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사 생활은 작은 음악 잡지사에서 시작되었는데, 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음악 잡지였지만 내가 처음 들어 갔을 당시 잡지의 대부분을 장식했던 건 10대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들이었다. 잡지의 절반 이상은 H.O.T, 젝스키스, 유승준, 핑클 등의 사진과 선문답들로 채워졌다. 이를 테면 "3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평소에 즐겨 뿌리는 향수는 뭐니?"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프로포즈는" 뭐 이런 종류. 명색은 음악 잡지였지만, 음악 얘기는 새 앨범 나왔을 때나 양념 치듯 간단히 오고 가는 게 전부였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정 노동이란 얘기들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내가 바로 열정 노동자였다.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저는 대가 없는 노동을 혐오합니다)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잡지 마감을 위해 한 달에 2~3일 밤샘은 기본이었다. 추운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때 쓰던 스티로폼 깔고 침낭 덮고 깜빡 잠들며 밤새워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것은 열정인가 애정인가 무모함인가. 기사보다는 어떤 사진이 실렸는가가 잡지의 판매량을 좌우하니 취재나 인터뷰, 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남대문의 문구도매상과 꽃 시장을 누비며 소품 조달에 열을 올리다 보면 내가 취재기자인지 공작기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이었지만 그래도 그걸로 밥도 사 먹고 동료들과 동대문 시장으로 우르르 달려가 옷도 사 입었고, 여행도 다녔으니 돌이켜 보면 이게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
잡지사 사장은 조직 폭력배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전무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사무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어깨가 넓고 소위 말하는 '깍두기' 머리를 한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며, 그들이 한 번 왔다 갔다 하면 곧 앨범을 낸다는 (하지만 실제로 앨범을 냈는지는 이후 확인이 잘 안 되는) 가수를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곤 했다.
이처럼 뒤죽박죽 참으로 고단했던 시절, 나를 위로해주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분칠하고 꽃단장한 취재원들과 그들의 음악이었다. 마감이 코 앞에 닥친 밤 무한반복되며 나를 위로해주던 god의 ‘거짓말’이라거나, 1집 마지막 인터뷰 때 ‘그동안 고마웠구요~ 사랑해요 누나’라는 인사를 녹음기에 몰래 남겨둔 플라이투더스카이라거나. 사람이 힘든 일을 겪을 때 힘이 되어 주는 건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작은 것이니까. 그리고 그 사소한 것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추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2014년을 살고 있는 내가 god와 플라이투더스카이의 신곡을 듣고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한심하지만 치열했던 그 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라면 사양하고 싶지만, 만약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완전히 다르게 살아낼 것 같진 않다. 아마 또 비슷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한 내 자신을 죽어라 원망하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지 않을까.
그 시절의 나는 주어진 시간은 10분뿐인데, 도저히 답을 쓸 수 없는 답안지를 받아 들고 막막해 하던 학생 같았다. 스물 세 살의 나는 스물 일곱이 되면 온통 뒤죽박죽인 내 삶도 좀 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루 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스물 일곱이란 나이가 까마득한 옛날이 된 지금의 나 역시 답안지에 답을 제대로 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정답 비슷하게는 적어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훗날의 나도 지금의 나처럼, 20대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서 가슴 먹먹해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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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도서1팀장)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감귤
201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