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은 어떻게 이주노동자 운동의 산실이 되었나
지난 12월 29일,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우린 잘 있어요, 마석』 출간기념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강남구 OBS 사회부 기자의 사회로 공저자인 고영란 작가·이영 사무국장(샬롬의 집), 네팔이 고향인 사티 씨,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가 함께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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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주노동자를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관객들과 만났다. 장률 감독의 <풍경>과 박기용 감독의 <가리봉>이 그들이다. 두 영화, 스타일은 다르지만 이주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누군들 이방인이 아니겠는가?”라는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어떤 사유. 이 가운데 <풍경>에 대해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노동의 숭고함과 노동의 가치를 돌아보게 해준 영화”라고 평했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에게 묻는다. 한국에 와서 꾼 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딱지를 단 이들의 일상에 관심이 없다. 시혜와 동정이거나 굴종과 무시, 둘 중 하나다. 장률 감독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을 기존의 다큐에서 다뤄왔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민과 고충들에 대해 물었을 때 매우 불편해했다. 고달프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무슨 권리로 이렇게 물어보는 걸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인상 깊었던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이 웃기 시작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이야기하는데도 거리낌 없이 정서와 감정들을 쉽게 드러내더라.”

여기, 한 권의 책도 비슷한 자세를 유지한다. 『우린 잘 있어요, 마석』. 마석가구공단에 사는 이주노동자의 일상을 다룬다. 이주노동자라고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12월 29일,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우린 잘 있어요, 마석』 출간기념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강남구 OBS 사회부 기자의 사회로 공저자인 고영란 작가ㆍ이영 사무국장(샬롬의 집), 네팔이 고향인 사티 씨,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가 함께했다.

“『우린 잘 있어요, 마석』은 마석 이주노동자들의 세상살이, 한국살이를 진솔하게 보여주려는 책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늘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거리감을 줄이고 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 데 그 목적이 있다.”(p.14)

(※ 참고로 ‘외국인노동자’는 국적에 따른, 한국인이 아니라는 배타적 성격이 강한 반면 ‘이주노동자’는 ‘노동자’의 개념을 더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단어이다. 이에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써주는 것이 더 좋으며, 국경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주하면서 노동을 한다.)




마석가구공단의 흥미로운 일상적 풍경

『우린 잘 있어요, 마석』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고영란: 마석에 사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다. ‘우린 잘 있어요’라는 표현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고생도 많이 하고 편안하지 않은데, 부모나 가족에게 인사할 때 괜찮아, 편안해라고 말하거든. 과거 우리도 다른 나라에 이주노동 갔을 때 그렇게 말했다. 잘 있다고, 아무 일 없다고. 실은 그렇지 않거든. 고생하고 인내하면서 헌신적인 삶을 산다. 그렇다고 책이 이주노동자들이 잘 있지 못하다는 부분만 드러내는 건 아니다. 직장과 집을 어떻게 구하고, 일 할 때 근무조건은 어떻고, 어떤 어려움이 있고, 주말에는 어떻게 지내고, 일상에서 느끼는 갈등이나 희로애락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보려고 했다. 물론, 부족한 점도 있고. 이주노동자들이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보다 일상의 세밀한 부분을 다루면서 어떻게 살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자세히 느껴보는 책이다.

‘샬롬의집’은 어떤 곳인가?

이영: 1992년 설립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다. 불법의 소굴이지(웃음).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이주노동자 중에 불법 딱지를 붙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주로 찾아온다. 한국 사회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실 우리 인생 모두가 불법인데 말이다. 특히 마석 지역은 한센인이 농장을 하다가 만든 건물도 불법이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오면 거의 100% 임금 체불을 경험한다. 책상 도색 작업은 한국인은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다. 1평도 되지 않는 곳에서 이주노동자 혼자 들어가 도색 작업을 한다. 가구와 화학약품 때문에 눈이 벌겋게 된 뒤 샬롬의집을 찾아온다. 지금 고용허가제에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업장에 가고 싶으면 사장의 사인을 받아야 한다. 노비가 노비문서에 의해 붙잡혀 있듯, 이주노동자도 현대판 노비제도 하에서 살아간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과 인권 문제 등을 상담하고, 문화행사 등을 지원하는 곳이 샬롬의집이다.

사티 씨는 책을 어떻게 읽었나? 연애담이나 결혼담도 얘기해 달라.

사티: 반 정도 읽었는데, 이전에 내가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니 기쁘더라. 처음엔 힘든 일 많이 겪었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아내는 한국에 연수생으로 왔다. 대구 섬유공장에서 일하다가 소개를 통해 나와 만났다. 당시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돼지 농장에서 일했는데, 공중전화를 하려면 멀리 나가야 했다. 그때 사장이 전화를 놔줘서 전화로 연애를 했다. 내가 먼저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좀 더 잘해서 이런저런 도움도 줬다. 지금의 아내에게 당시 5만원을 동전으로 바꿔서 그 돈으로 전화를 하라고 해서 연애를 했다. 그 뒤 결혼해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가족들은 지금 네팔에 가 있다.

학자로서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말해 달라.

김현미: 불법노동자, 불법외국인,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흉악범죄를 일으키는 자, 범죄의 온상, 외화 유출하는 자 등으로 미디어에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선 ‘불법노동자’라고 쓰지만, 다른 나라에선 이 말을 쓰지 않는다. 유엔이나 국제노동기구에선 ‘오버스테이어(overstayer, 비자기한 초과 체류자)’를 권한다. 학계에서는 ‘미등록 이주자’라는 말을 쓴다. 법을 어기면 추방을 해야겠지만, 이들은 영세사업장 등에서 한국인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을 하면서 한국경제를 밑바닥에서 받치는 사람들이다. 월급도 올려주지 않고,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는다. 경제가 나쁘면 언제든 추방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나라 이주학자들도 이들을 연구하지 않는다. 왜냐. 법무부에 밑 보일 이유가 없거든. 이들의 현실과 생활, 노동하는 존재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에 무관심하다. 그런 것을 통해 우리는 안락한 쾌락을 유지하고 싶다. 책은 편견을 배제하고 어떻게 희로애락을 느끼는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고민해보자고 요청하는 책이다. 3~4시간 붙잡고 굉장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석가구공단’이라고 하면 가구를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지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마석은 어떻게 가구공단이 됐고, 이주노동자가 많이 정착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영: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물으면 1위가 에이즈 환자, 2위가 장애인, 3위가 이주노동자라고 하더라. 마석은 1960년대 초 한센인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양돈 사업을 했다. 이분들은 마석 시내를 나가지 못했다. 시내에 나가면 멍석말이나 돌팔매질을 당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산업화를 거치면서 이들이 임대업주가 됐다. 이때 유입된 사람들이 이주노동자였다. 그러면서 고난과 역경이 되물림 됐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0순위로 해고당하거나 희생양이 되는 것도 이주노동자이다. 마석은 이주노동자 운동의 산실이다.

마석이 마냥 우울한 곳은 아니다. 독특하고 재미난 문화가 있다. 전화결혼식이라고 있던데 설명 부탁한다. 또 어떤 문화가 있는지 듣고 싶다.

고영란: 전화결혼식은 방글라데시 방식이다. 한국에 왔다가 결혼적령기 넘기면 본국의 부모들이 걱정을 한다. 또 형이 결혼하지 않으면 동생들도 못하는 풍습이 있다. 결혼을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생긴 결혼 풍습이다. 본국에 계신 부모들이 신부를 정해준다.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요즘에는 휴대폰이나 이메일로 사진을 주고받는데, 결혼식 자체를 전화로 한다. 결혼식 전날, 본국에서 하는 것처럼 준비하고, 신부가 없는 것만 빼고는 똑같다. 신랑에게 전통 복장을 입히고 손님을 맞이한다. 다음날 결혼식을 하는데, 신부는 없는 거지. 본국에서도 똑같이 치른다. 신부는 한국에 오기보다 신랑집에 들어가 살림을 한다. 더러 신랑이 신부를 한국으로 불러 같이 일하기도 한다.

또 생일잔치, 돌잔치 등 각국의 잔치가 인상적이었다. 필리핀 공동체는 농구 리그전이 유명하다. 본국에서 하는 것처럼 즐겁고 활력이 있다. 아주 재밌다. 6~8월까지 한다. 방글라데시 잔치는 전통의상을 입고 패션쇼를 올리고, 연극도 한다. 이곳에서 생일잔치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언제 강제 추방당할지 모르니까, 생일잔치를 귀하게 여기고 진심을 다해서 주변 사람들과 축하하면서 논다. 그런 일상의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이런 독특한 문화가 생긴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김현미: 이주노동자들끼리 경쟁이 붙었다(웃음). 커뮤니티마다 자신의 축제를 만들고, 파티에 초대하면서 마석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언제 단속에 걸려 추방당할지 모르니, 자신의 처지와 한계를 잘 안다. 그래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약속과 신념을 지키는 것을 가치관으로 삼는다. 마석에 이런 공동체 문화가 지속되는 것 같다. 이분들이 마석을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돈을 추렴한다. 마석은 하나의 공동체로 기능한다는 가치를 갖고 있다. 돈을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빌려주면 못 받을 수 있는데도 돈을 빌려준다. 그것이 이분들이 가진 신념이고, 규칙을 지키는 일이다. 가장 불안전한 조건의 사람들이 일관적인 규칙을 지키면서 산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마석을 풍요로운 다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마석도 사람 사는 공간이라 계급이 생기고 있다더라.

이영: 다툼이 생기면 ‘합법’이 ‘불법’을 신고하기도 한다. 공단 내에서 그건 일상적이고, 어디든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에게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면 어느 나라인지부터 따진다.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하고자 하는 일이 많이 있다. 이주노동자들, 특히 ‘불법’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은 두 다리 뻗고 잠자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김현미 교수는 이곳을 ‘임시적인 해방 공간’이라고 표현했는데…

김현미: 80% 이상이 이른바 ‘불법’노동자인데, 일상에서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임금노동에 의존하는 사장들도 단속이 뜨면 이들을 보호하려고 하고. 임대주인 한센인 어르신과 영세 기업주들, 동료 한국인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상호 의존적으로 공생한다. 이분들이 혼자 일하는 것과 같은 삶의 취약성은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단속때문에 해방구가 영원할 순 없는 거지.

이 책을 쓰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고영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이주노동자 전문가가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순박하고 마음이 착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과 모험심이 강한 성격인 것 같더라. 섬세한 더듬이나 촉수를 세워 빨리 적응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통해 우리가 갖기 쉬운 편견이나 오해를 해소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처음 마석에 갈 때는 오해나 편견을 갖고 들어갔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동받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 지금 젊은이들이 언젠가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가야할지도 모르는데,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추방 등을 이유로 관계가 갑자기 끊어질 수 있는데, 더 이상 추방당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묻고 싶다.

이영: 내가 고민하는 게 하나 있다. 국가란 무엇일까. 지금 나에게 국가는 있는데, 정부는 믿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을 때 난민을 신청하려고 했다(웃음). 그동안 이주노동 정책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살펴보고자 이전 정부들에 대해서도 정책 조사를 해봤는데, 다르지가 않더라. 심지어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때에도 철저하게 이주노동자의 노동력만을 착취하는 정책이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 정부가 하는 짓은 자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 같다. 지금 자본에 착취당하고 억압 받는 사람이 이주노동자라고 본다. 이주노동 해방, 만세!

김현미: 이주노동자 덕분에 한국의 영세기업이 생존하고 싼 제품을 이용하고 수출을 많이 하는데도 착취하고 열악한 상황에 몰아넣는 현상을 방관해서야 되겠는가. 책에 나온 한 사진을 보면 외국인이 잘 살아야 한국인이 잘 산다는 말이 있다. 이주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조건을 방관하지 말고 개선하고자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인과 경쟁하고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비국민과 국민의 삶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성찰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사티 씨는 내년에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사티: 한국말을 잘 하진 못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좋다. 2013년은 마무리됐으니 2014년은 모두가 건강하고 하는 일 모두가 잘 풀렸으면 좋겠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없는 사람들은 빨리 짝을 만나서 결혼하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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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잘 있어요, 마석 고영란,이영 공저/성유숙 사진/샬롬의집 기획 | 클(퍼블리싱컴퍼니클)
저렴하게 가구를 살 수 있는 ‘국내 최대 가구공단’으로 알려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 800여 명이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이주노동자 마을 사람들의 세밀한 일상을 1년 넘게 관찰한 기록이다. 노동과 생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독특한 희로애락을 풍부한 인터뷰와 사례들, 그리고 사진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선주민인 한센인, 공장주, 주변 상인 등 이주노동자와 공생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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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잘 있어요 마석 #마석가구공단 #고영란 #이영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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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