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괜찮아지지 않는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 -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서로 이상한 사람, 나와 다른 사람 취급해서 다가가지도 않는 관계. 그게 하필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가족이라면. 절대 괜찮아지지 않을 거라고 이 극은 말한다. 괜찮아지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빨리 고치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문제가 뭔지 알고 상처에 직면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닌척 해도 어쩔 수 없다고.
글ㆍ사진 김수영
201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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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람마다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슬픔에 헤어나오지 못해 몇 날 며칠 끙끙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픔을 토로하면서 건강하게 극복해내는 사람도 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맑고 밝고 유쾌해 보이지만, 마음 깊은 데 난 상처를 표현하지도 고치지도 못한 채 오래 끌어안고 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지울 수 없이 삶의 일부가 된 상처와 어떻게 안고 살아갈 것인가. 이 문제를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삶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당신의 상처와 타협을 끝냈다. 없던 일처럼 무시하고 살아가기, 혹은 잊지 않고 늘 기억하기. 만약 타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상처 때문에 아직도 우울하거나, 괜히 슬퍼지기도 할 것이다.

<넥스트 투 노멀>은 도무지 괜찮아지지 않는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 출근 준비하는 아빠. 건강한 아들, 괴팍하지만 천재적인 딸, 이 정도면 완벽하게 단란해 보인다. 하지만 각자 속사정을 듣고 보면 이 단란함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균열을 견디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누가 또 있나요. 나처럼 죽고 싶은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식구들은 정말로 마지못해 견디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상한 엄마를 견디고 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겠다더니 식빵을 식탁 가득 늘어놓질 않나, 급기야 식탁 바닥에까지 식빵을 깔아놓는 이 이상한 엄마, 조울증 약을 끼니처럼 입안에 털어 넣는 약쟁이 엄마를 말이다.


미칠 것 같은 상황, 견디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견딘다는 건,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은 척 살아가는 거다. 극 중 엄마처럼, 미친 사람처럼 발악하고 불만을 폭발시키고 싶지만, 참고 견디고 살아가는 거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상한 상황에서 괜찮은 척 하려다 보니까 말이다. 만약 식구들이 엄마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미칠 것만 같은 이 상황을 버티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견디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완벽할 정도로 단란한 가정’이라고는 더 이상 부를 수 없겠지만, 죽고 싶을 만큼 괴롭진 않지 않을까? 엄마를 미치게 만드는 것, 엄마한테만 보이는 것을 무조건 이상한 것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그게 뭔지, 어떤 느낌인지 같이 공유하려고 해본다면? 엄마, 다이애나가 그토록 외롭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엄마를 괴롭히는 건, 16년 전, 고작 8개월 살고 죽어버린 아들 게이브 때문이다. 그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엄마에게는 16년 동안 성장해 온 아들이 보인다. 조울증 증세가 나아질 듯 하면 아들은 엄마를 찾아와 다시 상처를 꺼내고, 아픔을 느끼게 하고, 이 세상을 벗어나자고 유혹한다. 그런 ‘이상한’ 다이애나 곁에 있는 헌신적인 남편 댄도, 딸 나탈리도 지쳐간다. 유령 게이브 때문에, 그녀 곁에 있는 남편과 딸이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여전히 다이애나는 16년 전에 죽은 게이브만 찾고 있으니까.

오랜 약물치료에도 치료에 진전이 없자, 정신과 의사는 전기충격요법을 권한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이 시술 앞에서 다이애나와 댄은 갈등하지만, 다이애나로서는 가족을 위해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전기 충격은 무엇을 치료할 수 있을까? 망상에 시달리는 다이애나의 기억을 뇌에서 지워버렸다. 문제는 약간의 부작용. 덩달아 다이애나의 모든 기억이 지워져 버린다.


기억을 삭제하면, 아픔도 사라지는 걸까?


이제 가족들은 다이애나에게 새로운 기억을 덧입혀주려고 애를 쓴다. 추억은 실제보다 아름다운 법이니까. 아들 게이브의 사건을 제외한 과거의 추억들을, 좋은 것만 골라서 기억에 담아준다. “아프게 하는 걸 기억해서 뭐해.” 하지만 다이애나는 좀체 기억을 회복하지 못하고, 기억이 떠오르려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어떤 불편함을 느낀다. 게이브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를 괴롭히는 그 기억을 우리의 삶에서 삭제해버리면, 다 괜찮아지는 걸까? 상처는 꼭 나쁘기만 한 것일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상처를 받는 것보다 망각하는 게 나은 걸까? 그 상처가 벌어지기까지 연관된 좋은 추억과 상처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시간도 몽땅 부정해버려야 하는 걸까? <넥스트 투 노멀>은 견딜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사람에 관하여, 상처를 품어서인지 서로에게 상처만 내는 가족 관계에 관하여, 흔히 비정상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정신병에 관해 세심하게 고찰해 나간다.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서로 이상한 사람, 나와 다른 사람 취급해서 다가가지도 않는 관계. 그게 하필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가족이라면. 절대 괜찮아지지 않을 거라고 이 극은 말한다. 괜찮아지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빨리 고치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문제가 뭔지 알고 상처에 직면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닌척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모두가 사랑하는 아들이었는데, 과연 다이애나만 아픈 걸까? 아니, 아빠였던 댄도 견딜 수 없이 아프지만, 참고 있는 것일 뿐이다. 엄마를 못견뎌하는 딸은 어떻고? 유령의 아들 때문에 존재감이 사라진 딸 나탈리 역시 엄마 못지않게 아프고,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놓고 아파하는 사람이 다이애나일 뿐이다.


어쩌면 ‘더’ 사랑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나도 엄마처럼 미쳐버릴 거야.”
“네가 미쳐버리면, 나도 같이 미쳐줄게. 미치는 건 자신 있어.”
나탈리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헨리의 대사는 인상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다이애나를, 엄마를, 아내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그만큼 다이애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의무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고치려고 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게 되지 않을까? 정상이라는 세상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헨리처럼. 정말로 사랑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소위 20대를 위로하겠다는 힐링의 말들이 왜 좀체 효과가 없는지 알 것도 같다. 힐링이라는 말은, 다이애나의 가방에 넘쳐나는 정신과 질병 약 같은 존재인 셈이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의 문제다. 사랑한다면, 그녀가 환자라고, 아프다고 판단하지 말고, 사랑한다면 그녀를 고치려고만 들지 말고, 사랑한다면 세상이 말하는 정상의 기준으로 그녀를 들들 볶지 말 일이다. 이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파하는 사람에게 갖춰야 할 예의다.


누군가를 정말 위로하고 싶다면 <넥스트 투 노멀>


3층으로 된 구조물은 완벽해 보이는 굿맨 식구들만큼이나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짜여 있다. 인물들의 다층적인 내면을 표현하는 데도 훌륭하게 활용된다. 거기에 다양한 조명효과를 통해 다이애나의 (조증과 울증을 오락가락하는) 내면과 가족들의 깊은 절망이 시각적으로 느껴진다. “20년 만에 배우를 꿈꾸게 한 작품”이라고 <넥스트 투 노멀>을 소개한 박칼린은 지난 초연에 이어 다시 다이애나 역으로 무대에 선다.

박칼린은 정상인척 보이지만, 한없이 무너지면서 흔들리는 다이애나 캐릭터를 자기 옷처럼 연기해낸다. 이전에 TV에서 보여준, 자존감 강하고 자기주장 분명한 박칼린의 모습 덕분에, 그가 연기하는 다이애나가 한층 복합적인 인물로 느껴진다. 남편 역으로 열연하는 댄은 물론이고, 죽은 아들로 출연하는 한지상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극 중 엄마를 위로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가 잊힐까 안달하는 다양한 감정을 매력적으로 표현해낸다. 조명이 그를 비추지 않을 때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때에도 한지상은 게이브처럼, 거기에서 존재하고 있다.

꽤 긴 시간, 무대는 다이애나의 가족이 이 ‘이상한 상태’를 어떻게 견뎌 나가는지,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치밀하게 보여준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식구들은, 16년 전 그날 모두가 함께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화해하는데, 이것은 상처를 다 씻어버린 채 화해하는 게 아니다.

상처를 안고도, 우리는 화해할 수 있다. 굳이 괜찮다고 억지 부리지 않은 채로, 한편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서로 안아줄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은 보여준다. 쉽게 고치지도 않고, 쉽게 덮어버리지도 않는 성숙한 결말이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면 <넥스트 투 노멀>의 굿맨 식구들을 만나보자. 당신이 극 속의 다이애나든지 그런 사람 곁에 있는 댄이든 나탈리든, 미쳐버릴 것만 같이 답답하고 이상한 상황을 건너가는 데에 귀중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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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 #박칼린 #남경주 #이정열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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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2013.04.30

요즘 이 뮤지컬 글 많이 나오네요. 진심 보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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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tw

2013.04.29

괜칞아지지 않을 수 있는데도 참을 성 없이 괜찮아지기만을 강요하는 것이 참.....쉽게 극복되기에는 어려운 사회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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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826

2013.04.27

내일 드디어 넥을 보러가는데..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힘을 줄 거 같은 넥!! 기대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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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