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소리를 들려주던 그녀를 우연히 만나다 - 플라멩코 수업일지
수업을 청강하고 돌아오는 길에 트리아나 교Puente de Triana를 건넌다. 세상 어디든 영원한 사랑과 믿음을 소망하는 인간의 마음은 공통적이라는 것을 말해 주듯, 다리 난간에 여러 개의 다양한 열쇠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흔적으로 매달려 있다. 강 건너에는 현재 해군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황금의 탑이 보인다. 다리 중간쯤 지나가다가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글ㆍ사진 채국희
201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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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받는 중간에 나도 욕심만큼 늘지 않아 다른 선생님을 찾아갈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사벨 바욘의 수업을 청강해 보기 위해 아침 수업이 끝나고 강을 건넌다.

1969년 세비야에서 태어난 이사벨 바욘Isabel Bayon은 5세부터 무용을 시작해서 17세에 플라멩코 무용수로 데뷔했다. 플라멩코와 스페인 전통무용 외에도 발레, 현대무용 등을 전공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공연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무용수이다.
그녀의 「열린 문La Puerta Abierta」이라는 공연은 2009년에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에서도 올려진 바 있다. 여기서 열린 문이란 불가사의한 마력, 영감, 상상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초자연적 입구 즉, 자유를 향해 열린 문을 가리킨다. 세비야 플라멩코 비엔날레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09년 2월에 열린 뉴욕 플라멩코 페스티벌에서는 전석 매진이 되었던 공연이기도 하다.


찾아가는 길이 조금은 멀다. 대성당과 담배공장을 지나 마에스트란자 극장 앞의 건널목을 건너 오로 탑을 오른쪽에 두고 과달키비르 강 위의 다리를 건넌다. 이 장소들은 세비야를 찾은 여행자들이라면 모두 빼놓지 않고 둘러보는 명소인데, 나는 지금 현지인들이 유적지나 명소를 그저 일상의 풍경처럼 스치고 지나가듯 익숙하게 걷고 있으니 새삼 신기하다.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은 참으로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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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바욘의 ‘아도스Ados’라는 학원은 내가 묵고 있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45분 정도 걸린다. 걷기에는 꽤 먼 거리이지만 세비야에 온 이후로 먼 거리도 걸어서 다닌다. 안달루시아에서 안다르andar(걸어다니다/헤매다)하기.

소심 길치답게 이곳저곳 골목길을 돌다가 드디어 도착했다.
선글라스를 벗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작은 체구지만 단단한 몸매의 매력적인 여인이 문고리를 먼저 잡는다.

“Buenos Dias!”(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며 그녀를 다시 한 번 보고는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문」이라는 플라멩코 공연을 했었던 그녀. 나에게 안달루시아의 바람소리를 들려주었던 바로 그 이사벨 바욘이었다. 우린 그렇게 그녀의 ‘학원 문’ 앞에서 만났다. 튀김 봉지에서 생선 튀김을 꺼내 맛있게 먹으며 그녀는 몇 초 사이에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가 사무실로 들어간다. 확실히 춤을 추는 사람들은 무대에서보다 평상시에 좀 작아 보인다. 에너지가 완전히 몸에 녹아서 가득 찼을 때의 그들은 극장을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존재감을 갖는 데 비해서 말이다.

다행히 그곳 직원은 영어를 할 줄 안다. 초급Basico 수업과 만똔Manton 수업 그리고 파루까Farruca 수업을 보기로 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다부진 얼굴 표정을 하고 이사벨 바욘은 손뼉(팔마스)으로 음악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알레그리아스의 박자를 모두 숙지하는지 학생들과 맞춰보고 그 날 익힐 동작들을 시작한다.

알레그리아스aleglias는 까디스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된 플라멩코 장르 중 하나이다. 12박으로 되어 있으며 깐띠냐스cantinas라 불리는 장르에 포함된다. 기쁨이라는 뜻의 알레그리아스는 경쾌한 리듬으로 연주되는 음악으로, 좀 더 경쾌한 리듬은 주로 춤을 위해 사용되고 조용한 리듬은 노래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녀는 오디오로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가끔 본인이 직접 깐떼(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그 목소리가 깐따오라Cantaora(플라멩코 여자 가수)로서도 손색이 없다. 10여 명의 학생들이 헤매면 다시 처음부터 설명하고 어디에서 동작을 끝내야 하는지 아는가 보기 위해 끝나는 곳에서 멈추게 한다. 이때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그 포즈보다는 이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조언도 해준다. 수업 내내 유머를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지도자로서도 훌륭하다는 생각을 한다.

1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이어서 만똔 수업이 이어졌다. 숄을 이용해서 추는 춤이다. 커다란 만똔의 수술이 엉키지 않게 아름다운 팔동작으로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춘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무대 위에서 물 컵과 같은 작은 소품을 다루는 것도 수십 번의 연습이 필요하듯 춤에서 소품을 이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수술이 엉키는 일들이 몇 번씩 이어졌다. 만똔에 이어 파루까 수업이다.

대부분의 플라멩코 음악은 스페인 남부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파루까Farruca의 경우에는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남성적이고 드라마틱한 춤과 음악으로 ‘남성 플라멩코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장르이긴 하지만 전설적인 플라멩코 무용수인 카르멘 아마야Carmen Amaya에 의해서 여성 무용수들도 바지를 입고 파루까를 추기 시작했다.


수업을 청강하고 돌아오는 길에 트리아나 교Puente de Triana를 건넌다. 세상 어디든 영원한 사랑과 믿음을 소망하는 인간의 마음은 공통적이라는 것을 말해 주듯, 다리 난간에 여러 개의 다양한 열쇠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흔적으로 매달려 있다. 강 건너에는 현재 해군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황금의 탑이 보인다. 다리 중간쯤 지나가다가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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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신뢰 또한 중요한 것이겠지.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그리고 스승이 누구냐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곳에서 수업을 듣는 대신 연습실을 빌려 연습 시간을 더 늘리기로 마음먹는다. 다음에 오면 이사벨 바욘의 수업 또한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좋은 수업을 청강한 뿌듯함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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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 | 드림앤(Dreamn)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위해 뉴욕, 안달루시아의 도시들, 마드리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 채국희의 시선과 사색은 그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자유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플라멩코 #이사벨 바욘 #스페인 #안달루시아 #세비야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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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여신

2012.08.30

얼마전 마이클센델의 붐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뜨거워졌는지 생각이 납니다.
당연히 좋은 스승아래에서 열심히 하는 제자가 더 훌륭하겠죠..그런데 대부분 자신이
뛰어나면 그렇게 좋은 스승이 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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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8.14

이왕 저런 분에게 배운다면 그냥 청강보다 제대로 배우는 게 좋을 거같은데. 그런데 플라멩코라는 거 학원이 따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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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2012.07.31

카르멘 그리고 플라멩고. 이 이국적인 무언가에 빠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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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국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