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향 소설가, 행복한 사람이 소설 속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세계일보에서 주관하는 세계문학상은 『미실』의 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의 박현욱, 『내 심장을 쏴라』의 정유정 등 화제작과 화제작가를 낳았다. 이전 수상작 중 많은 작가가 비교적 신인이었던 시절에 탔다는 점에서 2013년 대상 작가가 박향이라는 사실은 의외였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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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박향은 1994년에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20여 년 가까이 문단 활동을 이어온 기성 작가다. 2010년 쓴 장편 『얼음꽃을 삼킨 아이』를 비롯하여 2012년 소설집 『즐거운 게임』을 발간하는 등 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그런 그녀가 세계문학상에 도전한 이유는, 지방 작가이기에 느꼈던 한계 때문이다. 서울과 비서울 간 격차가 큰 한국에서 부산을 기점으로 문단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무엇보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컸다.

 

2013년 제9회 수상작인 『에메랄드 궁』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녀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전작인 『얼음꽃을 삼킨 아이』를 지배했던 어두운 분위기는 다소 옅어졌으나 상처 많은 인물이 이야기를 가득 채운다. 장사가 잘 안 되는 한 모텔을 배경으로 루저라 불릴 만한 사람이 등장한다. 빚을 내 모텔을 샀지만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텔 주인, 집안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 때문에 신생아와 함께 모텔을 떠돌아야 하는 젊은 부부, 자녀가 반대하여 모텔에서 만나야 하는 노년 연인, 모텔 청소로 하루를 버티는 중년의 여성, 모텔에서 몸을 판 돈을 모아 자식을 찾겠다고 모텔 주위를 배회하는 이상한 여인...... 이들 모두가 상처받은 인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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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궁』이 책으로 나온 뒤 반년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지냈나요?


조금 바쁘게 지냈습니다. 문화잡지의 인터뷰 요청이나 짧은 소설 청탁도 받았고, 토론회나 작가와의 만남도 몇 번 했고요. 얼마 전에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부산에 있는 영광도서라는 서점에서 일반 독자와 독서토론회도 했습니다. 라디오 출연을 위해 서울에 간 적도 있었네요. 처음엔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서 바쁘고 얼떨떨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지방신문으로 등단해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여 각종 문학상에 도전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잖아요. 세계문학상을 받은 뒤,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부산에는 훌륭하신 선배 소설가, 동료들이 많습니다. 부산소설가협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지요. 산행이나 바둑 대회 등을 하며 친근한 가족으로, 때론 회원의 작품을 읽고 날카롭게 토론하고 비판하는 경쟁자이자 조언자로 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모두들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축하받느라고 정말 ‘한턱’을 많이 냈습니다. 제가 상을 받은 것이 오늘도 열심히 쓰고 있을 등이 시린 지역의 작가들에게 작은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얼음꽃을 삼킨 아이』가 아픔 가득한 성장소설이고, 에메랄드 궁』에도 애절한 사연을 묘사하셨는데요. 두 작품 모두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얼음꽃을 삼킨 아이』는 표지부터 차가워요. 문학관이 궁금합니다.


제 소설 속의 인물들은 대체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소설 속에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하는 것이 문학에 대한 평소 생각입니다. 현대 사회의 질병, 또는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해체되어 너덜거리는 가족관계 속에서 홀로 상실과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주로 제 소설의 인물이죠. 특히 『얼음꽃을 삼킨 아이』는 1970년대의 가족, 개인, 사회, 국가가 저지르는 폭력에 관해 말하고자 한 소설입니다. 개인과 가족, 국가 차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력과 상처가 모두 수희를 향해 덤벼드는데, 수희는 적극적으로 여기에 맞섭니다. 잘못된 현실과 역사에 대항하는 연약한 개인의 몸부림이죠. 그러니 표지의 여린 아이가 차갑게 보일 수밖에 없겠네요.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나요.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유명한 작가나 철학자가 아닌 바로 아버지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께서 무언가를 쓰거나 읽으면서 밤을 보내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냉면 대접 만한 아버지의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곤 했죠. 아버지가 무엇을 쓰시는지 항상 궁금했지만 그것을 들춰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글을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운명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엄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항상 책을 전집으로 구입했습니다. 엄마는 집도 좁은데 책이 무슨 소용이냐고 잔소리를 하며 앞서 사들인 책들을 다락방으로 옮겨 놓곤 했어요. 사방이 못 쓰는 물건들과 책으로 둘러싸인 다락방에 엉덩이를 붙일 만한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책들 속에 빠져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그 읽기의 시간들이 나를 쓰기로 이끌었고, 아마 초등학교 시절부터 뭔가를 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부터 소설가적 기질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언제나 저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습니다. 저는 공책 뒷장을 찢어 그림을 그려가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을 좋아했어요. 이야기는 저의 창작품이었는데, 그 가운데는 다락방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아버지가 사놓으신 세계명작 동화들에서 떼어내 표절한 다음 내 상상력과 섞어서 만들어낸 이야기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소설을 처음 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때 나는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친구와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쉬는 시간만 되면 팔짱을 끼고 교정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죠. 그 친구에게는 불치병을 앓는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친구는 학교에만 오면 전날 밤 동생의 가슴 아픈 투병담을 나에게 자세히 알려주며 눈물짓곤 했습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와 함께 울곤 했는데, 제 눈물 속에는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야 말겠다는 열망에 들떠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일주일이 지난 후 제 글쓰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원고지 60매의 소설이 완성되었고, 저는 그 당시 유명한 학생 잡지에 소설을 투고했습니다. 당선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친구의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죠. 


동생의 죽음으로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저는 현실의 죽음 앞에서 고통을 한낱 글로 표현한 제 행위에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친구 동생의 죽음이 마치 제 탓인 것만 같아 그 며칠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죠. 그리고 소설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낙선 소식을 듣고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떨어져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 친구를 볼 낯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 후로도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소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의 죽음이 제 머리와 가슴에 알 수 없는 무늬를 새겼다는 것을 느꼈죠.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준 것이었습니다. 글쓰기의 작은 씨앗 같은 것을요. 결국 문학이란 상처와 결핍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저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문학하는 데 어려움도 있기는 하지만, 이로울 때도 있을 듯합니다. 더구나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부산인지라, 글감을 구하기에 괜찮은 공간일 것 같아요. 실제로 어떤가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정작 영화제 때에는 영화를 잘 보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멀기도 하거니와 복잡하고 어수선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요. 영화는 조용할 때 가서 보는 편이에요. 영화와의 관련성보다 부산은 충분히 다양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글의 소재를 찾기가 어렵지는 않겠죠. 『얼음꽃을 삼킨 아이』에도 남부민동이라는 부산의 지역이 나오는데,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많이 와서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 부모의 고향이 북한인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런 지역의 특수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죠. 부산이 산과 강,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 영화 촬영지로는 둘도 없는 곳이겠으나 전반적인 문화의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게 현실입니다. 특히 문학이나 출판 쪽의 지원은 문화 전반의 10%는커녕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이니까요.


창작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떤 방식으로 푸나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취미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고요, 스트레스가 쌓일 때에는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냅니다. 여행을 향한 로망이 있긴 하지만 직장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들어 정작 방학 때가 되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하지요. 마음 편하게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품고 삽니다.  


소설과는 다소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오랫동안 교육 일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아요. 처음 교단에 섰을 때보다 한국 교육이 나아진 점, 퇴보하고 있는 점이 있을까요?


1980년대 중반 경남 밀양에서 교직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도시의 초등학생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순박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행운을 경험했죠. 1990년에 부산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근무를 하면서도 그 시절은 늘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상 유지는 뒤처짐의 다른 말이라는 관념이 주입된 어린이들을 보면서 현 시대의 아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그림자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독서를 권유하기가 미안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우리 때, 혹은 1980년대보다 문학소녀, 문학청년의 수가 급감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독서가 일반화될 때 좋은 작가도 탄생하고 문학 선진국으로 발돋움도 할 수 있을 텐데 암기와 문제 풀이 요령에만 집중해야 하는 현 교육 현실을 보면 별로 나아진 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학급당 학생 수가 반으로 줄고 학생에 대한 선생님들의 관심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면에서는 발전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교사의 업무는 수배로 늘어났고, 수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업무 해결에 신경을 써야 할 때도 많습니다. 누구나 인문고를 가고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성화로 인해 교육이 획일화되고, 내 아이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팽배하여 오히려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선생님이 쓴 소설을 읽고 와서 질문한다거나, 사인해 달라는 요구는 없었나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아이들이 찾아와 도화지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책을 읽지는 못해서 책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경우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아이는 있습니다. 사실 그럴 때는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이제는 성인이 된 옛 제자들이 새 책의 출간이나 수상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는 끼리끼리 모여 초대를 하곤 합니다. 제게는 더없이 고마운 독자들이지요.


소설가로서 박향, 교사로서 박향,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교사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사실 가벼운 욕설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에메랄드 궁』을 보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상스러운 욕을 책에다가 했느냐고요. 그 욕이 그 부분에서 필요해서 했을 뿐인데, 엄마로서는 딸이 욕설을 책에다 썼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없으셨던 거겠죠. 그 말을 듣는데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라고요. 욕설을 쓰면서 이 장면에서 어떤 욕설이 어울릴까 이것저것 찾아보며 고민한 사람은 소설가 박향일 테고, 엄마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른 사람은 교사 박향이겠지요.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다음 작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연애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덜 말랑말랑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육포 냄새」라는 단편소설로 제가 현진건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올해는 아마 저에게 행운이 몰린 모양이라고 주변에서 부러워하네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써왔던 소설들이 민중의 궁핍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한 현진건 선생님의 소설들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제 작품들 역시 현대인들의 상실과 외로움, 절박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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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3.11.07

행복한 사람이 소설 속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이 말 명언인데요? 작가님 이야기 스타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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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