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교수,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지식인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소망했다. 국가와 언어를 뛰어넘는 지식 커뮤니티를 이룩하기를. 그를 위해 말이 아닌 글로써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과 마음을 나누고 새로운 문물을 습득했다. 그 뜨겁고도 찬란한 유산을 21세기의 학자가 한 권의 책 안에 담아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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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화국의 복원을 시도하다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한시와 고서를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 온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과)가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을 출간했다.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가 컬렉션’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책은, 2012년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의 방문학자로 초청받은 저자가 1년 동안 머물며 발견한 ‘한중 지식인들의 빛나는 유산’을 집대성한 것이다. 이 작업에 대해 저자는 “지난 1년간 하버드 옌칭에서 만난 옛 책들과의 회면을 통해, 희미해진 문예공화국의 자취들을 들춰내 복원코자 하는 시도인 셈”(6쪽)이라고 적고 있다.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이란 말은 17세기 후반 이후 주로 18세기 유럽에서 쓰였던 용어다. 라틴어를 공통 문어로 나라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인문학자들이 편지와 책으로 소통하던 아름다운 지적 커뮤니티를 일컫는 상상 속의 공화국이다. 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글로 연결되었다. 만나지 못했지만 글이 오갔다. 그러면서 그 안에 끈끈한 동시대적 연대가 싹텄다. 이것이 각 지역 살롱의 지식인 그룹으로 확산되면서 계몽주의의 새로운 지적 풍토와 전망을 정착시켰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5쪽)

 

작가만남-정민

 

지난 5월 22일, 예스24와 숭실대학교가 함께하는 ‘희망의 인문학’ 강연을 통해 정민 교수가 독자들과 만났다. 저자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안에 담긴 이야기와 그 사이를 거닐었던 자신의 여정을 들려주기 위해 ‘문예공화국’에 대해 설명했다. 언어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통 문어의 발견으로 이룩된 지적 커뮤니티. 그 움직임은 18세기 유럽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에서도 국가와 언어의 경계를 허무는 지식인들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유럽에 라틴어가 있었다면 동아시아에는 한문이 있었다. 한중일 삼국의 지식인들은 얼굴을 맞대고 붓과 종이로써 지식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었다. 먼 곳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편지로 소통을 이어나갔다.

18세기한중지식인의문예공화국

 

 

“18세기 이전에 조선의 통신사들은 ‘한 수 가르쳐 준다’는 마음으로 일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18세기 중반이 되자 그 관계가 역전되죠. 이미 일본은 나가사키 항구를 개항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리고 동인도회사를 통해서 네덜란드 상인들과 소통하던 시대였고요. 중국 강남에서 출발한 배들이 엄청난 양의 신간 서적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어요. 조선에서는 보지도 못한 책들을 이미 일본의 지식인들은 습득한 뒤였던 거예요.

 

또한 당시의 중국은 남방 지역의 반란 세력을 모두 평정하고 통일 국면에 접어들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뱃길이 열리기 시작했죠. 그러나 조선은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중국을 방문한 조선의 연행사에게 외출이 허용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숙소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 북경의 유리창 거리에서 수많은 서적과 사치품, 새로운 문물을 목격한 조선의 학자들이 충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다’라고 깨닫게 된 것이죠. 그렇게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중국의 지식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시작합니다.”

 

정민 교수는 옌칭도서관에서 직접 발견한 자료들과 숭실대학교 기독교 박물관에 소장 중인 자료들을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조선 연행사의 행렬을 그린 그림,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이 필담을 나누었던 흔적, 그들이 마음을 담아 주고받았던 글과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들은 저자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중국 회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나빙이 직접 그렸다는 박제가의 초상화에는 두 사람이 나눈 우정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추사 김정희를 전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그린 그림에서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 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아름다운 교류’로 손꼽은 것은 홍대용과 엄성의 우정이었다.

 

“홍대용과 엄성은 북경 유리창의 서점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됩니다. 엄성은 과거시험을 보러 강남에서 올라 온 수험생이었어요. 두 사람은 한 달 동안 만남을 지속하면서 깊은 교우 관계가 되죠. 헤어진 뒤에도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편지를 한 번 주고받는 데 4개월 정도 걸렸어요. 도중에 배달 사고가 나면 10년도 걸렸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성은 홍대용과 헤어진 지 채 2년이 안 되어 죽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홍대용은 제문을 적어 보냈습니다. 그 제문은 엄성의 탈상일이 되어서야 도착해서 제사 때 바쳐졌죠. 홍대용은 엄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의 초상과 문집을 필사하여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엄성의 초상화를 전해 받았을 때는 그가 죽은 지 10년이 되었을 때였어요.”

 

작가만남-정민

 

모든 교류는 문화 교류일 때만 가치가 있다


정민 교수는 옌칭도서관에서 엄성에 관한 자료를 찾던 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후지쓰카 지카시’다. 엄성의 글을 직접 필사하여 남겨놓은 이가 바로 후지쓰카였던 것이다. 정민 교수는 옌칭도서관에 가기 전부터 그곳에 후지쓰카의 장서 일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그래서 옌칭에 가자마자 그 자료들을 찾아보리라 마음먹었지만 ‘후지쓰카 컬렉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인 듯 운명처럼 후지쓰카의 육필 원고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후지쓰카는 중국에서 청나라 고증학을 연구하던 학자였죠. 유리창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청나라 고증학 관련 서적을 3만 권 이상 구입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청나라 지식인의 책을 보면서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자꾸 조선 사람의 기록이 나오더라는 거죠. 그 의문은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부임해 오면서 풀리게 됩니다. 조선의 고서들을 살펴보면서 중국에서 봤던 기록들의 나머지 반쪽을 보게 된 거예요.

 

결국 그는 청나라 고증학 연구를 포기하고, 청조의 고증학이 어떻게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왔는지에 대해서 박사 논문을 씁니다. 특히 「세한도」를 비롯해서 추사 김정희의 모든 걸작을 소장하게 되죠. 1941년에 정년퇴직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그동안 모은 자료들도 함께 가져갔는데, 기차 몇 칸을 차지할 만큼이었다고 해요. 그 자료들 중에 학교 연구실에 보관했던 것들은 대동아전쟁 말기에 폭격을 맞아서 소실되었어요. 자신의 집에 보관했던 가장 아끼던 책들만 남게 됐죠. 그 가운데 많은 도서들이 현재 옌칭도서관에 소장 중입니다.”

 

20세기 초의 일본 학자가 충국 청대의 학술을 연구하다가, 조선의 지식인에게 푹 빠졌다. 그가 중국과 조선에서 필생의 의욕을 쏟아 수집했던 자료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것이 곡절 끝에 다시 미국 대학의 도서관으로 흘러들어온 지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가에서 잠자던 책들이 서서히 깨어나, 기지개를 켜다 말고 “여기가 어디지?”하는 소리를 몰래 들었다. 이들 책 속에 담긴 정보들은 후지쓰카의 손을 거쳐 일부 소개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모으기만 하고 미처 손대지 못했거나 음미되지 않은 자료가 훨씬 더 많다. 알려진 자료도 그의 소개 이후 후속 연구 없이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제 그 잠을 깨워 세상의 환한 빛 속으로 걸려 내보내고 싶다. 먼지를 털어서 볕을 쬐고 거풍(擧風)하여 뽀송뽀송한 민낯을 되찾아주고 싶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7쪽)

 

정민 교수가 발견한 후지쓰카의 자료에는 각종 메모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책에 소개된 내용에 대해 더 알기를 원한다면 어떤 책을 보면 좋을지, 이곳에 언급된 인물에 대한 정보는 어느 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꼼꼼하게 적어놓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자료들의 오탈자를 일일이 수정해 놓기도 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구할 수 없는 자료들은 직접 필사하여 남겨놓았다.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전하려 했던 그의 순수한 열정은 「세한도」에 얽힌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작가만남-정민

 

“후지쓰카가 「세한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손재형이 찾아와 ‘「세한도」는 조선의 보배이니 돌려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현재 가치로 수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겠다며 설득했죠. 하지만 후지쓰카는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그런데도 손재형이 90일 동안이나 계속 찾아오자 자신의 아들에게 당부합니다. ‘내가 죽거든 「세한도」를 손 선생에게 전해 드려라. 돈은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요. 그런데 손재형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후지쓰카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요. 「세한도」는 조선에서 보관되어야 할 작품이라고 하면서 전해준 거예요. 그러면서 말합니다. 당신이 추사 선생을 생각하는 성심과 문화재를 아끼는 마음에 감동해서 전해주는 것이라고요. 그러나 ‘돈이 오가면 추사 선생에게 부끄럽지’라며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한도」는 손재형의 손을 떠나게 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손재형이 재정 문제를 이유로  「세한도」를 저당 잡힌 후 끝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정민 교수는 “ 「세한도」를 가져오던 마음과 건네주던 마음이 무색해졌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후지쓰카는  「세한도」 외에도 상당히 많은 추사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사망한 이후에는 아들인 ‘후지쓰카 아키나오’의 소유가 되었다. 일부는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아키나오는 자신이 사망하기 전인 2006년에 과천 추사박물관 측에 2000여 권의 책을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

 

스스로를 ‘지금 여기를 살면서 그때의 여기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정민 교수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안에 담긴 의미와 바람을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옌칭도서관으로 떠나기 전에는 많은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지쓰카를 만나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이 작업만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참 묘하지 않습니까?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그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에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고, 그것이 후지Tm카라는 사람에 의해서 복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후지쓰카는 그 많은 자료들을 다 찾아놓고도 거기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후지쓰카가 만든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장대한 서사를 마무리 짓게 되었죠. 오늘날 동아시아 각국은 서로 싸우느라고 바쁩니다. 영토 분쟁을 시작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후지쓰카는 ‘모든 교류는 문화 교류일 때만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정치적 교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길을 통해서 우리가 아름다운 문예 공화국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18세기한중지식인의문예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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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정민 저 | 문학동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시리즈의 여섯번째 책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13년 3월부터 12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총 40회에 걸쳐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진행되었던 연재의 결과물이다. 열정적인 자료 탐구와 남다른 지식 생산력을 통해 펴내는 책마다 화제를 모으는 정민 교수는 2012년 8월부터 1년간 하버드 옌칭연구소에 방문학자로 머물렀다. 그리고 그곳 옌칭도서관 선본실에서 20세기 초 일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의 구장(舊藏) 도서를 다수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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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희망의 인문학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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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4.06.08

중국과의 교류는 시대사명이지요. 결코 피해갈 수도 피해가서도 않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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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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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문학 문헌에 담긴 전통의 가치와 멋을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온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며 옛글 속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살핀 《비슷한 것은 가짜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다산 정약용을 다각도로 공부한 《다산과 강진 용혈》 《다산 증언첩》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이 있다. 18세기 지성사를 파고들어 《고전, 발견의 기쁨》 《열여덟 살 이덕무》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미쳐야 미친다》 등을 썼고, 청언소품집으로는 《점검》 《습정》 《석복》 《조심》 《일침》 등이 있다. 이 밖에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총정리한 《한국의 다서》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산문집 《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어린이를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다산 정약용의 청년기와 천주교 신앙 문제를 다룬 《파란》을 집필했고, 조선에 서학 열풍을 일으킨 천주교 수양서 《칠극》을 번역해 제25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을 수상했다. 초기 교회사 연구의 연장선으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를 완성했고, 천주교 관련 주요 문헌의 번역과 주석 작업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