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의 편의점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인데, 귀에 날아든 모녀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저런 사람이 하필 왜 내 고모야?” “네 아빠 여동생이니, 네 고모 맞아.” “정말 싫어!” “가족인 걸 어째. 가족은 싫어해서도 안 되고, 싫어할 수도 없는 거야.” 때가 명절 끝 무렵이니 그들, 한창 정의감이 곤두서는 초등 고학년이지 싶은 아이와 이미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에서 쓰라린 경험이 적잖을 엄마가 함께 겪었지 싶은 ‘하필 내 고모’의 몇 장면 몇이 떠오른다. 집안의 또래 아이와 비교해 옷차림이며 성품이며 몸무게를 들먹이며 면박 주기… 제 부모 형제자매에게 함부로 굴면서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떠벌이기… 속옷 차림으로 거실이며 주방을 돌아다니기..... 손 하나 까딱 않은 채 음식 타박하기… (필자 역시 열 명도 넘는 조카들의 고모이지만, 아이들은 대체로 이모보다는 고모에 대해 예민하다.)
가족은 싫어해서도 안 되고, 싫어할 수도 없는 거라고, 세련되게 처신하는 다정한 이모도 고약하게 구는 꼴불견 고모도 모두 가족이라고, 그 모두가 참으로 기적 같은 확률에 의해 맺어진 인연이라고, 결혼하거나 재혼하여 생겨나는 새 가족에게도 스스럼없어야 한다고, 아이에게나 우리 자신에게 막무가내 강요하지 않고 넌지시 재치 있게 일러줄 방법은 없을까.
『가족의 탄생』은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심란한 질문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코믹 터치 유머 모드로 대답한다. 고양이 가면을 쓴 듯이 설정된 주인공 아이며 할아버지며 엄마며 일가친지를 만화적 표현으로 과장한 익살이 무엇보다 즐겁다.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아이가 나팔꽃을 잘 가꿨던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사이사이 엄마와 주고받는 조상과 자손과 가족에 대한 옹골찬 질의응답이다.
아이는 창가에 활짝 핀 나팔꽃을 보면서 자상하고 믿음직했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울음을 터뜨리며 ‘스윽’ 눈물을 훔치던 아빠의 손이 할아버지 손과 닮았더라는 기억을 불러낸다. ‘할아버지란 아빠의 아빠란다.’라는 설명을 대신하는 가슴 뭉클한 에피소드이다.
나팔꽃에서 시작된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아이다운 물음을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죽어서 무엇이 되었을까? …새가 되어 훨훨 날아다닐까?… 구름이 되어 두둥실 떠다닐까?…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러자 기억 속의 할아버지 목소리가 대답한다. 아이가 집에서 기르던 거북 쭈쭈가 죽어서 엉엉 울던 그 때, ‘살아있는 건 다 죽는 것이고, 죽는다고 영 못 보는 건 아니며, 보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며 나팔꽃 앞에서 해주셨던 바로 그 얘기. ‘여길 좀 봐. 씨앗 하나에서 이렇게 많은 꽃이 피어나잖니? 이제 꽃이 지고 나면 아주 많은 씨앗이 맺히겠지? 그 씨앗들이 자라 꽃을 피우고, 또다시 씨를 맺고… 그렇게 나팔꽃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거야.’
이어지는 ‘가족나무’ 이야기, 인디언의 자기 소개 이야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혼례 이야기 들도 흥미진진하다. 재미나게 읽고 나면 ‘하필’ 가족 탓에 욱신욱신 멍들고 상한 마음이 한결 가라앉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모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주소를 받아두었다가 이 그림책을 선물할 텐데, 생각하자 줄줄이 얼굴이 떠오른다. 태어나자마자(?)부터 고약하게 굴었던 언니에게 사십 년 내내 시달렸다는 후배, 큰 소리 한번 안 듣고 자라나 결혼 이후 시어머님 모시면서는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살아온 친구, 모질게 닦달한 아버지를 이십여 년째 찾지 않고 지낸다던 제자…
*세상과 겨레와 연대하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보여주는 그림책
백석 저/유애로 그림 | 보림
이 작품은 백석의 아름다운 동화시에 그림을 얹어 만든 책이다. 백석의 다른 시가 그러하듯이 우리 말의 아름다움이 넘치며, 이야기도 너무나 따뜻하다.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모습이며 또 그렇게 베푼 사랑은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소박하면서도 귀한 주제가 담겨 있다. 운율에 맞춰 시를 읽어가다 보면 저절로 착한 사람이 되는 듯 하다. 삽화도 서정적이며 풍요롭다. 이런 책을 읽지 않으면 어떤 책을 읽겠는가?
앨런 세이 저/엄혜숙 역 | 마루벌
일본계 미국인 작가 앨런 세이의 자전적 이야기.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하여, 가정을 꾸립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자 향수에 빠져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그러다 다시 캘리포니아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 납니다. 할아버지, 엄마, 나 삼 세대를 지나오면서 미국과 일본의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한 컷 한 컷 사진그림과 함께 서정적으로 펼쳐집니다. 아릿한 향수, 그 그리움은 긴 여행과도 같습니다.
리즈 가튼 스캔런 글/말라 프레이지 그림/이상희 역 | 웅진주니어
어느 여름날 한적한 마을, 해변에서 한 가족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오빠와 함께 돌을 나르고 모래성을 쌓으며 “커다란 바위, 돌멩이, 자갈, 모래” 하고 손으로 만지는 자연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봅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아이의 시선이 확장되고, 자신을 둘러싼 소소한 자연이 서로 어우러져 넓은 해변을 이루고, 또 합쳐져 넓고도 깊은 세상을 이루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윤여림 글/윤지회 그림 | 토토북
이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습니다. 여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여섯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사랑과 믿음으로 서로를 보듬고 지지하는 진짜 가족이지요. 원장 선생님, 진아 선생님, 언니?오빠?동생들로 늘 힘이 넘치는 보육원 수진이네, 후원 가족으로 만난 후안 오빠와 가족의 정을 나누는 선예네, 혈연보다 더 귀한 사랑으로 맺어진 서준이네 등 각각 다른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따뜻하고 잔잔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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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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