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밤바다와 청춘의 까대기
광안리 해변에서 민락동 회 타운 건물을 굽이돌아, 민락 수변공원으로 걸어가다 보면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한적한 포구(민락항)를 볼 수 있다. 포장마차와 해변시장, 광안대교와 파도소리. 맨 정신으로 들어갔다가 늘 취해서 나오는, 그곳은 광안리다.
글ㆍ사진 오성은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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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소년

 

 

민락 공원과 다이아몬드 브리지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머리를 주억거리며 술을 게워내고 있어도 눈앞에는 광안대교가 펼쳐져 있으니. 바다를 보러 몇 시간을 달려와야 하는, 창공을 가로질러야 하는 내륙의 그네들과는 다르지 않은가.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 시드니의 하버 브리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광안대교는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 센텀시티를 잇는 복층다리다. 부산의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보았을 광안대교의 애칭은 다이아몬드 브리지다.

 

밤바다 위로 보석처럼 떨어지는 다리의 불빛은 자연과 문명이 빚은 최고의 예술 작품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밤의 풍광 앞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벗 삼아 소주를 마실 수 있는 포구가 있다. 그냥 술이 아니요, 이나저나 파는 안주가 아니다. 돗자리만 깔면 그 땅이 내 땅이다. 민락 수변공원과 민락 포구라니,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만백성을 즐겁게 하라고 지은 이름일까, 그곳에는 늘 풍악이 흘러나와 결국 마을의 이름까지 되었을까. 어느 경로건 노래가 있고, 파도가 있고, 맛이 있는 동네인 건 분명하다. 민락(民樂)이라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해마다 펼쳐지는 광안리어방축제는 전통을 이어나가려는 포구사람들의 자긍심을 엿볼 수 있다. 그중 으뜸은 진두어화(津頭漁火)인데, 배가 오가는 나루와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에 등불이나 횃불을 붙이고 야간작업을 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50여척의 어선이 옛날 방식을 살려서 횃불을 켜고 광안대교 앞을 수놓은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진두어화야 말로 현대와 전통을 잇는 교각인 셈이다.

 

바다소년


 
청춘의 까대기

 

광안리 해변에 얽힌 추억이야 며칠을 말해도 모자라다. 그 중, 부산사내들이 한번 씩은 뱉어보았을 단어 하나만을 누설하려 한다. 까대기라고 들어보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해변을 사랑하는 자, 아직 청춘인 자. 나는 남자고,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백컨대 돗자리 사이로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그 사내가 바로 나였다. 그래, 계순아, 나 기억나? 윤자야, 너 나와 러브 샷 했었잖아. 앞뒤 없이 엉덩이 들이밀고 돗자리에 앉았던 그 아이가 나야. 소주로 노래하고 기타로 오도바이 타던 그 아이 말이야.


부산에서는 즉석만남을 까대기라 한다. 억양 살리고, 리듬 살려, “까대기 칠까?”라고 하면 네이티브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까대기가 아니라, ‘친다’라는 동사다. 그 이유는 까대기의 사전적 의미가 벽이나 담 따위에 임시로 덧붙여 만든 허술한 건조물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즉석만남이 성사되는 순간, 천막이나 테두리로 이 공간을 가두겠다는 의미다. 이 넓은 해변에서 당신과 나 둘이서만, 보이지 않는 작은 집을 지어버리겠다는. 노골적이며 적극적이며 주저하지 않는, 그러하니 청춘의 단어가 아니겠는가. 이보다 뜨거운 단어를 본 적이 없다.


여름밤의 해변에는 불나방들이 가득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마셔대는 청춘들, 이리저리 이성에게로 기웃거리는 중생들. 그런데 정말이지 불나방이다. 한여름의 아침 해변보다 처참한 풍경이 또 있을까. 모래사장은 불나방들의 무덤이다. 그 속을 펼쳐보면, 지난밤의 추억이 가득하다. 그나저나 해변의 불나방들은 다들 어디로 가셨다나.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며, 아침도 먹지 못하고 만원 지하철에 끼어, 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내는 그네들 말이다.

 

어차피 광안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 얘기를 할 수밖에 없으니 망설이지 않고 해야겠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밴드 Brujimao에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며 리더까지 맡고 있는 나의 과거를, 그날의 하루를, 돌아가고 싶은 그날의 그 시간을.

 

바다소년

 

부르지 마오

 

우리는(Brujimao) 밴드결성 이후 첫 버스킹을 민락 수변공원에서 하기로 결심했다. 등대 앞이 좋을까, 배 위에서 연주를 해보려나, 방파제 위에서, 확, 마, 바다 속으로. 사람이 많은 수변공원이야 말로 버스킹에 적합한 장소였다. 각자 장비를 점검하고, 목을 가다듬고, 파이팅을 북돋았다. 나이 많은 게 죄인가, 동생들은 나를 떠밀었고, 서른이 넘은 나이로, ‘서른 즈음에’가 아닌 청춘의 노래들을 불러댔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잠시 멈춰서다 그냥 지나갔다. 그저 지나가야 버스킹의 제 맛이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공원의 경비 아저씨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부르지 마.”
  “네?”
  “해변에서 노래 부르지 마. 시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잖아.”
  “그럼 어디에서 불러요?”
  “그냥 부르지 마.”

 

이 아저씨는 우리 밴드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맞아요, 저희가 바로 부르지마오입니다.”

 

구청에서 허가를 받지 않으면 해변에서는 노래할 수 없다. 공공장소이니만큼 인정한다. 하지만 구청에서 허가를 받는 순간, 더 이상 버스킹이라 할 수 없다.


 “한 곡만 더 할게요. 마지막으로 한 곡만요.”

 

경비 아저씨는 모르는 척, 넘어가 주신다.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어쩌면 내 청춘의 마지막. 내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가사가 흘러나온다. 말도 안 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지어진 지 알 수 없는 제목 없는 이 노래.


F#m      E
내 차는 92년 식 티코
내 style은 복고 앤틱 no matter what you
say 넌 날 비웃어도 돼 하지만
네 가방 구두 모피코트, 내겐 아무 관심 없는 girl
& boy & girl & boy & girl & boy & girl & boy
A                B                D             Dm
고흐에 귀를 잘라, 코베인 총을 당겨, 숨 쉬는 동안에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고흐에 귀를 잘라, 코베인 총을 당겨, 숨 쉬는 동안에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나는 더 이상 버스킹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밴드 Brujimao의 리더. 고흐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커트 코베인은. 멤버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거지? 넥타이부대에 동참한 나의 동생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나는,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도무지 안 되겠다. 까대기를 쳐야겠다. 대상은 그 날의, 그 시간이다. 밤바다와 기타와 나를 한 데에 묶어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까대기 쳐야겠다. 청춘이라는 단어에 담을 쌓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건물을 세우고 싶다. 오래도록 그렇게. 허나, 까대기의 함정은 허술한 구조물이라는 데에 있다. 청춘은 허술하다. 그래서 더 간절하다.

 

 

*광안리 어방축제란?

 

남천ㆍ민락 활어축제, 광안리 해변축제, 남천동 벚꽃축제를 2001년도부터 통합하여 구 단위 축제로 개최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통어촌의 민속을 주제로 광안리해수욕장, 광안대교, 바다 빛 미술관, 광안리해변테마거리, 활어가 아우러진 부산의 대표적 봄축제를 아울러 광안리어방축제라 한다. 어방이란 예로부터 어로활동이 활발했던 수영지방의 어업협동체를 일컫는 말로 전통을 이어간다는 의미다.

 

수영지방은 예로부터 어자원이 풍부하여 부산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어업이 발달한 곳인데, 조선시대 경상좌수영 설치에 따른 수군의 부식문제와 관련하여 어업은 더욱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종 11년에는 성(城)에 어방(漁坊)을 두고 어업의 권장과 진흥을 위하여 어업기술을 지도하였는데, 이것이 좌수영어방이며, 이 어방은 어촌 지방의 어업협동기구로 현대의 수산업 협동조합(어촌계)과 비슷한 의미이며, 공동어로 작업때에 피로를 잊고, 또 일손을 맞추어 능률을 올리며 어민들의 정서를 위해서 노래를 권장하였다.

 

당시 행해지던 어로작업과정을 놀이로 구성한 것이『좌수영어방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광안리어방축제는 이러한 수영 지방의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의미에서 ‘어방(漁坊)’이라는 축제명을 사용하고 있다. (광안리 어방 축제 홈페이지 참조 http://festival-eobang.suyeong.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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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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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2014.07.16

90년대 중반 해운대 한독여실 근처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 수업을 마치고는, 같이 수업을 듣던 한 학년 위의 수산대(현 부경대) 휴학 중인 예쁜 누님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내봤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기... 누나, 누나는 어느 대학 다녀요?
수산대.
수산대는 어디 있어요?
광안리.
광안리는 어디 있어요?
니 광안리도 모르나? 까대기도 안치봤나?
????

지금의 탕웨이처럼 예쁘고 귀엽게 생긴 누님 입에서 나온 '까대기'라는 말이 왜 그렇게 천박하게 들렸었는지 모르겠네요. 그 언발란스함에 놀래서 그 누님에 대한 호감을 접었었죠.
부산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누님 입에서 처음 들어본 '까대기'란 단어의 뜻을 여기서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네요. 본문 글을 읽다보니 그 누님에게 했던 제 행동 역시 까대기의 일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비록 첫 한 걸음조차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말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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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t7

2014.07.16

아직 청춘인데 청춘이 그립습니다.
아직 이렇게나 허술한데, 이젠 그러면 안될것만 같아 더 그렇네요.
결론은 까대기 조올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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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