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퀼렉스(Skrillex) <Recess>
EP < Scary Monster and Nice Sprites >(2011)는 음악적인 완성도를 떠나 EDM 신의 지형도를 바꿔버린 작품이었다. 투스텝 리듬을 중심으로 덥의 공간감을 살린 본래의 모습 대신 웅웅대는 워블베이스를 비롯 과도한 전자사운드로 장식한 새로운 작법의 덥스텝을 단숨에 주류로 격상시킨 데에 그 이유가 있다. 공로를 인정받듯 전 세계적인 인기를 넘어 그래미까지 손에 넣었고, 여기에 이어지는 「Bangarang」은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더 이상의 증명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았을 듯 싶다. 잠시 진정하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자신이 교주로 있던 종교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그 자신이 먼저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의 스타일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발을 넓혀 변화를 도모할 것인가. 영리하게도 이 일렉트로니카 괴물은 정중앙에 정확히 자리를 잡는다. 기존의 팬들이 열광할 만한 소스를 가져감과 동시에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요소들을 틈틈이 섞어 낯선 반가움 또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러닝타임의 흐름의 관점에서 언급하자면, 가장 그답게 시작해 여러 변곡점을 거쳐 가장 그답지 않게 끝나는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첫 곡 「All is fair in love and brostep」을 장식하는 것은 그의 고유한 실루엣이다. 그의 음악을 조롱하듯 일컫는 「브로스텝」을 아예 제목으로 사용해 강한 자부심을 내비친다. 싱글로 선보였던 「Try it out」도 같은 맥락. 그런가 하면 공간감이 느껴지는 리버브와 묵직한 비트가 특징적인 빅룸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Recess」, 이국적인 퍼커션과 굴곡 있는 리프가 딱히 장르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Stranger」로 볼륨을 낮추며 새로운 일면을 내비친다. 변화의 서막이다.
이것이 「Coast is clear」로 오며 더욱 명확해진다. 건반과 혼 세션, 잘게 쪼개진 리듬이 딥하우스와 드럼 앤 베이스의 협연을 연출하고,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의 래핑이 그 장면을 여유롭게 거닌다. 이러한 '감상용' 트랙은 이색적인 리듬구조의 「Dommpy poomp」나 라운지나 명상음악에 맥이 닿아있는 칠아웃 류의 마지막 곡 「Fire away」에서도 두드러진다. 누가 과연 그의 앨범에서 이 정도로 차분한 음악을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스퀼렉스는 정확히 그 점을 파고들며 고착된 자신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다.
이러한 러닝타임 정중앙에 있는 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기대했을 「Dirty vibe」다. 바우어(Baaur)의 「Harlem shake」를 프로듀싱한 디플로(Diplo) 산(産) 트랩 사운드에 다시 한 번 손을 내민 이 곡은 지드래곤과 씨엘의 랩이 더해지며 한층 더 탄탄한 음악적 골격을 자랑한다. 특히나 소절을 왜곡 및 반복시켜 얻어낸 음악적 효과가 발군이라 할 만하다. 굳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애국심을 자극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만든 트랙으로서 소음과 무음, 동과 정의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자신이 시작한 열풍이 더 이상 선구적이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서 더 넓은 외연을 갖추게 된 회심의 한 장이다. 첫 정규앨범인 만큼 욕심을 부려 기존 작법의 최종장으로 삼을 법도 했는데, 이를 애써 외면하고 대중의 반발을 담보로 잡아 여러 장르를 구현한 태도가 이 아티스트의 매력을 배로 불렸다. 피쳐링 진들의 특징을 잘 살려냄과 동시에 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의 주력 장르에 자신의 호흡을 불어넣은 센스 또한 앞으로의 장기집권을 예상케 하는 바다. 보통 많은 이들이 집착의 한가운데서 헤어질 타이밍을 놓치곤 하는 반면, 그는 본인이 만들어 낸 열풍의 대세 이탈을 쿨하게 인정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고한다. 그 과감함은 결국 쓰디쓴 껍질의 속을 달콤함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덥스텝 영웅의 재탄생이다.
글/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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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daler
2014.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