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원수라는 말이 있는데, 영어로 돈을 의미하는 money도 좋은 의미를 갖고 있진 않다. Money는 괴물을 의미하는 monster와 어원이 같다. Money와 monster는 모두 monere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Monere는 경고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경고란 신탁처럼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불가항력적인 것을 가리킨다. 고대 서양인들은 인간의 능력은 타고 난다기보다 훈련과 교육을 통해 갈고 닦는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monere 같은 것은 인간의 능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고대에 괴물의 출현은 재난의 징조였다. <오이디푸스 왕>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는 앞으로 벌어질 비극에 대한 상징적인 복선이다. 사자의 몸에 여자의 얼굴이라니, 진짜로 본다면 정말 끔찍하리라. 그래서 르네상스 도상학에서 이런 형상은 ‘기만’을 뜻했다. 오른손으로 꿀을 건네면서 왼손에 전갈의 침을 감추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도 그림에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스핑크스를 만들어낸 이집트인들에게 이런 의미는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고대 이집트 때만 해도 반인반수의 괴물을 신으로 섬기는 풍습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 괴물의 형상은 나쁜 의미로 바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학자들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발달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탄생은 신화의 세계를 과학의 탐구대상으로 바꾸는 과정이기도 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선 대상을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괴물로 치환시키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괴물이나 귀신의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다지 놀라운 변화가 아니다. 과학기술이 첨단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도 이런 일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것이 무엇인지 규정되어야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출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괴물은 합리성을 규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상인 것이다.
여하튼 이런 생각을 확장해보면, 고대 서양인들은 돈을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아예 돈을 제우스의 부인인 유노 여신을 섬기는 사원에서 찍어냈다. 유노 여신의 사원이 요즘으로 치면 조폐공사였다. 이 유노 여신의 성이 Moneta였다. Juno Moneta라는 말이다. 원래 로마의 신화는 그리스에서 온 것이다. 여기에 로마인 특유의 민간신앙들이 결합되어 로마인은 다양한 신들을 믿게 되었다. 인도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각자 필요할 때마다 찾는 신의 종류가 다양했다. 출산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거나, 배우자를 잘 만나게 해달라고 빌 때 찾아가는 신이 달랐다.
이런 기복신앙의 대상인 자질구레한 신들과 다른 급에 있는 신이 12명이다. 이들은 남녀 각각 6명씩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리스에서 제우스니 포세이돈이니 아폴론 등으로 불리던 신들의 이름이 로마식으로 바뀌어서 유피테르, 넵투누스, 아폴로 등으로 불렸다. 유노는 헤라의 로마식 이름이다. 헤라는 그리스에서 여성과 결혼을 보호하는 신이었다. 그런데 로마로 넘어오면 국가의 수호자로 바뀐다. 유노 여신의 사원이 무슨 일로 돈을 찍어내는 장소가 되었는지 이를 통해 추리해볼 수 있겠다. 국가를 지탱하는 경제에서 돈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국가를 수호하고 그에 관련한 문제를 상담해주는 존재로 여겨졌던 유노 여신이 돈과 관련된 업무를 떠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연유가 어떠했든 money는 Moneta라는 유노의 성에서 파생되었다. 유노는 국가의 일을 관장했으니 당연히 많은 ‘경고’를 했지 않겠는가. 이 경고는 또한 신탁을 내려주는 ‘신호’이기도 했을 터이다. Monster는 이런 의미에서 불길한 재난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경고이자 신호였다. 로마인들은 전염병이 돌거나 전쟁에서 참패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의 사실을 알리기 위해 켄타루스나 스핑크스 같은 괴물들이 출현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닥쳐올 불행을 경고하는 신호가 바로 monster였다. 유노는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미리 경고를 보내는 여신이었던 셈이다. Moneta에서 money가 유래했다는 증거는 monetary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 Monetary는 ‘통화와 관련되어 있다’라는 뜻이다. 로마식으로 말하면 유노 여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1997년 한국이 경제위기를 겪었을 때 IMF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IMF는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준말이다. 사실 IMF가 한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1997년을 ‘IMF 경제위기’라고 곧잘 말한다. 당시 경제위기는 재난의 상황이었다. 수많은 가장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한국의 경제구조도 완전히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1997년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에게 IMF는 마치 괴물처럼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국에 “Money doesn't grow on trees”라는 속담이 있다. 당연히 나무에서 돈이 자라지는 않는다. Pachira aquatica라는 학명을 가진 일명 ‘돈나무’도 있긴 있지만, 그 나무를 팔아서 자산을 만든다면 모를까 나무에서 돈을 얻을 수는 없다. 이 속담은 ‘돈의 희귀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돈은 귀한 것이라는 의미인데 사실은 어폐가 있다. 돈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돈이라는 것은 교환가치를 사용가치로 착각하게 만든다. 돈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품과 교환될 때 가치를 갖게 된다. 또한 그 가치도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품귀현상이 발생하면 가치가 상승한다. 반대로 상품 양이 넘쳐나면 가치는 하락한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절된다고 주장한 것이 고전 경제학이었다면, 마르크스는 그렇게 조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에 대해 여전히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둘 다 완전히 맞지도 완전히 틀리지도 않았다. 이 복잡한 논의를 여기에 풀어놓기란 난망한 일이니, 돈의 가치라는 것이 교환의 관계를 통해 결정된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인해놓고 가자.
많은 이들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일하게 여기지만 둘은 그다지 관련이 없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이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다. 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경제에 맞춰놓은 이론이다. 그래서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중요했다. 초기 자유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착하다고 봐서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문명이 발전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유로운 개인의 경제활동’을 보장해주는 제도와 정책을 완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는 이론은 없는 법이다.
자유주의의 이상과 그것이 구현되어서 드러난 현실은 전혀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주의는 초기에 갖고 있던 믿음을 저버려야했다. 경제적인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평등이다.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어떤 이는 부당하게 많은 자유를 누리고 어떤 이는 억울하게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주장이 점점 거세진다는 것은 초기 자유주의에서 신봉했던 착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전제가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규율이나 훈육이 없다면 인간은 쉽게 방종에 빠지는 나약한 존재로 새롭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규율과 훈육은 누가 실행해야할까. 정부가 해야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정말 숨 가쁜 변화다. 자유방임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력한 정부를 기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유방임주의를 척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뭘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것처럼 정부는 성긴 그물코 같은 장치라는 사실이다. 빠져나갈 고기는 다 빠져나가 버리는,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없앨 수도 없는 필요악이 정부이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돈 문제에서 비롯된다. 정부를 필요로 하는 것도 돈 때문이고 그 정부를 축소시켜서 최소의 기능만 남겨둬야 하는 것도 돈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money야말로 항상 불가항력적인 위험을 경고하는 monster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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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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