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에 그런 대사가 나오죠. ‘살아 있네, 살아 있어!’ 그런 기분이에요.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가끔은 한 해 쉴까 싶다가도 안 하면 또 잊혀져가나 싶어서... 해야겠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대답 없는 외침만큼 힘든 게 있을까요? 해마다 객석의 뜨거움이 느껴졌기에 전국 투어라는 쉽지 않은 그림을 그려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주위에 보면 취소된 공연도 있었거든요. 저도 많이 걱정했는데, 걱정을 괜히 했나 싶을 정도로 많이들 와주셨어요. 2002년부터 거의 해마다 연말이면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아요. 체력적인 면에서도. 이번에도 7일 연속 공연한 적이 있는데, 눈 뜨면 공연이더라고요(웃음). 몸은 힘들고 피곤하지만 이렇게 공연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감사하죠.”
이번 전국 투어는 8집
“<블라인드 필름>이라는 제목은 사진을 찍어주신 강영호 선생님이 붙여 주셨는데, 제 음악을 어떤 배경음악으로 많이들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자기 일상 속의 배경 음악, 추억이나 기억의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어 봤어요. ‘blind’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생각해 봤는데, 불이 꺼진 상태에서 음악이 더 잘 들리고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죠. 또 제 팬 중에 시각장애인이 계시거든요. 제 음악은 거의 피아노 솔로지만, 그럼에도 항상 깊이가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성숙해졌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 다행히 그런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고요.”
특별히 ‘이별’을 언급한 이유가 있을까요?
“작년에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시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살아가면서 많은 이별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별, 죽음... 좀 어두운 것들을 생각하고 만들기는 했어요. 한편으로는 나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한 이별일 수도 있고, 자기 안의 뭔가를 버리고 잊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이번 전국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포토타임’입니다.
“피아노 연주회인데도 공연 중에 사진을 찍거나 심지어 동영상 촬영을 하는 분들이 계세요. 아무래도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제한하고 있는데 그래도 촬영하는 분들이 있다 보니 누군가는 찍고 누군가는 못 찍는 불공평한 상황이 되잖아요. 그래서 어디에선가 한 번은 앙코르 때 아예 찍으시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연주하다 포즈도 잡아 드렸죠(웃음). 연주를 하는 저로서는 아쉬웠지만, 입장을 바꿔보면 귀한 시간과 거금을 내서 오신 건데 그 정도는 이해해야 되지 않나... 다음에는 스탠딩 콘서트로 갈까 싶어요. 피아노랑 같이 무대에서 떨어지려고요(웃음).”
2월 7일부터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또 다시 관객들을 만나게 될 텐데, 지방 공연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항상 천 석이 넘는 규모에서 공연하다 이번에는 중규모라서 조금 더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영화’라는 게 콘셉트니까 제가 생각하는 그림을 영상으로 보여드릴까, 다른 악기를 조금 넣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요즘 이루마 씨는 대중과의 공감대를 조금 더 넓히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11시 <이루마의 골든 디스크>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지난해 MBC 연예대상에서는 라디오 부문 신인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처제(손태영)가 신인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라고, 타이밍 놓치면 못 받는다고 축하해 주더라고요. 청취자 여러분 덕분이죠. 데뷔 12년 만에 신인상을 받았는데, ‘자르지 않을 테니까 계속 열심히 해라’ 그런 뜻 아닐까요(웃음)? 같은 시간대에 최다니엘, 공형진 씨가 있기 때문에 자리 잡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웃음).”
작곡가,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과 함께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이기 때문에 청취자들과 조금 더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을 텐데요. 그 역시 청취자들에게 힘을 얻기도 합니다.
“시간대가 아이들 유치원, 학교 보내고 청소하고 잠깐 여유 있을 시간이잖아요. 청취자들 연령대는 굉장히 다양한 것 같아요. 또 팝 음악을 다루니까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게 되고,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제가 무언가 위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죠. 오히려 제가 투덜댈 때도 있어요. 힘들다 그러면 또 저를 위로해 주시고, 서로 위로하고 친구 같은. 그게 라디오인 것 같아요. 애청자분들 성함은 제가 다 기억할 정도예요.”
요즘 TV에서 아빠들의 육아를 다룬 프로그램들이 인기인데, 이루마 씨는 일곱 살 로운이에게 어떤 아빠일까요?
“그런 프로그램 보면 부담스럽긴 하더라고요. 왠지 주말이면 어디를 가야할 것 같고. 요즘은 좀 바쁘지만 같이 잘 놀아요. 저랑 보드게임 하는 걸 좋아해서 모노폴리, 부루마블도 많이 하고. 책도 같이 읽고, 애니메이션도 같이 보고요. 예전에는 ‘욱’ 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따끔하게 혼내고 또 달래주죠. 그래서인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빠래요(웃음).”
로운이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의외로 따로 가르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제가 연주해줄 때도 있지만 따로 가르치지는 않아요.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솔직히 너무나 힘들고, 저도 가끔은 취미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여자니까 나중에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루면 좋겠지 정도고, 굳이 피아노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공연과 라디오 외에도 이루마 씨는 바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영화음악에 가요, 광고음악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척 다양한 곳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네요.
“원래 전공이 작곡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곡을 만들어도 연주를 하면 연주가로 보거든요. 그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워서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보여드리는 거죠. 우선 강인, 박세영 씨 주연의 영화 <고양이 장례식>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예전에도 영화음악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음악감독은 처음이죠. 그리고 가요도 계속 작업하고 있어요. 가장 최근 게 엠블랙 지오의 ‘플레이 댓 송’인데, 이상하게 저한테 곡을 받으면 활동들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냥 소장용인가(웃음)?”
서른일곱의 이루마 씨는 요즘 어떤 생각을 많이 할까요?
“사람을 생각하죠. 최근에 영국에서 정말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친구를 만났는데, 너무 오랜만에 봐서 서먹서먹한데도 어떤 얘기를 한 마디 하니까 바로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최고다! 옛날의 저를 봤기 때문에 벽이 없는 것 같아요. 30대 중반이고 곧 마흔이니까 ‘내 곁에 누가 남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옛 사람들이 많이 그리운 시점인 것 같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것을 느끼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 같습니다. 이루마 씨는 그렇게 담아낸 음악이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랄까요?
“사람들이 음악 없이는 못 살잖아요. 음악으로 공감하고 위안 받고.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생각을 정리해줄 수 있는 음악. 피아노 음악으로는 그렇게 남고 싶어요. 가요는 사람들이 흥에 겨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곡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앙ㅋ
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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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