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검은 모래에서 강렬한 이야기를 끌어올린 구소은 작가
이 작품은 디아스포라 소설이면서 가족사 소설이다. 제주에서 잠녀로 태어난 구월에서 시작하여, 그의 딸 해금, 해금의 아들 건일(켄), 건일의 딸 미유에 이르는 4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사의 축이 모계라는 사실이다. 이는 소설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주 생계 수단이 어업인 섬에서는 농촌과 달리 여성의 발언권이 세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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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현기영은『검은 모래』의 서사는 크고 강하다”고 평가한다. 매력적인 서사가 드문 이 시대, 반가운 소식이다.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 바쳐진 심사평은 이렇다.


소설들이 서사성(이야기)을 잃고, 그에 따라 독자도 잃고 트리비얼리즘의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것이 요즘의 경향인데 『검은 모래』는 소설에서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입증하고 있다. - 심사위원 : 현기영, 김병택, 윤정모, 임헌영, 최원식


서사를 만드는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한 예로, 진중권 교수도 지난 9월 27일 열린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가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하다. 한국에는 문학이 약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거대서사가 사라진 뒤 예술의 의미도 없어졌다는 상투적인 진단에서부터, 단편 위주의 한국 문단이 지닌 한계라는 분석, 책이 두껍거나 상하로 나눠지면 더 안 읽히는 현실적 제약 등. 어쨌든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면서도 갈수록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나기란 어려워지는 듯하다. 화려한 영상과 순간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웹툰이나 게임에 비하자면 소설이 가진 무기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강력한 서사야말로 소설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매력!

 

『검은 모래』, 역사에서 강렬한 서사를 찾다

 

역사는 매력적인 서사가 탄생할 수 있는 뿌리다. 역사적 사건이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기도 하거니와, 역사 자체가 이야기기 때문이다. 구소은 작가가 쓴 『검은 모래』도 역사에 뿌리를 깊이 내린 작품이다. 조선이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독립을 하자마자 남북이 갈라진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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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강건모 


어떤 역사에 드라마가 없겠냐만, 이 시기 만큼이나 사건이 많았던 때도 흔하지 않다. 한자 문명권의 한 축을 담당하며 비교적 안정된 공동체를 꾸려나가던 조선, 유럽과 미국이 강자로 등극한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흥 강국 일본의 속국이 된다.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 오족협화를 주장하며 동남아시아에서부터 만주에 이르는 넓은 공간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치하고자 한다. 물론 허울뿐인 구호였고 실제로는 일본인이 아닌 민족은 차별을 받았다. 어쨌든 활동 범위가 넓어진 이 시기가 영화 「놈놈놈」의 배경인 건 우연이 아니다.


근대의 제국주의는 대개 도시화와 산업화와 함께 이뤄졌다. 식민지 조선도 마찬가지. 신작로가 깔리고 철도가 놓였으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식민지 모국에서 진행된 자본주의에도 공동체 해체, 빈곤 등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식민지에서 사회 모순은 정도가 더 심했다. 게다가 세계 대공황으로 내수 시장이 취약했던 일본은 직격탄을 맞으며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돈도, 기댈 곳도 없던 사람들은 정들었던 고향을 버리고 일본으로, 만주로 살 길을 찾아 떠난다.


디아스포라 소설의 모범을 제시하다


김영하의 『검은 꽃』과 같은 몇몇 디아스포라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이 시기다. 디아스포라란 원래 헤어지고 흩어진다는 뜻의 그리스어지만,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 탈주와 이주가 전세계적인 현상이 된 지금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에도 사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검은 모래』 역시 디아스포라 소설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디아스포라 소설이 으례 그렇듯, 가족사 소설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잠녀로 태어난 구월에서 시작하여, 그의 딸 해금, 해금의 아들 건일(켄), 건일의 딸 미유에 이르는 4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사의 축이 모계라는 사실이다. 이는 소설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주 생계 수단이 어업인 섬에서는 농촌과 달리 여성의 발언권이 세다. 농경 활동에 비해 위험한 어업 활동에서 남자들이 죽으면, 혼자 남는 여성이 가사를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르나 남자가 부재하는 가정을 여성이 지켜 나가는 설정은 이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구월의 남편 박상지는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나가사키에서 죽는다. 그렇다, 바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 나가사키. 해금의 남편 한태주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번에는 다른 나라의 전선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인 한반도에서. 6.25, 한국전쟁으로 알려진 그 전쟁.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가장인 다소 어색한 상황.


행복한 사회에서 불행한 가족은 있을 수 있지만, 불행한 사회에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해금의 가족사가 이를 증명한다. 해금네는 먹고 살기 위해 한국의 제주에서 일본의 미야케지마로 이주했고, 일본인의 텃세가 싫어 해금의 동생인 기영은 북한으로 떠나지만 이들에게 평화로운 삶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세계2차대전,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평화는 멀리 있다. 해금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가지만 해금의 아들인 건일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성장통을 앓는다. 일본에서 조센징은 불순하고 불온하다는 낙인이기 때문이다. 건일이라는 이름 대신 켄으로 살고자 하는 그는 일본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해금을 의도적으로 멀리 한다. 이러한 정체성 문제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가네시로 가즈키를 비롯한 여러 재일교포 작가에게 발견되는 대목이다.


소설로 역사를 이야기하고, 화해를 다루다


조선인으로 살고자 하는 해금과 일본인이 되고 싶은 켄 사이에 벌어진 틈을 또다른 주인공 미유가 메워준다. 그녀는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첫사랑이었던 지로와 헤어지면서 아버지인 켄과 마찬가지로 정체성 갈등을 겪는다. 그렇지만 할머니인 해금과 친해지면서 미유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서사를 요약하면서 불가피하게 시간 순으로 서술했지만, 이 소설은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지는 않았다. 현재 시점에서 미유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다음 장에는 구월의 이야기가, 또 다음 장에는 현재의 미유, 다시 다음 장에는 과거의 해금이 등장하는 식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어졌고, 둘은 화해해야 한다는 작가의 바람을 담은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세기’라고 표현했다. 부를 향한 질주가 계속되는 한편, 반대편에는 폭력으로 점철된 시대였다는 뜻이다.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냉전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아픔 많은 세월을 겪었다. 소설에도 등장하지만 한일합병, 2차세계대전, 제주 4.3, 한국전쟁 등. 전쟁 후에도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에게는 비극이 이어진다. 기민정책이라고까지 평가됐던 이승만 정부의 재일조선인 대처는 이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자민족을 품는 듯 보였던 북한조차 재일조선인 출신을 숙청했다. 『검은 모래』에는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등장하면서도, 등장 인물이 과거와 화해하고 서로를 보듬는 모습이 나온다.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검은 모래가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 삼양검은모래 해변, 소설 속 등장인물인 구월이 태어난 제주 우도 조일리 검은 모래 해안이 그렇다. 제주 사람들은 검은 모래를 검멀레라 부른다고 한다. 언젠가 제주를 찾을 날이 온다면, 이 소설이 남긴 여운이 떠오를 것 같다.



작가 인터뷰 (은행나무 제공)


첫 소설 『검은 모래』로 제1회 제주4ㆍ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축하드린다. 먼저 상을 받은 소감을 듣고 싶다. 


소감이라…… 뿌듯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검은 모래』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지난해, 몇 군데에 장편소설을 응모했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러나 내가 쓴 소설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다. 반드시 책으로 출판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방법이 막막했다. 잠시 덮어두고 일단 단편소설로 등단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공모 마감 사흘을 앞둔 제주4ㆍ3평화문학상을 알게 되었다. 


순간 ‘이것이다’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예감이 좋았다. 그동안 써놓은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프린트해서 보낸 뒤, 운은 하늘에 맡기고 응모한 사실을 머리에서 지웠다. 그 당시에는 악화된 건강으로 소설을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금년 3월 초에 심장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보름도 지나지 않아서 재발하는 바람에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에 나는 상당히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그런 중에 걸려온 전화 한 통! 문학상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솔직히 담담했다. 나보다는 내 가족들이 흥분하여 여기저기 자랑하느라 바빴다. 


당선은 되었으나 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조금 염려가 되었다. 두 번째 수술을 받고 체력이 바닥날 무렵에 제주4ㆍ3평화문학상 담당자로부터 출판사가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부터 실감이 났다. ‘아, 마침내 내 책이 세상 속으로 나오는구나.’ 한편 기쁘고, 한편으로는 겁이 난다. 너무 요란스럽게 첫 테이프를 끊는 것은 아닌지 조금 두렵다. 


소설을 쓰기 전에는 프랑스에서 광고학을 전공하고 귀국해 광고회사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엔 소설가가 되었다. 어떻게 작가가 될 결심을 하였나?


아주 오래전에, 지금은 폐간되고 없지만, 한 여성 월간지에서 주최하는 여성백일장에 수필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학의 길에 올라 문학과는 상관없는 공부를 했고, 돌아와서는 광고 일을 했다. 그러다가 영화감독 겸 연극연출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쪽 일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그리하여 시나리오 습작에 많은 정열을 쏟았다.


작품성은 좋은데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고 최종심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고배도 몇 차례 마셨다. KBS의 <드라마시티> 극본공모에서도 2차 예선까지 올라갔지만 바라던 결과는 없었다. 글을 쓰는 내내 마음고생도 어지간히 많았다. 중간에 업을 바꾸어 잠시 미술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의 미술지도도 했었다(프랑스에서 광고를 공부하면서 사진 1년, 아틀리에 작업을 3년 했고 그래픽디자이너 자격도 있다).


다른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미련이 강해졌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장래가 암담할 것 같았다.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재충전하던 중에 여동생의 제안으로 일본, 미야케지마에 가게 되었다. 내 소설의 소재가 되어준 그 황폐한 마을을 발견한 순간 시나리오에서 소설로 장르를 바꾸어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곳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대다수의 작가가 그러하듯 나 역시 책 읽기를 취미로 삼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작법에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시나리오작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냥 지문을 계속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엉성했던 초고를 세 번 고쳐가며 완성했고, 마침내 그 결과는 나를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처음으로 써보는 소설을, 그것도 5년 동안 붙들고 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검은 모래』를 쓰면서 이 이야기만큼은 내가 꼭 써야 한다는 절박함이나 작가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2년 전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은 뭐하면서 지내냐고 묻기에 글을 쓰고 있다고 대답을 했더니, 그 친구 왈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니 너 보기보다 집념이 강하네”. 그렇구나,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구나. 집념이라……


처음으로 써보는 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을 붙들고 있는 마당에 집념이 없다면 무엇이 나를 지탱해줄 수 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하고 싶은 글쓰기를 못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 의욕이 생기지 않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 깊어만 갔다. 작가가 아닌 다른 누군가는 되고 싶지 않았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글에만 집중했다. 글은 아무나 쓰나, 시집은 안 가고 나이 먹도록 무얼 하느냐, 그런 핀잔과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든든한 아군이 있었다.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 가족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이 이야기만큼은 내가 꼭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절박함이라기보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세상 밖으로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소재가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왜 글을 써야만 하는가. 나에게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있는가. 물론 있다. 일종의 소명의식 같은 거라고 할까.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세상의 음지에 묻혀 잊혀져가는 것 등등. 그런 것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글을 통해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검은 모래』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줄거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역사, 혹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들이 아주 많다는 것에 놀랐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가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경험이었고, 독자들이 이 소설을 통해 나와 같은 경험을 했으면 싶다.


사람은 얼마만큼 객관적일 수 있을까. 완전할 수는 없지만, 모름지기 작가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나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도에서 일본의 섬 미야케지마로 떠난 제주 잠녀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5년 동안 실제로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알고 싶다.


미야케지마에는 제주 잠녀 출신의 할머니가 현존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아주 꺼려하셨고, 만남 자체를 거부하셨다. 미야케지마에 사는 주민들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일들에 관심이 없었다. 거기에 한국인 촌락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극히 일부의 노인만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억할 뿐이었다.


제주 잠녀들의 출가물질에 대한 논문들을 검색했고, 특히 일본으로 출가물질을 나간 해녀들에 대한 자료를 여러 방면으로 찾아 다녔다. 5년 동안 실로 다방면의 서적을 구해다 읽었다. 역사신문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기도 했고, 생전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았던 식물도감과 약용대사전을 구해서 보기도 했다. 잠수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역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제주에 가서 이른 아침부터 해녀들의 이동경로를 따라가며 물질하는 것을 보았고, 당연히 해녀박물관에도 가서 자료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영상물이나 해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책까지 구해다 읽었다. 또한 인터넷의 장점을 마음껏 이용했다. 일본어를 독학하면서 야후 저팬,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의 사이트를 검색했다. 


요코하마, 와다우라 그리고 나가사키 원폭의 현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작 관계자를 만나 도움을 얻을 기회는 없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새삼스럽게 내가 그동안 공을 제법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도에서 미야케지마로 건너가게 된 구월과 해금, 한국인과 일본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들 건일, 손녀 미유 모두 현실에 분명히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구체적인 모델이 있는가? 


전혀! 소설 속 인물들을 접목시킬 만한 모델은 없었다. 인물들의 이름을 짓고 캐릭터를 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들에게서 생동감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러나 글을 써가는 동안 나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이끄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럴 때는 몰입이 되었고 글이 술술 풀렸다. 황홀했던 순간들이었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말마따나 서사가 크고 강한 느낌이다. 특별히 영향 받았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옛날에 읽었던 펄 벅의 『대지』가 좋았고, 최명희의 『혼불』을 감명 깊게 읽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장편을 좋아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헤밍웨이. 그는 크고 강한 서사와 인간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준비 중인 다음 소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간단하게 말하면,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팔자 도망은 못한다, 라는 말이 있더라. 독 속에 숨어도 팔자 도망은 할 수 없다니 참으로 무서운 소리이다. 시대가 바뀌고 도덕도 바뀐 마당에 운명을 운운한다면 좀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신분제도가 있었던 옛날이라면, 그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그런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무당이나 백정 갖바치 등, 천민의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업과 삶이 고스란히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제아무리 싫어도 팽개칠 수 없는 것,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나의 경우는 어떤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운명을 믿는다거나 반대로 믿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가 없다. 정답이 없다. 다음 소설의 주인공은 운명으로부터 끊임없이 달아나는 사람이다. 달아나는 것도 그의 운명인지 모른다. 어찌 보면 운명과의 숨바꼭질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운명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사와 인물들을 잘 조합해서 그려내고 싶다.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아직 미지수다. 숱하게 궤도수정을 하면서 글을 쓰겠지만,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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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