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고기(육식주의자라는 건 부끄럽지만), 빵, 커피를 꼽곤 했다. 나는 밥보다 빵을, 채소보다 고기를, 술보다 커피를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커피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동반자였다. 집 근처의 카페에 나가 일을 할 때면 당연히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는 게 일의 시작이었다. 작업 환경이 좋고 커피 맛이 좋은 곳을 찾아 유목민처럼 이동하다보면 때로는 꽤 먼 곳까지 떠돌았다. 그러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한동안은 집의 책상에 앉아 일했다. 그때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콩을 갈아 드립 커피를 만드는 것이었다. 어쩔 때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그날의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했고, 아주 가끔은 정신 없이 휘갈겨 쓰다가 한숨 돌리려고 컵을 들었을 때 커피가 차게 식어버린 걸 깨닫곤 했다.
글을 쓸 때뿐 아니라 머리가 살짝 아프거나 속이 부대낄 때 몸이 찌뿌드드할 때도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면 한결 가뿐해졌다. 그렇다고 커피나 커피 맛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내게 커피는 두통약, 소화제,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환각제였다. 임신 후 걱정 중의 하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커피를 줄이고(되도록 마시지 않고) 그 이후에도 하루에 한 잔 정도의 패턴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입덧 때문에 고기를 못 먹게 된 건 괜찮은데 커피는 상상만으로도 아쉬웠다.
그러나 임신 중 나의 모토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몸이 원하는 대로 하자, 였으므로 일하러 나가면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가장 맛있는 첫 모금이, 그 따끈하고 고소하고 얼큰하기까지 한 그 첫 모금이 그저 쓰고 텁텁했다. 천천히 반 잔을 마셔봤지만 심장 박동만 빨라질 뿐 좋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입덧 때문에 고기가 싫어졌을 때와 비슷했다. 우려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그건 마치 집착하던 상대, 그 집착 때문에 일상이 무너질 것만 같던 상대에 대한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아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밀어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작업의 동반자였던 커피는 한동안 다양한 음료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물론 입덧이 끝난 뒤에는 다시 옆자리를 지키게 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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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앙ㅋ
2015.01.10
눈부신햇살
2014.12.26
늘 기사를 보면서..잘 조리하고 계시나? 가끔 궁금하네요..
추운데, 미끄러운데 조심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