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스타일 : 노르딕맨의 액세서리
세르옐 광장에서부터 국회의사당 사이의 쇼핑 거리를 돌아다니며, 옷 가게에 서 있는 마네킹과 살아 움직이는 남정네들을 서로 헷갈린 적이 도대체 몇 번이던가. 15~30세 정도의 생물학적 연령대에 위치한 그들은 무엇을 걸치고 있어도, 무엇을 들고 있어도 그저 우월하게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다만, 그 이상의 나이대가 되는 순간, 그들도 별 수 없이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아저씨가 되어버리는 모양이다. 그런 생명체들에게서 시간의 개념을 빼앗아버릴 수는 없을까? 키아누 리브스가 영원을 살고 있는 것처럼.
201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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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들이 사는 도시의 순위를 10위까지 매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스톡홀름이 영예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물론 스웨덴 여성 또한 어느 순위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은 나에게 넘지 못할 사차원의 벽일 뿐이니 언급할 필요가 없다). 평가진들은 스톡홀름의 일반 남성들은 건장한 골격, 큰 키에 완벽한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고, 스웨덴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성은 평생 헌신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라 했다는데(무척이나 사로잡고 싶군요), 그 속이야 접해보지 않은 내가 말할 수 없다지만 관상용 외모에 대한 것은 동의한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미남자들이 가득한 곳곳을 휘휘 걸어 다니다보면, 무슨 궁전이니 무슨 박물관이니 눈앞에 있는 거대한 것들을 물리치고 그들에게로 매의 시선이 가게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세르옐 광장에서부터 국회의사당 사이의 쇼핑 거리를 돌아다니며, 옷 가게에 서 있는 마네킹과 살아 움직이는 남정네들을 서로 헷갈린 적이 도대체 몇 번이던가. 15~30세 정도의 생물학적 연령대에 위치한 그들은 무엇을 걸치고 있어도, 무엇을 들고 있어도 그저 우월하게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다만, 그 이상의 나이대가 되는 순간, 그들도 별 수 없이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아저씨가 되어버리는 모양이다.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 생명체들에게서 시간의 개념을 빼앗아버릴 수는 없을까? 키아누 리브스가 영원을 살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대강 ‘저 남자는 우리 나이대 정도 되지 않았을까? 멋지구나’ 하고 감상하고 있다가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액세서리 때문에 좌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무지막지한 최신형 스마트폰? 달랑달랑해서 좀 부끄러운 귀걸이? 칼라풀 총 출동한 스키니 팬츠? 설마 흰 살결을 덮고 있는 용 문신?
허무하게도 그것은 유모차였다. 이놈의 가정적인 남자들이 어찌나 유모차 안에 그의 유전자를 곱게 물려받은 금발의 작은 생명체들을 넣어서 밀고 다니는지, 도대체 좀 괜찮다 싶은 남자들은 아이가 없이는 체면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인지 붙들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차라리 엘프녀를 옆에 끼고 있는 편이 내 기준에서는 덜 아쉬울 것 같단 말이다.
갈색 머리를 적당히 다듬어서 혼돈과 질서가 동시에 존재하는 헤어스타일을 만든 후, 그 오똑한 콧잔등에 선글라스를 얹고 하얀 이어폰을 귀에 장착, ‘난 집에서 대충 입고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멋이 발사되는군요’ 하는 식의 무심한 듯 시크한 빈티지 체크남방과 바지에, 편안한 신발을 신고 카페라테를 들고 있는 남정네를 발견! 허나 그의 45도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말똥말똥 보송보송한 금발머리 여자아이 두 명이 꼭꼭 들어앉은 유모차가 있어버리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목적지를 확인하고 ‘그래, 우린 미술관을 보러 온 것이었지!’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유모차가 없었던들 뭘 어떻게 했겠느냐마는, 한창 애간장을 태워가며 보고 있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남자 배우가 불현듯 “전 이미 결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만한 아이도 있답니다!”라고 발표했을 때의 남모를 허탈함 같은 것이 느껴진단 말이다. 예쁜 여배우와의 열애설을 접했을 때와는 썩 다른 느낌이다. 확실히 북유럽은 아이 키우기에 겁 따위 필요 없는 곳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한 손에는 라테를 들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미는 멋쟁이 아빠들을 스웨덴에서는 ‘라테파파’라고 칭한다. 진보적인 육아문화를 첨단 패션으로 승화시켜낸 이들의 모습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강남 스타일’처럼 ‘쇠데 스타일(쇠때 스타일이라 해야 할지 어쩔지, 외국어 표현의 한계가 느껴집니다만)’이라는 것을 추구한다. 감라스탄 아래쪽의 쇠데르말름Soermalm 지구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패션을 비롯해 정치, 사회, 환경 문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상과 생각의 트렌드를 주도하며 그들의 스타일을 만든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강남스타일’과 판이하게 달라 양 극단에 있는 듯 하지만 어쨌든 스타일은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육아에 극진히 관심이 많은, 상냥한 아빠의 모습을 패션 아이템으로 택함으로써 자신이 유행에 뒤쳐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뭐 어떤가. 이렇게라도 아이들을 줄줄 매달고 다니는 남자들의 유행이 우리나라에도 좀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애 키우느라 집에 갇혀 있는 나의 소중한 여자 친구들과 맘 편하게 밥이라도 한 끼 먹게. 기껏 만났는데 애 운다고 전화하는 남편들은 정말이지 찌질해서 엉덩이를 걷어 차주고 싶다.
- 북유럽처럼 김나율 저/이임경 사진 | 네시간
디자이너이며 보통의 여행자인 두 저자가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 세 도시로 북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정에 얽힌 유쾌한 이야기, 먹고 즐기고 쉬기에 유익한 정보 등 여행지로서의 북유럽을 담으며 그들의 공간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필두로 독특한 문화와 날씨, 물가 등 다양한 관심 키워드를 다룬다. 보통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적당히 놀며 쉬며 접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북유럽 스타일의 감성으로 삶을 덜어내고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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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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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나율, 이임경(사진)
김나율
드라마 작가와 음악가와 월세 집 주인을 최고 동경하고
처녀 귀신, 생 굴, 날아오는 공이 제일 무섭고
오로라, 한 겨울 사우나, 피오르를 만나러 가고 싶고
디자인, 산수, 집안일이 너무 두렵고
이제 막 맥주와 커피의 맛을 좀 알 것 같은
대체로 무익하지만 가끔은 유익하게 사는 적당한 사람.
서울대 디자인학부 졸업. 싸이월드, LG 전자 근무. 현 프리랜서 모바일 GUI 디자이너.
이임경
점토의 말캉말캉함과 희뿌연 흙먼지, 흐르는 땀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 도자기를 한다.
가장 맑게 그리고 거침없이 꿈꾸는 열아홉과
함께할 수 있어 수업시간은 늘 기대된다.
안목바다의 수평선 같은 조용하고 담백한 사진은
설렘을 주고 흙 작업을 하며 한껏 벌린 설거지거리를
예쁜 수세미로 닦는 시간은 무척이나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다.
여행은 ‘진짜’ 나를 마주하게 한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공예대학원 졸업, 도자 공예가.
현 선화예고, 남서울대 강사.
브루스
2013.04.30
엠제이
2013.04.30
rostw
2013.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