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보물섬 사모아
남태평양에 흩뿌려진 수많은 섬 중 하나로만 알려진 사모아(Samoa). 화려한 호텔과 리조트, 끝나지 않는 밤의 유흥은 없을지라도, 사모아엔 3,000년간 지켜온 파 사모아(Fa’a Samoa) 정신과 고유한 유산 그리고 누군가의 보물섬이 있다.
글ㆍ사진 론리플래닛매거진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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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총총한 별이 칠흑 같은 사모아의 밤하늘에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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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로마누 해변(Lalomanu Beach)의 그림 같은 백사장에 늘어선 비치 팔레는

사모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건축이자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숙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드는 모두의 정원


새로 낸 길은 분명 아니다. 마치 아스팔트를 깐 뒤 고이고이 아껴 사용한 것 같은 깔끔한 도로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도로의 양옆으로는 잘 가꾼 뜰이 줄줄이 맞닿아 있다. 굴러다니는 쓰레기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은 누군가 공들여 가꾼 하나의 거대한 정원 같다. 지금 우린 차를 몰고 사모아의 어느 평범한 동네를 지나는 길이다.


저마다 개성 있게 가꾼 정원 뒤에는 짓다 만 듯한 집이 몇 미터 간격으로 자리한다. 나무 기둥을 둥그렇게 듬성듬성 세우곤 그 위에 지붕을 덩그러니 씌워놓은 모양새다. 바로 사모아의 전통 가옥인 팔레(Fale). 사모아에선 이 팔레 하나면 만사 오케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주거 공간은 물론, 바닷가에선 전망 좋은 게스트하우스로, 마을 공터에 널찍하게 지으면 회관이나 교회로도 사용 가능한 만능 건축물인 셈. 그 때문에 외지인 입장에선 이 각양각색의 팔레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흥미진진하다. 벽이 없을 뿐 팔레 안에는 여느 가옥처럼 침대며 소파, 싱크대와 식탁이 들어차 있다. 집에서 가족과 밥을 먹다가도 지나가던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길을 걷다 멈춰서 남의 집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럭비 경기를 응원하는 게 이곳에선 평범한 일상이다. 수도인 아피아(Apia)를 제외하고, 변두리에는 여전히 이런 주거 양식이 보편적이다. 현대식으로 지은 가옥 옆에도 어김없이 팔레가 나란히 별채로 자리한다. 대도시에서 생활하던 내가 벽도 담도 없는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여기에 머무는 동안 부러워할 뿐이다.


마을을 지나며 마주치는 각양각색의 개인 정원도 즐거움을 배가해준다. 거창한 울타리는 없지만 집집마다 돌이나 나무줄기, 조개껍질로 영역을 표시해 저마다의 가드닝 실력을 한껏 뽐낸다. “사모아 사람은 정원 가꾸는 게 취미예요. 그래서 마을이 깨끗하고 아름답죠.” 우리의 가이드이자 아름다운 사모아 여인 포인세티아 타에푸(Poinsettia Taefu, ‘시아(sia)’라고 부른다)가 말한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결과, 사모아 사람에게 정원 가꾸기는 단순한 취미를 뛰어넘는다. 시아와 우리 차량을 몰던 투이(Tui), 이 두 사모안(Samoan)은 함께하는 일정 동안 길을 가다가도 수시로 차를 세워 길가 가판에서 ‘정원을 가꿀 때 쓴다’는 정체 모를 재료를 사들였다. 어느 날은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진 이 둘을 길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는데, 길가에 차를 세우고 풀숲으로 들어간 시아와 투이는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건 다름아닌 ‘정원 가꾸기용’ 나뭇가지. 정말 못 말릴 고상한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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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마다 자리한 교회 건물

주거용 팔레의 모습

미스 사모아 출신이기도 한 시아.

 

 

 

 

일주일 중 하루는 사모안과 함께


일요일 아침. 사람보다 집이 더 많은 것 같던 한가로운 마을에 은근한 활기가 돈다. 마을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깨끗한 하얀색 옷을 차려입고, 삼삼오오 무리 지어 어디론가 바삐 걸어간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걷는 손자, 갓난아이까지 단정하게 옷을 맞춰 입은 아이 넷을 업고 어르며 힘겹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엄마 그리고 걸어가는 건지 장난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개구쟁이 무리가 모두 향하는 곳은 바로 교회다.


1830년, 영국인 선교사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와 찰스 바프(Charles Barff)는 사모아에 감리교와 가톨릭을 전파했다. 그전까지 태양과 땅과 하늘의 신을 믿었던 사모아 인은 그들의 전설과 비슷한 면이 많던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지금도 사모아 인구의 약 50퍼센트 정도가 개신교, 20퍼센트 정도가 가톨릭을 독실하게 믿고 있다. 마을마다 반드시 교회와 성당이 있고, 대부분의 마을에서 저녁 기도 시간인 오후 6시와 7시 사이엔 통행을 금지할 정도다. 그러니 일요일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예배가 한창 진행 중인 교회 안은 경건한 공기로 가득 차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팬이 달린 나무 천장 가운데에 자그마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나 있고, 그 안으로 들어온 은은한 햇살이 색색의 그림자를 만든다. 혹여 방해가 될까 조심조심 예배당 맨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귀 기울여본다. 목사님의 설교, 소박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노랫가락, 답답하지 않은 고요함이 익숙해지자 이내 마음마저 평온해진다. 알아들을 수 있는가 없는가, 신자인가 아닌가는 이 순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주일에 단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옷을 차려 입고 예배당에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는 사모안의 일상에 잠시 끼어든 것만으로 이 나라의 절반을 이해한 듯한 기분이 드니까.


교회에서 돌아온 사모아 사람들은 토나이(to’ona’i)라고 부르는 선데이 런치를 먹는다. 돌을 달군 전통 오븐 오무(omu)에 각종 재료를 넣고 푹 쪄서 만드는 이 음식을 가족과 함께 먹는 건 일요일마다 지키는 사모아의 전통이다. 신과 가족 그리고 음식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모아 사람들. 그들의 진짜 삶을 엿보고 싶다면, 비록 상점의 문은 닫을지라도, 경건한 일요일 하루만큼은 진심으로 즐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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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같은 마을을 걷는 두 소년.
예배가 한창인 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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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개봉한 게리 쿠퍼 주연의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 (Return to Paradise)>의
무대이기도 한 해변. 지금은 동명의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사모아는 까마득한 과거의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원시 자연의 신비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화산섬이다

우폴루 섬 중심을 남북으로가 로지르는 크로스 아일랜드 로드 (Cross island road) 중간쯤에
자리한 파파파파이 타이 (Papapapai-Tai)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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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잔잔하게 찰랑이는 토수아는 사모아의 아이콘이다.

 

자연이 선물한 다이빙 풀


사모아의 자연이 품은 매력을 단 1컷의 사진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혹은 피지, 바누아투, 통가, 쿡 아일랜드 같은 여느 남태평양의 섬과 확실히 구분되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자 할 때 사모아가 자신 있게 내미는 카드가 바로 토수아(To Sua)다. 땅 아래로 깊게 파고든 이 자연의 신비를 만나러 우폴루(Upolu) 섬의 남동부, 바다와 맞닿은 마을 로토포가(Lotofoga)로 향한다.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여야 할 법한 이곳은 이미 수많은 사람이 다녀갔다는 걸 증명하듯 쾌적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시커멓게 입을 벌린 구덩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치식물이 무성하게 자란 구덩이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찰랑거리는 물 대신 까마득한 밑바닥이 보인다. 사진에서 익히 봐온 토수아의 모습과 조금 다르다. “이건 톨레수아(To Le Sua)예요. ‘물이 없다’는 뜻이죠. 토수아는 저 앞에 있어요. 반대로 ‘물이 많다’는 뜻이고요.” 시아가 구덩이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이끌고 토수아로 데려간다.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토수아의 위용은 기대보다 훨씬 압도적이다. 아래로 푹 꺼진 구덩이는 2,000석 규모의 실내 체육관에 맞먹을 만큼 거대하고, 무성하게 자란 양치식물이 빽빽하게 주위를 메우고 있어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우림으로 착각할 듯한 모양새다. 지금처럼 울타리를 쳐놓지 않았다면 자칫 누군가가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는 아찔한 장면이 충분히 상상 가능한 곳. ‘쥐라기 시대였다면 아파토사우루스가, 판타지 영화 속이라면 거대한 트롤이 저 아래서 허우적대겠지’. 엉뚱한 내 상상과 달리 이곳은 30미터가량 깊게 파인 해구(海溝) 아래 바닥이 훤히 보일 만큼 투명하고 푸른 바닷물이 차오른 천연 수영장이다. 단, 이 특별한 장소에서 수영을 즐기려면 약간의 담력이 필요하다.


토수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한 번에 1명만 오를 수 있는 좁고 기다란 나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0미터라던데, 이를 훌쩍 넘어선 사다리 위에 서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게다가 이끼 낀 나무 사다리는 어찌나 미끄러운지. 온 감각을 발에 모은 채 한 발짝씩 천천히 내딛는다. 가까스로 도착한 덱 위. 간단히 몸풀기 체조를 하고 물에 뛰어들려는데, 먼저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던 한 커플이 소리친다. “물이 깊지 않아요! 너무 세게 뛰어들지 말아요!” 어차피 그럴 용기도 없던 터. 한 발로 도움닫기를 한 후 가볍게 뛰어내린다. 발이 바닥에 탁 닿았다 떠오르는 걸 보니, 지금 토수아의 수심은 1.5미터에서 2미터 정도다. 수심이 이렇게 늘 얕은 건 아니다. 이곳의 물은 고여 있는 듯 보이지만 멀지 않은 바다와 굴 아래로 연결되어 있어 밀물과 썰물에 따라 수심이 오르락내리락한다. 파도가 치지 않는 담담한 바닷물,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어둑한 굴이 둘러싸고 있는데도 두려움보단 엄마 품 같은 아늑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다시 기어 올라야 할 사다리를 흘끗 보고 나니 마냥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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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자리한 전통 팔레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다.
뒤뜰에서 기르는 파인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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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거슬러, 폭포를 향해


“자, 다들 정글을 탐험할 준비가 되었나요?” 올슨 바푸수아가(Olsen Va’afusuaga)가 서슬 퍼런 칼을 장난스레 휘두르며 말한다. 베테랑 리버 워킹 가이드인 그의 행색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낡은 슬리퍼며, 얄팍한 운동복 반바지에 다 늘어난 민소매 셔츠를 입고선 지금 우리에게 짜릿한 모험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복장이 다소 못미더워도 그 아래 드러난 다부진 근육을 믿어보기로 한다.


올슨 바푸수아가와 그의 아내 제인(Jane), 8살 난 딸 코코(Koko). 거기에 아기 고양이 트와일라잇, 개 2마리, 닭과 병아리 십수 마리 등으로 구성된 대가족은 우폴루 섬 남서부 팔레아셀라(Falease’ela) 지역의 계곡 깊숙이, 문명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뉴질랜드 인과 사모아 인의 혼혈인 그가 이곳에 산 지는 25년째. 울창한 열대우림이 둘러싼 그의 집 바로 옆으로 맑은 계곡이 흐르는데, 이곳이 바로 리버 워킹의 시작점이다. 사모아는 과거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계곡과 폭포, 분지 등이 곳곳에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화산섬이다. 이곳 역시 화산활동으로 생긴 사모아의 원시 자연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다. 그런 까닭에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리버 워킹은 단순한 트레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 이곳이 정말 좋아요. 자연재해를 겪으며 여러 번 집을 재건해야 했지만 여전히 그 마음은 변함없죠.” 불과 2년 전인 2012년에도 거센 사이클론이 집을 강타하는 바람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온 가족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온종일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급기야 비가 부슬부슬내리기 시작한다. 바푸수아가는 오늘 우리가 걸을 루트를 간략하게 설명한 뒤, 칼을 손에 쥐곤 앞장서서 걷는다. 신발도 신지 않은 그의 딸 코코가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가 재빨리 그를 앞지른다. “우리의 대장은 언제나 코코라니까요.” 바푸수아가가 ‘딸바보’ 미소를 지으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일행의 맨 뒤에는 그의 든든한 보조 가이드인 사모아 청년 ‘플라이(fly)’가 따라붙는다. 반질반질 닳은 화산암을 밟으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건 역시나 쉽지 않다. 물속을 걷다가도 다소 험난한 구간이 나오면 바푸수아가가 칼을 이용해 즉석에서 숲 쪽으로 길을 내주곤 한다. “늘 같은 길로 가면 자연이 훼손되고 말아요. 그래서 저는 그때그때 다른 길을 내서 일행을 인도하죠. 자연이 회생할 시간을 줘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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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 트와일라잇을 안고 있는 코코.
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닭과 병아리.
리버 워킹 가이드 바푸수아가.

 

 


바푸수아가가 리버 워킹을 시작한 지는 8년 정도. 그의 집에 인터넷이 들어온 게 딱 1년 전이라고 하니, 그 전엔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일을 해온 셈이다. “이전에 이 계곡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우리 가족과 찾아오는 친지뿐이었죠. 솔직히 그땐 이곳이 알려지는 게 싫었어요. 우리만 독차지하고 싶었던 거죠.” 요즘 그의 집은 연일 방문객으로 북적인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물론, 요즘은 수도 아피아에 사는 현지인도 많이 찾는다. 하루 일정으로 방문해도 그와 함께 리버 워킹을 즐길 수 있고, 며칠 더 일정을 잡아 그의 집 앞마당에 자리한 전통 팔레에 묵으며 뉴질랜드 인 아내 제인의 음식 솜씨를 경험해볼 수도 있다.


바푸수아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타잔처럼 열대식물 줄기에 매달려도 보고, 발이 미끄러져 물속에 첨벙 빠지기도 하며 걷는 동안 어느덧 일행은 커다란 폭포에 다다른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굵은 소나기로 바뀌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거대한 웅덩이 위로 떨어지는 폭포의 위용에 넋을 놓은 사이, 코코와 플라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가파른 돌벽을 기어 오른다. 순식간에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간 겁 없는 꼬마 아가씨는 5미터도 넘어 보이는 절벽에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훌쩍 뛰어내린다. 놀라움을 진정시킬 새도 없다. 건너편에선 플라이가 10미터도 넘는 3단 폭포 위에서 공중 제비를 돌며 멋진 다이빙을 선보인다. 플라이라는 이름에 걸맞고도 남을 솜씨다.


루트에 따라 3시간에서 6시간 코스까지 가능한 리버 워킹이 끝나면 누구든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다. 다소 남루해 보이던 바푸수아가의 복장에는 다 이유가 있던 것. 모두가 홀딱 젖은 채로 그의 집 야외 응접실에서 웃고 떠들자, 제인이 응접실에서 따끈한 코코 사모아(koko samoa)를 내온다. 순수한 카카오 덩어리를 으깨 따뜻한 물에 타 먹는 코코 사모아. 우리의 차나 인도의 차이처럼 따뜻한 코코 사모아 1잔에는 손님을 대접하는 사모아 인의 환대 정신이 담겨 있다. 단맛이 없는 코코 사모아에 설탕 1스푼을 듬뿍 넣고 뜨거운 김을 호호 불어가며 젖은 몸을 데운다. ‘오늘처럼 아무 걱정 없이 홀딱 젖어본 게 과연 언제였던가’. 리버 워킹 때문인지, 카카오 폴리페놀 효과 덕분인지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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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살던 바일리마 저택의 응접실을 재현해놓은 뮤지엄 내부.
저택은 아름다운 정원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누구에게나 보물섬은 있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날 곳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곳을 선택할 수는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Balfour Stevenson)이 자신이 죽을 장소로 사모아를 낙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기꺼이 생을 마감해도 좋을 안식처로 이곳을 택했다. 그는 사모아를 사랑했고 사모아 역시 그를 사랑했다. 그의 집을 박물관으로 보존해놓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뮤지엄에 가면 이를 역력히 느낄 수 있다.


이름은 다소 생소할지라도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이나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소설에서도 드러나듯 모험과 여행을 사랑한 그는 안타깝게도 천성적으로 몸이 약했다. 그럼에도 그는 생전에 요양과 여행을 반복하며 유럽과 미국의 여러 곳을 누비고 다녔다. 1888년에는 요트를 빌려 3년 가까이 태평양의 여러 섬을 탐험하기도 했다. 타히티, 뉴질랜드, 하와이 등지를 모두 돌아본 그가 선택한 가장 이상적인 요양지는 사모아. 1889년 사모아에 정착한 그는 우폴루 섬 중북부에 이곳 지명이기도 한 ‘바일리마(Vailima)’라는 이름의 저택을 짓고 가족과 함께 새 삶을 시작했다. “사모아 사람들은 스티븐슨을 좋아했어요. 그를 이야기꾼이란 뜻의 ‘투시탈라(Tusitala)’라고 부르며 무척 따랐죠.” 박물관 가이드 엘리자베스 시아오시(Elizabeth Siaosi)가 그의 집을 고스란히 재현한 박물관 내부를 안내하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풍스러운 식민지풍 가옥은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혹은 복제한 앤티크 가구와 소품으로 정갈하게 꾸며놓았다. 벽을 따라 드문드문 걸린 낡은 흑백사진에서 가족과, 사모아 사람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그의 삶이 엿보인다.


스티븐슨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모아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5년 정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에 대한 사모아 인의 사랑과 존경은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들의 기억 속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세기에 남을 문호라기보단 지역민에게 카카오와 파인애플 경작법을 알려준 친절한 이야기꾼 아저씨였다. 사모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거운 삶을 사는 동안 그의 건강은 잠시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1894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은 그를 영영 사모아에 붙들어 놓고 만다. 스티븐슨은 이곳 바일리마에서,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의 아내는 그를 바에아 산(Mt. Vaea)에 묻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가 생전에 수많은 영감을 얻은 장소이기 때문이죠.” 좀전까지 말괄량이 아가씨 같던 시아오시의 목소리가 어느덧 침착하게 바뀌었다. 스티븐슨의 무덤이 있는 바에아 산 정상까지는 뮤지엄에서 30분쯤 걸어가면 닿는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하던 시아오시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덧붙인다. “스티븐슨의 유해를 매장할 때 그가 신고 있던 신발을 그대로 함께 묻었대요. 그가 늘 사모아의 대지를 밟고 다니던 신발이기 때문이라고요.”


사모아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마음 속에서 갈망하던 바로 그 보물섬이었을까? 아무래도 좋다. 그가 천국에서 사모아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 ‘참 잘 살았다’할 만큼 사모아 사람들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아는 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이홍기는 화보부터 여행 사진까지 두루 섭렵하는 캐논 브랜드의 전속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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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2월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일정이나 비행기 탑승 시간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혼자만 현지에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오랜 외유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터라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들뜬 사람을 혼자 배웅하는 기분은 썩 좋을 리 없다. 혹시 현지인에게 박대라도 받는다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다 찢어질 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마음이 가득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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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플래닛 매거진 #사모아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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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5.02.27

밤하늘이 마치 페인트를 뿌린것처럼 선명한 짙은 파랑이네요. 진짜 저런곳도 있구나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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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죠

2015.02.27

책에서만 보던 그곳이네요. 저기 한번 가면 다시는 안 돌아오고 싶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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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보석

2015.02.27

"사람은 자신이 태어날 곳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곳을 선택할 수는 있다"라는 글을 보니 예전에 여행을 갔을때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면서 그곳에 묻히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것이 떠오르네요. "그가 천국에서 사모아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이라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찡한 느낌이 듭니다. 사모아의 매력중에서 특히 토수아는 감탄사가 나올정도로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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