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대신 세기의 걸작 만들다 - 베토벤, 교향곡 3번 E플랫 장조 ‘영웅’(Eroica)
바야흐로 ‘낭만’의 시대가 ‘에로이카’로부터 열립니다. 물론 당시의 청중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청중에게는 이 낯선 음악이 ‘괴물’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 곡은 생전의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과 더불어 가장 큰 자부심을 가졌던 교향곡입니다.
글ㆍ사진 문학수
201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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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1943~)와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이 내한합니다. 얀손스는 1996년 4월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푸치니의 <라 보엠>을 지휘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적이 있지요. 공연 종료를 7분 남겨놓은 시점이었습니다. 다행히 청중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의사가 응급조치를 취하고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갈 수 있었던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요. 내년에 일흔 살이 되는 그는 당시 얘기만 나오면 껄껄 웃으며 여유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만 아차 했어도 세상과 영영 이별할 상황이었습니다.

심장병을 극복하고 무대로 돌아온 얀손스는 참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2003년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것을 비롯해, 다음해에는 네덜란드의 국보급 오케스트라인 암스테르담 로얄콘세르트 헤보우의 여섯번째 상임지휘자를 맡았지요. 흔히 로얄콘세르트 헤보우를 ‘세계 1등’이라고 언론에서 많이들 얘기합니다. 하지만 음악에서 ‘1등’이라는 수치는 참으로 애매한 것이기 때문에, 그저 ‘세계 정상급’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얀손스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오케스트라 두 곳을 이끌며, 내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젊어 보입니다. 얼굴도 미남이고 표정도 환해서 여성팬들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지휘자로서의 얀손스는 매우 깐깐한 모양입니다. 현재 런던필하모닉에서 연주하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정민은 한때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단원으로도 활동했었는데, 그가 저한테 이렇게 귀뜸한 적이 있습니다. “얀손스 선생은 완벽주의자예요. 연습을 지독하게 시켰다가 실전에서 확 풀어주는 고수 중의 고수죠.”

그런 얀손스가 작년에 바이에른 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러시아음악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하이든 연주로 칭찬받고 있지요. 그러나 요즘 제일 관심이 가는 작곡가는 베토벤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에게 끌립니다. 베토벤은 특별합니다. 철학적이고 매우 깊이가 있습니다.” 얀손스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난 10월 22일에 빈 무지크페라인 잘에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해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지요. 이번에 서울에서 연주할 곡 중의 하나도 바로 그 3번입니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출처: 위키피디아] >



루트비히 판 베토벤(독일어: 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월 17일 ~ 1827년 3월 26일)은 독일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거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이며, 작곡가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 가운데에는 〈교향곡 3번〉,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교향곡 9번〉,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 등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자, 이제 본론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향곡 3번’은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겁니다. 베토벤은 32살이었던 1802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한적한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상황이 아주 나빴습니다. 몇년 전부터 골칫거리였던 귓병이 날로 악화돼 아예 ‘치유불능’ 판정을 받았던 것이지요. 당시의 베토벤은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난치병과 창작의 고통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차라리 죽음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이때 쓰여집니다. 두 동생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편지 형식의 유서였습니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

다행히 베토벤은 죽지 않았습니다. 유서는 동생들한테 전달되지 않은 채 책상 속에 잠들어 있다가 베토벤 사후에 발견되지요. 그리고 베토벤은 죽음대신, 이른바 ‘걸작의 숲’으로 성큼 들어섭니다. 그 문을 활짝 여는 곡이 바로 교향곡 3번 ‘에로이카’라고 할 수 있지요. 베토벤 이전의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커다란 규모, 격렬하게 부딪히는 긴장과 이완이 듣는 이를 가슴 벅차게 만드는 곡입니다. 연주시간 약 50분에 달하는 이 장대한 교향곡은 마치 ‘음악이 가야 할 길이 바뀌었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베토벤은 귀족의 비위를 맞춰주던 산뜻한 선율과 형식을 가차 없이 파괴했고, 그리하여 음악은 그 자체로 묵직한 존재감을 얻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하는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지요.

바야흐로 ‘낭만’의 시대가 ‘에로이카’로부터 열립니다. 물론 당시의 청중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청중에게는 이 낯선 음악이 ‘괴물’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 곡은 생전의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과 더불어 가장 큰 자부심을 가졌던 교향곡입니다.

이 곡에 ‘에로이카’(영웅)라는 부제가 붙게 된 연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부연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대한 기대와 흠모가 베토벤뿐 아니라 당시의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일반적 태도였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특히 괴테의 나폴레옹 숭배는 유명하지요. 당시는 프랑스혁명의 후반기였습니다. 포병장교 출신으로 왕정 쿠데타에 성공한 나폴레옹이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유럽 지식인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검증된 정설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보관돼 있는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라는 글자를 북북 지워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베토벤의 ‘영웅상(像)’은 또 있었습니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끝없는 형벌을 겪어야 하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야말로 베토벤의 원형적 영웅상이었습니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새로운 도덕과 질서’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공화주의자로서의 이상과 일치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베토벤은 ‘에로이카’를 쓰기 전이었던 1800년,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라는 발레음악을 작곡하는데, 바로 이 음악에 그 유명한 ‘영웅 모티브’를 등장시킵니다. 가장 마지막 곡인 ‘제16곡’에서 모습을 드러내지요. 베토벤은 이 모티브를 교향곡 3번에도 그대로 가져옵니다.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마지막 4악장에서 포르테시모의 강렬한 서주가 터져 나온 직후, 저음의 현악기들이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하는 첫번째 주제가 바로 그 ‘영웅 모티브’입니다.


교향곡 3번 ‘에로이카’는 그렇게, 인류를 위해 고난을 뚫고 전진하는 ‘남성적 영웅상’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1악장 첫머리에서 터져 나오는 두 개의 화음부터 아주 단호한 느낌을 전해주지요. 이어서 저음의 현악기들이 잔잔하면서도 엄숙한 선율을 첫번째 주제로 제시하고, 클라리넷이 두번째 주제를 부드럽게 연주하다가 바이올린이 이어받습니다. 현악기들이 짧은 음형을 부서지는 잔물결처럼 묘사하다가 다시 그것들이 커다란 흐름으로 합쳐지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렇게 분산과 통합을 반복하면서 매우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악장입니다.

느린 템포의 2악장은 그 유명한 장송행진곡이지요. 마치 관을 메고 행진하는 듯한 걸음걸이를 현악기들이 느릿하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휘자 쿠세비츠키가 바로 이 두번째 악장을 조곡(弔曲)으로 연주했지요. 3악장은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 현악기들이 짧은 음표를 약간 수다스러운 느낌으로 연주하다가, 다른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점점 더 크고 무거워지는 진행을 선보입니다. 특히 악장의 중간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호른의 선율, ‘빰~ 빠밤’ 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 바랍니다. 4악장을 들을 때는 앞서 얘기했던 ‘영웅의 모티브’를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잔잔함과 강렬함을 반복하면서 다이내믹한 종결부로 치달려가는 ‘베토벤의 힘’이 느껴지실 겁니다.

p.s. 오토 클렘페러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EMI)은 품절 상태입니다. 추천음반 목록에 올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프란츠 브뤼헨, 존 엘리엇 가드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의 지휘자들이 내놓은 당대연주(원전연주) 계열의 녹음들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해서, 이번 추천음반 목록에서는 제외했습니다.


칼 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61년/DG

가장 권위 있는 ‘에로이카’ 해석가로 군림했던 푸르트벵글러의 웅혼하고 격정적인 연주에 도전장을 던졌던 음반이다. 한마디로 말해, 해석의 객관성을 시종일관 견지하면서, 약간 투박한 분위기의 테이블에 ‘에로이카’를 올려놓고 있다. 연주의 표정은 무뚝뚝하다. 어떤 이들은 칼 뵘이 묘사하는 영웅의 모습이 어딘지 맥 빠져 보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운드도 메마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푸르트벵글러가 보여줬던 과감한 해석, 호방한 낭만성과는 거리가 있는 연주다. 칼 뵘의 템포 설정은 비교적 느린 편에 속하지만, 이 녹음에서는 의외로 잰걸음의 연주를 선보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럼에도 이 음반이 오래도록 필청반으로 자리해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77년, 1984년/DG

[1977년 녹음]
[1984년 녹음]
음악을 듣는 이유가 쾌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면 카라얀의 ‘에로이카’가 제격이다. 생전의 카라얀은 이 교향곡을 여러 차례 녹음했지만, 그 어떤 것에서도 ‘영웅의 드라마’라는 특유의 컨셉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77년과 1984년 녹음이 전체적 완성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강약과 속도의 대비를 한껏 끌어올리면서 드라마틱한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다. 카라얀의 음반답게 ‘음향’이라는 측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어떤 이들은 카라얀이 보여주는 ‘지나치게 매끄러운 이음새’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적어도 ‘에로이카’를 연주할 때의 카라얀은 과도한 레가토를 적절히 다스리면서 음악의 본질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한번쯤 거쳐야 할 음반임에 분명하다.


파보 예르비, 도이치 캄머필하모니 브레멘/2005년/RCA

비교적 근래에 ‘에로이카’를 녹음한 지휘자들로는 리카르도 샤이, 파보 예르비,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이 떠오른다.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지만, 오늘은 파보 예비의 날렵한 연주를 권한다. 왕년의 거장들이 지휘한 ‘에로이카’에 익숙한 감상자라면, 1악장 첫머리를 듣는 순간 빠른 템포에 약간 당황할 수도 있겠다. 최근의 베토벤 교향곡 해석이 과거의 ‘낭만 과잉’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해석가들은 당연히 원전연주 계열의 지휘자들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정점에 달했던 그 흐름은 이제 현대악기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보 예르비가 지휘한 ‘에로이카’가 바로 그 지점을 잘 보여준다. 소규모 편성의 캄머오케스트라와 함께, 리듬을 한층 강조하면서 간결하고 산뜻한 연주를 펼쳐낸다. 음악의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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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영웅 #Eroica #에로이카 #마리스 얀손스 #카라얀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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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선

2014.08.30

베토벤이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겪었다는 건 알았는데, 이 곡이 그 고통 속에 만들어졌다니 더욱 감탄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계속 알아갈수록 더 매력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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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날자

2014.01.09

근데 가장 권위 있는 ‘에로이카’ 해석가로 군림했던 푸르트벵글러의 웅혼하고 격정적인 연주는 왜 추천 음반에 없는걸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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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날자

2014.01.09

제 소니 노트북에 기본음악으로 들어있던 에로이카 3악장ㅋ 덕분에 아주 오래오래 자주자주 들어서 친구 같아요ㅋ 그 시대 청중들에겐 괴물로 들렸을 거라니 놀랍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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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