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성형수술 광고, 절대 못하게 막아야”
몸이 문제다. 우리의 몸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매우 편해졌지만, 현대인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하다. ‘마음의 거처’가 되어야 할 몸은 언제부터인가 마음과 분리되어 서로를 배척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몸과 우주’라는 단어를 꺼낸다. 그리고『동의보감』의 눈으로 다시 우리의 삶을 성찰할 것을 권한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몸’은 어떤 의미일까?
20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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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글은 언제 읽어도 명쾌하고 거침없다. 무엇보다 고전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고미숙의 글은 철저하게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의 글은 언제나 책을 읽는 독자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으로 파고들길 원한다. 최근 고미숙은 ‘동의보감’ 3남매의 막내를 낳았다. 이름은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으로 보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첫째 아이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가 『동의보감』으로 들어가는 입문서였고, 둘째 아이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가 역학을 탐색하는 책이었다면, 막내는 앞의 두 책에서 소개했던 의역학을 사회비평과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한 책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에세이다. ‘몸과 우주.’ 뭔가 남다른 포스가 느껴진다. 지난 3월 12일 화요일 저녁, 정동에 위치한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작은형제회 수도원 4층에는 고미숙의 강연회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입담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몸과 우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지구는 돌고 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은 우주 전체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단 한 순간도 동일한 시간을 살고 있지 않다. 이런 흐름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꽉 막혔던 것의 답이 보인다.”
지구와 우주. 강연은 뭔가 심오한 이야기를 던지며 시작되었다. 저자는 몸과 우주, 몸과 시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 방화범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최근 방화를 많이 하다가 잡힌 남자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왜 불을 질렀냐고 물었더니 ‘이곳을 깨끗하게 청소하라’는 환청이 들렸다고 한다. 이 남자는 그냥 단순히 정신병자일까. 현대의학이나 과학은 ‘왜 하필 불을 지르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의역학적으로 볼 때 계사년인 올해는 화(火) 기운이 주관하는 해다. 그래서 불이 많이 난다. 화 기운이 주관했던 2008년 무자년 역시 남대문 방화사건 같은 큰 불이 여러 건 있었다. 이렇게 화 기운이 강한 해에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이 많이 난다. 특히 그런 쪽에 취약한 몸이면 이런 식의 환청이 들릴 수 있다. 우주의 기운과 몸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 우리의 몸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가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몇 천 년을 이어 내려온 동양의 의역학이다. 저자는 이런 앎의 세계를 경험한 순간, 몸을 공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주변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공부는 여러 가지 ‘과목’을 각개격파 하는 것이었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깊게 파고들었으면 삶 속에서 그것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배운 지식은 내 삶을 해석하고 치유하는데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진행하고 있는 공부와 문제의식은 바로 이런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몸’을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관통하여 간섭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앎’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것이라 믿고 있다.
몸과 마음의 분리, 고생 끝 멘탈 붕괴
세상은 참 편해졌다. 몸을 편하게 해주는 기계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기술은 눈부시다 못해 주눅이 들게 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기술이 삶의 질도 그만큼 높여 주었을까. 좀 더 편한 삶을 살기 위해 물질의 부가 필요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오히려 몸을 혹사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몸이 편해지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큰 짐을 짊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몸’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마음과 멀어지게 하는 현대인의 퍽퍽한 삶을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 존재고 삶이다. 현대인들은 몸을 점점 쓰지 않기 때문에 근육의 힘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굳이 헬스장에 가서 돈을 주고 몸을 만든다. 그렇게 해서 만든 복근을 무엇에 사용하나? 그냥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어디 써먹을 때가 없는 몸. 우리의 몸은 완벽하게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다. 몸은 안 쓰고 마음만 쓰는 상황이 점점 벌어진다. 이런 것이 바로 소외다. 몸에 있는 에너지와 정기신(精氣神)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 마음이 안 해도 되는 것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망상이다.”
저자는 이렇게 ‘몸 따로 마음 따로’가 되는 상황이 되어 소외가 일어나는 것을 한의학의 ‘수승화강(水昇火降)’ 개념으로 설명한다. 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은 수승화강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식으로 말하면 수승화강은 생명의 기초대사로 “신장에 있는 수(水)기는 올라가고 심장에 있는 화(火)기는 내려가야 한다”는 의미다. 생명이 원하는 건 순환과 운동인데, 이 흐름이 단절되면 수기는 아래로 정체되고 화기는 허열로 뜬다. 당연히 몸과 마음에 이상이 오게 된다. 수승화강이 되어야 살고자 하는 의욕이 커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는 “내 몸 안에 있는 삶의 동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게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성형천국, 마음지옥! 자신을 무시한 건 바로 자신이다
날로 심각해져 가는 소외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가장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형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얼굴은 오장육부의 발로이자 몸이 우주와 만나는 창이다. 성형은 “우주와 만나는 눈, 코, 귀, 입 일곱 개의 창 또는 구멍이 연출하는 다양성과 이질성을 제거해버리는 작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 동일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성형을 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못생겨서 무시당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을 하찮게 여긴 것은 자신이지 남이 아니다.
“성형외과의 범람으로 자살, 우울증 등 엄청난 부작용이 있는데 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양악수술 광고는 절대 하면 안 된다. 비포 애프터 사진을 봐라. 비포는 모두 개성이 있는 얼굴인데, 애프터 사진은 모두 똑같다. 정말 위험한 행위다. 똑똑한 척은 다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기 몸을 홀대하고 학대할 수 있나. 우울증이나 불면증 같은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병도 결국은 몸 따로 마음 따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외에서 시작된다. 성형을 하면 나를 혁신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결국 신장에 있는 물을 마르게 하고 삶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한다. 내가 예뻐졌는데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에 계속 빠지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남는 것은 쾌락을 추구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화기가 충만한 삶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멘붕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소외의 문제는 단순히 사회적인 제도와 서비스, 복지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런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소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탐구가 병행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는 생활 패턴이 유지되는 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강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처럼.
몸에 대한 탐구,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해답은 바로 ‘몸’이다. 몸과 인문학을 연결시키는 공부를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자는 복잡하게 보였던 것이 몸을 두고 생각하니 선명하게 보였다고 말한다.
“가장 분명한 현존성. 그게 몸이다. 몸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몸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내 몸 안에는 몇 억년을 이어져 온 생물학의 역사와 천문학의 세계가 들어 있다. 몸이 있어야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어야 몸이 움직인다. 몸과 마음은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 동양사상의 핵심이다. 몸과 시간, 몸과 공간, 그것이 결국 나다.”
근대 자본주의적인 공부는 모두 제도, 교육, 의료 등 내가 아닌 ‘바깥’이 문제라고 규정한다. 나는 빼놓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 ‘내’가 움직이고 있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교육, 정치, 사회, 경제, 여성, 가족, 사랑, 운명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모든 문제를 바라 볼 때 자신의 몸을 보고 기준을 잡으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인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는 모든 한국 부모들의 고민거리다. 하지만 ‘몸’을 기준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해답은 간단하다.
“수승화강이 잘 되게 하려면 어렸을 때 정보를 억지로 구겨 넣으면 안 된다. 그렇게 일찍부터 사교육을 시켰으면 모두 영재가 되어야 하는데 서울대를 나왔다는 사람도 자기소개서 한 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많다. 개천에서 용 안 난다고 다들 강남으로 몰려가는데, 강남에 간다고 모두 명문대에 가나? 다 곯은 상태로 명문대에 가면 뭐하나. 어른들이 용이 될 아이들을 미꾸라지로 만들고 있다. 엄마들이 조급증에 시달리면 안 된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삶, 똑같이 예뻐지고, 똑같이 좋은 스펙을 쌓는 삶. 이렇게 살다 보면 30~40대가 되어도 항상 조급하다. 항상 도달해도 도달해야 할 곳이 생긴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다르게 살기 위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저자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로 집단적인 상황에서도 수승화강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건물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번드르르하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 그렇게 하는 게 좋은 정치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치인들은 친환경적이고 디지털적인 시설을 세우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시설이 좋아지면 지역사회의 문화도 좋아져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변했을까? 시설은 화려한데, 그 시설을 움직이는 에너지, 아이디어가 없다. 창조력과 상상력은 신장의 물이 퐁퐁 솟아 뇌를 적셔야 나오는 것인데, 작금의 현실은 사람으로 치면 신장의 물은 고갈되고 화기만 엄청 충만해진 상태에서 모두가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는 꼴이다.
인복을 길러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이런 문제는 절대 의학이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약이나 외부의 기운을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보다 내 안의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쉽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몸에 대한 탐구는 자본주의적 상품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가능하고, 몸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면 이런 것들을 끊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요즘 사람들은 인복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삶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다. 마음에서 그런 것들을 돈과 바꾸어버렸다.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누군가 도와주어야만 살 수 있다. 아낌없이 나눠 주어도 결핍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사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인복이 있으려면 나 자신이 수승화강이 되어야 한다. 나는 물질문명이나 사회제도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그런 것으로 세상과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나는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가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몸을 탐구해야 하고, 인복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내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것을 50대에 시작했는데도 조급하지 않다. 이렇게 하다 보면 행복한 할머니가 될 것 같다.”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겨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고미숙은 『동의보감』을 공부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애조차도 생명의 작용이 아닌 쾌락과 탐심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 저자는 사람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후진 것’이며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허접스러운’ 것이라고 단언한다. 쾌락과 분노가 아닌 영역, 자연에 무한하게 열려 있는 영역, 이제 그 방향으로 눈을 돌릴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외와 억압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 있는” 우리의 몸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몸과 우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지구와 우주. 강연은 뭔가 심오한 이야기를 던지며 시작되었다. 저자는 몸과 우주, 몸과 시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 방화범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최근 방화를 많이 하다가 잡힌 남자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왜 불을 질렀냐고 물었더니 ‘이곳을 깨끗하게 청소하라’는 환청이 들렸다고 한다. 이 남자는 그냥 단순히 정신병자일까. 현대의학이나 과학은 ‘왜 하필 불을 지르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의역학적으로 볼 때 계사년인 올해는 화(火) 기운이 주관하는 해다. 그래서 불이 많이 난다. 화 기운이 주관했던 2008년 무자년 역시 남대문 방화사건 같은 큰 불이 여러 건 있었다. 이렇게 화 기운이 강한 해에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이 많이 난다. 특히 그런 쪽에 취약한 몸이면 이런 식의 환청이 들릴 수 있다. 우주의 기운과 몸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 우리의 몸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가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몇 천 년을 이어 내려온 동양의 의역학이다. 저자는 이런 앎의 세계를 경험한 순간, 몸을 공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주변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공부는 여러 가지 ‘과목’을 각개격파 하는 것이었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깊게 파고들었으면 삶 속에서 그것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배운 지식은 내 삶을 해석하고 치유하는데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진행하고 있는 공부와 문제의식은 바로 이런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몸’을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관통하여 간섭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앎’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것이라 믿고 있다.
몸과 마음의 분리, 고생 끝 멘탈 붕괴
세상은 참 편해졌다. 몸을 편하게 해주는 기계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기술은 눈부시다 못해 주눅이 들게 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기술이 삶의 질도 그만큼 높여 주었을까. 좀 더 편한 삶을 살기 위해 물질의 부가 필요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오히려 몸을 혹사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몸이 편해지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큰 짐을 짊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몸’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마음과 멀어지게 하는 현대인의 퍽퍽한 삶을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 존재고 삶이다. 현대인들은 몸을 점점 쓰지 않기 때문에 근육의 힘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굳이 헬스장에 가서 돈을 주고 몸을 만든다. 그렇게 해서 만든 복근을 무엇에 사용하나? 그냥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어디 써먹을 때가 없는 몸. 우리의 몸은 완벽하게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다. 몸은 안 쓰고 마음만 쓰는 상황이 점점 벌어진다. 이런 것이 바로 소외다. 몸에 있는 에너지와 정기신(精氣神)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 마음이 안 해도 되는 것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망상이다.”
저자는 이렇게 ‘몸 따로 마음 따로’가 되는 상황이 되어 소외가 일어나는 것을 한의학의 ‘수승화강(水昇火降)’ 개념으로 설명한다. 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은 수승화강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식으로 말하면 수승화강은 생명의 기초대사로 “신장에 있는 수(水)기는 올라가고 심장에 있는 화(火)기는 내려가야 한다”는 의미다. 생명이 원하는 건 순환과 운동인데, 이 흐름이 단절되면 수기는 아래로 정체되고 화기는 허열로 뜬다. 당연히 몸과 마음에 이상이 오게 된다. 수승화강이 되어야 살고자 하는 의욕이 커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는 “내 몸 안에 있는 삶의 동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게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성형천국, 마음지옥! 자신을 무시한 건 바로 자신이다
날로 심각해져 가는 소외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가장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형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얼굴은 오장육부의 발로이자 몸이 우주와 만나는 창이다. 성형은 “우주와 만나는 눈, 코, 귀, 입 일곱 개의 창 또는 구멍이 연출하는 다양성과 이질성을 제거해버리는 작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 동일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성형을 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못생겨서 무시당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을 하찮게 여긴 것은 자신이지 남이 아니다.
“성형외과의 범람으로 자살, 우울증 등 엄청난 부작용이 있는데 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양악수술 광고는 절대 하면 안 된다. 비포 애프터 사진을 봐라. 비포는 모두 개성이 있는 얼굴인데, 애프터 사진은 모두 똑같다. 정말 위험한 행위다. 똑똑한 척은 다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기 몸을 홀대하고 학대할 수 있나. 우울증이나 불면증 같은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병도 결국은 몸 따로 마음 따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외에서 시작된다. 성형을 하면 나를 혁신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결국 신장에 있는 물을 마르게 하고 삶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한다. 내가 예뻐졌는데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에 계속 빠지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남는 것은 쾌락을 추구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화기가 충만한 삶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멘붕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소외의 문제는 단순히 사회적인 제도와 서비스, 복지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런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소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탐구가 병행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는 생활 패턴이 유지되는 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강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처럼.
몸에 대한 탐구,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해답은 바로 ‘몸’이다. 몸과 인문학을 연결시키는 공부를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자는 복잡하게 보였던 것이 몸을 두고 생각하니 선명하게 보였다고 말한다.
“가장 분명한 현존성. 그게 몸이다. 몸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몸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내 몸 안에는 몇 억년을 이어져 온 생물학의 역사와 천문학의 세계가 들어 있다. 몸이 있어야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어야 몸이 움직인다. 몸과 마음은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 동양사상의 핵심이다. 몸과 시간, 몸과 공간, 그것이 결국 나다.”
근대 자본주의적인 공부는 모두 제도, 교육, 의료 등 내가 아닌 ‘바깥’이 문제라고 규정한다. 나는 빼놓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 ‘내’가 움직이고 있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교육, 정치, 사회, 경제, 여성, 가족, 사랑, 운명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모든 문제를 바라 볼 때 자신의 몸을 보고 기준을 잡으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인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는 모든 한국 부모들의 고민거리다. 하지만 ‘몸’을 기준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해답은 간단하다.
“수승화강이 잘 되게 하려면 어렸을 때 정보를 억지로 구겨 넣으면 안 된다. 그렇게 일찍부터 사교육을 시켰으면 모두 영재가 되어야 하는데 서울대를 나왔다는 사람도 자기소개서 한 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많다. 개천에서 용 안 난다고 다들 강남으로 몰려가는데, 강남에 간다고 모두 명문대에 가나? 다 곯은 상태로 명문대에 가면 뭐하나. 어른들이 용이 될 아이들을 미꾸라지로 만들고 있다. 엄마들이 조급증에 시달리면 안 된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삶, 똑같이 예뻐지고, 똑같이 좋은 스펙을 쌓는 삶. 이렇게 살다 보면 30~40대가 되어도 항상 조급하다. 항상 도달해도 도달해야 할 곳이 생긴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다르게 살기 위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저자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로 집단적인 상황에서도 수승화강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건물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번드르르하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 그렇게 하는 게 좋은 정치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치인들은 친환경적이고 디지털적인 시설을 세우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시설이 좋아지면 지역사회의 문화도 좋아져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변했을까? 시설은 화려한데, 그 시설을 움직이는 에너지, 아이디어가 없다. 창조력과 상상력은 신장의 물이 퐁퐁 솟아 뇌를 적셔야 나오는 것인데, 작금의 현실은 사람으로 치면 신장의 물은 고갈되고 화기만 엄청 충만해진 상태에서 모두가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는 꼴이다.
인복을 길러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이런 문제는 절대 의학이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약이나 외부의 기운을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보다 내 안의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쉽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몸에 대한 탐구는 자본주의적 상품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가능하고, 몸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면 이런 것들을 끊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요즘 사람들은 인복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삶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다. 마음에서 그런 것들을 돈과 바꾸어버렸다.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누군가 도와주어야만 살 수 있다. 아낌없이 나눠 주어도 결핍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사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인복이 있으려면 나 자신이 수승화강이 되어야 한다. 나는 물질문명이나 사회제도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그런 것으로 세상과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나는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가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몸을 탐구해야 하고, 인복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내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것을 50대에 시작했는데도 조급하지 않다. 이렇게 하다 보면 행복한 할머니가 될 것 같다.”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겨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고미숙은 『동의보감』을 공부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애조차도 생명의 작용이 아닌 쾌락과 탐심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 저자는 사람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후진 것’이며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허접스러운’ 것이라고 단언한다. 쾌락과 분노가 아닌 영역, 자연에 무한하게 열려 있는 영역, 이제 그 방향으로 눈을 돌릴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외와 억압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 있는” 우리의 몸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고미숙 저 | 북드라망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동의보감』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진단한 인문비평 에세이이자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에세이. 동양의학을 현대의 삶에 맞게 재해석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와 동양역학을 재해석해 지금 현재의 삶과 운명에 대한 인문서로 써냈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와 함께 짝을 이루는, 동양의학과 역학에 대한 입문서 격의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9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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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전은정
책을 좋아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
skidoo9
2014.05.03
금빛웃음
2013.07.30
뭐꼬
2013.05.30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조금 더 걸려도 지하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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