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학에 다닐 무렵, 친구들과 종종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빈말로도 쾌적하다고 할 수 없는 작고 어둑한 방 한구석,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을 하고서도 뭔갈 배우겠다고 오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수업시간이 지나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작은 머리에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은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학생들에게 가장 자주 들은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선생님, 전 꿈이 없어요. 다른 애들은 죄다 하고 싶은 게 있다는데, 뭐가 좋은지도 모르는 건 문제 아닌가요?”
<응답하라1994>의 빙그레(바로 분)를 보았을 때 문득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꿈도, 마땅히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곳이 내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라는 불안과 번민. 시대를 뛰어넘어 그맘때의 아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일 터다. 나는 ‘김재준’의 정체만큼이나 드라마가 이 테마를 어떤 식으로 다룰지 궁금했다.
초반부, 빙그레를 보았을 때 이 인물이 하이틴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장형 캐릭터라 생각했다. 극 내내 자신의 꿈을 찾아 헤매다 결국 그 소망을 이루고 성공하는 그런 캐릭터. 학교생활에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하고 항상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나는 의아해졌다. 드라마에서 ‘꿈을 찾는 청춘’ 캐릭터가 으레 보여줘야 할 꿈에 대한 갈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의대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늘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장래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뚜렷이 보여주진 않는다. 막연히 음악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에피소드로 지나간 대학가요제나 윤진(도희 분)의 술주정을 제외하면 그가 꿈을 향해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빙그레조차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이 답답이, 뭐 딴 거 하고 싶은 거 있냐고.” 8회, 쓰레기(정우 분)의 물음에 힘없이 답하는 빙그레의 대사는 그를 명확히 짚는다. “모르겠어요. 지는 지가 뭐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를 몰라요. 기호라는 게 없어요, 나이 스물이나 돼갖고.” 그의 막막함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서 보는 것이 야구에 인생을 건 칠봉이, 혹은 학교서 천재라고 불리는 의대생 쓰레기 같은 사람이다. 좋은 머리로 천재 소리를 듣는 쓰레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동갑내기 사촌인 칠봉은 그야말로 노력의 결정체 같은 인물이다. 한 가지 꿈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무엇을 해야할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서성거리는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고 비참해 보였을 것이다.
이해는 간다.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희망을 제대로 알고 현실의 장벽에 맞서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가 꿈과 현재를 일치시키며 살아간다면 애초에 그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 그 모호하고 불안한 감성은 현실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30, 40대에게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평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20대 청춘에게야 말해서 무엇하랴. 나도 그렇거니와 내 주변 대다수의 사람들도 한번씩은 겪어본 고민이다.
게다가 그 꿈이란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가. 드라마틱한 성공담은 젊은이들에게는 변화와 성장을, 중장년층에게는 비일상으로의 탈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실체 없는 희망에 대한 낙관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빙그레의 고민과 방황은 그 어떤 청춘 드라마의 것보다 더욱 현실적인 것이었다. 꿈과 현실 사이의 방황.
출처_ tvN
14회, 모두가 그의 방황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궁금해질 무렵 이 드라마는 그 고민에 대해 해답이 아닌 위로를 내놓는다. 휴학 사실을 알리고 진로를 다시 고민해보겠다는, 부모님께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을 소식을 전하기 위해 힘들게 전화기를 들었던 빙그레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아버지가 다시 쓰러지셨다는 소식. 다급히 고향으로 향했던 그는 어느새 너무나도 약한 모습으로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와 마주한다. 잡은 손을 밀어내며 괜찮으니 얼른 올라가라는 아버지의 모습에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마는 빙그레의 모습에 담긴 것은 깨달음이었다. 제대로 숨도 뱉지 못하면서도 아들 걱정에 여념이 없는 아버지의 사랑과 가끔은 막연한 꿈보다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
빙그레에 대한 이 드라마의 결론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단순히 부모님의 강압이나 장남이라는 부담에 시달려 간절한 꿈을 포기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하지만 모호한 꿈에 방황하던 그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데에 이 이야기의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이런 청춘들은 꿈을 찾고 그 꿈으로 성공한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위험과 손실을 감수하고 끝없는 도전 끝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물론 본받을 만한 것이지만, 가끔 그것은 현실에 주저앉거나 꿈을 찾아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박탈감을 주기도 한다. 당장 학자금 대출이니 뭐니 빚을 갚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 시대의 청춘들에게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손에 쥘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이니까.
빙그레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다정한 위로다. 이 드라마는 꿈을 찾지 못한 것이 내가 미진해서도 아니고 꿈이 없다고 모자란 인간은 결코 아니라고 도닥도닥 속삭인다. ‘대부분의 우린 내 사랑하는 이들을 차마 밟고 넘어설 수 없어 끝끝내 스스로 꿈을 내려놓고 만다. 하지만 괜찮다. 얼마 되지도 않는 드라마틱한 성공담에 기죽어 스스로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꿈만큼이나 사람도 소중했을 뿐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를 바꾸는 결단, 꽤 괜찮고 폼나는 일이다.’ 나정의 내레이션은 그리하여 감동적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결단’, 변화와 성장은 꿈을 찾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짚고 내가 속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일에도 미덕이 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사람들에게 이만큼이나 따뜻한 위로는 없을 것이다.
출처_ tvN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 14화의 부제가 말하는 바도 그것이다.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로 나는 변화하고 성장한다. 삶은 나를 완성시켜 가는 과정이지만 그것이 꼭 어떤 극적인 탈피(脫皮)나 변태(變態)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타인과 소통하고 작은 진리를 깨닫고 그것으로 인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서라면, 그 변화는 더더욱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현실에 지쳐 길고 고된 밤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힘을 내자고. 힘껏 달려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바꾼 자신을 칭찬할 때다. 현실에 안주한 것이 아닌가 불안함이 들 때면 당신 스스로에게 말해줘도 된다. 당신은 미진하고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너무나 다정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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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