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이탈리아 화가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1284-1344)의 대표작인 <수태고지 Annunciazione tra i santi Ansano e Margherita>를 살펴볼까요? ‘수태고지(受胎告知)’란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임신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장면을 그린 기독교 미술의 주제를 말해요. 천사 가브리엘이 무릎을 꿇고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뭇가지를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고 있네요. 천사의 입에서는 “은총을 가득 받은 이여, 기뻐하라. 주께서 함께 계신다”라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성모 마리아 옆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꽃이 화병에 꽂혀 있네요.
많은 화가가 <수태고지>를 그렸지만 이 그림은 가장 아름다운 <수태고지> 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요. 정교한 문양이 세공된 화려한 금박 액자가 그림을 더욱 신비하고 우아하게 돋보이도록 하기 때문이지요. 액자 하면 흔히 직사각형의 틀을 떠올리지만 그 시절에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독특한 형태의 액자들이 만들어졌어요.
이 그림은 현재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의 소장품이지만, 원래는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였습니다. 제단화는 교회 건축물 안의 제단 위나 뒤에 설치하는 그림을 말하는데, 교회 의식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지요. 신도들의 눈길이 집중되는 신성한 예배당 안에 있었기에 최대한 화려하고 우아하게 장식했지요. 마르티니는 매제(妹弟)인 리포 멤미(Lippo Memmi)와 함께 그림과 액자가 황홀한 조화를 이루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수태고지>는 액자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만큼이나 액자를 중요하게 여겼어요. <도니의 원형화Tondo Doni>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성 요셉의 ‘성가족’을 그린 기독교화예요. 미켈란젤로가 그린 유일한 패널화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지요.
원래 제목인 ‘톤도 도니’에서 ‘도니’는 이 작품을 주문한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아뇰로 도니(Agnolo Doni)의 이름을 딴 것이며, ‘톤도’는 메달과 같이 둥근 형태의 액자에 들어가는 원형 그림을 말해요. 대개는 그림을 그린 다음에 액자를 끼우게 되는데, 미켈란젤로는 액자를 만든 뒤에 이 그림을 그렸어요. 액자에 그림을 맞춘 셈이지요.
액자 디자인도 직접 했어요. 액자를 자세히 보세요. 단순한 액자가 아니라 정교하게 조각된 예술작품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예언자, 무녀의 머리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네요. 미켈란젤로는 액자를 이용해 그림과 조각이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예술작품을 창조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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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명작들을 ‘키워드(key word)’로 감상할 수 있도로곡 안내한 새로운 미술 교과서이다.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인기 칼럼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중 일부를 모아 새롭게 엮은 것으로, 서명, 손가락, 발, 입, 그림자 등 미술을 대할 때 눈에 보이는 요소들부터 소리, 음악, 움직임, 속도, 리듬, 크기, 생각 등 눈에 안 보이는 요소들, 그리고 미술과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까지 다양한 키워드를 제시하며 명화를 감상하도록 안내한다.
이명옥
한국 문화·예술계의 뛰어난 기획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현재 사비나 미술관장,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 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2005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2006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2006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명화 경제 토크』(2007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 도서),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2005년 청소년 권장 도서), 『팜므 파탈』(한국문화번역원 선정 ‘2005년 한국의 책 96’, 일본 사쿠힌 사에서 『妖婦』로 번역 출간), 『아침 미술관 1, 2』, 『그림 읽는 CEO』(네이버 선정 ‘오늘의 책’), TGIF(Twitter, Google, Internet, Facebook) 시대의 주역인 융합형 인재를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신新 인재 패러다임을 소개한 『이명옥의 크로싱』,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선정 ‘2009 올해의 청소년도서’)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센세이션展』,『머리가 좋아지는 그림 이야기』, 『날씨로 보는 명화』,『에로틱 갤러리』,『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등의 책을 집필했다.
주요 전시로는 '교과서 미술전', '미술 속의 동물전', '밤의 풍경전', '키스전', '이발소 명화전', '24절기전', '일기예보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전', '그림 속 그림 찾기전' 등이 있다.
amorfati2
201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