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다루는 게 파격적이라고요?” - 김혜나 『정크』
지난 2월 18일, 『정크』 발간 기념으로 김혜나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속속들이 아픈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해 정크족이 떴다!’를 주제로 방송작가이자 에세이스트 김신회 사회로 김혜나 작가와 김조광수 감독이 ‘우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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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으면 드러날 테니까, 드러나면 혼란스러울 테니까, 믿는 거잖아. 믿고 싶은 거잖아. (중략) 너는 어차피 네 눈에 보이는 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믿고 또 만들어 갈 거잖아. 내 대답 따위, 내 현실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거잖아. 네 눈에 드러난 현실만, 바로 그 서류만 믿을 거잖아.”(p.68) | ||
결국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다. 무사유를 택한다. 자신의 생각 혹은 신념을 강화하는 쪽으로만 관심을 둔다. “산다는 것은 타인이 되는 일”이라고 했던 시인 페르날두 페소아의 읊조림은 그렇게 못하는 우리를 타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동성애자 성재의 이야기를 그저 타인의 것으로만 여기거나 ‘정크’라고 규정하는 건 불합리하다. 그것이 지금-여기의 청춘에 너무 근접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됐든, 청춘이 됐든, 이 사회는 너무 쉽게 힘없는 것을 정크처럼 다룬다. ‘속속들이 아픈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해 정크족이 떴다!’는 김혜나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의 주제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은 이유다. 방송작가이자 에세이스트 김신회 사회로 김혜나 작가와 김조광수 감독이 ‘우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김혜나, 청춘의 방황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었나?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학교가 가기 싫었다. 집도 싫고. 그래서 가출하고. 어쩌다 학교 가면 소설만 봤다. 백일장에 나가도 내 딴엔 잘 쓴 것 같았는데, 상도 못 탔다. 항상 상을 받는 것은 1,2등 하는 아이들이었다. 나 같은 애는 뭘 해도 안 되구나, 인정 못 받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꿈도, 희망도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다고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런 학생이었는데, 소설가의 꿈을 놓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면?
어릴 때는 그런 꿈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살았다. 술 먹고 노는 것만 좋아했다. 퇴학당하고, 수능 안 보고 대학도 안 갔다. 알바하면서 매일 술 마셨다. 그러다 죽겠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삶이 이게 뭐지, 난 왜 여기 있지, 질문을 하게 되더라.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하면서 실존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그렇게 고민하다보니 어느 순간 술 먹고 노는 게 재미가 없더라. 술 먹는 것 말고 좋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어릴 때 읽던 소설이 떠올랐고, 소설이 읽고 싶었다. 스무 살이 끝날 무렵,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 책만 읽었다. 하나에 꽂히면 뭔가 끝장을 보는 성격인 것 같다. 소설에 재미를 들여다보니 소설을 알고 싶더라. 소설과 문학에 대해 공부하면 소설을 더 잘 알게 되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스물한 살 끝날 무렵 대학에 갔다. 대학에 가서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문예지도 알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두 살부터 습작하고 투고하고, 2010년 데뷔했다.
『제리』, 『정크』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문제적 작가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파격적이다, 세다는 얘기에 놀랐다. 소설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일상에서 쉽게 보지 못할 수 있으나, 인물은 유약하고 소심하고 존재감 없고, 흔들리는 약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센 이야기라고 생각 못했다. 흔들리고 불안한 내면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에 외적인 그런 평에 놀라운 면이 없지 않았다. 정크 발표 뒤 더 놀라운 것은 미드나 퀴어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많이 접할 수 있고, 동성애 문화가 파격적인 소재라고 생각 못했는데, 인터뷰 하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파격소설이라는 평에 놀랐다.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또 무서워했던 것, 그것은 바로 삶이었다. 죽도록 도망치고 싶지만 죽어도 도망쳐지지 않는 이 현실, 내가 서 있는 이곳, 나, 라는 인간, 나, 라는 인간의 더럽고 구질구질한 한 생애가 두렵고 무서워 이가 덜덜 떨렸다.”(p.175) | ||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내적인 면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제리』는 청춘의 방황을 다루고, 『정크』는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이루지 못한 청춘의 절망을 다뤘는데, 다음엔 청춘의 상처를 다뤄보고 싶다. 끝까지 가보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쉽게 겪는 상처가 아니라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만큼의 상처를 가진 청춘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때로는 자꾸만 화가 났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아닌데, 나 자신으로부터, 내가 속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노력한 만큼 나를 봐 주거나 인정해 주며 받아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럴 때면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와 절망이 찾아들었다.”(p.214) | ||
동성애자, 에이즈보균자, 치과의사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동성애자인 성재라는 인물을 쓰기 위해 채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재라는 생각을 하고 보건소에도 가고 극장에도 갔다. 그 분들에게 들었던 곳에 가서 있어보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내 기분은 어떤지 느끼고 경험했다. 성재 내면의 절망감은 내 이야기였다. 놀다가 대학 가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계속 습작하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계속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소설가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서 다른 길을 생각 못했다. 평생 소설만 쓰겠다고 5년을 살았는데, 1년 동안 패스트푸드 알바하면서 썼는데 등단이 안 되는 거라. 사람들이 비웃고 한심하게 여기는 것 같더라. 그러다 우울증도 앓게 되더라. 부모가 소설 쓴다고 생활비를 대주진 않았다. 부모가 있어도 없다는 생각이 들고, 알바를 해도 직업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애인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남들 다 갖고 있는 게 나는 없는 것 같더라. 그런 것에 자괴감을 느꼈고, 그때 느꼈던 절망감에 힘들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건, 현실에서 나는 남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갈등을 싫어하고 피하는데, 소설은 갈등을 요구하고 폭발시키는 신도 있어야 한다. 갈등이 성재와 민수가 싸우는 장면으로 표현됐는데, 그게 힘들더라. 이렇게까지 써야하나 싶고. 소설을 쓰면서 힘든 건, 갈등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
동성애 등 논란과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취재할 때 그런 말을 많이 하더라. 이성애자들은 더 심한 게 많지 않느냐고. 아동성애 등 문란한 행위를 하면서 이성애자들은 당당하게 다니잖나. 1회성 섹스는 동성애자라서 하는 게 아니잖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오해가 많더라. 책을 통해 내적으로는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고, 취재했던 동성애자들도 응원을 많이 해주더라. 이렇게 드러내서 불편함이나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더 많이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발표해보니 이반 사이에서 비판도 있더라. 동성애자라고 다 여성스럽지만은 않은데, 편견의 3종 세트를 썼다고. 쓰기 전에도 그랬고, 쓰면서도 남성이 여성스럽다는 게 나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도 게이들이 나오는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낸 것뿐이다. 여성성이 남성에게 없는 것도 아니다. 그건 생명력이라고 본다. 동성애자로서 편견이나 차별을 받은 분들은 또 이런 걸 하느냐고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나, 좋은 쪽으로 인식이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남성이 여성스러운 게, 나쁜 건 아니잖나.
김조광수와 김혜나, 동성애를 말하다
1월에 양악수술을 한 덕에 아직 붓기가 가라앉지 않고, 발음이 좋지 않은 게스트 김조광수 감독이 초대 손님으로 등장했다.
『정크』, 어떻게 봤나?
(김조광수, 이하 광) 재미있었다.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이 왜 이래?’하면서 읽었는데, 제목을 왜 그렇게 썼는지 명확하더라. 작가가 한편으로 부러웠다. 제리, 정크 등의 용어를 과감하게 제목으로 써서. 자기 자신감이 충만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오늘 처음 뵀다. 내면에 뭐가 있기에 이런 소설을 썼는지 궁금했었다. 소설은 무척 사실적이었다. 동성애자 삶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을 보고, 자기가 동성애자거나 주변에 동성애자 친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만나보니 내면적 깊이가 겉보기와 다르게 (웃음) 있고, 발랄한 문체로 표현한 것도 부럽더라. 일부 동성애자들이 안 좋은 얘기를 했다고 했는데, 과감하게 다루는 것도 부러웠다. 나는 동성애자라서 과감히 다룰 수 있는데,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의 치부라고 할 만한 것을,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처지라 그렇게 다루기 쉽지 않은데, 부러웠다.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다뤘나.
성재와 민수의 연애담이 나오는데, 나의 짝사랑, 나의 연애이야기가 반영이 됐다. 동성애자라고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같고, 그런 감정을 쓰고자 했다. 감정을 그대로 써서, 성별만 바꾼 거다. 동성애자 감독도 이성애자 연애를 다룰 수 있지 않나.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구분하는 시선이 없으면 좋겠다.
영화제작자 혹은 감독으로서 볼 때, 동성애자 독자로서 볼 때 각각 어떤가?
(광) 다음 영화 시나리오가 안 풀려서 머리가 너무 아팠다. 좀 더 잘 만든 대중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 그런 찰나에 이 소설을 소개받고, 좋으면 각색하겠다며 신이 준 좋은 기회라고 덥석 물었는데, 영화화하기엔 대중적이지 않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고 단순하고 자극적이면서 명확해야 대중에게 각인되는데, 이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잘 만든 예술영화밖에 안 나오겠는 거야. 무척 좋았는데, 상업적인 면에서는 안타까웠다.
동성애자로서는 반가웠다. 동성애자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사는지 모르면, 동성애자라고 하면 패셔너블하고 여성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동성애자들은 그렇게만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거다.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들춰내지 않길 바라는 바람도 있을 텐데, 이성애자가 그걸 들췄을 때의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드러낼수록 아무렇지 않아진다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으려면 자꾸 드러나야 한다. 책이 좋은 사람들은 좋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개 표현한다. 그래야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음도 알고, 동성애자라서 다 멋있는 것도 아니고, 미화하거나 혐오할 필요가 없음도 알 수 있다. 성재를 그리 다뤘다면,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것이었다면 문제가 있다고 느꼈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성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연민과 따듯함이 있더라.
김조광수 감독은 커밍아웃 이후 어떤가.
(광) 커밍아웃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방송에 출연해도 5천만에게 나를 보여준 건 아니잖나. 내가 누군가에게 우호적인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가를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평생을 그런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길 듣는다는 게 상처가 될 때도 있다. 나는 커밍아웃한지 오래라 이젠 상처가 되진 않는다. 5년 전만해도 블로그 댓글 등을 볼 때 상처가 됐었다. 한 번은 누가 쌍욕을 해놨더라. 그 사람 블로그를 찾았더니, 엘레강스 뽀사시 꾸며놓은 여성의 블로그더라. 화가 나서, 어떻게 그런 댓글을 올릴 수 있느냐고 하니까, 왜 이러느냐면서 블로그까지 와서 이럴 필요가 있느냐고. 그러다가 친해졌다(웃음). 이 사람 알고 보니, 자기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데가 없는 거라. 울컥한 마음을 표할 대상으로 날 택한 거였다. 그런 사람임을 아니 안쓰럽더라. 앞으로 욕하라고 하면서도 당신이 욕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줬다. 나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내가 넘어서고 대적해야 할 대상이 아닌 손 잡아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성애자는 때론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성애자라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왜 그리 예민하게 구냐고 할 때가 있듯이. 그런 면에서 동성애자와 여성이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동성애를 인정한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우습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광)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이해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으면 좋겠다. 이해는 불가능하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100%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무 이해하려다보니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해하려 애쓰다가 결국 배제하고 마는. 동성애자들은 그런다.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이 수지한테 왜 그리 목매는 줄 모르겠다고, 옆에 예쁜 납득이가 있는데(웃음). 그렇게 다른 거다. 내 주변에 동성애자가 없다면 자신을 돌아다봐야 한다. 동성애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얘기니까. 이 사회에는 5~10%의 동성애자가 있다. 뉴욕에 게이가 많은 건 게이들이 뉴욕으로 오기 때문이다. 동성애 친화적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줘라. 처음 커밍아웃할 때 이성 친구에게 했다. 퀴어영화를 보고 나면 좋은 이야길 많이 해줬다. 이런 친구라면 동성애자를 받아주겠거니 생각해서 그리 했다. 김 작가에게 앞으로 동성애자들이 편하게 대할 거다. 동성애에 친화적 모습을 보이면, 그동안 내가 못 보던 동성애자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광) 뱀파이어와 암행어사가 나오는 판타지 버디무비 시나리오가 재밌게 나오진 않아서 계속 수정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하겠다고 했는데, 시청광장에서 하고 싶다. 올 가을 시청광장에서 결혼식을 해보려고, 엘튼 존도 못한 것을, 많이 와서 축의금 많이 내 달라(웃음).
(김혜나) 소설로는 청춘 3부작의 끝을 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획은 끝났고, 쓰면 되는데, 그 전에 산문집이 2권 나올 것 같다. 하나는 요가를 하면서 느낀 변화들을 다뤘다. 10대부터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해서 위장 장애가 있다. 요가를 통해서 몸과 마음도 건강해졌다. 요가가 내겐 큰 변화를 많이 줬다. 요가 하면서 느낀 내면의 변화를 담은 요가 에세이가 올해 안에 나오고, 인도에 다녀와서 거기서 만난 사람을 쓰는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독자들이 김혜나 작가에게 묻다
성재 아버지가 잘 나타나지 않는데, 돈만 주고 왔다가고 민수도 자꾸 선물을 사 주더라. 그런 게 사랑의 일부인지, 죄책감인지,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나?
성재가 인식하기로는, 죄의식의 한 부분인 것 같다. 다른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쓰다 보니 그렇게 하는 심정도 이해가 되더라. 성재도 인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알고는 있다. 물질로 표현하는 게 올바른 형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읽은 뒤 몸이 욱신거렸다. 몸살 날 것 같더라. 스물한 살인데, 글 쓰고 싶다. 파격적인 묘사를 잘 못한다. 남이 어떻게 볼까 하는 부담감 때문에. 자신감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두 가지로 돌파했다. 나도 부끄럽고 창피한 게 있었다. 그럼에도 소설이 좋으니, 창피함보다 좋은 게 더 크니 할 수 있었다. 내 얘기냐고 많이 물어본다. 처음엔 내 얘기처럼 읽힌다면 잘 써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나중엔 그냥 인정했다. 부담되고 창피하지 않느냐고 해도 인정하면 창피하지 않다. 내가 나인 게 창피하지 않다. 나이에 따라 극복 단계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인도까지 가서 요가를 하게 된 건가?
이번엔 요가 하러 가는 게 아니고 취재 때문에 간다. ‘오르빌’에 간다. 거긴 삶을 요가라고 생각하더라. 삶이 요가의 한 행위로 보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 모두 요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물론 인도에 요가 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 요가 강사를 하다 보니 요가원과 연결된 아쉬람이 있다. 선배들과 2~3달 수련하고 오기도 한다.
작가상이나 미래상은 무엇이며, 지금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도 낄낄거리면서 웃으며 볼 수 있는 소설을 쓴 게 있다. 아직은 절망을 더 얘기한 뒤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의 모습, 재미있고 웃긴 소설, 따뜻하고 온화한 소설을 쓰고 싶다. 나는 여성성을 되게 좋게 인식하고 좋아한다. 美에 대한 관심도 많고. 갈등 없는 평이하되 따듯한 소설도 쓰고 싶다. 맨 처음 요가를 가르칠 때는 남을 가르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고 잘 안 됐다. 나를 보여주고 내세우려고 했다. 글도 높은 곳에서 보여주리라는 그릇된 욕망 때문에 힘들었다. 요가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위에 올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밑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돼야겠다! 계속 올라가려다보니 길이 안 보이고 길을 잃게 되는 느낌이 있었다. 나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길이 보였다. 소통하고 싶다. 『제리』나 『정크』 모두 주인공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고민이 있었는데, 진심으로 소통하고 보고 느낀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서 이런 것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처럼 요가를 통해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예수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남들 머리 위에 군림하는 선생이 아닌 사랑으로 섬기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20대 중반엔 열정이었다. 포기한 적도 있었다.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1년 정도 안 쓰고 회사도 다녀봤다. 소설 쓰기 너무 힘들고 가시밭길이다. 등단하겠다면 말리고 싶다. 그런데 나는 포기하니까, 안 하는 건 더 힘들더라. 즉자적인 성격이라, 하고 싶은 거 바로 한다. 온몸을 다 던져서 선택한다. 허투루 하지 않는다. 술 먹을 때도 끝장을 본 것처럼 글쓰기도 끝까지 가보려는 욕심이 있다. 그러다 존재가 망가지고 부서지지만 그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각오나 열정, 이런 게 중요한 것 같다.
『제리』와 『정크』를 쓴 세계관이나 철학은 무엇이었나?
나 자신의 내면 탐구가 제일 컸다. 나는 대체 뭐지? 내 안에는 뭐가 있지? 대충 생각하면 발견하지 못한다. 깊이 고민하고 들어가 봐야 안다. 남보다 나부터 알아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내 실존을 발견하고, 내 안의 세계에 항상 집중했다. 나와 내 자신이 분리된 경우가 많다. 일단 진짜 나와 하나가 돼야 남과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사회와도 세계와도 우주와도 하나가 되고. 시발점은 항상 나다. 나와 하나가 되는 과정이 글쓰기에 담기지 않았나 싶다.
“소설을 쓰는 데 있어 나의 화두는 언제나 ‘나’였다. 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를 드러내고 또 감추어 왔다.”(p.257) | ||
- 정크 김혜나 저 | 민음사
『제리』로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가 김혜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정크』가 출간되었다. 『정크』는 김혜나가 3년간 퇴고를 거듭하며 심혈을 기울여 온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정크』는 ‘상실의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포스트 루저’들의 서바이벌 게임이자 크라잉 게임이”라고 상찬했고, 서평가인 로쟈 이현우는 “이 시대 사회적 루저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동시에 정크들의 존재론을 제시한” 작품이라 말하며 “작가의 고투와 함께 한국 소설의 영역이 좀 더 확장되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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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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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새록초록
2013.06.10
뭐꼬
2013.05.30
cocou92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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