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에는 첫 번째 독자가 있습니다. ‘책의 또 다른 작가’로 불리는 편집자가 바로 그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저자의 좋은 글을 발견하고 엮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편집자들을 <채널예스>가 만나봅니다. 저자와의 특별한 인연, 책이 엮이기까지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격주 화요일, ‘내가 만든 책’에서 확인하세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시, 그림이다』 의 머리말을 읽는 순간, 호기심이 일 것이다. 2009년 초여름 어느 날 아침, 데이비드 호크니는 오랜 친구인 마틴 게이퍼드에게 문자 메시지를 하나 보낸다. “오늘 새벽을 당신에게 보내줄게요. 어이없는 문장인 줄은 알지만, 당신은 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호크니가 보내준 그림에는 옅은 분홍색과 자주색, 살구색 구름이 여름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요크셔 해안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호크니는 1937년생 노작가이지만 아이폰, 아이패드 등 첨단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이 그림도 아이폰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작가가 그린 그림은 우리에게 지극히 익숙한 풍경들을 낯설게 만들기도, 더욱 가깝게 느끼게도 한다.
『다시, 그림이다』 는 1960년대 영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저명한 미술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년에 걸쳐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회화, 곧 인간이 세상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들이다. 호크니는 관찰하고 묘사하고자 하는 욕구를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렸다. 호크니에게 ‘열심히 바라보는 것’은 예술에서 핵심적인 행위였고, 큰 기쁨의 원천이었다. 『다시, 그림이다』 는 2011년 영국의 출판사 ‘Thames & Hudson’에서 펴낸 원서를 번역한 미술서다. 한국 출판시장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현대미술작가의 책. 편집자에게는 무척 탐이 나는 책이지만, 한국 독자에게 얼만큼의 반응이 있을지? 걱정이 되는 책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훌륭한 예술가들은 우리 주변의 세상을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하게, 더 흥미롭고 불가사의하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호크니는 사고의 범위, 대담함, 열정에서 비범한 면이 있는 예술가이다”
시간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책
디자인하우스 김은주 편집장은 미술에 관심이 많아, 언제나 여행을 떠나면 근처 미술관을 들린다. 특히 런던의 TATE 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를 감상했을 때의 기억은 평생의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김은주 편집장은 호크니의 그림에서 압도적인 느낌과 감동을 만끽했기에, 『다시, 그림이다』 의 한국어판 출간 소식을 듣고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다시, 그림이다』 는 마틴 게이퍼드라는 신망 있는 영국의 미술평론가과 데이비드 호크니가 10년 동안 꾸준히 교감하고, 소통하고 이야기한 일종의 인터뷰집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느낄 수 있어요. 저자가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를 쭉 풀어 쓴 것도 아니고, 평론가가 제3자의 입장에서 비평적으로 쓴 글도 아니라는 점에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에요. 질문과 답이 모두 진지하면서도 재미있어서, 마치 얘기가 잘 통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오랫동안 엿듣고 있는 느낌이에요.”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의 대화는 1시간 혹은 2시간짜리 인터뷰가 아니라, 10년간 두 사람이 그림과 예술에 대해 런던의 한 복판, 요크셔의 오두막, 길 위에서, 그리고 아이폰으로 나눈 시간이 층층이 쌓여 있어 그 시간의 층을 한 겹 한 겹 들추며 읽는 재미가 있다.
“『다시, 그림이다』 의 원제가 ‘A bigger massage’에요. 번역서는 대부분 원래의 제목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효과적인데 이 제목은 사실 호크니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추상적인 제목이어서 편집부에서도 회의를 많이 거쳤어요. 이 책은 평생을 화가로 살아온 호크니가 결국 ‘회화’라는 것,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평생의 경험을 통해 전했기 때문에, 원제가 가진 함축적인 제목 이상의 설명이 제목에 필요했어요. 그래서 ‘결국, 그림이다’부터 시작해서 그림과 관련된 다양한 워딩이 펼쳐졌죠. 최종적으로는 ‘다시, 그림이다’로 결정이 됐어요.”
「이름 아침, 생트-막심 (1968)」 |
평소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책을 편집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었지만, 『다시, 그림이다』 가 미술서인만큼 저작권 문제와 작품의 인용과 사용 등이 무척 까다로웠다. 표지 디자인과 색깔 선택, 제목 등 아주 세세한 것까지 호크니로부터 허락을 구해야 했다. 다행스러운 건, 데이비드 호크니가 한국어판 제목 ‘다시, 그림이다’에 대해 호감을 표해서 순조롭게 출간이 마무리되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젊은 시절 패션의 아이콘이었고,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아티스트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그 기술들을 흥미롭게 이용했기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모험의 여정도 재미있게 읽힌다. 호크니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색감 자체가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 시각적으로 즐거운 것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는 선택하는 자유보다는 선택 당하는 행복이 더 클지 모른다. 영화, 게임, TV, 웹툰, 유튜브 등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현란한 영상들이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데, 애써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은주 편집장은 “이런 회의와 질문에 담을 주는 것이 바로 이 책, 『다시, 그림이다』”라고 말한다.
“예술분야, 화가에 관련된 책이지만, 꼭 미술에 관심이 없는 독자가 보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에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살아가는데 어떤 풍요로움을 주는지, 그리고 예술의 효력이 다한 오늘 같은 시대에 ‘그림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질문과 답을 충분히 재미있게 주는 작품이에요. 책이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인 매체인 것처럼, 그림도 가장 오래된 예술분야잖아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세상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곁에 두고 음미하며 오래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자신해요.”
「월드게이트의 쓰러진 나무들 (2008)」 |
김은주 편집장이 『다시, 그림이다』 를 편집하며,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글귀는 이 책의 저자인, 마틴 게이퍼드의 ‘서문’에 나온다.
“그림은 우리를 매혹하고,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세상의 모든 훌륭한 화가들은 우리 주변의 세상을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하게, 더 흥미롭고 불가사의하게 만들어주지요.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호크니는 사고의 범위, 대담함, 열정에 있어서 비범한 면이 있는 예술가입니다. 그가 끊임없이 몰두하는 문제는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인류가 그것을 어떻게 재현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즉, 사람과 그림에 대한 것이지요, 이것은 광범위하고도 심오한 질문이며,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 ||
김은주 편집장이 추천한 또 다른 책 일기장에 쓴 요리책 같은 콘셉트라고 할까요? 생활의 아주 작은 꼬리, 파편들에서 발견한 소중한 감성이 레시피랑 절묘하게 잘 어우러져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따듯함을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대단한 재료나 요리솜씨 없이도 ‘집밥’의 그 오묘하게 포근한 온도를 느끼게 해 줘요. ‘시인이 쓴 동물감성사전’ 이라는 부제처럼 시인이 ‘동물의 왕국’을 본다면 이런 생각을 하며 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책으로 그대로 보여줘요. 우리가 잘 모르는 생명들의 속내를 시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면에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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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자목련
2014.04.22
하나
2014.02.25
별B612호
2014.02.25
'다시, 그림이다'라는 제목에 충분히 공감이 느껴져요.. 원래 제목 A bigger massage였다면 별루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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