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무(無)가 아니다. 사람은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은 그 마음, 죽은 사람이 남긴 것을 그 다음 세대로 전해야 한다."
『고민하는 힘』, 『살아야하는 이유』의 재일 학자 강상중은 얼마 전 『마음』이라는 첫 소설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마음』은 2010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강상중이 이듬해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대재난을 겪고 쓴 작품이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직후 "자신의 파멸과 세계의 파멸을 보고 싶다"던 아들의 말을 좇아 지진 최대 피해지역인 후쿠시마 미나미 소마를 찾았다. 인간의 시신이 짐승의 그것처럼 나뒹굴고, 그 위엔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그가 떠올린 단어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였다. 죽음을 애써 잊으려 하지 말고, 망각하려하지 말고,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그는 죽음을 기억하는 길로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이 남긴 것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위대한 위인의 엄청난 업적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남은 추억, 그 사람이 했던 말, 이상, 꿈, 사소한 습관이라도 좋다. 그가 삶을 통해 남긴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새긴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림책 『바다가 그리울 때』는 강상중이 말하는 그런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담아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고, 애틋하게 보여준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어요. 산을 여러 개 넘어가야 바다가 있지요.”
그림책을 펼치면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가 보고 싶은 아이는 아빠와 함께 아침 일찍 바닷가 마을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구블구불한 산길을 따라 산을 오른 버스가 울창한 푸른 숲을 지나 다시 산을 내려오면 저 멀리,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인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바닷가에 도착해, 늘 가던 여관에 짐을 푼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풍기고, 느긋하게 밥까지 먹은 아빠와 아이는 바다로 나가 신나게 논다.
다음 날엔, 해뜨는 광경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하늘이 여전히 보랏빛일 때 일어나 종종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 해 바닷가로 나간다. 기대에 부풀어 도착한 바닷가. 하지만 이들이 보는 풍경이 너무나 쓸쓸하다고 느낄 때쯤이면, 그림책을 넘기는 사람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봐야할 엄마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해는 조금씩 바다위로 떠오르고, 아빠는 바닷가에 서있는 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제야 아이는 이 여행이 엄마와의 추억을 찾아온 여행이라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휴가철이면 아빠랑 엄마랑 나는 이곳에 오곤 했어요. 우리는 함께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모래성을 쌓고, 파도를 맞이하고,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어요. 엄마는 내 사진을 많이 찍어 주셨지요.”
마치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따뜻하면서도 화려한 여러 빛깔로 일렁이는 바다.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이 멋진 바닷가를 뛰어가는 추억의 한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이 따뜻한 아름다움에 비해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혼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쓸쓸한지 모른다. 아이는 엄마에게 쓴 편지를 넣은 유리병을 바다로 띄어 보낸다. 편지는 이렇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아빠랑 나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에 와 있어요. 엄마가 정말 정말 보고 싶어요. 저는 아빠 말씀 잘 듣고 있어요.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세요? 거기에선 엄마가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들 올림. 사랑해요.”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시야에서 바다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바다를 본다. 마지막 장면은 아이의 방, 그런데 나는 왠지 이 방이 이제는 다 자라 어른이 된 아이의 방 같다. 창 앞에는 바다에서 갖고 온 소라, 조개, 불가사리가 놓여 있고, 곳곳엔 바다 사진과 사이사이에 엄마 사진이 붙어 있다. 내레이션처럼 일러스트에 등장하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가 나온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어요. 바다가 그리울 때 나는 사진들을 봐요. 가끔은 바다가 정말 정말 보고 싶어요.”
아마도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기억하고, 그 바닷가의 추억으로 하루하루 성장해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마음속에 그 존재를 담고, 그 존재가 자기에게 바랐던 대로,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것, 그것이 먼저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다음 세상에 남기는 방법, 메멘토모리가 아닐까 한다. 어린이책 편집자 출신의 대만 작가 천위진이 쓴 간결하고 시적인 글과 중국 어린이책 일러스트 최우수상을 받은 마이클 류의 서정적인 그림은 감정을 성급하게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나지막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책만이 가진 힘으로 두터운 심리학 책, 심리 치유책보다 더 깊은 위로와 위안을 전한다.
※함께 보면 좋은 책
강상중 저/노수경 역 | 사계절
강상중 마음(사계절)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돼 30만부가 팔려나간 책이다. 본격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픽션과 인문적 에세이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책이 일본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것은 동일본 대지진이후 사회 전체가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살아남은 자의 의무는 무엇인지 고민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와 함께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저자의 고통스런 진심,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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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 세계에 매료됐다. 그림책 『불할아버지』 어린이책 『알고 싶은 게 많은 꼬마 궁금이』 『1가지 이야기 100가지 상식』 등을 썼고,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을 공저로 출간했다. 현재 문화일보 문화부에서 영화와 어린이ㆍ청소년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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