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 J. R. R. 톨킨 <호빗(The Hobbit), 1937>
톨킨은 출판사가 원하는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글을 썼다가 뒤엎고 중단했다가 다시 쓰기를 숱하게 반복해야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완전히 포기하려던 순간에 C. S. 루이스의 격려를 받고 나서야 다시 힘을 낸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끝에, 톨킨은 마침내 새로운 호빗 이야기를 완성했다…
글ㆍ사진 실리어 블루 존슨
201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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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어느 여름 날, J. R. R. 톨킨은 시험지를 채점하는 중이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로 지낸 몇 년 동안 학생들의 과제를 검토하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그 일이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수북이 쌓인 시험지를 심드렁하게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 한 장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실수로 섞여 들어간 것 같았다. 빽빽하게 채워진 종이들만 눈이 빠지도록 들여다보던 그에게, 우연히 발견한 텅 빈 백지는 마치 시원한 청량음료와도 같았다. 그는 즉시 펜을 들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무작정 빈 종이에 적었다.

‘땅속 어느 굴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

호빗이 뭔지, 그게 왜 땅속에서 사는지도 몰랐다. 그저 단 한 줄의 문장일 뿐. 하지만 톨킨은 그 문장 하나를 단서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어떤 명칭을 대하면, 그 명칭에 얽힌 이야기가 함께 떠오르곤 한다. 결국 나는 호빗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얼마 후 톨킨은 노스무어 로드를 굽어보는 창가, 바로 그 책상에 앉아 수많은 백지를 가득 채웠다. 쓰면 쓸수록, ‘호빗’이라는 땅딸막한 친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호빗은 그와 닮은 점이 무척 많았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교수이면서도 학문적인 틀에 갇히거나 고리타분한 연구 따위에 빠져들지 않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1958년 10월에 톨킨이 고전학자인 데보라 웹스터 로저스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올 12월에 개봉 예정인 <호빗 : 뜻밖의 여정> 中
[출처] 예스24 영화

‘정말이지 나는 체격만 빼곤 완전히 호빗이야.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일구는 논밭과 정원, 나무를 사랑하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지. 냉동 식품이 아닌 맛좋고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 심지어 요즘처럼 흐린 날에도 번듯하게 조끼를 갖춰 입지 않나.’


호빗이란 종족이 이처럼 작가의 특징을 많이 닮았듯이, 그들의 삶의 터전인 ‘샤이어’도 자연스럽게 작가가 좋아하는 환경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다섯 살 때 영국 우스터시어의 작은 마을 세어홀로 이사한 후 톨킨은 주로 바깥에서 뛰어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어홀의 비옥한 들판과 완만한 언덕들을 누비며 자란 톨킨에게 그곳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었다. 어릴 적 신나게 탐험놀이를 즐기던 세어홀의 자연환경을 떠올리며, 톨킨은 호빗들이 울퉁불퉁한 언덕 밑에 굴을 파서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을 구상했다. 심지어 소설의 주인공인 빌보 배긴스의 집 이름 ‘백엔드’는 톨킨의 고모가 소유한 우스터시어의 농장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인 것이다.

‘호빗’이라는 소재가 작가의 머릿속에서 번듯한 소설로 자라나는 과정은 첫 문장을 떠올렸을 때만큼 즉흥적이고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언젠가 그가 “내 이야기는 마치 한 톨의 먼지를 감싸고 눈송이가 피어나듯 서서히 정교하게 자라나는 것 같다.”고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도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겹 한 겹 층을 쌓아가며 성장했다.




결국 톨킨은 그 여름날 이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실질적인 집필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몇 년 동안 그가 제대로 기록한 것이라곤 샤이어 너머로 펼쳐지는 세계의 일부인 ‘트로르’의 지도뿐이었다. 하지만 톨킨은 내내 호빗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게 분명하다. 집필을 재개했을 때는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이어졌기 때문이다. 소설 《호빗》은 수수께끼 같은 첫 문장이 탄생한 지 거의 6년이 흐른 뒤인 1936년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소설을 완성한 후, 톨킨은 원고를 정돈하여 마지막 장(章)을 제외한 나머지를 타자기로 깔끔하게 베껴 옮겼다. 소설의 결말은 아이들에게만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원고는 그냥 백지로 비워두었다. 사실 그가 소설의 내용을 들려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초기에 이 소설을 접하는 행운을 누린 사람들은 톨킨이 속했던 문학회 ‘잉클링스(Inklings)’의 회원들이었다. C. S. 루이스가 창단한 잉클링스의 회원들은 ‘이글 앤드 차일드’라는 술집에서 자주 모였다고 한다. 톨킨은 이 술집에서 동료 작가들에게 아직 초고 상태인 소설의 일부를 들려주곤 했다.

잉클링스 회원이 아니지만 《호빗》의 원고를 읽을 기회를 얻었던 소수의 지인들 중에 톨킨의 오랜 제자였던 일레인 그리피스가 있다. 그리피스는 이 소설을 읽자마자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작품임을 알아봤다. 당시 그녀는 런던의 출판사 조지 알렌 앤드 언윈의 의뢰로 고대 영시 <베어울프>를 현대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피스는 자신을 만나러 옥스퍼드에 들른 담당 편집자 수전 대그널에게 《호빗》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피스의 얘기에 혹한 대그널은 톨킨을 직접 만나 작가의 허락 하에 미완성 원고를 받아 들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원고를 탐독한 후, 대그널은 완성된 원고가 있어야 출판사 측에 이 소설을 출간하자고 설득할 수 있다면서 톨킨에게 마지막 장을 덧붙여주길 요청했다. 하지만 완성된 원고를 받고서도 그녀의 상사인 스탠리 언윈은 곧바로 출간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열 살 난 아들에게 그 원고를 읽게 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내기에 앞서 독자의 반응을 예측해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에, 언윈의 아들은 자주 ‘원고 검토자’ 역할을 했다. 열 살 소년은 톨킨의 원고를 흥미진진하게 읽어치웠고, 그 후로 《호빗》의 출간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언윈의 아들은 원고 검토의 대가로 1실링을 받았다. 아이 입장에서야 재미있는 이야기도 읽고 용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경험이었겠지만, 이 대작을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한 공의 대가로 1실링은 아무래도 너무 박했던 게 아닌가 싶다. 《호빗》은 1937년 9월에 출간되어 같은 해 12월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언윈은 독자들이 이 소설의 속편에도 기꺼이 돈을 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톨킨은 호빗이 등장하는 속편을 써달라는 언윈의 열렬한 요청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출간된 소설 속에 이미 호빗의 광대한 세계를 모두 담아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샤이어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톨킨은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호빗의 속편이 아닌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을 집필했다. 《실마릴리온》의 배경은 호빗이 사는 세상과 같은 곳이지만, 여기에는 이 매력 만점의 종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언윈은 흔들리지 않았다. 톨킨이 가져온 새 원고를 가차 없이 거절하고 호빗에 관한 소설을 쓰라고 다시 한 번 권했다.

작가도 자신의 고집만 내세울 수는 없었다. 톨킨은 출판사가 원하는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글을 썼다가 뒤엎고 중단했다가 다시 쓰기를 숱하게 반복해야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완전히 포기하려던 순간에 C. S. 루이스의 격려를 받고 나서야 다시 힘을 낸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끝에, 톨킨은 마침내 새로운 호빗 이야기를 완성했다.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시작한 원고였지만, 막상 완성된 이야기는 작가 자신도 놀랄 만큼 훌륭했다. 탈고 후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마주하게 된 수많은 일들이 나에겐 전부 경이로웠다.”고 고백했다.




[ 반지 원정대 ]
[ 두 개의 탑 ]
[ 왕의 귀환 ]



새 작품은 엄청난 분량의 대하소설이었고, 다루는 내용의 범위도 《호빗》을 훌쩍 뛰어넘었다. 언윈은 학술서적 저리 가라 할만한 이 엄청난 소설을 3부작으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반지 원정대》에서 《두 개의 탑》과 《왕의 귀환》으로 이어지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이렇게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J. R. R. 톨킨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언어학자, 문헌학자다. 189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재임했다. 대표작으로는 《잃어버린 이야기들》, 《베어울프》, 《호빗》 등이 있으며, 《호빗》에서 영감을 얻어 판타지 소설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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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실리어 블루 존슨 저/신선해 역 | 지식채널

작가들의 문학적 영감에 대해 늘 궁금해하던 편집자 실리어 블루 존슨은 어느 날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소설의 첫 줄이 탄생하기 이전의 일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우아한 사교계 명사를 창조하기 위해 밟았던 과정을 직접 따라가면서, 그녀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문학작품을 품은 작가들의 반짝이는 영감을 캐내보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작가들의 공통점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호빗 #톨킨 #반지의 제왕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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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l

2014.12.21

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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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23

2012.12.30

오 호빗의 탄생이라.. 흥미로운 기사네요 같이 소개해주신 책도 정말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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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10.04

호오, 호빗의 탄생에 이런 뒷이야기가. 역시 대작인만큼 쓴 기간도 길엇네요. 10년이라. 그래서 작가는 위대하다라고 하는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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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어 블루 존슨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영미문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출판사 랜덤하우스와 그랜드 센트럴 퍼블리싱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비영리 문예지 「슬라이스Slice」를 공동 설립, 운영하면서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평소 많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어떻게 문학적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는지에 관심이 많았던 존슨은 《댈러웨이 부인》, 《오만과 편견》,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등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을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에 오롯이 담아냈다. 현재는 유명 작가들의 독특한 글쓰기 기술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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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 R. 톨킨

20세기 영미문학의 10대 걸작으로 더 타임즈가 선정한 『반지의 제왕』의 작가이자 C.S.루이스 등과 함께 영국 3대 판타지 작가로 꼽힌다. 자신이 쓴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지어 내 들려 주기를 좋아한 자상한 아버지이다. 영문학 교수이자 언어학자인 그는 판타지의 세계에 언어의 고찰과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1892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버밍햄의 킹 에드워드 학교에서 중세 영어와 고전에 대한 소양을 키웠으며 '요정'들의 언어를 만들면서 그의 언어학적 재능을 개발해 냈다. 옥스퍼드 대학 엑시터 칼리지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톨킨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군에 복무하였다. 그는 전쟁 기간 중 무훈으로 이름을 떨쳤던 부대에서 근무하였고, 회복 기간 동안 그는 신화와 민간 전승에 기반하여 스스로 기획한 우화의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뒷날 『실마릴리온 Silmarillion』으로 알려진 신화적 연대기 『잃어 버린 이야기들 The book of lost tales』 을 집필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쟁이 그의 작품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즉 그가 가혹한 20세기의 전쟁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판타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잠시동안 [뉴 잉글리쉬 딕셔너리]사에서 근무하면서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과 관련한 일을 했고, 1920년에 그는 잠시 리즈 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5년 뒤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왔다. 1925년,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선임된 뒤 문헌학자로서의 명망을 쌓아 가던 톨킨은 그의 신화학적 상상력을 좀 더 가정적인 주제와 연관시켜 보라는 가족들의 주문에 따라 뒷날 책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호빗 the Hobbit』 이야기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아이들을 위해 써 두었던 이 책은 그의 데뷔작으로, 처음에는 그저 가족들을 위한 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어른 독자들까지도 매료시키게 됨에 따라 출판사에서 후속작을 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톨킨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삼부작 대서사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게 된다. 가족 모두가 개신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신자로 살았던 그의 종교관과 전공인 문헌학은 그의 작품세계를 창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고대 영어로 쓰여진 『베오울프』와 중세영어로 쓰여진 초서 시대의 영어를 자주 강의하였는데 북유럽의 언어 중에는 핀란드어와 핀란드 민족의 대서사시인 『칼레발라(Kalevala)』 등을 통해 이들 언어와 유사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종족들의 신화적 세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반지의 제왕』에서 새로운 세계로 완벽하게 구성되며, 이후 판타지 영역의 틀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대학시절 옥스포드 대학 내의 문학작품을 읽고 낭독하는 모임인 잉클링스의 멤버로 C.S. 루이스와 매우 각별했다. 이 모임은 그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12년에 달하는 창작기간 내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55년 반지의 제왕3권을 모두 출간한 후, 1959년에 톨킨은 교수직에서 퇴임 하였고 1965년에는 미국의 에이스 북스에서 해적판을 발간하면서 소위 미국 사회에서 『반지의 제왕』 캠퍼스 숭배 현상이 일어났다. 이후 톨킨의 작가로서의 명성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반지의제왕>은 당대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인용되고 언급되는 불후의 명작으로 매년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삽화가 곁들여진 달력이 각국에서 간행되며 이 책을 위한 사전이 따로 출판되는 등 대중적 인기는 물론, 그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는 판타지 문학의 고전이다. 평생 동안 쏟아 부은 지식과 창작욕, 그리고 완벽주의에 기인한 끊임없는 수정으로 인해, 톨킨이 창조한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치밀하고 정확하다. 그는 방대한 이야기를 엮어 나가면서도 세부 사항들에까지 완벽한 정확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특히 연대기와 지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창조한 수많은 인물들 또한 선과 악이 공존하며 대치하는 존재의 이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정교함을 바탕으로 하는 리얼리티로 인해 이 작품은 상상을 초월한 가공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닌 실재했던 역사의 한 장으로까지 인식되며 독자들의 무한한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톨킨의 추종자들은 그의 작품을 흉내 내려 했지만 그는 언어학자로서 신화와 서사시를 연구하고, 북유럽의 언어와 잃어버린 게르만 언어와 같은 레벨의 언어를 창조해 나간 것이다. 그가 일생 동안 가장 열중한 일은 고대의 신비가 담긴 아름다운 엘프어를 창작하는 것이었다. 북유럽 신화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반지의 제왕』의 상상력? 원천은 북유럽 신화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옛 문헌에서 처음 발견한 단어의 의미를 탐구하듯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엘프어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법한 어형 변화를 유추하여 차츰 언어학 체계를 세워나갔다. 그 중 하나가 '벨렌과 루시안'이다. 톨킨이 창작신화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고 그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었다. 애처가였던 톨킨은 아내와 함께 묻힌 묘비에 "루시안, 에디스 메리 톨킨(1889~1971) / 벨렌, 존 로날드 로웰 톨킨(1892~1973)" 이라고 새겨 넣었다. 사후에 『반지의 제왕』의 앞 이야기 격인 『실마릴리온』이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에 의해 묶여져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