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이 이뤄졌다면, 정말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운명 같은 사랑에 관한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은 찰스 디킨즈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손꼽히는 소설이다.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실제 사건, 역사적 격동기에 벌어지는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니…
글ㆍ사진 김수영
201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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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운명 같은 삼각관계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운명 같은 사랑에 관한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은 찰스 디킨즈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손꼽히는 소설이다.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실제 사건, 역사적 격동기에 벌어지는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니. 매력적인 플롯이 아닌가. 다만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무대 위에 어떻게 표현될지, 한국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큰 기대와 조금의 미심쩍은 마음으로 극장 안에 들어갔다.

“가만히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당해야 못 참겠다고 할까.” “싸울 때가 됐다”라고 노래 부르는 무대는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혁명의 전조. 변화의 추동이 강렬하게 무대를 감싸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은 변화 직전의 설렘, 두려움, 역동적인 느낌을 무대에 안겨준다. 돈 많고 땅 가진 귀족들은 빈민가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길거리에서 빈민가의 아이를 치고서도 자기 마차를 걱정하고는 지나간다. 무대를 긴장시키는 불만이 팽창되어 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쪽에서는 새로운 사랑이 싹터간다. 프랑스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던 마네뜨 박사의 딸 루시가 런던에서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가 찰스 다네이를 만나게 된 것.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의 악질 귀족의 조카이지만, 선량하고 친절한 신사다. 그는 프랑스에서 루시를 만나, 함께 런던으로 망명한다. 악질 귀족은 자신의 조카를 골탕먹이기 위해 자신의 조카에게 프랑스 첩자라는 누명을 씌운다. 이때 알코올 중독에 빠진 방탕한 변호사 시드니 칼튼이 재치 있게 음모를 파헤쳐내고, 드디어 세 사람이 만나면서 운명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내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이 루시라는 런던 아가씨는 인형 같은 외모에 천사 같은 마음씨를 지녔는데, 시드니 칼튼이라는 나쁜 남자의 마음을 선함으로 단숨에 녹여버린다. (뭐라고 말해도 긍정적이고 밝은 웃음으로 화답해, 결국 웃고 만들게 마는, 루시의 ‘나쁜 남자 길들이기’는 배워둘 필요가 있다.) 시드니 칼튼은 루시의 상냥함에 감화되고, 사랑에 빠져 이윽고 하늘의 별들이 나만을 위해 반짝이는 것만 같은 황홀경에 빠진다. “어둔 날들은 안녕. 좀 더 나은 삶을 살겠어”하고 각오하는 순간, 시드니 칼튼의 비극이 시작된다. 루시가 다네이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뒤늦게 눈뜬 순수한 사랑은 질 줄을 모른다. 한 번 빛을 본 사람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순수한 사랑의 황홀경을 맛본 시드니칼튼은 루시의 결혼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비뚤어지지 않고 좌절한 채로 그녀 곁을 맴돌며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보살핀다. 루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로, 그녀의 가족이 되어 함께 지낸다. 그러다 프랑스 대혁명이 벌어지고, 다네이의 죄 없는 하인들 친구들이 감옥에 투옥된다. 이를 참지 못한 다네이가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루시 가정에 어려움이 닥치고, 시드니 칼튼은 그녀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어 고뇌하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자명한 행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걸까?




루시가 결혼한 이후 시드니 칼튼은 슬픈 사랑 노래를 부르는데, 이 대목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유일한 꿈이 이루어졌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겠지” 그 순간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모든 꿈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뭉게뭉게 피어오른 것이다.(지금 나올 때가 아니야. 아직 공연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때 그 첫사랑이 이루어졌다면? 그때 희망했던 학교에 들어갔었다면? 그때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수한 가정법의 질문들. 아무렇지 않게 닥쳤지만, 지나고 나니 꽤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그 순간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 일이 정말 이루어졌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겠지. 시드니 칼튼의 사랑이 이뤄졌더라면. 그는 정말 루시를 사랑해줬을 텐데. 시드니 칼튼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착실하게 구원됐을 텐데.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며 돈도 많이 벌고 살았을 텐데. 오래오래. 왜 인생은 그렇게 자명한 행복을 쉽게 주지 않는 걸까. 눈앞에 좋은 길, 좋지 않은 길이 분명할 때도 가차 없이 랜덤 패를 돌리는 것일까.

답은 쉽다. 삶은 1인칭이라는 나 한 사람의 시점에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내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일이 벌어지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수많은 마음이 동시에 작동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됐으면 참 좋을 텐데” 하는 나의 가정법은 언제고 승률이 낮다. 결국 따져보면 내 삶은 내가 기대했던 일이 대부분 이뤄지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았고, 오래 점찍어 두었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고, 워킹 홀리데이도 알아만 봤지 떠나지 못했으며, 나를 휘몰아치게 한 사람을 만나서 어느 순간 꽉 꼬여버린 나날들을 건너왔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 일은 모두 나쁜 일이었나?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좋은 것 역시 누릴 수 없었을 텐데? 아마 인생이 끝날 때까지 내가 겪은 일들이 좋은 일이었다, 나쁜 일이었다 확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온 별빛이 나만을 위해 쏟아지는 찬란한 순간을 맛보지 못했다면




여기서부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결말을 이야기해야 하니, 공연을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잠시 판단하고 읽어 내려가시기를. 지금의 나와 다르게 시드니 칼튼의 삶은 무대에서 끝을 본다. 그는 루시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서, 자신에게 사랑의 빛을, 가족의 따뜻함을 일깨워준 그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 그렇다면, 시드니가 루시와 사랑에 빠진 것은 나쁜 일일까? 시드니가 사랑을 깨달은 사건은 나쁜 일일까?

온 별빛이 나만 위해 쏟아지는 그 사랑의 찬란함을 맛보지 않은 나로서는,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그 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무대와 책장을 넘어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과연 그 순간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시드니 칼튼은 그녀의 행복을 대신해 죽음 앞에 섰을 때, “이것이 이제껏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그 외로운 순간, 그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 보았던 쏟아지는 별빛을 다시 본다. 그때를 기억하며 그는 행복하게 떠난다.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순간은 없기 때문일까. 루시와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 지상에서는 불가능해서 미련이 없는 걸까? 수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더는 내 삶의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을 때, 그러니까 죽음의 순간 앞에서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게 될 것이다. 좋은 일은 흐뭇하게, 후회되는 일은 가슴을 치면서 떠오를 것이다. 나에게는 과연 시드니 칼튼이 죽음까지도 위로받았던 그런 찬란한 순간이 있었던가? 혹시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어야 한다면, 나에게 ‘별들이 나만을 위해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느낌’은 언제 받을 수 있을까?(역시 더 오래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지금의 생활 속에서 그런 경험이 가능할까?


어쩌면, 지금의 이야기가 최선인지도




사건은 벌어진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이름을 붙이는 것만이 우리의 몫이다. 이뤄지지 않은 일들은 가정법 속에서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사실 시드니 칼튼이 루시와의 사랑을 이뤘다면, 행복하고 유능한 변호사가 될 가능성은 딱 50퍼센트다. 다시 알코올 중독이 도져서 술을 먹다가 사고를 칠 수도 있고, 술집에서 칼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나 역시 마찬가지. 첫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마냥 좋을까? 아마 첫사랑 그 애와 그때 오해 없이 잘 지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다투고 헤어졌을 확률이 높고, 내 생활을 뒤죽박죽 헝클어 놓았던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심심할 때마다 꺼내보는 이런 추억도 없이 밋밋한 일상이 이어졌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어쩌면 (확언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지금의 이야기가 최선이인지도 모른다. 지난날, 그 간절한 일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말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평생 몸부림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있다니. 아직 시드니 칼튼이 봤던 그 빛을 못 봐서 그런 가보다. 결국,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까닭은, 이 일그러진 에피소드를 엮어 최선의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 끝난다면(으아!) 못해 본 일과 안 해본 일들이 서러워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될지도. (뭣보다 아직 그 빛을 보지 못했으니까)

“내 유일한 꿈이 이루어졌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겠지” 그랬을 거다. 하지만 지금보다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 인생은 또 어느 정도 달라졌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으니 지금부터 잘해볼 일이다. 하지만 아마도 시드니 칼튼은 꿈을 이룬 걸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사랑했으니까. 그리고 결국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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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프랑스 혁명 #찰스 디킨즈 #뮤지컬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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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작가

2013.02.26

꿈이 이뤄졌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꿈을 꾸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인생이 달라 지는 거 아닐까요? 자기 갱신을 위해 노력하는 순간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 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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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8509

2013.02.06

정말 한참이나 말을 잃었던 뮤지컬. 다시 본다고 해도 그 감동을 찾을 수 있을까 두려운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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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h3870

2012.12.15

몇 번을 관람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공연... 배우분들의 열연이 작품을 더 아름답게 만든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에 시드니가 부르는 I can't recall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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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