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다 괜찮다는 거짓말의 우악스러움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그렇게 느린 세상의 시간 속을 유영하며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렇게 흘러가기 위해서 끝없이 헛발질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이상한 동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다 괜찮다는 이 선량한 거짓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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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순간, 대구루루 구르고 발길질을 하고 포악을 하거나 더러운 세상쯤 등지고 살아야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딱 그 자리에 발이 묶인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 빈자리를 확인하고 상실감에 젖지만 그들은 먹고, 일하고, 학교에 다니고 그리고 또 웃고 화내고 울면서 또 살아간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또 자신이 지켜야 하는 다른 가족을 잃을까 걱정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그렇게 느린 세상의 시간 속을 유영하며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렇게 흘러가기 위해서 끝없이 헛발질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이상한 동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다 괜찮다는 이 선량한 거짓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거짓말로 봉합된 이야기의 통증
아이들의 어린 시절 남편을 잃고 두 딸을 홀로 키워야 했던 엄마 현숙(김희애)은 동네 마트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지만 씩씩하면서도 다정하다. 착하기만 한 막내딸 천지(김향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가족의 비극이 시작된다. 남겨진 언니 만지(고아성)와 엄마는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또 각자의 삶 속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만지는 천지의 죽음에 또 다른 비밀이 있을 거란 사실을 알게 된다. 더 없이 사랑스럽고 착한 천지의 죽음은 아픈 통증이어야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의 무덤덤한 죽음과 너그럽기만 한 다섯 장의 유언처럼 한결같이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슬픔과 분노를 묻는다. 비극적인 일상 속에서도 웃을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듯 주변 인물들을 통해 뜬금없는 웃음을 선보이면서 관객들이 비통에 빠질 겨를을 주지 않다. 그렇게 감춰진 슬픔은 끝내 오열로 터질 방법을 모른 채 교묘하게 영화의 결을 잔잔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은 동화처럼 만들어주는데 기여한다.
이한 감독은 천지의 죽음에 깊이 관련된 왕따 문제 역시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계속 억누르면서 암묵적 가해자들 역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그들의 행동을 차근차근 변명해준다. 물론 <우아한 거짓말>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왕따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삶을 관조하고 아픔을 다독이면서 살아내자는 의지를 드러낸다. 또한 천지의 죽음의 비밀을 되짚어가고, 그 열쇠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옆집 총각의 존재도 미스터리한 이야기 속에서 가족들이 전혀 모르는 천지의 또 다른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뚜렷한 해답이 없듯이, 누군가의 죽음에도 단선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의 층위 속에서 모두들 가슴 깊이 끌어안은 자기만의 이야기에 모두 동감을 해야 한다면, 관객들이 끌어안아야 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펼쳐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려령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2011년 <완득이>에 이어 동명 소설 <우아한 거짓말>을 원작으로 다시 김려령 작가와 만난 이한 감독은 기대한 대로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해 낸다.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상처받은 인물들 사이로 오가는 희로애락을 제법 매끈하게 재현해냈던 이한 감독의 재능은 <우아한 거짓말>에서도 빛난다. 자칫 충분한 신파로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덤덤하게 풀어내는 재능도, 자칫 영화의 결을 헤칠 수도 있는 코믹한 에피소드도 무리 없이 봉합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천지의 죽음에 묻어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이야기의 구조 역시 원작을 그대로 재현해 내지만, 막상 이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아쉽게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민감한 주제를 툭 던지고, 피 흘리는 어린 새가 홀로 감당해 낸 슬픔을 가족들이 다시 고스란히 받아서 묵묵히 감당해 내는 이야기의 잔잔한 마무리는 <우아한 거짓말>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한 감독이 계속 괜찮다고 주술을 거는 동안, 계속 괜찮다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충분히 공감이 될 만큼 훌륭하지만, 용서와 화해로 봉합되는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어 동감하기 어려운 관객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에서 가장 동감이 되는 순간은 현숙이 굳이 이사를 와야 했던 이유, 그리고 그를 통해 용서가 아닌, 묵직한 정서적 복수를 이야기했던 그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때론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두고 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 거짓말이 우악스러운 통증으로 남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함께 보면 좋을 <파수꾼>
<파수꾼>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꽤 많은 편이다. 엄마의 잔혹한 복수극 <6월의 일기>나 공포 영화의 이야기를 빌었던 <여고괴담> 시리즈 역시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학교 폭력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연상호 감독의 2001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학교 폭력을 통해 권력의 구조를 빗대는 잔혹한 후일담이었다. 그리고 2011년 그해의 발견으로 불렸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소년의 자살을 되짚는 성장영화였다. 죽음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아들의 친구를 찾아나서는 아버지(조성하)를 통해서 영화는 아들의 자살과 그 이유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폭력과 오해 사이에서 화해할 순간을 놓치고 마는 소년들 사이의 다툼이 이름을 바꾼 또 다른 사춘기 시절의 사랑이었음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괜한 자존심 때문에 화해의 순간을 놓쳐버린 치기어린 소년들의 예민한 정서 속으로 파고든다. 학교 폭력이 자행되는 그 순간, 폭력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비겁하고 겁에 질린 눈빛을 드러나게 하는 장면에서 <파수꾼>은 잔인하게 빛났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기억에 매달리는 것 이외에 달리 무엇도 할 수 없는 남겨진 아버지의 행동 역시 설득력이 있다.
[관련 기사]
-김희애 “<우아한 거짓말>, 원작 소설 먼저 읽었어요”
-고아성 “<우아한 거짓말>,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영화”
-김려령 작가, 이한 감독이 다시 만난 영화 <우아한 거짓말>
-“너 아주 귀한 애야, 알고 있니?” -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새로운 성장소설 『완득이』 의 작가 김려령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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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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