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독에게는 흔히 당사자와 여러 사람들의 욕망으로부터 생겼을 특유의 이미지가 있다. 이 덕택에 감독은 쉽고 빠르게 그의 작품을 봐주는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동시에 그 이미지에 박제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폭력의 피카소’ 라고 불리는 바람에 서정적인 투의 작품들이 평가절하 당했던 샘 페킨파가 있다.) 유현목 감독도 이런 상황에서 예외가 되지는 못한다.
그의 이름하면 떠오르는 <오발탄>의 영향으로 인해서 그는 오직 당대 사회를 고발하는 리얼리즘적 경향이 강한 감독으로 인식되는 편이다. 유현목이란 사람은 차라리 소위 '독립영화적인 정신' 으로 과작했지만, 가능하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들을 다양하게 만들었다고 정의되는게 더 어울릴 것이다. 그가 소화한 장르는 호러, 전쟁, 코미디, 스릴러, 로맨스, 느와르 등 꽤나 다양하다.
그의 1966년작인 <막차로 온 손님들>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아주 염세적인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견줄만한 작품이 뭐가 있을까? 아마 2년 뒤에 만들어 졌으나 당시 검열에 의해 개봉금지되어 2005년이 되어서야 공개된 이만희 감독의 <휴일> 정도? <막차로 온 손님들>은 시트콤과 TV 드라마 덕분에 젊은 세대들에게도 유명하신 이순재 옹의 30대 시절 주연작 중 하나다. 사실 이 작품의 제목은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막차를 타는 인생들이 과연 좋은지에 대해 생각해볼 때 그리 좋은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다. 작품의 제목은 자신의 몸 하나 뉘일 곳도 찾지 못한 채 현실적, 정신적인 측면에서 길바닥을 떠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어떤 여건이었던 간에 상관없이 이들은 전부 선택을 할 처지에 놓인다. 작품은 세 남자가 각자 다른 여건 속에서 세 여자를 만나고, 현실을 회피하던 와중에 결국 선택을 내리는 과정을 덤덤히 보여준다. 작품의 정서는 덤덤하지만 우울하며,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서는 좀 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도입부에서 자신이 시한부 임을 깨닫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까칠하게 구는 동민(이순재)은, 도입부에서 자신의 상태를 알고 밤거리를 무기력하게 걷던 동민은, 역시 무기력하게 허우적대는 사연 있는 여자인 보영(문희)을 발견한다. 동민은 문희를 구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지만, 그녀를 멀리하려 한다. 한 편 동민의 상태를 진단해주는 의사인 친구 경석은 그 곳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 세정과 가까워지며, 그 즈음에 경석과 동민의 친구인 충현이 외국에서 돌아온다. 그러나 충현은 한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지친 아내가 배우가 되고자 가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좌절감에 빠져 팝 아트를 그리는 데만 몰두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조그맣게 살아요”
<막차를 탄 손님들>을 감상하다 보면 이미지를 활용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어 놀라게 된다. 가령 이만희 감독의 <휴일>은 서울을 황량한 사막처럼 보이게끔 끊임없이 건조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흑백 시네마스코프로 찍었다. <막차를 탄 손님들>은 컬러 시네마스코프다. 한국은 90년대에 이르기까지 3~4회 정도의 색보정을 하면 끝이었고 (외국에서는 감독이 만족할 때까지 색보정을 한다.) 당시 컬러 필름의 품질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밤 촬영을 쉽게 할 수 있는 조명들의 도입도 그 당시에 막 정착되려고 했었다. 유현목 감독은 이 모든 조건들을 감내하며 작품을 찍어야만 했고, 그 와중에 부족한 부분은 시네마스코프의 구도를 살려 메워냈다. 근데 이게 훌륭하다.
유현목 감독은 오랜 시간 스토리보드를 고민하고 그린 다음, 현장에서 철저하게 그것만으로 찍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작품에서 유현목 감독은 남들과 자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나름의 색깔과 안정적인 영상화 구현을 지킬 수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서 영화를 많이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를 테면 동민의 캐릭터는 남녀노소 분간 않고 까칠하게 구는 모습으로 주로 인식되는데, 작품은 동민이 침대에 눕는 어느 순간 사선의 불안정한 구도로 그를 포착한다. 그리고 불안정한 기울기 끝에 위치한 건 바로 동민의 머리다. 마치 여기서 더 기울어지면 동민은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다. 티 내지 않지만 관객은 잠시 등장하는 이런 순간들로 인해 동민이 원래 시한부 판정을 받아 인생의 위기에 처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꺼리는 사람의 심리를 구현하는 프레임 구성도 남다르다. 동민과 보영의 동거가 길어지면서 두 사람은 점점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동민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보영을 멀리한다. 한 방에 같이 있었던 동민이 보영을 떨어뜨리고 다른 방으로 가버릴 때 관객의 눈에 주로 보이는 건 벽이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어느 정도까지만 타인을 허용하는 무언의 벽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작품은 시네마스코프 프레임의 중앙에 긴 벽을 위치시킴으로써 서로 간의 차단과 거리감을 은유 한다. 작품은 6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서양의 마천루를 볼 때나 느낄 법한 황량하고 쓸쓸한 도회적 정서를 도입시키는데 성공한다. 소위 말하는 ‘모던함’ 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후대의 관객으로서 옛날 영화들에 새로운 흥미가 생기는 순간들은 이럴 때다. 아무리 당시에 산업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들, 도회적인 감수성을 끌고 들어오기에는 장소나 시대가 너무도 못 받쳐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끝끝내 이런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 창작자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된다.
유현목 감독의 <막차를 탄 손님들> 역시 사랑은 좌절되고, 심지어 누군가가 죽는데 등장인물들 역시 예측하고 있으면서도 막지 못한다. 그러나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절망의 끝까지 떨어지는 반면 <막차를 탄 손님들>은 살짝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굳이 이 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봤다. 이 작품 역시 검열이 두려워서 그리 했겠지. 하지만 그렇게 단정짓자니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렇게 가난하고 조그맣게 살아요” 라는 대사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원체 많다. 우리는 흔히 가난하고 조그마한 삶으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기도 하겠지만, 국가 차원에서 부자가 되지 않으면 인간 대접받고 못 산다는 환경을 조성한 문제도 있다. 좌절하게 되면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분명 다른 길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막차를 탄 손님들>의 마지막 대사는 이성을 잃지 말고 생각해 보자는 일갈처럼 들린다. 어느 시대건 사회가 희망적으로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막차를 탄 손님들>은 60년대 한국의 냉정한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삶을 살 수 있는 여지를 이야기 한다. 중요한 건 그걸 깨닫는 일인데, 내 이런 감흥이 사실 오버한 해석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여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작품의 질이 훌륭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면서 끝내고 싶다. 6~70년대 한국영화들을 리뷰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자괴감과 비참함이다. '아.. 내가 이만큼 문학을 등한시 했으니 보고 싶은데, 왜 도통 구해볼 수가 없는가' 같은 느낌? 영화사에서 걸작으로 기록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문학을 영화화한 ‘문예영화들’ 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막차로 온 손님들>은 주간지에 연재됐던 홍성원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82년에 처음 책으로 묶여 출간됐는데, 이후 재출간 되지 않았다. 솔직히 재출간 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한국 사람이 한국 소설 읽기가 이렇게 힘드냐. 외국소설인 『위대한 개츠비』는 내가 알고 있는 출판본만 해도 열 개가 넘는데... 예스24가 인터넷 서점이기도 해서 이런 글을 남겼으니, 혹시 출판인들은 한 번 보시거든 고려나 좀 해주시길 바란다.
p.s. ? 이 리뷰의 제목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출시한 유현목 감독 DVD 박스세트의 책자에 실린 박유희 평론가의 글 <윤리와 희망: 유현목의 영화세계>에서 가져왔다. 부제목은 가수 이정선의 1974년에 발표한 앨범인 <이리저리 / 거리>의 수록곡인 ‘거리’의 가사를 일부 가져왔다.
[추천 기사]
- 알고 보면 되게 슬픈 이야기.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
- 사는 게 지옥이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
- 맘 속에 피어나는 작은 불씨 - <지골로 인 뉴욕>
홍준호
네이버(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파워블로거, 대학졸업생, 딴지일보 필진, 채널 예스에서 글 쓰는 사람. 혼자 작품을 보러 다니길 좋아하고 또 그런 처지라서 코너 이름을 저렇게 붙였다. 굳이 ‘리뷰’ 라고 쓰면 될 걸 뭐하러 ‘크리티끄’ 라고 했냐 물으신다면, 저리 해놓으면 좀 고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더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거 보시는 분들 글 마음에 드시면 청탁하세요. 열과 성을 다해 써서 바칠께요. * http://sega32x.blog.me *
앙ㅋ
2015.01.15
rkem
2015.01.11
yundleie
201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