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4,000원이면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돈으로는 라면에 김밥 한 줄이 전부다.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지금이라도 집을 구입하지 않으면 평생 구입할 수 없을 것 같아 평생을 채무자로 남아있을 각오를 하고 집을 구입했건만 동네 부동산 앞에 붙어있는 아파트의 시세는 매일 떨어져간다. 이 모든 것이 월급쟁이들은 알 수도 없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럽발 재정위기’ 때문이란다. 그 이후로 어려워진 것이란다. 한국에 사는 직장인들이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지구는 둥그니까’ 그러려니 한다.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는 4,151만 명으로 경제활동인구 중 약 4분의 1이 넘는 인구가 월급을 받고 살아간다. 이들은 정부의 가장 모범적인 ‘납세자’이자 기업의 중요한 ‘인력자원’인 동시에 ‘소비’의 주역이고 금융기관의 가장 성실한 ‘고객’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큰 걱정 없이,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월급쟁이가 되는 것을 택한다.
적어도 지금의 30~40대 세대에게는 월급생활자가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굳이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 지금처럼 꿈꾸기 어렵거나 허황된 바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도대체 남는 것이 없다”는 월급쟁이들의 푸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월급생활자들의 월급을 일컬어 유리지갑이라고 한다. 얼마를 받는지 사실상 공개돼 있어 직장인들의 절세나 절약을 비웃기나 하듯이 언제든지 꺼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원천징수영수증을 몇 장이나 출력해 어떤 기관에 제출했는지 생각해보라. 굳이 정부가 아니더라도 금융기관, 카드회사, 보험회사 등 우리의 월급 내역은 세상에 공개돼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모르는 체 해줄 뿐이다.
월급생활자의 급여는 자영업자나 기타 전문직처럼 세금을 신고하지 않아도 쉽게 집계가 되니 정부는 상대적으로 세금 징수가 쉽고 전체 근로자 수가 1,200만 명이나 되어 조금만 올려도 거둬들이는 액수가 크다. 또 자영업자보다 안정적이며 수입이 예측 가능하다. 그리고 조세저항이 적기 때문에 세금을 걷기에 가장 매력적인 계층이기도 하다. 큰소리치는 재벌이나 기업에게 세금을 올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직장인들은 매달 급여를 받으면서도 4대보험을 포함해 8~9가지가 되는 공제내역을 신경쓰고 살기란 피곤한 일이다. 그저 지난 달과 비교해서 몇만 원이 빠져있으면 “또 뭐가 올랐네!” 하며 투덜대고 금세 잊어버리는 것이 직장인들의 일상이다.
회사가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때 국가는 근로자가 낼 세금을 미리 받아놓는다. 이를 ‘원천징수’라 한다. 국가 입장에서는 근로자에게만 세금 신고를 맡겨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세금을 신고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때문에 1,200만 명이 넘는 근로자의 세금 신고 책임을 근로자가 다니고 있는 각 회사에 맡겨놓고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질구레한 세금을 직접 챙기지 않아도 되어 신고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일 수도 있다.
반면 사업자의 경우 매달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을 번 이듬해 5월에 한꺼번에 세금을 납부한다. 물론 이러한 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국가는 근로자뿐 아니라 사업자에게도 6개월에 한 번씩 세금을 걷는다. 하지만 사업자는 스스로 세금을 신고하기 때문에 미리 세금을 계산해 필요한 시점에 딱 맞추어 세금을 낼 수 있다. 미리 더 납부하고 나중에 받거나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근로자는 월급날이 되면 꼬박꼬박 세금을 낸다.
직장인들이 2월에 받는 연말정산을 13월의 보너스라며 좋아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매달 세금을 더 많이 내고 한참 후에 되돌려받는 것이다. 국가는 직장인이 미리 낸 세금에 대해 이자를 계산해주지도 않는데 말이다. 13월의 보너스 잔치에서 예외가 되어 환급금은커녕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것은 조금 떼이고 나중에 더 내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간의 이자를 챙기는 셈이 되는 것이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
- 월급전쟁 원재훈 저 | 리더스북
이 책은 비단 월급을 받는 직장인뿐 아니라 거대한 경제구조 틀 속에서 당하고만 사는 대부분의 시민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왜 많은 회사가 인센티브제도를 선호하는지, 우리의 퇴직금에 관한 여러 가지 셈법, 한국 대기업만의 봉건적 특징, 한국 대학들의 캠퍼스 장사 등 직장인의 삶에 밀착해 여러 경제현상의 숨은 속셈과 원리를 재미있게 설명한다. 또 직장인들이라면 알아야 할 4대보험의 속성과 퇴직금, 은퇴 후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프랜차이즈에 관한 허상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각 장의 끝에는…
원재훈
대한민국 경제생태계에서 기업의 재무상태를 감사하고 돈의 흐름을 감시하는 공인회계사로 일하며 지난 10여 년간 곱창집 사장님부터 대기업 회장님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장사하는 많은 분들을 고객으로 만나왔다.
다대기
201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