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묻어둔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을 건 남자, 그리고… 『64』
『64』 는 경찰조직 내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러나 가슴 아프게 풀어낸다. 과연 청장 시철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형사부가 감춘 고다 메모의 실체는 무엇일까? 경무부와 형사부의 대립이 극한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64』 는 거대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유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글ㆍ사진 김봉석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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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신문 기자 출신인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과 언론사에 소속된 ‘조직의 인간’을 기막히게 그려낸다. 시민을 보호하고 범죄자를 사냥해야 하는 경찰이라는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정의감과 헌신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찰조직 안에도 지저분한 이전투구와 정치싸움이 있고, 노골적인 시기와 질투도 있다. 『클라이머즈 하이』 에서는 특종을 둘러싼 기자들의 모습을 통해 ‘보도’의 맨얼굴을 치밀하게 파고 들어간다. 냉정한 시선이지만 요코야마 히데오는 너그럽다. 어떤 종류의 인간을 그릴 때에도 연민이 들어가 있다. 조직에서 망가지는 사람도 있고, 철면피가 되어 모든 이들을 물어뜯으며 살아가는 인간도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 모두를 요코야마는 ‘조직’이라는 틀을 통해서 바라본다.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를, 왜 그렇게 망가져 가야 하는지를.

『64』 는 한때 투병 중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요코야마 히데오가 10여년 만에 발표한 2,400매에 달하는 대작이다. 일선 형사로 뼈가 굵은 미카미는 지금 D 현경의 홍보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결코 원치 않은, 아니 형사라면 누구나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경찰조직의 노른자위는 경무부에서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인사권도 가지고 있고, 상층과 가까워지는 출세 길도 열려 있다. 경무부에서 승진하다 보면 반드시 형사부장도 언젠가는 맡게 된다. 하지만 경찰 조직에서 중심은 형사다. 오로지 범인을 잡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형사들. 그들만의 룰이 있고, 그들만의 프라이드가 있다. 어디까지나 경찰은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조직이다.

지금 미카미는 구석에 몰려 있다. 딸인 아유미가 가출하여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딸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처음 홍보담당관이 되었을 때는 형사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소신대로 일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유미의 실종을 알리고 상사의 도움을 받았을 때부터 미카미는 자신이 ‘경무부의 개’가 되었음을 알았다.

복종을 거부해온 지방 총경이 함락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금테 안경 너머의 눈이 미카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전율이 일었다. 약점을 잡혔음을 깨달았다.

상부에서는 곧 경찰청장의 현지시찰이 있으니 기자단과의 회견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회견 장소는 경찰 내부에서 ‘64’라고 부르는 미해결 유괴사건의 현장이다. 쇼와 64년(1989년)에 아마미야 쇼코라는 소녀가 유괴 살해되었고 대규모 수사를 벌였지만, 유괴범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D현경만이 아니라 전체 경찰에게도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시효만료를 1년 앞둔 지금 경찰청장이 찾아와 쇼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카미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경무부는 물론 형사부까지 쫓아다니며 고군분투한다. 겨우 알아낸 것은 당시 아마미야의 집에서 범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고다 형사의 메모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경무부의 핵심인 후타와타리가 쑤시고 다니는 중이고, 형사부에서는 ‘고다 메모’를 숨기려 안간힘을 쓴다는 것.


『64』 는 경찰 내부의 숨 막히는 권력투쟁을 그려낸다. 현장의 형사부와 관리를 하는 경무부의 헤게모니 싸움. 미카미는 그 중간에 서서, 서로에게 박쥐라고 비난받으면서 좌충우돌한다. 게다가 딸의 실종이라는, 개인적인 치명상도 이미 입은 상태다. 경찰청장의 회견 장소 허락을 받기 위해 쇼코의 아버지 아마미야를 몇 번이나 찾아간 미카미는 천신만고 끝에 승낙을 받는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미야가 빼앗긴 것은 감각이나 관념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랑스러운 딸을 잃었다. 미카미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지금 딸이 사라진 자신의 처지도 그랬기 때문이다. 미카미는 아마미야를 이해했고, 아마미야도 알고 있었다.

미카미에게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상부에서 교통사고 가해자를 익명으로 발표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기자단은 당연히 반발한다. 상부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고, 기자단을 적으로 돌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미카미는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64’를 둘러싸고 경무부와 형사부가 극한적인 대립을 보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자들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미카미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고립무원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전작들처럼 『64』 는 경찰조직 내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러나 가슴 아프게 풀어낸다. 과연 청장 시철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형사부가 감춘 고다 메모의 실체는 무엇일까? 경무부와 형사부의 대립이 극한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64』 는 거대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유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64』 를 한참 읽으면서, 과거의 사건을 중심에 두고 현재에 벌어지는 경찰 내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조직의 인간’을 박진감 넘치게 그들의 바닥까지 파헤쳐내는 소설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의 ‘64’를 모방한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유괴 사건이 등장하면서 『64』 는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64』 가 단지 인간 드라마일 뿐 아니라 치밀하고 섬세한 범죄 미스터리임을 분명하게 규정한다. 게다가 새로운 유괴사건은 그저 주어진 상황을 바꾸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까지 서술된 경찰 내부의 모든 권력투쟁의 핵심요소들이 유괴 사건을 둘러싸고 있으며, 미래의 모든 것을 바꾸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유괴 사건의 본질과 목적, 경찰 내부의 대응과 갈등 그리고 미카미의 선택까지 모든 것이 얽혀들면서 『64』 는 상상하지 못했던 결말을 드러낸다.

『64』 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최고작이라고 부를만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려냈던 ‘조직의 인간’이 탁월한 수준으로 묘사되어 있고, 미카미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탁월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미스터리로서,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지점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간다. 치밀한 복선과 관계들이 마지막에 드러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게 된다. 드디어 끝났구나, 그 모든 것들이 이 순간을 위해 불타올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코야마는 너그럽다. 하지만 낙관적이거나 모든 것을 신파로 처리하지 않는 엄정한 눈이 있다. 『64』 는 모든 이들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그들 하나하나를 지켜보면서도 ‘현실’을 직시한다. 요코야마의 소설들이 늘 그렇듯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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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육사 요코야마 히데오 저/최고은 역 | 검은숲
14년 전 미제로 끝난 소녀 유괴살해사건, 일명 ‘64’. 새로 취임한 경찰청장이 시효 만료 1년을 앞둔 지금 사건을 마무리하겠다고 나서지만 유족은 청장의 방문을 거절한다. 경찰 홍보실의 미카미는 유족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64’의 담당 형사들을 찾아가고, 사건 후 퇴직하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된 동료를 보면서 미카미는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던 중 ‘64’를 모방한 유괴사건이 일어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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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요코야마 히데오 #유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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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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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국제상과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뒤 조모신문(上毛新聞)에 입사하여 12년간 기자로 활동하였는데 그의 소설 속에서 인장처럼 드러나는, 진실을 향해 파고드는 구성력과 치밀한 정보 수집 능력 등은 신문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제대로 발휘되는 지점이다. 1991년 『루팡의 소식ルパンの消息』으로 제9회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가작을 수상하면서 신문사에서 퇴사하고 작가 생활을 시작하지만 7년간 무명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1998년 『어둠의 계절陰の季節』로 마쓰모토 세이초 상을 수상하고, 2000년 『동기動機』로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을 수상하면서 휴머니즘이 담긴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2003년 『사라진 이틀半落ち』로 128회 나오키 상 후보에 올랐지만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라는 비난을 받고 낙선하자, ‘나오키 상과 결별 선언’을 하여 일본 문단의 화제를 일으킨 인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걸작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1위에 올랐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작가와 평론가의 대립구도에서 대중들은 작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이어 발표한 『클라이머즈 하이クライマ-ズハイ』도 ‘걸작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제1회 서점대상 2위를 차지하며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요코야마 히데오는 “독자의 마음속이 묵직해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자신의 초심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서랍 안에서 15년간 잠들고 있던 자신의 처녀작 『루팡의 소식』를 전면 수정하는 작업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지은 책으로는 『자백』, 『집념』, 『얼굴 Face』, 『교도관의 눈』, 『그림자 밟기』, 『제3의 시간』, 『크라이막스 - 하이』, 『출구없는 바다』, 『진도 0』 등의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