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마음을 가장 빠르게 훔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과자를 들고 나타나는 것이다. 달콤한 것이 흔치 않던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누가 과자를 주더라도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아이들은 홀린 것처럼 과자를 주는 사람의 말이라면 잘 들었다. 요즘은 대형 마트에 가면 과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데다 다른 맛있는 간식도 많아서 옛날만큼 과자의 인기가 높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지금 엄마 아빠 세대는 한두 가지씩 추억의 과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초콜릿을 입힌 막대과자가 처음 나왔을 때 그 과자를 먹어보았다는 친구에게서 한참동안 후기를 듣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의 얼굴에는 새 과자를 먼저 먹었다는 자랑스러운 감정이 가득했다. 어쩌다 수입 과자라도 맛보게 되면 그 묘한 향을 통해서 먼 이국의 공간을 상상했다. 명절날 손님이 들고 온 근사한 과자 선물 상자를 열 때마다 형제자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누가 몇 개를 먹을 것인가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나눠먹어야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갑자기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 과자의 속성이다.
『안 돼, 내 과자야』는 어린 형제, 자매가 있는 가정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전통적인 난제, ‘과자 의 공정한 분배’를 둘러싼 이야기다. 맛있는 과자란 항상 몇 개 안 들어있기 마련이어서 분배의 과정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과자가 식구 숫자에 딱 맞게 들어있으면 좋으련만 꼭 남는 과자가 문제를 일으킨다.
어느 날 주인공의 아빠는 ‘우리나라 최고의 제과 명장이 만든 과자’를 가져온다. 이 과자에서는 ‘이제껏 먹어 보지 못한 엄청난 맛’이 났다. 주인공은 그 미식의 세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할머니, 아빠, 엄마는 하나씩, 주인공과 동생은 두 개씩 나눠 먹었는데도 과자는 아직 세 개가 남았다. 엄마는 내일 먹으라면서 야속하게도 상자를 치워버린다. 냉장고 위에 둔 과자 상자를 바라보는 주인공 남매의 표정은 의자 놓고 올라가 내려주고 싶을 만큼 간절하다.
남은 과자 세 개의 유혹은 주인공의 밤잠도 설치게 만들고, 이튿날 학교 수학시간에도 3을 중심으로 한 덧셈과 뺄셈만 헤아리게 만든다. 주인공의 과자 걱정은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이 나보다 먼저 집에 도착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최고조로 치닫는다. 낮도깨비 같은 동생은 바로 지금 과자를 날름 다 먹어치워 버릴 수도 있을 텐데 어쩌나. 종례를 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는 주인공은 얼마나 빨리 뛰는지, 발이 보이지 않는다.
한 어린이에게 동생이 생기는 스트레스는 어른들의 이혼 스트레스와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 그림책은 사실 과자를 둘러싼 동생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다. 심술궂게 그려진 동생의 얼굴에서 남매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의 시점은 오빠 편이고 머리에 뿔을 그려넣은 것을 비롯해서 동생의 여러 가지 얄미운 표정은 모두 그의 속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동생을 어찌나 못 돼 보이게 그렸는지 그 눈초리를 보고 있으면 오빠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된다. 과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헐레벌떡 집에 도착한 오빠를 맞이하는 건 역시나 먼저 도착한 동생이다. 그러나 동생은 이미 과자에 손을 댄 눈치다.
“야! 너 혼자 더 먹는 게 어딨어!”
책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펄쩍펄쩍 뛰었다.
동생이 미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세 개 남긴 과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은 과자를 몇 개나 먹었을까. 이 그림책이 독자를 가장 즐겁게 하는 건 그 다음 장면부터다. 오빠는 털썩 주저앉기도 하고 다리를 배배 꼬기도 한다. 과연 그 동생이 과자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동작을 하는 것인지, 결말은 궁금함 속에 남겨둔다. 이 그림책은 과자의 최후에 관한 퀴즈를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숨겨두었다. 글자는 한 자도 쓰여 있지 않은 깜짝 엔딩 장면 덕분에 독자들도 슬쩍 이야기에 참여하게 된다.
불투명하면서도 따뜻한 색감과 쓱쓱 그려낸 체크무늬 붓 자국은 읽는 사람이 어느 집 거실에 초대받기라도 한 것처럼 보는 내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작가는 배경 묘사를 최소화하면서 반복되는 간결한 패턴을 반복한다. 카펫트나 벽지, 때로는 커튼 같기도 한 줄무늬, 꽈배기무늬, 점박이무늬는 장면마다 차이를 두고 배치되어 훈훈한 공간감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남매와 가족들이 입은 옷도 마찬가지인데 복잡한 디자인보다 옷감의 개성을 살리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한결 집중력 있게 과자의 행방에 몰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명장이 만들었다는 초코칩 쿠키는 한 입 베어 물고 싶게 부드럽고 고소하게 잘 그려졌다. 그림을 어떻게 고소하게 그렸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이 없지만 이 책 속 쿠키를 보면 정말 입맛이 돈다. 진짜처럼 그린 것만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 책의 과자 그림을 보면서 깨닫는다.
사실 동생과 화해하는 일은 쉽다. 과자 반 쪽 먹는 것 참을 정도만 용기를 내면 된다. 그런데 동생과 화해하는 일은 참 어렵다. 그만큼의 용기와 배려가 내 안에서 먼저 나와야 하는데 잘 안 되고 부루퉁해지기만 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른들이 곁에서 ‘네가 더 크니까 참아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오빠를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조마조마하고 억울한 마음을 이해해준다. 제대로 된 위로를 받으면 우리는 마음이 좀 커진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래서 동생에게 뭔가를 해준다.
동생을 맞은 아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면 ‘동생이 예쁘지’라는 이야기보다는 ‘네가 참 괜찮은 오빠구나’라는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생을 얻은 큰 아이에게 선물하기 적절한 책이다. 물론 과자도 함께 사 가는 것이 좋겠다. 다만 과자를 사갈 때는 주의할 일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엄청난 맛’의 과자를 살 것, 둘째는 분쟁 없이 동생과 나눠먹을 수 있도록 꼭 넉넉히 두 봉지를 선물할 것. 가끔은 손이 큰 어른 손님이 되어보는 것도 멋지지 않은가.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선생님 과자
장명용 글/김유대 그림 | 창비
과자에 대한 그림책 중에서 군침을 돌게 하는 또 다른 걸작. 이 그림책은 교실에서 압수한 과자를 몰래 드시는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담았다. 어린이가 직접 쓴 시에 재치 만점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손가락에 끼워 먹는 과자의 아작아작한 느낌을 생생하게 살렸다. 김유대의 그림을 보면 번질번질 손에 기름이 묻는 반지 모양 과자가 먹고 싶어서 가게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자를 집어 먹는 선생님의 능청스러운 표정도 일품이다. 이왕이면 책 속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과자를 그림책 선물과 함께 건네면 환영받는 어른 손님이 될 수 있겠다. 다만 주인공의 절절한 부러움을 같이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책을 다 읽고 나서 과자를 먹으라고 미리 일러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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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내 과자야!백주희 글,그림 | 책읽는곰
과자를 둘러싼 남매의 숨 막히는 신경전! 들키고 싶지 않은, 하지만 들켜 버린 오빠의 부끄러운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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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동화작가)
김지은. 동화작가, 아동문학 평론가. 어린이 철학 교육을 공부했다. 『달려라, 그림책 버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을 함께 썼고 EBS '라디오멘토 부모'에서 '꿈꾸는 도서관'을 진행했으며, 서울시립대, 한신대, 서울예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앙ㅋ
2015.02.21
서유당
2014.11.03
눈부신햇살
2014.11.03
어느 순간 먹는 것에 욕심이 없어졌을때부터 싸울일도 사라지고..
어린시절에 가장 가까운 경쟁자이자 가장 가까운 후원자이기도 하지요..형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