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성과 결혼 발표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서태지 신드롬’의 선언
그것은 ‘서태지 신드롬’을 만천하에 공포한 선언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충격의 음반을 접하고 1년 전의 도발이 결코 단발성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음을 목도했다. 200여일 간의 공백을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서태지는 또 한 번의 멋진 임팩트를 선사하며 자신의 상품가치를 입증했다.
201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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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16살 연하인 배우 이은성과의 결혼 소식을 알리며 팬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공백기를 갖고 있는 중임에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여전히 언론과 대중들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네요. 우리 가요계에서 서태지가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습니다. 1집에 이어 또 하나의 충격을 선사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두 번째 앨범, <Ⅱ>를 소개해드립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Ⅱ> (1993)
그것은 ‘서태지 신드롬’을 만천하에 공포한 선언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충격의 음반을 접하고 1년 전의 도발이 결코 단발성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음을 목도했다. 200여일 간의 공백을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서태지는 또 한 번의 멋진 임팩트를 선사하며 자신의 상품가치를 입증했다.
1992년 봄, 서태지가 한 연예오락프로에 모습을 비췄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황금시대가 열리리라 예측한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그때 그들의 심사를 맡았던 평론가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발라드와 트로트, 일본풍의 정형화된 댄스뮤직이 주(主)를 이루던 주류의 시각에서 서태지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춤과 음악은 사실상 수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가요계의 물줄기를 댄스로 완전히 돌려놓으면서 자신이 단순한 뮤지션이 아니라 새 트렌드를 생성하고 선도하는 선각자라는 사실을 보였다.
이번에 그가 뽑아든 흥행카드는 록이었다. 출신성분이 헤비메탈(시나위의 베이시스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울 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상연해 보인 「하여가」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획기적인 곡이었다. 격렬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가 1분이나 곡 중간에 첨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맞춰 짜여진 선 굵은 댄스도 가미되었다.
4분, 길어야 5분에 불과한 방송무대에서 1분을 연주로 잡아먹는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모험이었다. 서태지는 이 도박에 가까운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혁명을 연출해내며 ‘역시 서태지’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곡의 후반부에 절묘하게 삽입된 김덕수의 태평소 또한 천재의 영감에서 우러난 아이디어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국악기의 사용은 메탈 기타의 상승에너지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도 과열된 분위기를 죽이지 않고 점강적으로 누그러뜨리는 이중 효과를 수확해냈다.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과 서의 완벽한 퓨전’이라는 미사여구를 동반하기도 했다.
비록 「하여가」의 비중이 크긴 했지만 곡들의 탁월성은 여러 곳에서 두드러졌다.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로 라이브 무대에서도 마지막을 달구곤 했던 「우리들만의 추억」, 6년 후 테크노 열풍을 예견한 듯한 「수시아」, 서태지 최고의 선율의 발라드로 꼽을만한 수작 「너에게」 등이 그 면면이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클라이맥스를 꼽으라면 단연코 「죽음의 늪」이었다. 3집의 「제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하는 난해한 가사와 유니크한 고딕(Gothic)적인 분위기는 그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비기(秘技)였다. 샘솟듯이 쏟아지는 젊은 음악도사는 그렇게 현란한 몸동작만을 연구하는데 바쁘던 동료 뮤지션들을 압박했고 또 좌절시켰다.
이제 무대는 서태지만에 의한, 서태지만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이미 그의 경쟁세력은 없었다. 그가 하는 동작 하나하나,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벤치마킹하며 외로운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1년 후, 서태지는 록을 본격적으로 음반의 중심으로 내세운 3집을 공개하며 멋지게 고독한 챔프의 타이틀을 수성(守成)했다. 그때까지 가요팬들은 서태지 파시즘(?)을 즐겁고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은퇴를 발표한 1996년 1월까지 쿠데타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가 사라진 저편에는 음악 산업의 독재라는 훨씬 암울한 괴물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본 음반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8곡에 불과한 수록곡이 너무 적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나마 그 8곡도 51초의 짧은 인트로 「Yo! Taiji」와 「우리들만의 추억」 연주버전을 모두 포함했기에 실제로 체감 감상시간은 더 짧다.
그렇지만 서태지는 길이와 수준이 정비례하지 않는 것임을 이 음반을 통해 웅변했다. 지금 들어도 그 감동이 가시지 않는 전율의 역작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주류 가요시장은 이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는 작품을 주조하지 못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Ⅱ> (1993)
그것은 ‘서태지 신드롬’을 만천하에 공포한 선언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충격의 음반을 접하고 1년 전의 도발이 결코 단발성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음을 목도했다. 200여일 간의 공백을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서태지는 또 한 번의 멋진 임팩트를 선사하며 자신의 상품가치를 입증했다.
1992년 봄, 서태지가 한 연예오락프로에 모습을 비췄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황금시대가 열리리라 예측한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그때 그들의 심사를 맡았던 평론가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발라드와 트로트, 일본풍의 정형화된 댄스뮤직이 주(主)를 이루던 주류의 시각에서 서태지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춤과 음악은 사실상 수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가요계의 물줄기를 댄스로 완전히 돌려놓으면서 자신이 단순한 뮤지션이 아니라 새 트렌드를 생성하고 선도하는 선각자라는 사실을 보였다.
4분, 길어야 5분에 불과한 방송무대에서 1분을 연주로 잡아먹는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모험이었다. 서태지는 이 도박에 가까운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혁명을 연출해내며 ‘역시 서태지’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곡의 후반부에 절묘하게 삽입된 김덕수의 태평소 또한 천재의 영감에서 우러난 아이디어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국악기의 사용은 메탈 기타의 상승에너지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도 과열된 분위기를 죽이지 않고 점강적으로 누그러뜨리는 이중 효과를 수확해냈다.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과 서의 완벽한 퓨전’이라는 미사여구를 동반하기도 했다.
비록 「하여가」의 비중이 크긴 했지만 곡들의 탁월성은 여러 곳에서 두드러졌다.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로 라이브 무대에서도 마지막을 달구곤 했던 「우리들만의 추억」, 6년 후 테크노 열풍을 예견한 듯한 「수시아」, 서태지 최고의 선율의 발라드로 꼽을만한 수작 「너에게」 등이 그 면면이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클라이맥스를 꼽으라면 단연코 「죽음의 늪」이었다. 3집의 「제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하는 난해한 가사와 유니크한 고딕(Gothic)적인 분위기는 그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비기(秘技)였다. 샘솟듯이 쏟아지는 젊은 음악도사는 그렇게 현란한 몸동작만을 연구하는데 바쁘던 동료 뮤지션들을 압박했고 또 좌절시켰다.
이제 무대는 서태지만에 의한, 서태지만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이미 그의 경쟁세력은 없었다. 그가 하는 동작 하나하나,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벤치마킹하며 외로운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1년 후, 서태지는 록을 본격적으로 음반의 중심으로 내세운 3집을 공개하며 멋지게 고독한 챔프의 타이틀을 수성(守成)했다. 그때까지 가요팬들은 서태지 파시즘(?)을 즐겁고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은퇴를 발표한 1996년 1월까지 쿠데타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가 사라진 저편에는 음악 산업의 독재라는 훨씬 암울한 괴물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본 음반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8곡에 불과한 수록곡이 너무 적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나마 그 8곡도 51초의 짧은 인트로 「Yo! Taiji」와 「우리들만의 추억」 연주버전을 모두 포함했기에 실제로 체감 감상시간은 더 짧다.
그렇지만 서태지는 길이와 수준이 정비례하지 않는 것임을 이 음반을 통해 웅변했다. 지금 들어도 그 감동이 가시지 않는 전율의 역작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주류 가요시장은 이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는 작품을 주조하지 못하고 있다.
글/ 이경준(zakkrand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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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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