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피해자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2013년 다시 한 번 공소시효의 타당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공범>은 어떤 부분에서 <그놈 목소리>의 피를 수혈 받은 영화이다. 연출을 맡은 국동석 감독은 당시 <그놈 목소리>의 조감독이었고, 박진표 감독은 현재 <공범>에서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 <공범>은 <그놈 목소리>에서 충분히 펼치지 못했던 영화적 재미와 허구를 통해 더 강력해질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해졌지만, 실화가 아니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영화는 훨씬 더 극적이고 장르적인 장치를 많이 담아낸다.
2013.11.05
작게
크게
공유
왜에서 도돌이표를 찍은 아쉬움, <공범>
<그놈 목소리>
1991년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아동 유괴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그놈 목소리>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더 이상 범인이 범인이지 않은 법체계의 모순에 대한 박진표 감독의 분노에서 시작된 영화이다. 실제로 개봉 당시 잔인한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타당한가에 대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었다.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인만큼 감독의 태도는 무척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장르적 재미를 위한 장치나 과장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공개적인 현상 수배극을 표방한다. 현실과 영화적 재미 혹은 윤리와 상업적 이해관계 속에서 조금 흐릿해진 부분도 있지만, 고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2013년 다시 한 번 공소시효의 타당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공범>은 어떤 부분에서 <그놈 목소리>의 피를 수혈 받은 영화이다. 연출을 맡은 국동석 감독은 당시 <그놈 목소리>의 조감독이었고, 박진표 감독은 현재 <공범>에서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 <공범>은 <그놈 목소리>에서 충분히 펼치지 못했던 영화적 재미와 허구를 통해 더 강력해질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해졌지만, 실화가 아니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영화는 훨씬 더 극적이고 장르적인 장치를 많이 담아낸다. 15년 전 벌어진 유괴살인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현재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기자를 꿈꾸는 대학졸업반 다은(손예진)은 15년 전 사건을 영화화한 <악마의 속삭임>에 삽입된 실제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다. 자신의 아버지 순만(김갑수)의 목소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택배에 발레 파킹까지 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살인자의 모습을 발견하긴 어렵지만, 다은은 쉽게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여기에 정체불명의 남자(임형준)가 등장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다은은 정의를 위해 아버지를 우선 경찰에 신고해야할지,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묻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공범>은 극악한 범죄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평범한 가족 구성원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영화이다.
결정적인 단서를 중심에 두고, 굴곡과 반전을 거치면서 당연하게도 범인일 수도 있는 아버지와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 사이의 감정이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기심을 쥐락펴락하는 영화의 중심에 선다. 최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는 손예진이나 관록 있는 김갑수의 연기는 충분히 노련하지만, 영화의 얼개가 납득할 만큼 긴장감을 주거나 촘촘한 편은 아니다. 범인을 쫓는 추리극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딸의 멜로적 감수성에 더 많은 의미를 둔 <공범>은 꽤 일찍 스릴러로서의 여러 가지 장치를 풀어버리고, 끝을 향해 내 달린다. 깜짝 놀랄 반전을 숨겨놓은 것도 아니라서 이제 남은 것은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추리보다는, 왜 나의 가족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이 궁금한 지점에 선다는 말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려고 했음이 분명한 결말을 통해 제시한 메시지는 생각만큼 강렬하지 않다. 또한 다정한 부녀 사이를 헤집어 놓는 건 ‘의심’이라고 단정 짓지만, ‘확신’이 든 이후 딸의 행동과 그 결말이 석연치 않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딸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기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공소시효라는 부당해 보이는 법 체제를 의심하고 바꾸는데 영화가, 또 그 영화의 메시지가 기여하리라는 박진표 감독과 그 피를 물려받은 국동석 감독의 뚝심은 충분히 그 의미가 있다. 단, 장르가 주는 명백한 장점과 또 너무나 뚜렷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장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도 앞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은 남는다.
법의 한계를 법으로 심판하다
<내가 살인범이다>, <몽타주> 그리고 <콜드 케이스>
<내가 살인범이다>
2012년 정병길 감독의 <내가 살인범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과 풍자 가득한 영화이다.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고 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힌 이두석(박시후)는 그 동안의 범행 행적을 기록한 자서전을 출간한다. 잘생긴 외모에 언변까지 갖춘 그는 팬덤까지 형성하는 스타가 된다. 연쇄 살인범이 법의 효력이 끝나자 엄청난 돈을 벌고 경호원까지 두고 생활하며 스타가 된다는 비윤리적인 설정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언론과 십대 문화, 여성, 계급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억지스럽지 않게 영화 속에 풍성하게 담겨 있다. 영화는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사회 시스템에 가려진 은폐된 진실을 뚝심 있게 끝까지 파헤친다. 복수의 서사 속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들이면서 영화는 공분의 정서 속에 산만하게 뻗어있던 서사의 가지들을 모두 끌어안는다. 풍성한 볼거리와 영화의 결을 흩트리는 법 없는 다양한 주조연의 연기는 영화적 재미와 함께 영화의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몽타주>
2013년 정근섭 감독의 데뷔작 <몽타주> 역시 공소시효를 앞둔 엄마의 처절한 추리 복수극으로 장르 영화의 쾌감과 메시지를 모두 전달하는데 성공한 영화로 기억된다. 담당형사인 청호(김상경)가 끝없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지만, 유괴범에게 딸을 잃은 하경(엄정화)는 범인을 잡기 위해 15년간 (거의) 홀로 고군분투해 왔다. 공소시효가 며칠 남지 않은 그들 앞에 범인의 흔적이 다시 나타나고, 청호와 하경은 범인을 잡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사투를 벌인다. 시간의 앞뒤를 뒤틀어 버린 스릴러 장르의 쾌감과 반전을 모두 담아낸 <몽타주>는 무엇보다 탄탄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똑같은 범죄가 되풀이되는 시점에서 공소시효는 과연 타당한가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적 트릭 속에도 매끈하게 녹아들어있다.
2012년 기준 한국 사회에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 448명에게 구형된 평균 형량이 3.84년이라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사회를 불신하고 절망하게 만든다. 미성년자 대상 강간죄의 최저 형량을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 조차 계류 중이라고 하니 한국의 허술하고 비상식적인 법 체제를 비난하는 영화들은 끊임없이 공분에 찬 소재를 수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영화 <도가니> 이후 상정된 일명 ‘도가니법’을 통해 13세 미만의 여아와 여성 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는 폐지되었다. 그러니 이런 목소리들이 언젠가는 사회의 무감각한 윤리의식에 경종을 울리며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공범>같은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줘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콜드 케이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미국 CBS의 인기 시리즈 <콜드 케이스>는 오래된 미제 사건을 과학적인 수사방법으로 끝까지 추적해 범인을 잡아내는 탄탄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억울하게 죽은 시신의 이야기를 듣고, 멀쩡히 살아있는 현재의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오랜 미제 사건조차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 전문가의 노력 때문이지만, 그에 앞서 ‘공소시효’라는 가해자 중심적인 제도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의 심정으로 법이 지켜야할 대상에 극악무도한 범죄자까지 포함시켜야 하는지, 그것이 정말 공평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과 그 가족의 고통이 끝날 ‘시효’라는 것이 과연 있겠는가?
[관련 기사]
-김갑수 “<공범> 손예진 연기, 자꾸 구경하게 되더라”
-손예진 “영화 <공범>, 만약 당신의 아빠가 범죄자라면?”
-표창원, 목소리만으로 범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두 명의 천재소년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 - 뮤지컬 <쓰릴 미>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살인도 없었을 텐데 - 『죽은 자들의 방』
<그놈 목소리>
1991년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아동 유괴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그놈 목소리>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더 이상 범인이 범인이지 않은 법체계의 모순에 대한 박진표 감독의 분노에서 시작된 영화이다. 실제로 개봉 당시 잔인한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타당한가에 대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었다.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인만큼 감독의 태도는 무척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장르적 재미를 위한 장치나 과장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공개적인 현상 수배극을 표방한다. 현실과 영화적 재미 혹은 윤리와 상업적 이해관계 속에서 조금 흐릿해진 부분도 있지만, 고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2013년 다시 한 번 공소시효의 타당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공범>은 어떤 부분에서 <그놈 목소리>의 피를 수혈 받은 영화이다. 연출을 맡은 국동석 감독은 당시 <그놈 목소리>의 조감독이었고, 박진표 감독은 현재 <공범>에서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 <공범>은 <그놈 목소리>에서 충분히 펼치지 못했던 영화적 재미와 허구를 통해 더 강력해질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해졌지만, 실화가 아니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영화는 훨씬 더 극적이고 장르적인 장치를 많이 담아낸다. 15년 전 벌어진 유괴살인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현재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기자를 꿈꾸는 대학졸업반 다은(손예진)은 15년 전 사건을 영화화한 <악마의 속삭임>에 삽입된 실제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다. 자신의 아버지 순만(김갑수)의 목소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택배에 발레 파킹까지 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살인자의 모습을 발견하긴 어렵지만, 다은은 쉽게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여기에 정체불명의 남자(임형준)가 등장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다은은 정의를 위해 아버지를 우선 경찰에 신고해야할지,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묻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공범>은 극악한 범죄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평범한 가족 구성원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영화이다.
결정적인 단서를 중심에 두고, 굴곡과 반전을 거치면서 당연하게도 범인일 수도 있는 아버지와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 사이의 감정이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기심을 쥐락펴락하는 영화의 중심에 선다. 최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는 손예진이나 관록 있는 김갑수의 연기는 충분히 노련하지만, 영화의 얼개가 납득할 만큼 긴장감을 주거나 촘촘한 편은 아니다. 범인을 쫓는 추리극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딸의 멜로적 감수성에 더 많은 의미를 둔 <공범>은 꽤 일찍 스릴러로서의 여러 가지 장치를 풀어버리고, 끝을 향해 내 달린다. 깜짝 놀랄 반전을 숨겨놓은 것도 아니라서 이제 남은 것은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추리보다는, 왜 나의 가족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이 궁금한 지점에 선다는 말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려고 했음이 분명한 결말을 통해 제시한 메시지는 생각만큼 강렬하지 않다. 또한 다정한 부녀 사이를 헤집어 놓는 건 ‘의심’이라고 단정 짓지만, ‘확신’이 든 이후 딸의 행동과 그 결말이 석연치 않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딸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기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공소시효라는 부당해 보이는 법 체제를 의심하고 바꾸는데 영화가, 또 그 영화의 메시지가 기여하리라는 박진표 감독과 그 피를 물려받은 국동석 감독의 뚝심은 충분히 그 의미가 있다. 단, 장르가 주는 명백한 장점과 또 너무나 뚜렷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장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도 앞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은 남는다.
법의 한계를 법으로 심판하다
<내가 살인범이다>, <몽타주> 그리고 <콜드 케이스>
<내가 살인범이다>
2012년 정병길 감독의 <내가 살인범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과 풍자 가득한 영화이다.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고 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힌 이두석(박시후)는 그 동안의 범행 행적을 기록한 자서전을 출간한다. 잘생긴 외모에 언변까지 갖춘 그는 팬덤까지 형성하는 스타가 된다. 연쇄 살인범이 법의 효력이 끝나자 엄청난 돈을 벌고 경호원까지 두고 생활하며 스타가 된다는 비윤리적인 설정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언론과 십대 문화, 여성, 계급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억지스럽지 않게 영화 속에 풍성하게 담겨 있다. 영화는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사회 시스템에 가려진 은폐된 진실을 뚝심 있게 끝까지 파헤친다. 복수의 서사 속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들이면서 영화는 공분의 정서 속에 산만하게 뻗어있던 서사의 가지들을 모두 끌어안는다. 풍성한 볼거리와 영화의 결을 흩트리는 법 없는 다양한 주조연의 연기는 영화적 재미와 함께 영화의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몽타주>
2013년 정근섭 감독의 데뷔작 <몽타주> 역시 공소시효를 앞둔 엄마의 처절한 추리 복수극으로 장르 영화의 쾌감과 메시지를 모두 전달하는데 성공한 영화로 기억된다. 담당형사인 청호(김상경)가 끝없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지만, 유괴범에게 딸을 잃은 하경(엄정화)는 범인을 잡기 위해 15년간 (거의) 홀로 고군분투해 왔다. 공소시효가 며칠 남지 않은 그들 앞에 범인의 흔적이 다시 나타나고, 청호와 하경은 범인을 잡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사투를 벌인다. 시간의 앞뒤를 뒤틀어 버린 스릴러 장르의 쾌감과 반전을 모두 담아낸 <몽타주>는 무엇보다 탄탄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똑같은 범죄가 되풀이되는 시점에서 공소시효는 과연 타당한가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적 트릭 속에도 매끈하게 녹아들어있다.
2012년 기준 한국 사회에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 448명에게 구형된 평균 형량이 3.84년이라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사회를 불신하고 절망하게 만든다. 미성년자 대상 강간죄의 최저 형량을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 조차 계류 중이라고 하니 한국의 허술하고 비상식적인 법 체제를 비난하는 영화들은 끊임없이 공분에 찬 소재를 수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영화 <도가니> 이후 상정된 일명 ‘도가니법’을 통해 13세 미만의 여아와 여성 장애인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는 폐지되었다. 그러니 이런 목소리들이 언젠가는 사회의 무감각한 윤리의식에 경종을 울리며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공범>같은 영화들이 계속 제작되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줘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콜드 케이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미국 CBS의 인기 시리즈 <콜드 케이스>는 오래된 미제 사건을 과학적인 수사방법으로 끝까지 추적해 범인을 잡아내는 탄탄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억울하게 죽은 시신의 이야기를 듣고, 멀쩡히 살아있는 현재의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오랜 미제 사건조차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 전문가의 노력 때문이지만, 그에 앞서 ‘공소시효’라는 가해자 중심적인 제도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의 심정으로 법이 지켜야할 대상에 극악무도한 범죄자까지 포함시켜야 하는지, 그것이 정말 공평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과 그 가족의 고통이 끝날 ‘시효’라는 것이 과연 있겠는가?
[관련 기사]
-김갑수 “<공범> 손예진 연기, 자꾸 구경하게 되더라”
-손예진 “영화 <공범>, 만약 당신의 아빠가 범죄자라면?”
-표창원, 목소리만으로 범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두 명의 천재소년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 - 뮤지컬 <쓰릴 미>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살인도 없었을 텐데 - 『죽은 자들의 방』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0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