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저자 박영규, 이승만을 논하다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의 저자 박영규는 한국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단초로 역대 대통령들을 제시한다. 수많은 인물 중 그들을 선택한 시대의 요구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영규 저자와 독자들의 만남을 채널예스가 취재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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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이 이승만을 기사회생시켰다

지난 2월 20일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의 저자 박영규가 독자들과 만났다. ‘한국사 대중화의 주인공 박영규가 말하는 대통령, 그들의 나라 대한민국’ 강연회의 두 번째 시간으로 마련된 이 날의 만남은 ‘W살롱’을 통해 이루어졌다. ‘W살롱’은 웅진씽크빅 단행본 출판그룹이 ‘저자와 독자가 함께 지식과 감성을 나누는 장’을 만들고자 준비한 프로그램.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을 시작으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 등 ‘한권으로 읽는 한국 통사 시리즈’를 완성한 박영규 저자는 역대 대통령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조명하며 ‘W살롱’의 시작을 알렸다.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이번 강연회에서 저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현 대통령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한 방식과 각 시기가 그들을 국가 원수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들려주었다.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안에 담아놓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저자가 역대 대통령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이 기구한 운명을 극복하고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는 과정을 이야기하자면 빠뜨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p.5)
저자는 ‘대통령이란 시대의 이권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시대적 필요성, 당시의 국민적 요구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택받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 부름에 응답했을까. 그리고 역사의 물살을 어떤 방향으로 틀어놓았을까. 채널예스가 함께한 박영규 저자의 두 번째 강연회는 ‘이승만과 시민 혁명’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이전부터 4.19 시민혁명으로 하야하기까지, 이승만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승만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19년에 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부터입니다. 그때 얻은 명망 덕분에 해방이 되자마자 ‘대통령 감은 이승만이다’라는 여론이 생겨난 것이죠. 이승만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사건은 배제학당 입학이에요. 그곳에서 기독교와 영어를 접하게 됐고, 미국이라는 세계를 알게 됐죠.”

뿐만 아니라 배제학당은 이승만과 서재필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독립협회를 설립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은 배제학당에서 세계 정치와 사회, 지리 등을 가르쳤다. 이승만은 서재필과의 만남을 계기로 독립신문의 주필을 맡기도 했고, 배제학당 내의 모임인 협성회에서 발간했던 매일신문에서도 주필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독립협회의 박영효와 함께 고종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지도자로 세워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려했던 것이 발각되어 투옥되고, 5년 7개월 후에 민영환의 도움으로 석방된다. 그리고 그는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다.

“이승만이 미국에 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죠. 고종의 특사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국내에 머물게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에 유학을 보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어쨌든 이승만은 고종의 밀서를 루즈벨트에게 전달하였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어서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6년 만에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받게 되죠. 당시로서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게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죠.”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이승만은 국내 시민들과 임시정부 인사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인맥을 쌓았고, 국제 정세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는 것 역시 이유가 됐다. 덕분에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이승만은 미국에서 굉장히 활발하고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러한 소문들은 사실보다 조금 더 과장된 측면도 있음을 저자는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의 인사들은 이승만이 미국에서 많은 독립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고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지 않았던 이승만은 탄핵되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의 뒤를 이어 박은식이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김구가 임시정부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이승만은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결혼으로 한인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죠. 당시 국민들 정서로는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이 이해가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가 이승만은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기사회생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 이전에 <일본내막기 Japan inside out>라는 책을 써서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거라는 주장을 폈었거든요. 출간 당시에는 미국 정부와 시민들이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예언자라고 불리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죠. <일본내막기> 역시 불티나게 팔렸어요. 그 인기가 한국에서도 이어졌고요. 어떻게 이승만은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그는 사실 미국보다도 더 국제 정세에 밝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것이 이승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연구했는지도 모르죠.”




친일파를 척결하자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후 이승만은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해방을 맞은 조국으로 돌아온다. 그와 함께 김구와 임시정부의 인사들 역시 귀국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치열한 좌우 이념 갈등이 시작됐다.

“이승만이 귀국할 당시에는 좌파와 우파 모두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이승만이 좌파인지 아니면 우파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승만은 좌우 논쟁에 휩쓸리지 않는 미국에 있었잖아요. 김구는 우파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상태였기 때문에 좌파와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었죠. 임시정부 내에도 여러 정당이 존재했었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이승만은 정치적 수완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죠. 김구는 한국독립당을 이끌며 귀국했지만 이승만은 정당을 만들지 않았거든요. 당파 싸움에 빠지게 될 것을 우려해서 정당을 만들지 않았던 거예요.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한 거죠. 어느 당에도 예속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이승만의 최우선 과제는 혼란스러운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제헌국회는 친일파 척결을 위해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만들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했다. 그러나 그들이 처벌하고자 했던 친일파들 중 다수가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 비호에 앞장섰던 경찰에 속해있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이승만 권력의 지팡이가 경찰이었는데 그들 중 다수가 친일파였어요. 본래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경찰대를 조직했었지만 미군이 진주하면서 와해됐죠. 그리고 미국이 모집한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경찰을 했던 사람들이었어요. 반민특위가 조직된 후후에 친일파를 척결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했던 말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거였죠. ‘지금은 과거를 논할 때가 아니다, 지금 과거의 문제들을 지적해서 잘 될 리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거죠. 반민특위에 의해서 경찰 간부들이 잡혀 들어가니까 오히려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했어요. 그리고 반민특위 수사대를 잡아갔죠. 반민특위는 와해시켰고요. 그러면서 오히려 반민특위 모두가 빨갱이로 취급당하는 상황이 발생한 거예요.”

사회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좌파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여순 사건과 6.25 전쟁을 계기로 목표했던 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6.25 전쟁이 발발한 이후 치러진 195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직접선거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임에 성공한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또 다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게 된 그는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기에 이른다. 그 결과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4.19 시민 혁명이다.

“4.19 시민 혁명은 정부가 수립된 지 불과 12년 만에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추방시킨 혁명이에요. 굉장히 획기적인 사건이죠.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일어난 혁명이에요. 60년대에 우리 시민 의식이 굉장히 성장해 있었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우리 민족이 개항 이후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면서 자체적으로 민주주의적 노선들을 만들어낸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식이 굉장히 강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들이 동학농민운동, 독립협회, 3.1 운동, 4.19 시민 혁명으로 이어진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1800년대 말부터 형성되었던 그런 인식들이 민주제도로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것들에 저항하는 형태로 시민 혁명이 일어났던 거죠. 그리고 이런 시민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밀어내고 대통령을 하야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결국 국민이 이긴다는 의식이 있어요. 그렇게 국민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해야 부정이 저질러지지 않는 거죠.”

박영규 저자는 이승만 대통령과 4.19 시민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한 사람이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권력을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두려움이 없어지고 그 힘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라고. 그는 ‘권력이란 잡기보다 놓기가 더 어려운 것’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역사란 감추어졌던 부분들을 규명하고, 그것에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저자의 말처럼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이 남긴 업적에는 명과 암이 존재했다. 그는 식견이 뛰어나고 치밀한 사람이었지만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끝내 그것을 놓아야 할 때를 놓쳐버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권자 자리를 거쳐 간 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성과가 있는가하면 어김없이 과오도 남겼다.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에 담긴 것은 그 밝고도 어두운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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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박영규 저 | 웅진지식하우스
수많은 인물 중 왜 그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는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통령은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무엇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지켰으며, 무엇이 그 자리를 위태롭게 했는가.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각 대통령의 재임 기간의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의 서술에서 벗어나 출생부터 성장, 당선과 재임, 퇴임 후까지 한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서술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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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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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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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역사 대중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역사 저술가이자 밀리언셀러 실록사가.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한 이후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아홉 권의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를 펴내 누적 판매 300만 부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조선 주제사 시리즈로 《메디컬 조선》 《크리미널 조선》 《에로틱 조선》 《조선 왕실 로맨스》 등을 썼으며, 《조선 왕들은 왜?》 《조선명저기행》 《조선전쟁실록》 《정조와 채제공, 그리고 정약용》 등 그간 30여 권이 넘는 역사서를 저술했다. 최근에는 한국사와 더불어 폭넓은 지식을 전파하고자 《그리스 로마 신화 신박한 정리》 《세계사 신박한 정리》 《인문학 리스타트》 등 집필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의 궁극적 목표는 한 마디로 ‘사람 알기’다. 그는 그동안 명리학, 심리학, 애니어그램, MBTI, 의학, 과학 등 폭넓은 분야의 책들을 탐독하며 이를 연구했다. 그 결과 사람의 행동 양식은 대부분 타고난 성격에 의해 결정되고, 성격은 곧 타고난 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나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나의 성격을 알아야 하고, 나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나의 몸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저자는 연구 끝에, 보다 정확한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한 가지 공식을 만들었다. 이를 학생, 학부모 등 3000여 명에게 테스트를 해본 결과 성공적이었다. 저자는 “성격유형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곧 나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내 성격이 왜?』 책을 일종의 ‘행복취득술’에 관한 책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또한 1998년 중편소설 『식물도감 만드는 시간』으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고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대하소설 『책략』, 『그 남자의 물고기』, 『길 위의 황제』에 이어, 조선 정조의 암살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밀찰살인』을 썼다. 한편, 기존의 집필 주제에서 한 걸음 진보한 『인문학 리스타트』는 인류의 역사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제, 사회, 종교, 철학 전반의 발자취를 하나의 흐름으로 꿰뚫어 독자들에게 폭넓은 인문교양 지식과 통찰을 안긴다. 수년간 역사 문학 교육원 ‘이산서당’을 운영했으며 현재 ‘다산학교’를 설립해 대안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