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이형’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무한도전>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하세가와 요헤이가 그 주인공이다. 기타리스트 겸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우연히 접한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에 매료돼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허벅지와 황신혜밴드, 뜨거운감자 등을 거쳐 재결성된 산울림의 멤버로서도 활동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는 그가 최근 『고고! 대한 록 탐방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냥, 한국에 왔다. 한국 음악이 궁금했고, 그래서 왔다. 그게 전부였다. 내가 한국에서 20년이라는,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을 보내고, 좋은 밴드들과 함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아무 계획이 없었던 덕분이다.”(32쪽)
이 책은 양평이형 개인의 역사이자, 이방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197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록의 역사’를 담았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활동하며 한국 록에 대한 애정을 지켜온 그였기에 이런 책의 발간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난 2월 28일,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는 ‘양평이형과 함께하는 대한 록 탐방! 『고고! 대한 록 탐방기』 북콘서트(feat. 장기하)’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지난 연말까지 두 사람이 함께했던 SBS 파워FM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를 리바이벌하면서 북콘서트 형식으로 꾸며졌다.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에서 양평이형은 ‘양평이형의 LP Bar’라는 코너를 담당했었다.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와 양평이형의 짧은 대화가 오갔다.
얼마 전에 해외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고향(일본)도 다녀오고 런던에 일주일쯤 다녀왔다. 쉬기도 하고 앨범도 사고 공연도 보고 왔다.
『고고! 대한 록 탐방기』 출간 소감은 어떤가?
책으로 보니까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고 나를 뒤돌아보게 됐다. 그 전에는 (내 인생이) 재밌는 게 있었나 싶었는데, 책으로 보니까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증명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책으로 나와서 좋다. 앞으로도 재밌게 살겠다는 내 인생의 교과서 같은 느낌도 든다.
책에 앨범을 소개할 때 기준이나 원칙이 있었다면?
한국의 록을 다뤘는데, 내 기준은 1985년 이전, 한국에서 히트를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좋아하거나 그 당시엔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으나 음악적으로 수준이 높은 앨범을 담았다.
이에 장기하가 등장했다. 양평이형이 준비한 BGM이 흘러나오고 장기하가 독자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등장했다. 라디오 종영 이후 다시 되살린 양평이형의 LP Bar 형식을 빌린 북콘서트는 그렇게 진행됐다.
양평이형은 첫 곡으로 「뜨거운 안녕!」이 담긴 자니 리의 LP앨범을 보여주면서 「내일은 해가 뜬다」를 들려줬다. LP의 특유 잡음이 함께 들려서 더욱 정겨운 이 곡은 들국화의 노래로도 알려진 「사노라면」의 원곡이다. 장기하는 “가슴을 쫘악 펴라”가 아닌 “가슴을 쭈욱 펴라”라는 원곡의 가사를 짚어내기도 해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장기하 : 라디오를 끝내고 술 먹고 노래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신곡을 냈다. 오늘 양평이형과 이렇게 다시 하고 있으니까, 라디오를 진행하던 때의 생각이 나는데, 그때만큼은 입이 안 풀리는 것 같다. 내 생애 그때만큼 말을 잘 했던 적이 없다(웃음). 오늘은 양평이형이 직접 선곡을 한 것도 있고, 여기 오신 분들의 사연과 신청곡을 받아서 들려주는 것도 있다.
양평이형 : 얼마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갔는데, 스스로 한국어 점수를 몇 점정도로 보느냐고 묻더라. 80점쯤 되면 좋겠다고 했는데, 배철수씨가 겸손하면 좋겠다고 하더라(웃음). 다음 곡은 김창완이 프로듀서 한 현희라는 가수가 있다. 1984년 노래다. 김창완씨가 작곡한 「슬픈 모습 보이기 싫어」라는 곡을 준비했다. 곡 중간에 “싫어, 싫어”라고 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기괴한 느낌을 주기도 한 이 노래는, 이 소리를 뺀 버전도 있다. 양평이형은 두 버전의 LP를 보유하고 있다.
장기하 : 음악방송을 진행할 때 ‘양평이형의 LP Bar’가 무척 인기 있었다.
양평이형 : 내가 아나키 정신이 있어서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는 음악을 틀겠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 코너를 2년 넘게 하게 해줘서 고맙다.
이어서 사연이 소개됐다. 미 평화봉사단의 ‘결핵 없는 내일’을 듣고 싶다는 사연이 흘러나왔다. 밴드 이름도 희한하지만 노래 제목에서도 당시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앨범이었다.
양평이형 : 이 앨범을 10년 쯤 전에 청계천에서 샀다. 김C랑 라디오를 하면서 들려줬었는데 꽤 반응이 좋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DJ소울스케이프가 리믹스 앨범을 만들면서 거기에 이 곡을 넣었다.
장기하 : 오래전 개발도상국에 봉사를 하던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말을 배워서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냈다. 대한결핵협회 서울특별시지부가 제공하고 연주를 미 평화봉사단원이 했다.
“미평화봉사단원 『결핵 없는 내일』(신세기/ 번호 없음: 비매품) / 평화봉사단원, 기적의 한 방. 결핵 방지 캠페인 송은 공전의 개러지 사운드.”(163쪽)
장기하 : 양평이형이 한국말을 잘한다. 어디서든 한국어 레슨을 받은 적이 없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아침에 식당에서 아무 것이나 시켰었다. 그런데 어느날 매운 음식을 먹게 됐는데,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더라. 매운 걸 못 먹는다. 매운 걸 먹고는 다음날 연주를 못한 적도 있다.
양평이형 : 삼계탕도 못 먹는다. 닭도리탕도 못 먹고. 그런데 양념치킨은 잘 먹는다(웃음). 닭육수가 내게 잘 안 맞는 것 같다. 냉면은 좋아한다. 시카고에 갔을 때 냉면이 먹고 싶었는데, 우래옥이 있더라. 이름만 같고 다른 가게인줄 알았는데 진짜 우래옥이더라. 그래서 더욱 우래옥을 좋아하게 됐다(웃음).
“한국의 검색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한글로 ‘하세가와 요헤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하면 ‘하세가와 요헤이, 냉면’이라고 연관 검색어가 나오던 시기가 있었어요(웃음). 하루에 세 번 냉면을 먹었던 적도 있었고,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긴 해요.”(145쪽)
장기하 : LA에 공연을 함께 갔었는데 평양 냉면집에 갔는데, 참 맛있더라. 아 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지?(웃음)
이어지는 사연은 익명을 요청한 독자가 신중현이 만들고 펄 시스터즈가 부른 「커피 한 잔」을 요구했다. 펄 시스터즈 특유의 끈적끈적한 소울풀의 노래가 턴테이블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추억이 돋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이 LP는 양평이형이 오래 전에 산 것으로 당시 LP를 40~50장씩 사서 모으던 때, 덤으로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LP보다 더 비싸다는 것이 양평이형의 설명.
마지막으로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이 젊을 시절 록 음악을 한다며 냈던 앨범 『이수만과 365일』에 실린 「난 알고 있었지」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하드록 계열의 이곡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수만의 발라드 노래와는 달랐다. LP앨범 재킷에는 “저희들의 음악은 헤드폰을 쓰고 크게 들어 주세요”라는 문구가 써 있단다. 이수만은 록 가수를 하고 싶었다는 사실.
이것으로 양평이형과 장기하가 뭉친 북콘서트는 여러 사람의 추억을 LP를 통해 호명하면서 마쳤다. 또 LP를 접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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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 대한 록 탐방기하세가와 요헤이(a.k.a.양평이형) 저/오오이시 하지메 편/신혜정 역 | 북노마드
이 책은 하세가와 요헤이 개인의 역사이자,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197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록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양평이형”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 있는 그에게서 “LP 수집광” “프로듀서” “기타리스트”로서의 진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활동하며 한국 록에 대한 애정을 지켜온 그의 20년, 200여 매에 달하는 희귀한 한국 록 레코드와 양평이형의 논평, 그리고 장기하(장기하와 얼굴들), 김명길(데블스), 신윤철(서울전자음악단) 등 한국 음악계의 개척자들과 나누는 유쾌한 대담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신중현, 산울림부터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록의 향연이 이 책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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