요한을 비롯, 고서희, 예수정 등 적재적소에 놓인 배우들의 연기도 생생하다.
미나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많이 했던 말, 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말은 ‘죄송하다’는 사과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사회적 폭력에 시달리고 늘 구박받지만 정작 미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늘 짓밟히지만 누구에게도 사과 받지 못하는 약자의 삶, 그래서 늘 최선을 다했다는 미나의 말은 슬픔의 칼날이 되어 우리들의 마음에 깊숙이 박힌다. 그럼에도 신수원 감독은 미나를 향해 섣부른 동정이나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텅 빈 그녀의 처연한 삶을 채워주려 누군가는 동정으로, 누군가는 애정으로 애써 물을 길어 나르겠지만, 앞서 우리는 그녀가 이미 깨어져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마돈나>는 꾸역꾸역 그렇게 슬픔의 구멍을 들여다보고, 슬픔으로라도 연대하라고 한다. 끝끝내 그렇게라도 맞잡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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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