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스파이, ‘침저어’(沈底魚)를 찾아라!
『침저어』 는 정계의 스파이를 찾기 위한 수사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공안 내부에도 ‘두더지’가 있다. 홀로 움직이는 후와는 두더지라는 의심을 받는다. 와카바야시도 마찬가지다. 후와와 와카바야시는 누명을 벗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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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에 따르면 ‘침저어’(沈底魚)는 일본어에도, 중국어에도 없는 말이라고 한다. 일본어에는 바다 밑에 사는 물고기라는 뜻의 ‘저어’(底魚)가 있고, 중국어에는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는 뜻의 ‘침저’(沈底)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소네 케이스케는 ‘침저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썼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결합해서 이해한다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물고기 정도가 될까? ‘침저어’는 ‘평범한 생활을 하며 오래 지낸 뒤에 정부나 중요 기관의 높은 직책에 올라간 다음에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어로는 ‘sleeper'. 고정간첩과는 조금 다르고, 내부첩자를 말하는 두더지와도 다르다.
어느 날, 유력지에 정계의 고위 인사가 중국의 스파이라는 보도가 실린다. 중국과 북한의 정보를 다루는 경시청 외사 2과에 소속된 후와 형사는 이 사건을 담당한 특별 수사팀에 배치된다.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중국의 외교관이 미국에 망명을 했고, 그가 선물로 일본 정계에 스파이가 있다는 정보를 줬다. 본청에서 급파된 도쓰이 이사관이 수사 지휘를 하지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고미를 중심으로 한 2과 형사들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고미 패거리에 속하지 않고 언제나 홀로 움직이는 후와는 파트너인 와카바야시와 함께 단서를 쫓는다. 후와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 이토 마리가 스파이로 의심 받는 아쿠타가와 겐타로 의원의 비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미 패거리도 이토 마리를 미행하고 있었고, 이토와 후와의 관계도 파악한다.
소네 케이스케는 2007년 『침저어』 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고, 『코』 로 일본 호러소설 단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소네 케이스케는 대학을 다니다가 ‘빤한 인생을 살기는 싫다’는 생각으로 중퇴하고 사우나 종업원, 만화카페 점원 등으로 일하며 ‘순조롭게 인생의 계단을 내려가’다가 문득 스스로 신세를 망가뜨리는 일이 인생의 목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도서관에 다니며 쓴 소설로 데뷔하여 작가가 되었다. ‘빤한 가치관을 거스르는 작가를 목표로’ 한다는 소네 케이스케의 생각은 『침저어』 와 『코』 에 잘 드러난다. 『침저어』 가 깔끔하게 정돈된 첩보물이라면 『코』 는 소네의 가치관이 응축된 기이한 판타지다.
소네 케이스케의 『침저어』 는 건조하고 냉담하게 흘러간다. ‘침저어’라는 제목처럼 바다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차갑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후와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고미는 말한다. ‘넌 갑옷을 두르고 남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지. 한 마리 외로운 늑대인 척 행동하지만 너 자신을 드러내는 게 두려울 뿐이야.’ 와카바야시는 애초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결여된 인물로 보인다. 후와는 와카바야시에게 ‘칠흑 같은 눈동자가 빛을 흡수해버리는 깊은 바다 같아서 움직임이나 감정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후와와 와카바야시는 고립되어 있다. 강력반의 형사들처럼 외사 2과의 형사들도 자신의 정보를 결코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라이벌이며 기밀을 유지해야 할 적이다. 동료라 해도 믿을 수가 없고, 상부의 엘리트 관료들은 형사들을 부품이나 장기판의 졸 정도로만 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지고,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여야 한다.
『침저어』 는 정계의 스파이를 찾기 위한 수사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공안 내부에도 ‘두더지’가 있다. 홀로 움직이는 후와는 두더지라는 의심을 받는다. 와카바야시도 마찬가지다. 후와와 와카바야시는 누명을 벗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수 십 년 전부터 암약했던 시벨리우스라는 스파이의 정체가 드러나지만 그의 말도 믿을 수가 없다. 망명을 요청한 중국 외교관, 일본의 국익을 위해 일했다는 신념으로 가득한 시벨리우스, 도통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후배 형사,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고미 패거리와 경찰청의 엘리트 관료들. 그 사이에서 사건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존 르 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영국 정보기관 내에 있는 두더지를 찾아내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스마일리는 이미 은퇴를 했지만 숙적인 KGB의 수장 카를라가 심어놓은 두더지를 찾아내기 위해 돌아온다. 그리고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는 마침내 카를라와 대결을 벌이고 승리한다. 하지만 결말은 참혹하다. 스마일리가 깨달은 것은 자신 역시 괴물이었다는 것. 그들이 처한 상황이, 그들이 치열하게 목숨까지 내걸며 전개했던 첩보전이, 그들이 헌신하며 수호했다고 생각한 신념 혹은 조국이 허상, 코미디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잡고 싶었던 카를라를 손에 넣은 후 스마일리는 허탈감에 빠진다. 『침저어』 의 후와가 느끼는 것처럼.
코미디다…애들 스파이놀이와 다를 바 없는 짓을 국가와 국가가 심각하게 하고 있다. 이게 코미디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동료건 상부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고, 누군가는 죽었고 또 누구는 목숨을 내걸고 수사를 하지만 결과는 공허하다. 아무 것도 없다. ‘관료라는 것들의 머릿속에는 보신과 조직 방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걸까? 사람이 한 명 죽어 차가운 흙 속에 파묻혔는데도.’ 후와 같은 졸의 운명만 가혹한 것이 아니다. 아쿠타가와 같은 정치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녀석의 장래를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 아니다. 하물며 이 나라 국민도 아니다. 이용가치가 없다면 아쿠타가와는 바로 정치 일선에서 사라질 것이다…역시 일개 부품. 쓰고 버리는 부속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거대한 권력 혹은 시스템 혹은 집단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고 나약하다. 심해로 가라앉아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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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은 눈밭에, 다른 한 발은 모래에 두고 있지요
어느 날, 유력지에 정계의 고위 인사가 중국의 스파이라는 보도가 실린다. 중국과 북한의 정보를 다루는 경시청 외사 2과에 소속된 후와 형사는 이 사건을 담당한 특별 수사팀에 배치된다.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중국의 외교관이 미국에 망명을 했고, 그가 선물로 일본 정계에 스파이가 있다는 정보를 줬다. 본청에서 급파된 도쓰이 이사관이 수사 지휘를 하지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고미를 중심으로 한 2과 형사들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고미 패거리에 속하지 않고 언제나 홀로 움직이는 후와는 파트너인 와카바야시와 함께 단서를 쫓는다. 후와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 이토 마리가 스파이로 의심 받는 아쿠타가와 겐타로 의원의 비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미 패거리도 이토 마리를 미행하고 있었고, 이토와 후와의 관계도 파악한다.
소네 케이스케의 『침저어』 는 건조하고 냉담하게 흘러간다. ‘침저어’라는 제목처럼 바다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차갑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후와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고미는 말한다. ‘넌 갑옷을 두르고 남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지. 한 마리 외로운 늑대인 척 행동하지만 너 자신을 드러내는 게 두려울 뿐이야.’ 와카바야시는 애초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결여된 인물로 보인다. 후와는 와카바야시에게 ‘칠흑 같은 눈동자가 빛을 흡수해버리는 깊은 바다 같아서 움직임이나 감정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후와와 와카바야시는 고립되어 있다. 강력반의 형사들처럼 외사 2과의 형사들도 자신의 정보를 결코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라이벌이며 기밀을 유지해야 할 적이다. 동료라 해도 믿을 수가 없고, 상부의 엘리트 관료들은 형사들을 부품이나 장기판의 졸 정도로만 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지고,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여야 한다.
『침저어』 는 정계의 스파이를 찾기 위한 수사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공안 내부에도 ‘두더지’가 있다. 홀로 움직이는 후와는 두더지라는 의심을 받는다. 와카바야시도 마찬가지다. 후와와 와카바야시는 누명을 벗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수 십 년 전부터 암약했던 시벨리우스라는 스파이의 정체가 드러나지만 그의 말도 믿을 수가 없다. 망명을 요청한 중국 외교관, 일본의 국익을 위해 일했다는 신념으로 가득한 시벨리우스, 도통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후배 형사,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고미 패거리와 경찰청의 엘리트 관료들. 그 사이에서 사건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존 르 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영국 정보기관 내에 있는 두더지를 찾아내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스마일리는 이미 은퇴를 했지만 숙적인 KGB의 수장 카를라가 심어놓은 두더지를 찾아내기 위해 돌아온다. 그리고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는 마침내 카를라와 대결을 벌이고 승리한다. 하지만 결말은 참혹하다. 스마일리가 깨달은 것은 자신 역시 괴물이었다는 것. 그들이 처한 상황이, 그들이 치열하게 목숨까지 내걸며 전개했던 첩보전이, 그들이 헌신하며 수호했다고 생각한 신념 혹은 조국이 허상, 코미디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잡고 싶었던 카를라를 손에 넣은 후 스마일리는 허탈감에 빠진다. 『침저어』 의 후와가 느끼는 것처럼.
코미디다…애들 스파이놀이와 다를 바 없는 짓을 국가와 국가가 심각하게 하고 있다. 이게 코미디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동료건 상부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고, 누군가는 죽었고 또 누구는 목숨을 내걸고 수사를 하지만 결과는 공허하다. 아무 것도 없다. ‘관료라는 것들의 머릿속에는 보신과 조직 방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걸까? 사람이 한 명 죽어 차가운 흙 속에 파묻혔는데도.’ 후와 같은 졸의 운명만 가혹한 것이 아니다. 아쿠타가와 같은 정치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녀석의 장래를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 아니다. 하물며 이 나라 국민도 아니다. 이용가치가 없다면 아쿠타가와는 바로 정치 일선에서 사라질 것이다…역시 일개 부품. 쓰고 버리는 부속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거대한 권력 혹은 시스템 혹은 집단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고 나약하다. 심해로 가라앉아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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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저어 沈底魚 소네 게이스케 저/권일영 역 | 예담
《침저어》는 같은 해 ‘에도가와 란포상’과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일본 장르문학의 총아로 떠오른 소네 게이스케의 장편소설이다. 국내에 이미 《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을 출간하며 이름을 알려진 소네 게이스케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침저어》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첨예한 정보 전쟁을 다루는 본격 첩보-경찰 미스터리다. 이 소설은 일본 정계 고위층에 ‘침저어’라 불리는 형태의 스파이가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경시청 외사2과 형사들의 체포를 위한 분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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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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