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 톤즈에 남긴 것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글 : 채널예스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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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은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姑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날이다. 마침 오늘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가 서임된 날이기도 하다.

 

이태석(李泰錫, 1962년 9월 19일 ~ 2010년 1월 14일) 신부는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수도회인 살레시오회 사제 겸 외과의사로 아프리카 남수단의 마을인 톤즈에서 교육 활동과 의료 활동을 펼쳤다.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이다. 별칭으로는 톤즈의 돈 보스코,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었다. 톤즈 마을 사람들은 그의 세례명에 성을 더해 발음하기 쉬운 쫄리(John Lee)로 부른다.

 

그는 부산시의 남부민동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송도성당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다. 9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가 자갈치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성당에서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과 산 벨기에 선교사 다미앵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모로카이> (MOLOKAI)를 보고 다미앵 신부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1987년 부산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가톨릭 신부가 되는 뜻을 품었다. 복무를 마치고 특히 청소년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에 따라 1991년 8월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한다. 그리고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수도회 소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1993년 1월 24일 수련을 시작해서 1994년 1월 30일 첫 서원을 하고,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2년 철학과정을 마친 후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역시 2년 과정의 사목실습을 하였으며, 1997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로 유학한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에서 이미 20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다 1991년 아프리카 수단으로 파견되었다가 로마에 휴가차 온 공고미노 수사를 만난다. 그로부터 수단의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될 것을 권유받는다. 1999년 방학 때 선교체험을 하려 아프리카 케냐에 들렀을 당시 남수단 톤즈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제임스라는 인디아 출신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를 만나 톤즈로 가게 되고, 이때 강렬한 인상을 받아 톤즈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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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27일 종신서원을 하고, 2000년 6월 28일 로마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24일 서울 구로3동 천주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를 향해 선교사로 출발하여 12월 7일 아프리카 남부 수단 와랍 주 톤즈에 부임한다.

 

그곳에서 가난과 기아,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겸한 의료봉사활동과 구호운동에 헌신한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진료소를 만들었다.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1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그러나 2008년 11월 한국에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암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새벽 5시 35분에 살레시오회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하였다. 유해는 전남 담양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이야기는 가톨릭 잡지 <생활성서>에 연재되었고,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라는 단행본으로도 소개되었다.

 

2010년 9월,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가 개봉되었다. 2011년 1월 14일에는 선종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2010년 12월 24일에는 KBS에서 ‘성탄특집 이태석 신부 세상을 울리다 -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 울지마, 톤즈’가 방송되어 전국의 시청자들을 울렸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구수환 프로듀서는 제20회 한국가톨릭매스컴 대상을 받았으며, 대상 상금 전액을 아프리카 톤즈 병원에 기부했다. (출처: 예스24, 위키백과)

 

 

이태석 신부 관련 추천 도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태석 저 | 생활성서사

한 수도 사제의 아프리카 사랑 이야기이다. 물질적 가난을 풍요로 바꾸어 줄 수 없지만 그 고통과 가난을 함께하며 사는 신부의 삶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사제라는 신분을 넘어 서서 평범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 아픈 곳을 살피고 치료해 주는 의사로, 그리고 다양한 악기와 즐거운 노래를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으로,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살아가는 저자의 체험이 담긴 따뜻하고 감동적인 휴먼 에세이이다.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

구수환 저 | 비아북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은 「울지마 톤즈」의 감독 무삭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운명적으로 시작된 구수환 PD와 이태석 신부의 인연,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아프리카 톤즈로 가기 위한 고달픈 여정, 톤즈의 참혹한 실상, 톤즈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에서 발견하는 이태석 신부의 유산들, 이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의 중심은 사람이다. 이태석을 만났던 사람들,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의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본 사람들, 한 번도 울어보지 못했던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은 씌어졌다.



[DVD] 울지마 톤즈 극장판

디에스미디어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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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천주교 #울지마톤즈 #염수정 대주교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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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0

아낌없는 사랑과 희생을 머나먼 아프리카 톤즈에 남기고 떠나신 신부님의 사랑이 후대에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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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오늘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신 날이더라구요. 그분 다큐멘터리를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일을 많이 하셨는데 왜이리 일찍 가셨는지 안타깝더라구요. 그에비해 항상 남탓만 하고 환경을 원망했던 저를 반성하게 되고 제가 가진것에서 나눠주는 것이 가장 소중함을 느껴요 감사합니다. 그곳에서는 평안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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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그의 하느님은 이태석을 사랑하신 걸까요. 톤즈를 사랑하신 걸까요..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같이 한 하느님의 큰 뜻을....사람으로서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무지 원망스러웠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예수의 삶을 살다가신 것 같습니다.
살아계실 때 처럼 지금도 그 곳에서 웃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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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다. 의사로서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돌연 사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1991년 살레시오회에 입회하고, 1994년 첫 서원을 한다. 1997년 1월 로마 교황청 살레시오 대학교 유학 후 2000년 4월 살레시오회 종신 서원을 통해 살레시오인으로, 2001년 12월 남수단 톤즈에 부임한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오랜 내전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꽃을 피운 삶을 살다가 뒤늦게 발견한 대장암과 싸우며 ‘하루빨리 톤즈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기’를 희망했지만, 1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10년 1월 14일 선종 후 1월 16일 전남 담양 광주교구공원묘지 내 살레시오 묘역에 안장 되었다. “에브리싱 이즈 굿(Everything is good)"이라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위로한 그의 삶은 사제로서의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본보기이자,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 준 하느님 사랑의 증표다. 가장 낮은 이의 모습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실천과 헌신적인 봉사의 삶으로 인제인성대상특별상(2006년), 보령의료봉사상(2007년), 한미자랑스런의사상(200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1년)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