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감귤 농사 짓기, 그 황홀함에 대하여… - 서울에서 귀농한 이현수 씨 부부
하루하루를 쫀쫀하게 보일 정도로 성실히 살아가는 것,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현재에 충실한 날들, 그리고 그 날들이 모여 인생이 되어나가는 과정을 그들은 몸소 체험 중이다. 힘들고 서툴지라도 이렇게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두 사람을 갑자기 마구 응원해 주고 싶어진다.
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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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이현수 Age : 40대 초반 Job : 해피귤 감귤 농장 농부 Since : 2010년 8월 In Seoul : 늘 숨이 턱까지 막힐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10년 차 직장인 In Jeju : 1차 산업인 감귤농사가 주는 원초적인 즐거움에 매료된 농부 | ||
서른 즈음부터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던 이현수. 그런 마음은 서른아홉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가 대리에서 과장, 팀장으로 순탄한 직장생활 10년 차를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늘 앞날에 대한 불안에 시달려온 그는 어리숙한 사회초년생 시절을 지난 이후부터 백도 절도 없는 자신이 출세와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딱히 그럴듯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경쟁사회에서 한발 물러나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사람들을 야심 없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지레 치부해 버리는 세상에 맞설 용기가 그에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10년을 벼른 끝에 제주도 작은 시골마을로의 귀농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것. 감귤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을 하겠다는 그들의 갑작스러운 결심을 남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현수와 그의 아내 김현정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더 늦기 전에 지금의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만 더는 바랄 게 없었다.
자료 수집과 현지답사를 통해 오랫동안 귀농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또 달랐다. 무작정 ‘귀농’을 하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어떻게 먹고살지, 무엇을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판단은 아직 세우지 않은 상태였던 것. 일반적으로 준비를 다 끝내놓은 후 정착지를 정하는 게 순서였지만 그들은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는 정도였으니까.
“농사보다는 관광이 주수입원인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귀농을 반기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경쟁자가 많아지게 돼서 그런 거 같아요. 그래도 전 운이 좋았던 게 때마침 귀농농촌교육1기 출범이 보름 뒤 있을 예정이라서 그 덕을 톡톡히 봤어요.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그전에는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그렇게 서울생활을 서둘러 정리하고 엉겁결에 농부로서의 삶에 첫발을 디딘 이현수는 교육을 받으면서 제주생활을 하나씩 구체화시켰다. 감귤농사가 제주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하우스 농사도 1,000평 정도 경작하려면 1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교육이 끝나갈 즈음, 가장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다른 농사에 비해 손이 덜 타는 감귤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의 편견 중 하나가 바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이 한가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농부도 직장인 못지않게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새벽 6시 기상과 함께 씻고, 아침 식사를 하고, 집 안 정리를 하고 나면 9시 반부터 하루 일과가 어김없이 시작된다. 요령을 피우고 싶어도 일이 밀리면 오랜 시간 공들인 농사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리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 매일매일 손 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다. 3월과 11월 빼고는 보름에서 한 달 주기로 업무가 돌아간다. 묘목 관리에서부터 풀을 베고. 퇴비를 주고, 소독하는 패턴이 주기에 따라 반복되는데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다른 이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친환경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고단 발품을 파는 데 한몫한다.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치기 쉽다는 것.
“무엇보다 힘든 건 육체적인 노동이에요. 뭐든 직접 해야 하니까요. 몸을 쓰는 일을 한 적이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덕분에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들 한마디씩 하세요.”
귀농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이론 수업이 대부분이었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은 어찌나 많은지 아직도 배워 나가는 중이다.
“서울에선 마트나 시장에서 귤을 쉽게 사 먹잖아요. 그런데 귤 하나를 얻기까지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지 전혀 몰랐죠. 다른 농가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무농약 재배를 하고 있어 손품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에요. 저희 부부가 경작하는 귤밭은 총 3,500평 정돈데, 연 2,000박스 정도 인터넷을 통해 직거래하고 있어요. 2,000박스로는 생활비 충당하는 데 어림도 없어서 걱정이에요.”
그나마 부부의 제주생활을 지지하는 단골이 늘어가고 있어 다소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겨울, 드디어 스스로 농사지은 땅에서 첫 수확을 했다.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에 불가능할 정도였다. 상품으로 출하하지 못하거나 흠이 난 귤들은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 귤 잼도 하고, 귤 차로도 담근다.
“팔고 남은 못생긴 귤은 저희가 이것저것 다른 용도로 활용해요. 귤 차나 귤 과자로도 만들어 먹는데 그 맛이 또 일품이에요. 요즘엔 귤 향 비누를 만들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면 모두 좋아들 하시더라고요. 마트나 시장에서 그냥 사 먹는 귤과는 차원이 달라요. 귤 한 알 한 알이 모두 제 자식처럼 느껴지더라니까요.”
이렇게 부부는 요즘 농사를 통해, 길들여진 삶이 아닌 무언가를 내 손으로 창조하는 즐거움에 폭 빠져 있다.
하루하루를 쫀쫀하게 보일 정도로 성실히 살아가는 것,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현재에 충실한 날들, 그리고 그 날들이 모여 인생이 되어나가는 과정을 그들은 몸소 체험 중이다. 힘들고 서툴지라도 이렇게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두 사람을 갑자기 마구 응원해 주고 싶어진다. 타고난 사람들만이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일상을 충분히 색다르게 꾸려갈 수 있다는 걸, 농부 이현수는 몸소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피자나 커피를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직접 만들어야만 해요. 소비가 아닌 생산 위주의 환경이니 어쩔 수 없는 거죠.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신이 나는 일인지 미처 몰랐어요.”
자연 속에서 서로 돕고 기대며 그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건강해 보인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처럼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 조화로운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하기에 제주만한 곳이 또 있을까.
행복한 농부 이현수의 제주 정착 Tip “귀농 생활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첫 단추다” 이제는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알아볼 때 먼저 인터넷 서핑을 하는 일이 당연한 수순처럼 되어 있다. ‘귀농’처럼 생경한 일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들 부부 역시,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마땅한 정보를 찾을 수도 없어 처음에는 주로 인터넷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10년이 넘도록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고 자신했건만, 막상 제주에 터를 잡고 보니 모든 것이 원점이었다. 전기료, 통신료 등은 서울보다 더 비싼 것 같았다. 물론, 서울에서 계산하는 생활비 기준과 어느 정도 거리는 있지만 한 달에 몇 십만 원으로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는다. 인터넷으로만 알아보지 말고 주말이나 연휴 혹은 시간을 내 틈틈이 장소를 보러 다니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야 당황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딱 두 배 정도 더 힘들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단지 지금보다 좀 더 각오를 해야 적응하는데 수월하다는 말이다. 농사를 짓고 싶다면 지역에서 운영하는 귀농교육을 이용하길 권한다. 이들 부부에게도 제주농업기술원(http://www.agri.jeju.kr)에서 운영하는 귀농교육이 다른 어떤 것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고. | ||
- 제주 보헤미안 김태경 저 | 시공사
제주에 사는 13인의 자유로운 영혼 혹은 용기 있는 영혼을 담은 책. 저자는 제주에서 만난 13인을 ‘제주 보헤미안’이라 명명했다.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 창조적인 생각, 결단력 있는 행동을 모두 담은 단어 ‘보헤미안’은 제주와 완전한 궁합을 이룬다. 불안함을 이겨내고 제주 행을 택한 보헤미안들은 이 섬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묵묵한 위로와 치유를 경험한다 말하고, 제주는 보헤미안들 덕분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젊음, 자유, 예술, 대안문화 류의 과거에는 감지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뿜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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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태경
1977년 생. 전형적인 천칭자리와 O형 기질의 소유자.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선 출판 잡지를 전공했다. 느리고 번거로운 공정으로 만들어진 인쇄물과 종이로 된 모든 것을 흠모하며, 서재가 생긴 후부터는 책장을 정리하거나 책을 구입할 때 희열을 느끼는 ‘컬렉터형 독서인’으로 성향이 바뀌었다.
패션매거진 <신디더퍼키> <세븐틴코리아> <스타일H> <나일론>에서 15년 동안 패션에디터로 동분서주하다, 2010년 가을 콘텐츠 전문기업 어반북스Urbanbooks를 설립해 분야를 막론한 콘텐츠 기획과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 <에디터T의 스타일 사전> <좀 더 가까이 : 북 숍+북 카페+서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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