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고문 중에 애인과는 뮤지컬 수다
영화는 무섭고 아팠으며 슬펐다. 극중 김종태가 당하는 고문이 객석에도 그대로 엄습했다. 시대가 아팠고, 사람이 아팠으며, 세상이 아팠다. 그것은 통각(痛覺)으로 인한 통증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그럼에도 더 아픈 건, 타인의 고통에 귀 막고 눈 감고 무덤덤한 사회 때문이다.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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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2011년 12월 30일 별세한 김근태 선생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12월 2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1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했고, 이튿날 29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가진 1주기 추도식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았다. 지난 총선과 대선, 고인의 유훈을 받들지 못해 미안함을 표함과 동시에, 그의 명령이 2012년으로 끝나지 않기에 계속 그것을 지키겠다는 다짐이 오갔다. 김근태의 몸은 떠났지만, 김근태의 영혼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 전인 12월 17일, 서울 마포구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도 스크린을 통해 김근태 선생이 살아났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 출간기념 <남영동 1985> 영화관람 GV(저자 김삼웅, 배우 박원상)초대 시간이었다. 영화 속, ‘김종태’라는 이름의 민주주의는 ‘남영동’으로 대변되는 국가폭력(고문)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혔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마의 얼굴을 한 ‘악한’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이다. 국가폭력의 하수인들,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직장 일에 열심이고, 집안을 생각하는 아버지였으며, 국가를 걱정하는 애국자였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그들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었다. 영화를 만나는 내내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고문의 장면이 아니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행하는 말과 행동이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작가 프리모 레비(『이것이 인간인가』)의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인간 괴물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아서 그리 위험하지 않다. 실제로 위험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다.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기계적으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뒷날 김근태는 자신을 체포해온 이 자들에 대해 “무슨 열정에 불타오르는 모습도 아니고 눈빛에도 오직 회색빛의 냉담함,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더군”이라고 회상했다. 그만큼 이들은 외견상 평범한 사람들이었다.”(p.110)
국내의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 이경영(이두한 역-이근안), 문성근(윤사장), 명계남(박전무), 김의성(강과장), 이천희(김계장), 서동수(백계장), 김중기(이계장)가 분했던 안기부 공무원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 중계 소식에 일희일비하고, 집에서는 자상한 가장이며, 애인이 변심할까 노심초사하는 그들이다. 그러면서 직장상사의 명령에 따라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다.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 특히나 이근안은 최근 펴낸 책을 통해 시대가 달려져서 그렇지, 고문하는 것, 애국 행위라고 강변하지 않았던가.
“고문, 그것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과학적이고, 많은 경험을 통해서 정리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문의 시점, 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말 사장급 이상의 회의에서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결정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분위기로 전달되었습니다.”(p.124)
영화는 무섭고 아팠으며 슬펐다. 극중 김종태가 당하는 고문이 객석에도 그대로 엄습했다. 시대가 아팠고, 사람이 아팠으며, 세상이 아팠다. 그것은 통각(痛覺)으로 인한 통증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그럼에도 더 아픈 건, 타인의 고통에 귀 막고 눈 감고 무덤덤한 사회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악마 같은 이들의 온갖 악행, 그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도 방관하는 다수의 사람들 때문이다.” 나도 방관자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악마를 탓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성은 누구나 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이자 성찰이라는 점을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과 <남영동 1985>는 알려주고 있다. 그것을 잊을 때 우리는 다시 고문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할프단 라스무센의 詩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을 지금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몸도 아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라이플의 총신도
벽에 그리운 그림자도
땅거미 지는 저녁도 아니다
희미하게 빛나는
고통의 별들이 무수히 달려들 때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세상 사람들의
눈먼 냉담함이다.
영화는 실화와 얼마나 가까운가?
김삼웅(저자, 이하 웅) 영화의 70%가량은 실화다. 영화의 극적인 장면을 위해 픽션을 가미했는데, 픽션도 누군가가 당했던 사례다. 30년 전, 김근태를 비롯해 민주화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이 이렇게 당했고, 70~80년 전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당했다. 나도 저 정도까지일지는 상상을 못했었는데, 김근태 등 수많은 분들이 저렇게 당했다. 그런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신문과 방송을 도배질하는 동안 김근태는 남영동 인간도살장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절망적인 고문에 시달리고 있었다.”(p.103)
그러나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등에 폭탄을 터트렸던 분을 친일파 경찰들이 무릎을 꿇게 했듯, 70~80년 전이나 20~30년 전이나 비슷한 상황들이 일어났다. 해방 후에는 무임승차한 친일세력이 주역이 됐고, 87년 6월 항쟁이후에는 반독재 투쟁했던 사람들이 희생되거나 몰락한 대신 유신이나 5공 치하 민주주의 유린 세력이 또 다시 득세했다. 한반도, 한, 반도, 한이 많은 반도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오늘 <남영동 1985>를 보면서 김근태 등 민주화 운동가들이 겪은 극심한 고통을 배우 박원상 씨가 정말 리얼하게 연기했다. 그걸 어떻게 견뎠을까, 감동이었다. 김근태 선생이 고문당한 것을 그냥 지나간 역사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젊은 세대들이 알아야 한다. 과거는 흘러간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불의에 저항하고 압제와 싸웠다. 청년들을 조직하고 동지들과 연대하면서 바빌론의 철옹성에 불을 질렀다. 그는 용기 있었고 담력 또한 남달랐다. 무인(武人)의 기질을 갖춰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p.25)
영화 <남영동 1985>
영화 보는 내내 진땀이 나더라. 박원상 씨는 연기하면서 정말 고생했을 것 같다.
박원상(배우, 이하 상) 여러분들이 함께 해줘서 고맙다. 김종태 역할을 맡아서 열심히 버텼다. 이번 영화는 이전에 작업했던 영화와 다른 경험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관객 입장에선,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영화라고 정리하고 있다. 받아들이고 있고. ‘역사는 진보한다’라고 대개 얘기한다. 그런데 올바른 기억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 방향을 잃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을 곱씹어야 하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많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 말고도 많을 것이다.
모든 상업 영화가 불편하고 힘든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순 없지만 상업영화라 해도 가끔은 쓴 약 같은 영화가 필요하다. (이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이 인생 선배로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영화는 많이 내렸는데, 거북이의 경주가 시작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토끼를 이겨야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이 기억을 공유하고 각자의 느낌을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런 영화가 되길 희망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웅) 영화는 김근태 선생이 치열하게 투쟁하다가 십 수 일 동안 남영동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고문당한 것을 다루는데, 실제로는 (고문이) 더 참혹했다. 김 선생은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하고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도 굴하지 않고 싸웠다. 또 1980년 광주학살 후 제도권, 청년, 야당이 침묵할 때 공개적으로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조직해서 전두환 세력과 대결했다. 87년 6월 항쟁은 민청련 등 청년이 포문을 연 것이다.
그 당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잔인한 고문과 같은 것들은 영화로나 접하지, 신문 등에 보도도 안 됐다. 놀라운 것은 고문자들이 고문을 하면서 휘파람을 불고 그랬다. 나치 때도 그랬다. 나치 고문자들이 고문하면서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부르고 애인이나 부인에게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게 더 잔인하다. 그런 비인간적 고문을 하면서 그런 행동을 했다니. 그런 체제,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 박정희 체제, 전두환 체제, 그리고 이명박 체제 등이 그랬다. 민간인을 사찰하고. 김근태 선생도 이명박 체제에서 사찰을 당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이 모든 것이 과거완료형이 아니고 현재형이고 미래형이다.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이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을 고문하고 집단학살하면서 고전음악을 듣거나, 일요일에는 오페라 구경을 가자고 가족과 약속했듯이, 한국의 고문기술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라디오에서 왈츠를 듣거나, 군대 간 아들 걱정, 박봉에 대한 불평,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 문제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평가받는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6백만 명의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악의 평범성’은 히틀러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한국에서도 벌어진 현상이었다.”(pp.111~112)
어제(12월16일) 일본 선거가 끝났다. 만주군관학교 등 만주국을 주름잡은 관료(주. 기시 노부스케)이자 A급 전범의 외손자, 아베 자민당 총재가 총리가 됐다. 만주국과 관련된 어떤 사람(주. 박정희)은 혈서를 써서 일본 군대를 갔고, 장준하 등 누군가는 싸우다가 의문사를 당하거나, 억울한 사람이 간첩, 빨갱이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 그런 것을 우리 후배나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평전을 쓰면서 김근태 선생을 많이 지켜봤다. 그동안 평전만 15~16명을 썼다. 실은 어떤 분도 염두에 뒀었는데, 1991년 신문(조선일보)에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최근에는 인간 이전의 말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자기 삶과 지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확인했다. 구경하고 영화 한 편 보기는 쉽다. 그런데 막상 당한다고 생각해보라. 단순히 관람한 사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려야 한다. 김근태는 연대를 통해 2012년을 점령하자고 했다. 이것은 피맺힌 절규였다.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가치는 개처럼 끌려 다니고 핥을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을 위해 끝까지 싸운 것이다. 김근태 선생이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버리지 않은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
제가 알기로도 김삼웅 선생은 김근태 평전의 연재가 끝나고 끙끙 앓으셨다. 박원상 씨도 영화 찍는 내내 고생하셨는데, 책을 보고 어땠는지 궁금하다.
(상) 평전을 받았는데, 솔직히 아직 다는 못 읽었다. (웃음) 그래도 책을 책상 바로 앞에 놓고 있다. 2012년 <남영동 1985>를 통해 만난 김근태 선생,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굵은 지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가물가물해 질 때마다 책상 앞에 둔 이 평전을 읽으면서 자신을 잡아가도록 하겠다. 고맙다.
10여일 후면 김근태 선생의 1주기다. 독자들이나 영화를 볼 관객, 아직 김근태 선생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어떤 말씀을 전해주고 싶은가.
(웅) 우리는 흔히 독립운동가 하면, ‘별종’인 것으로 생각한다. 풍찬노숙하면서 가정도 버리고, 20~30년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 그런데 막상 그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않고 관심이 없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분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주주의운동을 한 본인은 사명감이랄까, 그것으로 견디는데,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독립운동이나 민주주의를 짓밟아 버리는 세력들이 지금도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걸핏하면 좌경, 용공으로 내몰고 얼마나 많은 양심적 지식인, 노동자, 종교인들을 희생시켰나. 그런 세상을 반복시키지 않기 위해 김근태의 삶을 돌아보고 개인적으로 분노해봐야 방안의 퉁소다. 가족, 동료, 친구 등과 연대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그런 분들의 삶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그런 분들 노력에 무임승차한 사람이다. 50~60대를 설득하고 청년들에게는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김근태 정신을,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지키면서 대한민국을 으뜸가는 문화국가로 만들어가는 것이 김근태의 꿈 아니겠는가.
“혁명가들 중에는 낭만주의자들이 많은 편이다.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속된 이해와 이문을 따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낭만주의자들은 물질적 셈법보다 하늘의 별을 헤고, 호수의 포말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혁명을 꿈꾸게 된다. 반독재민주화운동가 중에는 낭만주의자들이 적지 않았다. 김근태의 심중에도 낭만성이 켜켜이 쌓였다. 학창시절 그는 문학 서적을 끼고 살았다.”(p.107)
(상)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올해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를 통해 연기할 수 있었던, 그래서 선물을 많이 받은 한 해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
- 김삼웅 저 | 현암사
김근태 사후에 출간되는 첫 평전인『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은 일생을 ‘민주화의 길’에 바친 김근태의 삶을 조명한다. 철저한 민주화운동가이자 그 변화세력의 선봉장이었던 김근태가 1994년 새민주당의 부총재로 ‘야당 입당’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까지의 과정과 배경 등을 꼼꼼히 다룬다. 김근태 사후에 출간되는 첫 평전으로, 김근태가 관통해야 했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되살리면서, 그 시대의 한가운데서 ‘따뜻한 투사’ 김근태가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맞섰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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