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신체와 관련된 환유, 기억해두자!”
지난 12월 3일에 진행된 열한 번째 글쓰기 강좌는 ‘은유와 환유’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강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고종석은 별다른 말없이 특유의 웃음으로 수강생들을 맞이했다. 수강생들 역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걸로 답했다. 유쾌했던 시간을 지면에 담아 본다.
글ㆍ사진 정연빈
201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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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얼핏 서양의 도시를 닮았다

열한 번째 강의에서는 『자유의 무늬』 중 「건축」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문법이나 표현에 대한 검토는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전체적인 글의 흐름에 주목하면서 글을 읽었다. 고종석은 다소 낯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가 청탁이라 말했다. 수강생들은 의외의 답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고종석은 빙긋 웃으며 어떻게 써내려갔는지 살펴보자고 말했다.

「건축」은 오사카에 처음 간 기자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조선학 국제 학술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오사카에 간 기자는 그 도시가 조금도 인상적이지 않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처음 가본 외국도시였지만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거다. 글은 오사카에서 만난 건물 이야기로 이어진다. 기자는 ‘구체적인 조형 의지가 없이 그저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건조물들’을 건축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건축물은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일주일이나 머문 오사카에서 건축물다운 건축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교토에 가서야 비로소 외국에 왔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교토의 어마어마한 목조건물을 보면서 그동안 자랑스럽던 경주 불국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고 고백한다. 그 뒤, 유럽에 간 기자는 석조 건축의 세계를 만난다. 그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고 명동 성당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바티칸에서 성 베드로 성당을 보고 노트르담을 잊는다.

이 글에서 기자는 서울이 외국의 도시를 닮았다고 말했다. 서울은 일본의 도시를, 유럽의 도시를, 서양의 도시를 닮았다. 그는 서울의 초라함에 대해 말한다. 일본의 도시와 겨루어도, 서양의 도시와 겨루어도 초라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거다. 고종석은 이 글이 일부 한국인의 자존심에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테지만 자신은 그렇게 느낀다고 했다.

서울은 얼핏 서양의 도시를 닮았다. 서울을 상징하는 건축물들, 덕수궁 석조전이나 한국은행, 서울역 등은 일본에 의해 유럽식으로 설계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화문에 있는 세종 문화회관이나 정부 종합청사, 교보빌딩, 여의도 63빌딩에서도 한국 고유의 건축을 느끼기는 어렵다. 고종석은 이런 현상이 단순히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며 평양 풍경을 지적한다. 텔레비전에 비친 평양 풍경을 보면 오히려 서울에 견주어 더 유럽 색이 짙게 느껴진다는 거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러시아 풍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뿐 아니라 주체탑, 주석궁, 김일성 동상도 우리 전통 건축 양식과는 관계가 없다.

그는 유럽 언어가 세계 대부분 지역에 보급되었듯이 유럽의 건축 양식도 세계 대부분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고 말한다. 현재 유럽 건축 양식은 점차 주도적인 건축 양식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어느 나라에 가도 맥도날드를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유럽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더 이상 어느 도시를 가도 그 풍경이 낯설지 않다.

고종석이 오사카가 서울과 닮았다고 이야기한 건 ‘한국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이 닮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일본 속 유럽’과 ‘한국 속 유럽’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어의 외래적 요소와 일본어의 외래적 요소가 한국어와 일본어를 서로 닮게 하듯 한국 건축과 일본 건축 속에 있는 외래적 요소가 둘을 같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우리 건축은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럽적인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미국과 유럽의 감각을 흡수해왔다. 고종석은 이제 우리가 세계 건축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확고한 주류인 유럽적 건축 양식에 창의성과 다양함을 더하는 것, 혹은 우리 전통건축을 통한 새로운 시도라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서울이 유럽의 도시를 닮았지만 유럽의 도시와는 다르다고 한다. 서울은 24시간 쉬지 않고 상업 활동이 계속되는 생동감 있는 도시다. 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완전히 파괴되고 새롭게 건설된 도시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고려는 거의 개입되지 않았다. 고종석은 크고 높아지기만 하는 건물들의 천박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기자는 보는 재미만으로도 산책하고 싶게 만드는 건축물을 상상한다. 그리고 사람을 섬세하게 배려하는 인간적 건축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표어를 제시한다. ‘닮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달라지기, 그게 안 되면 차라리 철저하게 닮아지기’가 그것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 환유를 더 많이 사용한다

꼼꼼하게 글을 읽어낸 고종석은 간단히 표현들을 손보았다. 먼저, ‘처음으로 가본 도시는 오사카였다’에서 ‘으로’를 지워 ‘처음 가본 도시는 오사카였다’로 만들었다. 다음으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과’에서 ‘-들’을 삭제했다. 이어 고종석은 ‘한국 속의 외래적 요소’에서는 ‘-의’와 ‘-적’을 골라냈다.

수정을 마친 뒤, 은유와 환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종석은 STEP1에서 이야기했던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이론을 다시 설명했다. 로만 야콥슨은 비유를 은유와 환유로 구분했다. 이때, 은유는 유사성에 기초하고 환유는 인접성에 기인한다. 보통 은유라는 말은 자주 사용하지만 환유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다. 고종석은 우리가 실제 생활 속에서 환유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특히 환유는 신체 부위를 통해 사람을 가리키는데 널리 사용된다. 손이나 얼굴, 머리, 다리가 사람 자체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의 무늬』 를 보면 ‘그것은 입장이라는 것이 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엉덩이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슬프게 드러낸다.’ 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에서 ‘혀’는 사람이 하는 말을, ‘엉덩이’는 사회적 계급 등을 뜻한다. 고종석은 이렇듯 신체와 관련된 환유들을 잘 챙겨두면 글을 쓸 때 유용하다고 말했다.

고종석은 간단히 ‘은유와 환유’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며 수업을 마쳤다. 평소와 달리 글을 한 편만 읽은 때문인지 다른 날에 비해 수업이 꽤 빨리 진행된 기분이었다. 수강생들 역시 수업이 끝났는데도 멍하니 앉아있었다. 고종석은 9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여주며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 말했다. 그제야 수강생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몸짓이었다. 이제 고종석의 한국어 강좌가 열두 번째, 마지막 수업을 남겨두고 있다. 고종석이 쓴 글을 비판하는 마지막 시간이 어떻게 꾸려질지 새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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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한국어 글쓰기 #자유의 무늬 #은유 #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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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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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간결하면서도 냉철한 글로 유명한 고종석은 이 시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이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그는 24세에 한 영어 일간지의 기자가 된 이 후 지금까지 직업적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 왔다. 좋아하는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에릭 시걸, 존 그리셤 같은 영어권의 대중 소설가이고, 저널리즘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운 그가 선택한 신문은 르몽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도이다. 그를 정서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눈물을 훔쳐내며 읽은 심훈의 『상록수』이며, 그를 지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고등학교에서 내쳐져 자유롭던 열 일곱 살 때 골방에서 담배 피우기를 익히며 읽은 노먼 루이스의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다. 그는 자신의 문체에서 에릭 시걸과 김현과 복거일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에서 칼 포퍼와 김우창과 강준만을 느낀다. [코리아타임스],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지에서 스물 두 해 동안 기자 노릇을 한 그는 2005년 봄 [한국일보] 논설위원직을 끝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멍에와 명예에서 벗어났다. 현재 도서출판 개마고원 기획위원으로 있다. 나이에 걸맞은 가장 노릇을 못하며 살아온 터라, 그는 더러 자신이 객원남편, 객원아비, 객원자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득 자신을 객원한국인이나 객원인류로 여길 때도 있다. '객원'의 비정규성과 느슨함이 베푸는 자유의 감촉을 그는 무책임하게도 흐뭇해하는 편이다. 언젠가 페르시아어로 '루바이어야트'를 읽어보는게 꿈이다. 특별히 집착하는 기호품은 디스 플러스 담배와 붉은 포도주와 아스피린이다. 지은 책으로는 사회비평집 『서얼단상』, 『바리에떼』, 『자유의 무늬』,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경계 긋기의 어려움』, 문화비평집 『감염된 언어』, 『코드 훔치기』, 『말들의 풍경』, 한국어 크로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어루만지다』, 『언문세설』, 『국어의 풍경들』, 역사인물 크로키 『여자들』, 『히스토리아』, 『발자국』, 영어 크로키 『고종석의 영어 이야기』, 시 평론집 『모국어의 속살』, 장편소설 『기자들』, 『독고준』, 『해피 패밀리』, 소설집 『제망매』, 『엘리아의 제야』, 여행기 『도시의 기억』, 서간집 『고종석의 유럽통신』, 독서일기 『책 읽기, 책 일기』, 에세이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등이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C'est tout)』, 『어린 왕자』를 우리 말로 옮겼다. 주저主著 『감염된 언어』는 영어와 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