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개츠비가 작가였다면, 트루먼 커포티가 아니었을까?
지난 7월 16일, 트루먼 커포티 선집의 출간을 기념하는 ‘블랙앤화이트 토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트루먼 커포티가 자신의 역작 <인 콜드 블러드>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개최한 ‘블랙앤화이트 가면무도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진행되었다. 이날 ‘블랙앤화이트 토크’에서는 이 사건을 재현하는 동시에 트루먼 커포티의 소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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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커포티 선집이 출간되고 난 뒤, 가장 먼저 화제가 된 건 눈에 띄게 예쁜 표지디자인이었다. 작가 사진을 전면에 넣은 책 표지는 다른 판본을 가진 독자들까지 욕심을 낼 만큼 패셔너블했다. 번역을 맡은 박현주 씨는 커포티가 주목 받는 걸 좋아하는 작가였고, 스스로를 꾸미는 걸 즐겼던 작가였다고 말하며 책의 외형으로 작가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고운 색감을 가진 책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사이, ‘블랙앤화이트 토크’가 시작되었다. 트루먼 커포티 전집을 번역한 번역가 박현주씨와 씨네21 이다혜의 대담이었다.
이다혜: 트루먼 커포티의 책을 여러 권을 번역했는데,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현주: 많은 분들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통해서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로 커포티를 접하셨을 거다. 미국에 살 때, 추수감사절 휴가에 우연히 커포티 단편집을 읽게 되었다.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었고 언제가 꼭 번역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커포티와 관련된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면서 커포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시기였다.
이다혜: 커포티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지만 작가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대체로 단편에서 보여주는 솜씨 때문이다. 초기에는 서머싯 몸 단편상을 받기도 했다. 단편은 문장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장편의 정서적 교두보가 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커포티는 헤밍웨이와 자주 비교되는데 아마 짧은 문장을 잘 쓰기 때문인 것 같다.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상대방의 삶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작가다. 번역하시면서 까다로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박현주: 사실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표현방식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커포티가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정도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점 말이다. 커포티 자신만의 것을 살리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선집을 만들다 보니 시기별로 다른 스타일이 등장한다. 커포티의 첫 번째 작품인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의 경우는 마술적이고 심리주의적인 부분이 있다.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 콜드 블러드』는 보도적 문체로 모든 기술들이 사건과 조사에 기초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작품을 어떻게 적절한 일관성 안에서 풀어 낼 지가 고민이었다.
이다혜: 커포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
박현주: 커포티는 작품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동시에 작가 자체가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미국문학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도시문학이라 할 만한 부분이 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작품들은 시골이 등장하긴 하지만 도시지향적인 면이 있다. 항상 주목 받기를 원하고 사교계의 정점까지 올랐다 뚝 떨어지는 부분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만으로도 굉장히 특별한 면이 있다. 작가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일종의 셀럽이다.
이다혜: 커포티에 대해 말하다 보면 가십을 이야기하는 기분이 된다. 작품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뒷이야기도 굉장히 많다. 이 자리를 준비하면서 위대한 개츠비가 떠올랐다. 만약 개츠비가 이성애자가 아니라 게이고, 알 수 없는 수상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작가였다면 커포티와 닮아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떠나고 싶었던 어린 시절, 남들에게 알리기 싫은 과거. 그것을 딛고 일어나 성공할 거라는 마음. 커포티를 이야기하면 이런 작가의 삶을 빠트릴 수 없다. 어린 시절 친구 중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가 있다. 『인 콜드 블러드』 집필 당시 둘은 자료조사를 함께 하는 등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퍼 리가 유명해지자 커포티는 그 작품에 자신이 많이 관여했다는 식의 헛소문을 퍼트린다.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지려는 욕심에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게 작가의 여러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박현주: 실제로 제이 개츠비, 홀리 골라이트, 트루먼 커포티는 닮았다. 어린 시절을 잊고 싶고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사교계에 들어가는 인물. 하지만 결국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지지 못하고 좌절하는 인물. 이들의 삶이 닮았다. 커포티에게는 항상 좌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양쪽 부모 모두에게 버림을 받고 사촌의 집에서 살게 되는데, 그 옆집에 살던 게 하퍼 리다. 하지만 소꿉친구였던 하퍼 리와도 사이가 나빠진 커포티는 결국 고독하게 죽게 된다. 작가의 이런 인간적 결함을 보며 독자들은 더욱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
이다혜: 커포티의 작품들은 도시적인 삶을 잘 구현하고 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장면, 티파니에서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가 밥을 먹는 장면은 특히 그렇다. 이는 커포티와 친구들의 농담이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 뉴욕에서는 어디서 밥 먹는 게 좋아? 하고 물으면 티파니가 좋아, 라고 대답하는 것. 놀리는 거다. 그런데 티파니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것은 잘나가는 도시의 삶을 보여준다. 브랜드로 상징되는 내가 갖지 못한 것,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박현주: 커포티는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적 욕망들을 저속하지 않게 보여주는 작가다. 뉴욕 티파니 쇼윈도 앞에는 처연한 감정이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과거가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을 때, 불안한 미래가 두려울 때. 이런 날이면 티파니에 간다. 저 너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티파니. 그걸 보고 있으면 안정이 되는 거다.
다른 목소리, 다른 방
이다혜: 이제부터 책을 한 권씩 이야기해보겠다. 커포티 작품에는 자기가 당연히 누렸어야 하는 유년시절의 즐거움에서 쫓겨난 사람만이 가진 초조함이 들어 있다. 문장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사실 마음을 울리는 부분은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문장이 아니라 이사람 정말 딱하구나, 사랑 받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구나, 하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커포티에게는 글쓰기가 그 몸부림 중 하나였다.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은 가장 처음에 쓴 작품이다.
박현주: 『다른 목소리, 다른 방』에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있다. 갈 곳 없는 소년이 갈 곳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내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트루먼 커포티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여기부터 드러난다. 작가의 성 정체성도 숨김없이 보여진다. 문체적 특징은 섬세하고 꿈이나 환상 등이 현실과 공존한다. 우울하게 가라앉는 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다혜: 그 우울함은 몰락하고 있는 남부정서 같다. 과거 큰 저택과 귀족 출신으로 대표되던 화려한 남부가 사라지고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곳.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이곳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간다.
박현주: 작업을 하면서 윌리엄 포크너를 자주 떠올렸다. 모두가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곳, 죽은 사람과 다름없는 시체들과 살고 있는 곳. 이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작품 전체에 짙게 깔려 있다.
풀잎 하프
이다혜: 다음 책은 『풀잎 하프』다. 이 책 역시 자전적 성격이 짙다. 커포티의 삶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술을 마시는 극단적 삶인데 풀잎하프를 쓸 때는 몇 년 동안 조용하게 글만 쓰던 때다. 전작과 비슷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유려하고 시적이다.
박현주: 『풀잎 하프』는 평화롭고 소설적 구조도 더 뚜렷하다. 버림받았다는 외로움도 나오지만 그런 고독한 사람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사람들을 억압하는 공동체 윤리에 저항하는 면모가 드러난다. 부모에게 버려진 커포티는 자신을 키워준 사촌과의 추억을 아름답게 여겼지만 다시 그녀를 찾지는 않았다. 어린 소년의 시간과 할머니인 사촌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을 거다. 커포티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잊었다. 하지만 늘 거기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다혜: 사실 커포티에게 가장 필요했던 사랑을 준 것은 나이가 많던 사촌이었다. 사촌이 1940년 사망하고 1956년 『풀잎 하프』가 나온다. 커포티는 제대로 이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복구하기 힘들게 망가트리고 이미 사촌이 죽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변명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현주: 이 작품에서 사촌과의 관계가 유사가족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커포티가 믿고 싶었던 아름다운 유년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아름다운 내용, 유려한 문장 등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순진한 작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동이 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다혜: 주인공 홀리 골라이틀리라는 이름이 재미난 거 같다. 영어로 ‘go lightly’ 다. 가볍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여자를 보여주는데, 이름은 ‘holy'다. 영화를 본 분들은 책을 읽고 놀랄 거다. 오드리 햅번의 요정 같은 느낌이 책 속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홀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이 우리가 한번쯤 살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제도나 다른 사람의 눈에서 자유로운 모습 말이다.
박현주: 이 작품은 여행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책을 보면 집에 꽂힌 명함에 홀리 골라이틀리 여행 중, 이라고 적힌 부분이 나온다. 화자가 홀리에게 성 패트릭 매달을 선물하는데 성 패트릭은 여행자의 수호신이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책을 봐도 마지막 부분에 ‘다자키 쓰쿠루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 세상에 우리가 갈 곳이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집이 있지만 과연 그 자리가 우리 자리일까? 내가 가야 할 곳이고 가고 싶은 곳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홀리는 계속해서 그 곳을 찾아간다. 이 책에는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이 있을 거라는 희망과 실제로는 그런 곳이 없다는 좌절과 실망이 들어있다.
인 콜드 블러드
이다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작품이 논픽션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정말 많이 쓰는 기법인데, 당시로는 낯선 시도였다.
박현주: 『인 콜드 블러드』를 쓰던 시기 트루먼 커포티는 작가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역사의 길이 남을 대작을 쓰고 싶었던 거다. 연재 기사를 쓰기로 계약을 하면서 사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책에서 95%의 내용은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녹취를 하지 않고 취재를 한 다음, 집에 와서 정리를 했다. 커포티는 자신에게 사진기 같은 기억력이 있다고 했지만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진실성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이 있다. 극화가 된 부분도 추려낼 수 없고 말이다. 주요 취재원에게 작가가 금품을 약속했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는 의심이나 취재원인 수사관이 미화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다혜: 그런데 100%의 사실을 쓴 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 있었던 일도 사람들 마다 모두 다르게 기억할 테니 의도한 게 아니라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 범인은 두 명인데 중심축은 확실히 페리 스미스에게 기울어져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적 호의마저 느껴진다.
박현주: 커포티는 ‘페리 스미스와 나는 쌍둥이 같다’ 고도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동성애자였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 했으며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하지만 냉혹한 점은 커포티가 페리 스미스에게 약속한 게 무엇이었든 그걸 지키지 않았다는 거다. 페리 스미스는 사형을 당했으니까.
이다혜: 책이 거의 완성될 무렵, 커포티는 게으름을 피운다. 페리 스미스의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깝고 친밀한 느낌이 있었지만 페리 스미스의 죽음을 선택한 건 이 책이 성공하려면 페리 스미스가 사형을 당해야 한다는 점 때문일 거다. 자신의 포부가 있었던 거다.
박현주: 제목이 『인 콜드 블러드』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0달러를 빼앗으려고 일가족 네 명을 죽인 사건이 가지는 냉혹함이 한쪽이라면 다른 쪽은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취재원이자 감정적 연대를 가졌던 사람을 냉혹하게 버렸다는 의미 말이다.
이다혜: 이번 기회에 커포티 작품을 읽기 시작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지 추천해 달라.
박현주: 오늘 이야기한 순서가 연대기 순이다. 이렇게 읽는 것도 좋은 듯 하다. 내 경우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인 콜드 블러드』 『다른 목소리, 다른 방』 『풀잎 하프』 순으로 읽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이다혜: 휴가 갈 때 가져갈 책이라면 단편집을 추천한다. 어떤 걸 읽어도 좋고, 다양한 톤의 작품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휴가를 방에서 보낸다면『인 콜드 블러드』가 좋다. 긴 호흡으로 시간을 내서 읽어야 그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담을 마무리하며 두 대담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뽑았다. 독자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구절을 가져와 함께 나누었다. 커포티의 팬으로 보이는 한 독자는 꽤 오래된 판본을 들고 등장하기도 했다. ‘블랙앤화이트 토크’에 참가조건이었던 드레스코드 ‘블랙앤화이트’를 가장 멋지게 표현해준 독자를 찾는 이벤트도 이어졌다. 어두운 날씨와 달리 소소한 웃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작가와 작품을 꼼꼼히 더듬어보면서 오래 전 그가 기획했던 파티의 한 장면을 그려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다혜: 트루먼 커포티의 책을 여러 권을 번역했는데,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현주: 많은 분들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통해서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로 커포티를 접하셨을 거다. 미국에 살 때, 추수감사절 휴가에 우연히 커포티 단편집을 읽게 되었다.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었고 언제가 꼭 번역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커포티와 관련된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면서 커포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시기였다.
이다혜: 커포티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지만 작가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대체로 단편에서 보여주는 솜씨 때문이다. 초기에는 서머싯 몸 단편상을 받기도 했다. 단편은 문장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장편의 정서적 교두보가 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커포티는 헤밍웨이와 자주 비교되는데 아마 짧은 문장을 잘 쓰기 때문인 것 같다.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상대방의 삶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작가다. 번역하시면서 까다로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박현주: 사실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표현방식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커포티가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정도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점 말이다. 커포티 자신만의 것을 살리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선집을 만들다 보니 시기별로 다른 스타일이 등장한다. 커포티의 첫 번째 작품인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의 경우는 마술적이고 심리주의적인 부분이 있다.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 콜드 블러드』는 보도적 문체로 모든 기술들이 사건과 조사에 기초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작품을 어떻게 적절한 일관성 안에서 풀어 낼 지가 고민이었다.
이다혜: 커포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
박현주: 커포티는 작품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동시에 작가 자체가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미국문학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도시문학이라 할 만한 부분이 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작품들은 시골이 등장하긴 하지만 도시지향적인 면이 있다. 항상 주목 받기를 원하고 사교계의 정점까지 올랐다 뚝 떨어지는 부분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만으로도 굉장히 특별한 면이 있다. 작가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일종의 셀럽이다.
이다혜: 커포티에 대해 말하다 보면 가십을 이야기하는 기분이 된다. 작품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뒷이야기도 굉장히 많다. 이 자리를 준비하면서 위대한 개츠비가 떠올랐다. 만약 개츠비가 이성애자가 아니라 게이고, 알 수 없는 수상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작가였다면 커포티와 닮아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떠나고 싶었던 어린 시절, 남들에게 알리기 싫은 과거. 그것을 딛고 일어나 성공할 거라는 마음. 커포티를 이야기하면 이런 작가의 삶을 빠트릴 수 없다. 어린 시절 친구 중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가 있다. 『인 콜드 블러드』 집필 당시 둘은 자료조사를 함께 하는 등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퍼 리가 유명해지자 커포티는 그 작품에 자신이 많이 관여했다는 식의 헛소문을 퍼트린다.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지려는 욕심에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게 작가의 여러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박현주: 실제로 제이 개츠비, 홀리 골라이트, 트루먼 커포티는 닮았다. 어린 시절을 잊고 싶고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사교계에 들어가는 인물. 하지만 결국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지지 못하고 좌절하는 인물. 이들의 삶이 닮았다. 커포티에게는 항상 좌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양쪽 부모 모두에게 버림을 받고 사촌의 집에서 살게 되는데, 그 옆집에 살던 게 하퍼 리다. 하지만 소꿉친구였던 하퍼 리와도 사이가 나빠진 커포티는 결국 고독하게 죽게 된다. 작가의 이런 인간적 결함을 보며 독자들은 더욱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
이다혜: 커포티의 작품들은 도시적인 삶을 잘 구현하고 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장면, 티파니에서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가 밥을 먹는 장면은 특히 그렇다. 이는 커포티와 친구들의 농담이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 뉴욕에서는 어디서 밥 먹는 게 좋아? 하고 물으면 티파니가 좋아, 라고 대답하는 것. 놀리는 거다. 그런데 티파니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것은 잘나가는 도시의 삶을 보여준다. 브랜드로 상징되는 내가 갖지 못한 것,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박현주: 커포티는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적 욕망들을 저속하지 않게 보여주는 작가다. 뉴욕 티파니 쇼윈도 앞에는 처연한 감정이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과거가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을 때, 불안한 미래가 두려울 때. 이런 날이면 티파니에 간다. 저 너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티파니. 그걸 보고 있으면 안정이 되는 거다.
다른 목소리, 다른 방
박현주: 『다른 목소리, 다른 방』에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있다. 갈 곳 없는 소년이 갈 곳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내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트루먼 커포티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여기부터 드러난다. 작가의 성 정체성도 숨김없이 보여진다. 문체적 특징은 섬세하고 꿈이나 환상 등이 현실과 공존한다. 우울하게 가라앉는 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다혜: 그 우울함은 몰락하고 있는 남부정서 같다. 과거 큰 저택과 귀족 출신으로 대표되던 화려한 남부가 사라지고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곳.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이곳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간다.
박현주: 작업을 하면서 윌리엄 포크너를 자주 떠올렸다. 모두가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곳, 죽은 사람과 다름없는 시체들과 살고 있는 곳. 이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작품 전체에 짙게 깔려 있다.
풀잎 하프
박현주: 『풀잎 하프』는 평화롭고 소설적 구조도 더 뚜렷하다. 버림받았다는 외로움도 나오지만 그런 고독한 사람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사람들을 억압하는 공동체 윤리에 저항하는 면모가 드러난다. 부모에게 버려진 커포티는 자신을 키워준 사촌과의 추억을 아름답게 여겼지만 다시 그녀를 찾지는 않았다. 어린 소년의 시간과 할머니인 사촌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을 거다. 커포티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잊었다. 하지만 늘 거기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다혜: 사실 커포티에게 가장 필요했던 사랑을 준 것은 나이가 많던 사촌이었다. 사촌이 1940년 사망하고 1956년 『풀잎 하프』가 나온다. 커포티는 제대로 이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복구하기 힘들게 망가트리고 이미 사촌이 죽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변명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현주: 이 작품에서 사촌과의 관계가 유사가족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커포티가 믿고 싶었던 아름다운 유년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아름다운 내용, 유려한 문장 등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순진한 작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동이 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박현주: 이 작품은 여행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책을 보면 집에 꽂힌 명함에 홀리 골라이틀리 여행 중, 이라고 적힌 부분이 나온다. 화자가 홀리에게 성 패트릭 매달을 선물하는데 성 패트릭은 여행자의 수호신이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책을 봐도 마지막 부분에 ‘다자키 쓰쿠루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 세상에 우리가 갈 곳이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집이 있지만 과연 그 자리가 우리 자리일까? 내가 가야 할 곳이고 가고 싶은 곳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홀리는 계속해서 그 곳을 찾아간다. 이 책에는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이 있을 거라는 희망과 실제로는 그런 곳이 없다는 좌절과 실망이 들어있다.
인 콜드 블러드
이다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작품이 논픽션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정말 많이 쓰는 기법인데, 당시로는 낯선 시도였다.
이다혜: 그런데 100%의 사실을 쓴 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 있었던 일도 사람들 마다 모두 다르게 기억할 테니 의도한 게 아니라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 범인은 두 명인데 중심축은 확실히 페리 스미스에게 기울어져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적 호의마저 느껴진다.
박현주: 커포티는 ‘페리 스미스와 나는 쌍둥이 같다’ 고도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동성애자였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 했으며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하지만 냉혹한 점은 커포티가 페리 스미스에게 약속한 게 무엇이었든 그걸 지키지 않았다는 거다. 페리 스미스는 사형을 당했으니까.
이다혜: 책이 거의 완성될 무렵, 커포티는 게으름을 피운다. 페리 스미스의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깝고 친밀한 느낌이 있었지만 페리 스미스의 죽음을 선택한 건 이 책이 성공하려면 페리 스미스가 사형을 당해야 한다는 점 때문일 거다. 자신의 포부가 있었던 거다.
박현주: 제목이 『인 콜드 블러드』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0달러를 빼앗으려고 일가족 네 명을 죽인 사건이 가지는 냉혹함이 한쪽이라면 다른 쪽은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취재원이자 감정적 연대를 가졌던 사람을 냉혹하게 버렸다는 의미 말이다.
이다혜: 이번 기회에 커포티 작품을 읽기 시작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지 추천해 달라.
박현주: 오늘 이야기한 순서가 연대기 순이다. 이렇게 읽는 것도 좋은 듯 하다. 내 경우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인 콜드 블러드』 『다른 목소리, 다른 방』 『풀잎 하프』 순으로 읽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이다혜: 휴가 갈 때 가져갈 책이라면 단편집을 추천한다. 어떤 걸 읽어도 좋고, 다양한 톤의 작품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휴가를 방에서 보낸다면『인 콜드 블러드』가 좋다. 긴 호흡으로 시간을 내서 읽어야 그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담을 마무리하며 두 대담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뽑았다. 독자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구절을 가져와 함께 나누었다. 커포티의 팬으로 보이는 한 독자는 꽤 오래된 판본을 들고 등장하기도 했다. ‘블랙앤화이트 토크’에 참가조건이었던 드레스코드 ‘블랙앤화이트’를 가장 멋지게 표현해준 독자를 찾는 이벤트도 이어졌다. 어두운 날씨와 달리 소소한 웃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작가와 작품을 꼼꼼히 더듬어보면서 오래 전 그가 기획했던 파티의 한 장면을 그려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 트루먼 커포티 선집 트루먼 커포티 저/박현주 역 | 시공사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로 대중에게 친숙할 뿐만 아니라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전대미문의 걸작 《인 콜드 블러드》로 문학사에 획을 그은 미국 작가 트루먼 커포티의 소설 세계를 총망라하는 선집이 출간되었다.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데뷔작부터 20세기 소설의 지형도를 바꾼 마지막 역작까지, 생전에 발표된 커포티의 소설 전부를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선집은, 헤밍웨이와 더불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 작가이자 고전이 된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긴 진정한 ‘작가’ 트루먼 커포티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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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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