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당신만을 돌보며 당신을 나의 유일한 연인으로 맞이하겠습니다.” - 헨리 8세의 러브레터
나에게 당신의 부재로 인한 고통은 이미 엄청나며, 내가 받아야 할 고통이 커질 것을 생각하면 거의 견딜 수 없을 지경이지만, 당신의 변치 않을 애정에 대한 굳은 희망으로…
글ㆍ사진 서진
201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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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불린에게

1528년
런던


나의 연인이자 친구여,
나와 나의 심장은 당신의 손으로 넘어가, 당신의 기품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나의 부재 때문에 당신의 애정이 식지 않기를 애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부재로 인한 고통은 이미 엄청나며, 내가 받아야 할 고통이 커질 것을 생각하면 거의 견딜 수 없을 지경이지만, 당신의 변치 않을 애정에 대한 굳은 희망으로…

1528년
런던


당신의 편지의 내용에 대해 스스로 논쟁하며 커다란 고뇌에 빠졌습니다. 그 편지들을 어떤 부분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에게 불리하게 이해해야 할 지, 다른 부분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에게 유리하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대에게 내 온 마음으로 간청하오니, 우리들 사이의 사랑에 대한 당신의 온전한 마음을 내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사랑의 화살을 맞은 지 일 년이 넘도록 당신의 마음과 사랑에서 내 자리를 찾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이렇게 대답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당신을 나의 연인으로 명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연인(mistress)이라는 이름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매우 먼, 흔치 않은 위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나를 평범한 애정으로 사랑한다면 연인이라는 이름이 적절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진실하고 충실한 연인이자 친구로서의 의무를 다하여 당신의 몸과 마음을 주시겠다면, 당신의 매우 충실한 하인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당신의 엄격함이 나를 막지 않는다면),나는 약속하건데 그 이름이 마땅히 당신에게 갈 뿐만 아니라 당신 이외의 모든 이를 내 마음과 애정에서 몰아내고 오직 당신만을 돌보며 당신을 나의 유일한 연인으로 맞이하겠습니다. 부디 나의 이 무례한 편지에 대해 내가 어디까지 무엇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완전한 응답을 주시기를 바라며, 만약 편지로 쓰고 싶지 않다면 어디에서 내가 그 대답을 당신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지 알려 주시면 나는 내 온 마음으로 그 곳에 가겠습니다. 당신을 지치게 할까 걱정되어 줄입니다. 기꺼이 당신의 것으로 남고자 하는 남자가 손수 씀.

서진의 번역 후기


권력을 향한 욕망은 사랑에 대한 욕망과 그 크기가 같을까요? 헨리 8세는 여섯명의 왕비를 갈아치운 것 뿐만 아니라 두 명을 사형시켰습니다. 로마 중심의 카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성공회를 만들었는데 그 원인이,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과 이혼하고 이 편지의 주인공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로마 교황이 이혼을 반대했기 때문이지요. 앤 불린은 캐서린의 시녀였으며 헨리 8세의 정부였던 메리 불린의 동생이었어요. 그래서 왕을 사이에 둔 자매의 이야기는 책이나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앤을 여왕으로 삼기 위해 헨리 8세는 많은 피를 봐야 했지만, 결국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간통죄로 몰아 탑에 가둬 처형했습니다.

종종 왕의 사랑은 정치와 종교 분쟁에 휘둘리게 됩니다. 자신이 왕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는 무척 힘든 일이니까요.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권력을 얻는 쪽이 있고, 피해를 보는 쪽이 있기 때문에 암투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왕의 사랑은 본질이 훼손되고 비극적 결말로 치닫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이 편지만을 뚝 떼어놓고 보면, 비극이 될 그 사랑의 조짐이 애처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영화)
천일의 스캔들(책)
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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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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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

2013.02.27

헨리 8세의 유명한 러브스토리를 <튜더스> 시리즈로 열심히 감상했는데, 결국 목을 댕강 쳐버리긴 했지만 헨리의 앤에 대한 욕망과 열정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뭇여성이 그릴만한 그런 사랑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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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1.31

"기꺼이 당신의 것으로 남고자 하는 남자가 손수 씀." 이 부분이 마음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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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