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모든 꿈은 이룰 수 있는 걸까요? 가끔은 너무 꿈을 강요하다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닌가, 또 어떨 때는 너무 쉽게 꿈을 포기당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무대에 오를 때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시골에서 올라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는 페기 소여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우리 모두가 바라는 모습이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시골뜨기 소녀가 무대를 향해 겁 없이 도전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꿈 많던 시절을 돌아볼 수도 있고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관객들보다 배우들에게 더 인기 있는 작품인지 모릅니다. 왜 아니겠어요. 무대를 꿈꾸는 모든 배우들의 이야기잖아요. 그래서인지 올해 페기 소여를 맡은 최우리 씨 역시 무척 격양된 모습입니다.
“이 작품에 이렇게 뭉클한 순간이 많은지, 이렇게까지 눈물을 많이 흘릴 수 있는 작품인지 몰랐어요. 앙상블 오디션 보고, 틀려서 혼나고, 쫓겨나고, 오해받고, 다시 불려가서 역할을 소화해내고,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는 과정들에서 저의 예전 모습이 생각나요. 제가 만약 앙상블을 하지 않았거나 오디션에서 떨어지거나 작품을 하면서 혼난 적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절절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정말 대본의 한 순간 한 순간 저에게 없었던 모습이 없어요.”
평일 저녁, 연습실이 있는 사당역 근처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연습이 일찍 끝난 거라고 하네요. 최우리 씨는 지난 2월부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연습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른 뮤지컬의 경우 보통 두 달 정도의 연습이 필요한데 배는 긴 셈이죠.
“탭댄스 때문인지 지금까지 했던 공연 중에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어요. 제가 이제껏 췄던 춤은 춤이 아니더라고요(웃음). 탭댄스를 할 때는 상체와 하체를 따로 배우고 그걸 합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다른 안무를 배울 때보다 세 배의 시간이 걸린대요. 다행히 탭은 아주 재밌어서 연습은 즐겁게 하고 있어요. 이걸 잘 해내면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페기 소여 역을 맡은 여주인공들은 탭댄스를 연습하느라 다리가 퉁퉁 부어서 구두를 못 신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처럼 몸에 어떤 징후는 없나요?
“맞아요, 저도 운동화만 신어요. 그렇잖아 발톱 손질을 받으러 갔더니 발레 하는 분이냐고 묻더라고요(웃음). 정말 발톱이 빠지기 직전이에요. 그런데 뭔가 뿌듯해요. ‘내가 열심히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현재 뮤지컬 <헤드윅>에서 이츠학으로 열연 중이고, 앞서 <웨딩싱어>에서는 화끈한 홀리 역이었는데, 탁자 너머의 최우리 씨는 또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팔색조 같은 여배우인가요?
“연기할 때 저한테 없는 성격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어요. 제 안에 있는 것 중에 캐릭터와 만나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편이죠. 페기 소여도 마찬가지예요. 그녀가 긍정적이고 단순하게 행동할 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플한 면을 극대화하고 싶어요. 제 안에 있는 어떤 모형이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이 되면서 그 각이 점점 많아지고 모서리가 멀어지면 배우로서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럴 때 즐겁고요.”
연습을 마치고 피곤할 만도 한데 그녀는 내내 싱글벙글 웃고 있습니다. 페기 소여처럼 긍정적이고 심플한가 봅니다. 아니면 내성적이고 걱정도 많아서 일부러 노력하는 건가요?
“후자예요. 혼자 무대 위에서 탭댄스를 춘다는 게 어마어마한 두려움이거든요.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하는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싶어요. 꿈에도 나올 정도로 압박감과 스트레스, 체력적인 피곤함이 크거든요. 그런데 그걸 그대로 티내지 않으려고 해요. 페기 소여를 하는 이유가 관객들, 그에 앞서 앙상블 하는 친구들에게 꿈을 잃지 않게 하고 싶기 때문이거든요. 힘들고 피곤한 걸 다 표현하자면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역이고, 또는 배우라는 게 정말 힘든 일이구나 생각할 수 있잖아요. 들이는 노력에 비해 적은 보수, 안정적이지 않은 삶, 그래서 무대를 지키겠다는 원동력이 사라질 수 있거든요. 지금 꿈을 키우면서, 특히 배우를 꿈꾸면서 힘들고 아프고 상처받는 친구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데뷔한 지 10년입니다. 최우리 씨도 배우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나요?
“슬럼프는 많았죠. 버린 재즈화가 몇 켤레인지 모르겠어요. 이제 그만하겠다고. 20대 후반쯤이 가장 심했던 것 같은데, 동생들을 봐도 딱 그 즈음에 고민하고 갈등해요. 남자들은 서른을 갓 넘어서. 그런데 전체 인생으로 보면 지금은 초반이잖아요. 지금 주인공이냐 앙상블이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나중 일은 모르니까요. 버티는 게 어렵지만, 정말 하고 싶다면 좀 더 기다리고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반면에 너무 자신을 학대하거나 극도로 상처받으면서까지 하지는 말라는 말도요.”
남경주, 박해미, 홍지민 씨 등 뮤지컬 대선배들과 함께 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 워낙 빠삭하게 아는 선배들이 바라보고 있으니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부담스럽죠. 제가 소심해서 무대에서 오줌 쌀 것 같다고 해요(웃음). 연기나 탭에 대해서 많이들 얘기해 주시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무섭거나 잔소리를 하지는 않으세요. 그리고 함께 무대에 서야 하는 한 팀이잖아요. 떨리긴 하지만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것보다는 좋은 것 같아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배우들이 더 좋아하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관객입장에서는 너무 고전이 아닌가 싶은데,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요즘 1930년대 탭댄스가 나오는 흑백영화를 접하게 됐어요. 좋은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좋더라고요. ‘42번가’에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여전히 인기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쇼 뮤지컬이라고 하고, 내용은 누구나 알고, 결말도 예상되는 유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속의 메시지는 강하고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넌센세이션> <톡식 히어로> <금발이 너무해> <웨딩싱어> <헤드윅> 그리고 <브로드웨이 42번가>까지 최우리 씨는 주로 즐거운 역할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깊은 내면연기를 요하는 배역은 아니었는데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알돈자(<맨 오브 라만차>의 창녀)요. 사람들에게 밝음과 긍정만으로 감동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어둠이나 아픔도 건드리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맨 오브 라만차> 내용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본 공연 중에서 알돈자가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 역할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꼭 해보고 싶어요. 그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렇게 실력도 쌓이고 내공도 쌓였으면 좋겠어요.”
무대에서 10년. 이 시점에 만난 페기 소여는 배우로서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도 많을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배우로 걸어가고 싶나요?
“맞아요, 정말 남달라요.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42번가 첫공’ 생각밖에 없어요. 그날 잘 하고 싶어요. 그리고 언제나 지금 저에게 맞고 적당한 것, 거기에서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역할들이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걸 했어도 제 것이 아닐 수 있잖아요. 어차피 앞을 많이 내다보지도 못하지만, 조금 더 큰 목표라면 밝은 면뿐 아니라 제 안의 다른 부분도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7월 8일부터 8월 31일까지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됩니다. 페기 소여 역에 최우리, 전예지를 비롯해 남경주, 김영호, 박해미, 홍지민 씨 등 뮤지컬 스타들이 총동원돼 ‘뮤지컬 고전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흥겨운 탭 댄스, 화려한 의상, 빠른 무대전환과 풍성한 음악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현혹할 텐데요. 저는 무엇보다 최우리 씨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오디션을 보고 앙상블부터 조연을 거쳐 주연이 되고, 그 사이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여러 차례 돌아섰지만 여전히 무대에 있는 그녀가 바로 폐기 소여일 테니까요. 탭이 꼬이지 않아야 할 텐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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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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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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