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상을 통해 첫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 놓은 김이윤 작가의 작품은 불시에 찾아온 죽음 앞에 떠나는 엄마, 그리고 남겨질 여고생 딸이 직면하게 될 두려움과 맞서는 과정을 풀어내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늦은 오후 창비 인문카페에서 마련된 김이윤 작가와의 만남은 작가가 준비한 뜻밖의 선물로 더욱 특별하게 시작했다. 자신의 첫 장편소설 독자들에게 건네진 선물은 다름 아닌 노란 장미꽃. 작품의 주인공 ‘여여’가 엄마에게 화해를 청하는 의미에서 선물하는 노란 장미는 사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했다. 장미를 받고 자리에 앉는 독자들의 눈빛에는 더욱 더 기대감이 감돈다. 김이윤 작가 역시도 아직은 낯선 독자와의 만남이 흥분으로 다가 오는 듯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첫 인사를 건넨다.
“우리가 이런 자리에 올 때는 뭔가를 얻어가고 싶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런 기대를 다 채워드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 자연의 선물을 받아 가면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까 싶어 갖고 왔어요. 그래도 꽃을 받으니 기분이 괜찮으시죠?”
“아직 10대 아이를 키우고 있어 새 학기 참고서를 사러 서점에 갔더니 제 책이 있더라고요. 그 곳에 제 책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어요. 20대 초반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했었는데, 아줌마의 생활이라는 게 뻔 하잖아요. 감정이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붙들면서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어요.”
소설은 픽션이라지만, 작가의 감성과 직ㆍ간접적 경험이 녹아든 만큼 또 완전한 허구라고 할 수는 없다. 김이윤 작가 역시도『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통해 은연 중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작업을 거쳤다. 기본적으로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작품의 얼개라는 점에서 그렇고 암에 걸린 엄마를 떠나보내는 딸의 이야기라는 것 역시도 작가의 삶과 꽤 일치하는 부분이다. 유쾌하게 시작해 눈물을 쏟기도 하고, 다시 웃음으로 마무리 된 작가와의 만남. 그 현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의 이야기이자 딸의 이야기
방송작가라는 삶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녀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구성하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김이윤 작가는 대학생이 된 딸과 10대인 아들의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주며 습작을 이어왔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게 된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역시도 큰 딸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생일에 맞춰 선물을 하기 위해 슨 작품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인 여여 역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것도, 여여의 말투 중간 중간 실제 딸이 쓰는 몇 마디를 숨은 그림처럼 넣어놓은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러나 정작 딸이 바라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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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여여의 모습 안에 실제 딸의 모습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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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때 선물로 이 작품의 초안을 처음 받았을 때 딸은 앞부분만 슬쩍 보고 자긴 오글거려(?) 안 읽겠다고 하더군요(웃음). 늘 그랬어요. 제가 직업상 어쨌든 책을 읽어야 할 일이 많은데, 딸은 책 읽는 엄마가 싫다는 말을 하곤 했죠. 커가며 나이에 맞는 글을 써줄 때면 ‘이런 것 쓸 시간에 나랑 더 놀아줘’란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당선작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딸 팔아서 상 받으니 좋수’라고 하더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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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 정말 여여와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여여 역시도 엄마와 시간을 바랬잖아요. 그러면서도 그로 인해 적절한 거리감도 있었고, 작가님과 따님의 관계도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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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제가 딸에게 매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한편으로는 열성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어서 쿨 한 척 포장하려는 심리도 있었고요(웃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저의 경우 어머니가 모든 것을 간섭하는 분이셨거든요. 상처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제가 컸을 때 어머니께서 제게 ‘난 네가 하늘의 별을 딸 줄 알았다’고 말씀하신 부분이에요. 그 말을 듣고 ‘실망을 드렸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그만큼 어머니는 제게 많은 것을 쏟으셨다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또 한편으로 엄마의 지나친 열성은 아이 역시 힘들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적당히 거리는 두고 싶었는데 제 딸은 오히려 엄마의 역할을 많이 원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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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시작에서 큰 일, 엄마의 암 선고가 있습니다. 이후 시간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인데, 작가님의 경우 어머님의 이야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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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는 60세가 안되어 돌아가셨어요. 제가 서른세 살 무렵이었죠. 물론 암이었고요. 그……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최대 3개월은 사실 수 있다고 했는데 결국 두 달이 조금 안되어 돌아가셨죠. 저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너무 억울했죠. 그게 늘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이 작품을 쓰면서 반복하고 울고…… 했어요. 그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어떤 기사에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 썼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누가 누구를 감히 위로할 수 있겠나 싶어요. 제 경우는 억울했던 마음을 글로 일기 쓰듯하며 풀었던 면도 있어요.
미련처럼 부여잡은 글쓰기의 꿈
딸을 위한 선물이었던 이야기를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한편의 소설로 완성해 세상에 내 놓은 이유를 작가는 ‘상을 받고 싶어서’라며 너무도(?) 솔직하게 답했다. 더 이상 격려나 칭찬을 해 줄 대상이 없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유난히 상 받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말이 오히려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 미련처럼 놓지 않고 생활 속에 간간히 이어온 꿈을 이룬 자의 변으로 치자면 오히려 소박할 정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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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책 한권 정도는 쓰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요. 작가님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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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핑계죠. 어쨌든 뭔가를 계속 잡고 있고 싶다는…… 그 직업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그냥 아줌마로 끝나고 싶지 않은 욕구도 있었겠죠. 이상하게 우리 세대는 그런 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나이가 들면서 그런 중압감은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느낀 세대 같아요. 교육학과를 졸업한 입장에서 아이들과 뭔가를 만들어 같이 해보려고 했던 과정 중에 하나였어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 동화처럼 같이 읽고, 아이들의 생일이나 어린이날을 목표로 짧은 이야기를 지어 써보려고 하는 것이었어요. 제 딸의 말처럼 그 시간에 아이들과 놀았으면 정서적으로 훨씬 더 잘 자랄 수도 있었겠죠(웃음).
자녀들이 싫어하는 음식이나 나쁜 버릇 등도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설득하려고 했다. 특히 둘째의 경우가 그랬다. 지금은 보통 아이와 다름없지만 다섯 살까지 말문이 트이지 않아 속을 태우게 했던 아들…… 엄마로서 초초함이나 두려움은 말할 수 없었지만 작가는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을 이어나갔다.
둘째 아이는 제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잠시 떨어지는 것도 못 견뎌 울었어요. 모든 게 발달이 늦으니까 대여섯 살이 되어도 그것은 고쳐지지 않았죠. 그래서 만든 이야기가 ‘우리 집에 누가 사나’였어요. 우리 집엔 바퀴벌레도 살고, 모기도 살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죠. 그것은 결국 효과를 봤어요. 그 다음부터 쓰레기를 버리러 가도 울지 않았거든요(웃음). 물론 반복을 해서 이야기를 해줘도 안됐던 것들도 많아요. 사실 엄마의 욕심이었죠.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못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좋은 엄마인 척 하고 싶었던 거예요.
독자와 나눈 대화
김이윤 작가의 이번 작품은 작가 스스로 딸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을 번갈아가며 쓴 듯했다. 작가는 그런 작업을 통해 실제 엄마로서 자신과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입장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수많은 독자들 역시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엄마 혹은 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작가와 독자들이 나눈 질문과 대답들, 그 속에 녹아 있는 애틋함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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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이번 작품을 쓰면서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감정들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을 듯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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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저는 결혼하기 전날 집 마루의 괘종시계가 새벽 4시를 칠 때까지 잠을 못 이뤘어요. 대체로 저는 누우면 바로 잠드는 체질인데, 학력고사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죠(웃음). 부모가 되면서는 굉장히 두려웠고요. 아기가 잘 생기지 않아 좀 늦게 첫 아이를 가졌죠. 어쩌면 부모가 되길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지금도 사실 아이들의 눈치를 보게 되요. 제가 잘 어지르는 편이거든요(웃음). 또 둘째는 공격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엄마 메뉴는 참 일관성이 있어’라고 말하곤 해요. 그럴 땐 좀 미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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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여가 대학에 가기 전에 엄마를 떠나보내는데, 실제 작가님은 어른이 된 딸과 어떤 것을 공유하고 싶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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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글쎄요. 작품 속에서 엄마는 여여가 자라는 것을 보고 싶어 했죠. 대학까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연애도하고 차이기도하고 그러다 결혼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어요. 실제로 전,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웃음). 독자들께서 딸과 나누고 싶었던 것을 말씀해주시면 참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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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작품을 읽으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당시 직면했던 두려움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저는 사실 경험해 보지 못해 아직 모르거든요. 작가님은 딸에게 어떻게 전하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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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모든 사람은 혼자라고 하잖아요. 제 작품도 그런 생각 속에서 글이 진행된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두려움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함, 그런 것들이 뭉뚱그려져서 만들어진 것이죠. 그런 두려움에 대해 제 딸은 스스로 결정했으면 해요. 인사를 한다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지나가 본다는 생각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외면하겠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요.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작가를 보며 보통의 어머니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 엿보였다. 오히려 작품 속 여여가 나이 들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나이와 상관없는 작가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유난히 마음을 밝혔던 시간이 끝나고 작가는 다시금 환한 미소를 짓는다. 독자들은 그 미소를 한 손에 든 노란 장미꽃에 담아간다. 향기는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김이윤 저 | 창비
『완득이』부터 『위저드 베이커리』, 『싱커』, 『내 이름은 망고』에 이르기까지 매회 주목받는 작품들을 출간하며 우리 청소년문학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 온 창비청소년문학상의 다섯 번째 수상작.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상실의 경험을 통해 더욱 단단하게 성장하는 여고생 여여의 이야기로, 담담하면서도 당차게 시련을 이겨 내는 여여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황정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천사
2012.05.29
phk1226
2012.05.14
'상실'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성숙'의 원천이 되지요~ 그 과정을 어떻게 풀어나가셨을지 궁금합니다.
zzx8
2012.05.14
당연히 공짜구요
▒▒ bg50.go.h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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