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라이너스의 담요가 필요해요
세계적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의 그림책 『알도』 는 어린시절 누구에게나 한명쯤 있었을 상상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편이 되어주고, 내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 아이가 어른이 되면 알도는 사라질 운명이지만, 어른들도 이런 알도 같은 친구 하나 쯤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친구가 되고 싶은 이에게) “당신에게 알도같은 친구가 돼주겠다”며 이 보다 멋진 고백은 없을 것이다.
글ㆍ사진 최현미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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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3>(2010)의 엔딩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이 라스트신은 토이스토리 3편의 엔딩일 뿐 아니라 이 시리즈 전체를 마무리하는 엔딩이며, 어른이 돼 어린 시절을 떠나보내는 모든 이들이 머물 수 없는 시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작별인사이다.

<토이스토리 3>에서 장난감의 주인 앤디는 대학생이 돼 집을 떠나게 된다. 대학 기숙사로 가야하는 앤디는 카우보이 인형 우디만 챙기고, 나머지 장난감들은 보관하려 한다. 하지만 장난감들이 쓰레기로 버려지면서 ‘토이’들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사랑하는 주인 앤디에게 돌아오지만 앤디는 망설임 끝에 장난감을 들고 이웃 소녀 보니를 찾아간다. 보니에게 장난감을 하나 하나를 소개하고 장난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신나게 논 뒤 앤디는 떠난다. 차가 떠나기 전 멀리서 자신이 아닌 보니 품에 안긴 장난감들을 보며 앤디는 을컥하며 말한다. “고마웠어 얘들아.” 이렇게 점점 멀어지는 앤디를 보며 우디도 말한다. “안녕 내 친구.”

<토이스토리 3>의 이 엔딩에 마음이 울컥하거나 좀 더 뜨겁게 반응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앤디 같은 헤어짐을 겪기 때문이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나이’와 ‘세월’이라는 일직선 길에서 어느 순간 아이의 시간을 접고 어른이 돼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스누피의 라이너스는 늘 가지고 다니던 담요를 버려야 하고, 크리스토퍼 로빈은 곰돌이 푸우와 헤어져야 한다.


우리 시대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의 그림책 『알도』 역시 그렇게 헤어져야 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림책을 열면 엉클어진 머리에 야윈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결코 멋지거나 활기찬 모습은 아니다. 그림책을 한 두 페이지만 더 넘기면 이 아이에겐 친구도 없고, 학교에선 때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외로운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라는 아이는 “물론 텔레비전도 보고, 장난감이랑 책이랑 갖고 놀 것들이 아주 많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엄마랑 놀이터에 갈 때나 외식을 할 때도 즐겁고 신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아이는 전혀 즐겁지 않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혼자, 책을 볼 때도 혼자이며, 엄마 손을 잡고 놀이터를 지나갈 때도 아이의 눈은 즐겁게 놀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가 있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에겐 특별한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그 친구가 바로 알도. 초록색 줄무늬 머풀러를 하고, 아이만큼 키가 큰, 어깨동무를 하기에 딱 맞춤인 토끼이다.


“알도는 나만의 친구, 나만의 비밀이고,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알도는 언제나 날 찾아와 줄 거야.”
“알도는 날 근사한 곳으로 데리고 가줘. 알도하고 같이 있으면 난 아무 것도 무섭지 않아.”


현실에서는 혼자 있지만, 아이는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알도와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나고, 줄타기를 하고, 뱃놀이를 한다. 환상적인 노란색 푸른 빛 바탕속에서 알도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고, 알도가 젖어주는 배에 누워 있는 아이의 표정은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알도는 우디나 곰돌이 푸우 같은 인형일 수도 있고, 아이의 상상 속 친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비밀의 친구 알도 때문에 아이는 혼자인 외로움도 견디고, 짓궂은 친구들의 괴로움도 넘기고, 엄마 아빠가 싸우는 아이에겐 참 곤혹스러운 상황도 이겨낸다.

이렇게 혼자 외로움에 떨던 아이도 점점 자라고, 조금은 단단해지고, 친구들과도 사귀게 된다. 더 이상 알도가 필요 없게 된 아이는 알도를 가끔씩 잊어버리게 된다.

그림책 마지막 페이지. 이제 알도가 아니라 친구들과 신나게 그네를 타고 더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알도를 까맣게 잊고 지내는 날도 있겠지만,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말줄임표(…)에 무슨 말이 숨겨져 있는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알도가 다시 찾아와 줄 것이라는.

하지만 이 아이가 어른이 돼 정장을 입고 회사에 출근해 밀린 보고서에 밤을 새거나, 아이들 뒷바라지며 집안일에 바쁘다 보면 알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이 아이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알도와 같은 친구 하나쯤은 있었을 텐데, 대부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같은 마법의 시간을 접고, 현실로 들어오는 것이며, 연약하게 위안 받기보다는 보다 어리고 약한 사람에게 위로를 줘야하는 책임을 지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모두 잘 알지 않은가. 어른들도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어른들도 이런 마법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픈 친구가 있다면 이 그림책으로 알도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위해 알도같은 마법의 순간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미성숙으로의 퇴행이 아니라, 이런저런 현실의 구겨짐에서 벗어나 자기를 위로하는 마법 말이다. 자기만의 친구를 만드는 것. 걷기든, 책이든, 명상이든, 자신과의 대화이든 자기만의 알도를 만들기를.


함께 보면 좋은 것

토이스토리 3

리 언크리치 감독/톰 행크스, 팀 알렌 | 브에나 비스타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때로 마음이 복잡할 땐, 순수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이 순수의 시대를 접고 성장해야 하는 그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이스토리 3는 그 자체가 좋은 친구가 돼 준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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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죽고 다시 살아난 고양이, 그 사연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존 버닝햄 #알도 #토이스토리 3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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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7.10

“알도는 나만의 친구, 나만의 비밀이고,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알도는 언제나 날 찾아와 줄 거야.”
“알도는 날 근사한 곳으로 데리고 가줘. 알도하고 같이 있으면 난 아무 것도 무섭지 않아.”
따스한말에 가슴이 촉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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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B612호

2014.03.25

어른들에게도 라이너스의 담요가 필요해!! 100% 완전공감 가는 제목이에욤~
꼬꼬마 시절엔 나에게도 알도같은 비밀칭구가 있었는데.. 쩝~
오늘부터 나만의 비밀칭구 만들기 프로젝트 시작해볼래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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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56stp1oxfd7

2014.03.16

어릴 적에 봤던 스누피 만화가 떠오르는 동화네요. 어른에게도 마음의 휴식이 될 라이너스의 담요같은 존재는 항상 필요하죠.. 지친 일상 속에서 힘이 되어줄 친구같은 존재가 저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어요. 그림이 이뻐서 책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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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 세계에 매료됐다. 그림책 『불할아버지』 어린이책 『알고 싶은 게 많은 꼬마 궁금이』 『1가지 이야기 100가지 상식』 등을 썼고,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을 공저로 출간했다. 현재 문화일보 문화부에서 영화와 어린이ㆍ청소년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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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

1936년 4월 27일 영국 서레이(Surrey)주의 파넘(Farnham)시에서 세일즈맨인 아버지 찰스 버닝햄(Charles Burningham)과 어머니 제시 버닝햄(Jessie Burningham)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대표적인 대안학교인 서머힐 스쿨에서 보낸 자유로운 어린 시절이 창작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데려다놓아도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였고, 청년 시절에는 병역을 기피하면서까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완강히 자신을 지키는 좀 독특한 성향의 사람이었다.미술공부를 했던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에서 헬린 옥슨버리를 만나 1964년 결혼하게 되었다. 헬린 옥슨버리도 남편의 영향을 받아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해서, 뛰어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이 되었다. 버닝햄은 쉽고 반복적인 어휘를 많이 사용했으며, 어린이가 그린 그림처럼 의도적으로 결핍된 부분을 남기는 화풍이 독특했다. 그는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간결한 글과 자유로운 그림으로 심오한 주제를 표현하기로 유명하며, 어린이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상상력과 유머 감각이 뛰어나, 세계 각국의 독자에게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이다. 그 밖에도 『우리 할아버지』 『코트니』『지각대장 존』, 『비밀 파티』등 많은 작품이 있다. 1964년 첫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고, 1970년에 펴낸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로 같은 상을 한 차례 더 수상했다. 꾸밈없는 글과 자유로운 화풍, 누구보다 어린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상상력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던 그는 2019년 1월 4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