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은 남자, 최후의 선택은… - 『레오파드』
사람은 누구나 겉보기와는 다르며, 인생은 솔직한 배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거짓말과 기만이라는 말. 그리고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살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말…
20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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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을 잡기는 했지만, 해리 홀레는 모든 것을 잃었다. 지독한 현실에서 그나마 그가 신뢰하고 마음을 줄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붕괴해 버렸다. 그런 점에서 스노우맨의 목적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홀레에게 최악의 상황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고통과 죽음은 인간이 겪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니까. 인간이 겪는 최악의 상황은 굴욕이야....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빼앗기는 굴욕, 추락, 수치.
요 네스뵈의 『레오파드』는 전작 『스노우맨』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잃고 사라진 홀레를 찾아 카야 솔레스가 홍콩으로 향한다. 다시 연쇄살인이 일어났고 상사인 군나르 하겐 경정이 홀레의 도움을 원한다고 전했지만 관심조차 없던 그를 돌아오게 한 것은 아버지의 병환이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돌아온 홀레에게 이상한 적이 나타난다. 미국으로 치면 FBI라고 할만한 조직 크리포스의 수장인 미카엘 벨만.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비열하고 악랄한 짓도 서슴치않는 벨만의 목적은 차후 연쇄살인 등의 강력 범죄들을 강력반이 아닌 크리포스에서 도맡는 것. 이번에 일어난 연쇄살인을 해결하여 크리포스의 실력을 입증하려는 벨만은 홀레가 돌아온 날부터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두 건의 연쇄살인 희생자들은 기묘한 방법으로 죽었다. 입 안에는 24개의 상처가 있었고, 자신의 피에 익사했고, 콜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동일한 방법으로 죽은 희생자 간의 관계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홀레가 돌아오자마자 국회의원인 마리트 올센이 교수형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점점 희생자는 늘어난다. 벨만은 갖은 방법으로 홀레의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강력반의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크리포스로 흘러 들어간다. 홀레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홀레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넌 용감한 아이였다. 해리. 어둠을 무서워했지만, 어둠 속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지.
『레오파드』는 ‘해리 홀레’ 시리즈의 8번째 책이다. 『스노우맨』부터 소개되었기 때문에, 홀레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스노우맨』과 『레오파드』를 통해서, 홀레의 가장 어두운 면이 무엇인지, 바닥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었다. 무려 781쪽에 이르는 『레오파드』는 홀레를 더욱 깊은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사람은 누구나 겉보기와는 다르며, 인생은 솔직한 배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거짓말과 기만이라는 말. 그리고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살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말.
홀레는 도망치려 한다. 아니 도망쳤다. ‘상처를 받으면 숨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리고 해리 홀레는 분명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받은 홀레는 노르웨이로 돌아와, 다시 상처를 받으며 자신의 인생과 직면한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어디서부터 스스로 파괴하기 시작했는지 되짚어본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믿었던 이들의 배신을 통해서. 하지만 홀레가 원한 것은 따스한 애정이나 관심 같은 것이 아니다. 그가 노르웨이로 돌아와야만 했던 것은, 그 모든 것의 근원을 응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은 같아. 모든 것은 사랑에서 시작하지. 미움은 그저 동전의 이면일 뿐이야. 난 네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네 엄마의 죽음 때문이 아닐까 늘 생각했다. 아니면 네 엄마에 대한 사랑 때문이거나.
『레오파드』는 홀레의 근원만이 아니라, 그 안에 나오는 많은 이들의 과거를 파고들어간다. 어릴 때의 학대와 폭행 때문에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무감해진 남자도 있고, 억눌린 분노를 한순간에 터트리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도 있다. 타인에 대한 복종과 질투, 뒤틀린 마음을 폭력으로 풀어내는 남자 역시. 『레오파드』는 하나의 범인을 쫓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쇄 살인은 기괴하고 복잡하게 남자들의 어두운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홀레는 자신의 바닥까지 다시 한 번 추락한다.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레오파드』의 해리 홀레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절망한다.
그녀가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지, 모든 게 얼마나 빨리 변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이 파괴될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것이 인생이다. 파괴되는 과정, 시초의 완벽함으로부터의 붕괴. 갑작스럽게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냐, 천천히 무너질 것이냐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졸이는 상황이다. 서글픈 생각이었지만 해리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홀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빛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잡아야 하는 악당, 범죄자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어둠에 맡기지 않는다.
경찰관들의 비겁한 충성심. 나중에 자신이 힘들 때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배타적인 동지애 따위는 경멸해. 날 대신해 복수하고, 증언하고, 필요하면 내 잘못을 보고도 못 본척 하는 동료 따위는 딱 질색이야....하지만 내가 가진 건 경찰뿐이야. 그들이 내 동족이지.
카야는 홀레에게서 소년 같은 모습을 본다.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믿고픈 마음이 여전한 소년. 홀레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은, 결국은 그의 동료들이다. 해리 홀레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신뢰하는 과학수사 요원인 비에른 홀름의 말로 알 수 있다.
그 인간은 늘 문제만 일으킨다. 괴팍한데다, 일할 때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른다. 술에 취하기라도 하면 단연코 위험인물이다. 하지만 취하지 않았을 때는 정직하다. 일단 그가 나타나면 일이 간단히 해결되고, 그걸로 ‘너 나한테 빚졌어.’라고 생색내지도 않는다. 짜증나는 적수지만 좋은 친구다. 좋은 사람이다. 빌어먹게 좋은 사람.
『레오파드』는 야심찬 작품이라기보다, 홀레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비워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끔찍한 범죄들을 통해, 심연을 들여다 본 죄로 피폐해지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가 재생하기 위한, 길고도 고독한 여행. ‘금이 가며 갈라지는 벽, 그를 산 채로 잡아먹는 눈, 숨을 쉴 수 없다는 공포감, 검은 돌멩이를 향해 떨어질 때 느꼈던 그 순백색 공포. 그는 너무 외로웠다.’ 하지만 그 수난을 통과하면서, 홀레는 성장한다. 다시 세상에서 도망쳐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레오파드』는 해리 홀레를 만나기 위한 긴 여행의 완결편이다.
고통과 죽음은 인간이 겪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니까. 인간이 겪는 최악의 상황은 굴욕이야....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빼앗기는 굴욕, 추락,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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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레오파드』는 전작 『스노우맨』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잃고 사라진 홀레를 찾아 카야 솔레스가 홍콩으로 향한다. 다시 연쇄살인이 일어났고 상사인 군나르 하겐 경정이 홀레의 도움을 원한다고 전했지만 관심조차 없던 그를 돌아오게 한 것은 아버지의 병환이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돌아온 홀레에게 이상한 적이 나타난다. 미국으로 치면 FBI라고 할만한 조직 크리포스의 수장인 미카엘 벨만.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비열하고 악랄한 짓도 서슴치않는 벨만의 목적은 차후 연쇄살인 등의 강력 범죄들을 강력반이 아닌 크리포스에서 도맡는 것. 이번에 일어난 연쇄살인을 해결하여 크리포스의 실력을 입증하려는 벨만은 홀레가 돌아온 날부터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두 건의 연쇄살인 희생자들은 기묘한 방법으로 죽었다. 입 안에는 24개의 상처가 있었고, 자신의 피에 익사했고, 콜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동일한 방법으로 죽은 희생자 간의 관계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홀레가 돌아오자마자 국회의원인 마리트 올센이 교수형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점점 희생자는 늘어난다. 벨만은 갖은 방법으로 홀레의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강력반의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크리포스로 흘러 들어간다. 홀레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홀레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넌 용감한 아이였다. 해리. 어둠을 무서워했지만, 어둠 속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지.
『레오파드』는 ‘해리 홀레’ 시리즈의 8번째 책이다. 『스노우맨』부터 소개되었기 때문에, 홀레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스노우맨』과 『레오파드』를 통해서, 홀레의 가장 어두운 면이 무엇인지, 바닥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었다. 무려 781쪽에 이르는 『레오파드』는 홀레를 더욱 깊은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사람은 누구나 겉보기와는 다르며, 인생은 솔직한 배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거짓말과 기만이라는 말. 그리고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살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말.
홀레는 도망치려 한다. 아니 도망쳤다. ‘상처를 받으면 숨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리고 해리 홀레는 분명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받은 홀레는 노르웨이로 돌아와, 다시 상처를 받으며 자신의 인생과 직면한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어디서부터 스스로 파괴하기 시작했는지 되짚어본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믿었던 이들의 배신을 통해서. 하지만 홀레가 원한 것은 따스한 애정이나 관심 같은 것이 아니다. 그가 노르웨이로 돌아와야만 했던 것은, 그 모든 것의 근원을 응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은 같아. 모든 것은 사랑에서 시작하지. 미움은 그저 동전의 이면일 뿐이야. 난 네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네 엄마의 죽음 때문이 아닐까 늘 생각했다. 아니면 네 엄마에 대한 사랑 때문이거나.
『레오파드』는 홀레의 근원만이 아니라, 그 안에 나오는 많은 이들의 과거를 파고들어간다. 어릴 때의 학대와 폭행 때문에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무감해진 남자도 있고, 억눌린 분노를 한순간에 터트리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도 있다. 타인에 대한 복종과 질투, 뒤틀린 마음을 폭력으로 풀어내는 남자 역시. 『레오파드』는 하나의 범인을 쫓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쇄 살인은 기괴하고 복잡하게 남자들의 어두운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홀레는 자신의 바닥까지 다시 한 번 추락한다.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레오파드』의 해리 홀레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절망한다.
그녀가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지, 모든 게 얼마나 빨리 변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이 파괴될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것이 인생이다. 파괴되는 과정, 시초의 완벽함으로부터의 붕괴. 갑작스럽게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냐, 천천히 무너질 것이냐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졸이는 상황이다. 서글픈 생각이었지만 해리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홀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빛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잡아야 하는 악당, 범죄자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어둠에 맡기지 않는다.
경찰관들의 비겁한 충성심. 나중에 자신이 힘들 때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배타적인 동지애 따위는 경멸해. 날 대신해 복수하고, 증언하고, 필요하면 내 잘못을 보고도 못 본척 하는 동료 따위는 딱 질색이야....하지만 내가 가진 건 경찰뿐이야. 그들이 내 동족이지.
카야는 홀레에게서 소년 같은 모습을 본다.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믿고픈 마음이 여전한 소년. 홀레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은, 결국은 그의 동료들이다. 해리 홀레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신뢰하는 과학수사 요원인 비에른 홀름의 말로 알 수 있다.
그 인간은 늘 문제만 일으킨다. 괴팍한데다, 일할 때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른다. 술에 취하기라도 하면 단연코 위험인물이다. 하지만 취하지 않았을 때는 정직하다. 일단 그가 나타나면 일이 간단히 해결되고, 그걸로 ‘너 나한테 빚졌어.’라고 생색내지도 않는다. 짜증나는 적수지만 좋은 친구다. 좋은 사람이다. 빌어먹게 좋은 사람.
『레오파드』는 야심찬 작품이라기보다, 홀레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비워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끔찍한 범죄들을 통해, 심연을 들여다 본 죄로 피폐해지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가 재생하기 위한, 길고도 고독한 여행. ‘금이 가며 갈라지는 벽, 그를 산 채로 잡아먹는 눈, 숨을 쉴 수 없다는 공포감, 검은 돌멩이를 향해 떨어질 때 느꼈던 그 순백색 공포. 그는 너무 외로웠다.’ 하지만 그 수난을 통과하면서, 홀레는 성장한다. 다시 세상에서 도망쳐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레오파드』는 해리 홀레를 만나기 위한 긴 여행의 완결편이다.
- 레오파드
- 요 네스뵈 저/노진선 역 | 비채
스노우맨 사건 이후, 손가락과 연인을 한꺼번에 잃은 형사 해리. 사표를 던지고 홍콩의 뒷골목에서 집요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던 그에게 여형사 카야가 찾아온다. 스노우맨을 모방한 연쇄살인범이 다시 나타나 노르웨이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는 뉴스, 스노우맨 사건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암시, 그리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 해리는 자신에게 지워진 무게를 느끼고 오슬로 행을 선택한다. 그러나 수사는 연이어 난항에 빠지고…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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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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