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 한국 대 쿠바. 9회말 쿠바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고, 1점 리드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지키고 있는 정대현 선수의 손끝을 보며 우리는 모두 긴장했었다. 원아웃에 만루가 되자 분위기는 쿠바로 넘어갔고, ‘이대로 끝인가’ 속이 타들어가던 순간! 기적같은 병살로 금메달은 우리 것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짜릿함은 잊지 못한다.
WBC 시즌 경기가 점심 시간과 겹치던 때에는, 어떤 메뉴를 먹을지보다 그 곳에 큰 TV가 있느냐로 밥집을 결정했었다. 경기에 빠져서 너무 흥분하며 먹는 바람에 식당 주인은 우리가 빨리 나가주길 바래서 그건 좀 슬펐지만, 그 때 역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런 나인데, ‘야구 좋아하세요?’란 질문에는 선뜻 ‘네’라고 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만다. 국가전의 뜨거운 분위기에, 잘생긴 선수 보는 재미에 잠시 빠졌을 뿐. 뜨겁게 응원하는 프로야구 팀도 선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를 잘 몰라서다. 경기를 같이 보던 친구나 후배에게 룰과 규칙을 귀뜸으로 야금야금 배웠지만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집요하게 묻기도 뭐하고, 그들이 대답하는 사이에 결정적인 장면이 나올까봐 듣는 나도 불안해서 조금씩 포기하다보니 야구는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국내 프로야구는 페넌트레이스 680만, 포스트시즌 31만으로 7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국내 야구장 규모로 봤을 때 엄청난 기록이다. 이 중 여성관중은 현재 야구장 입장객의 무려 4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나처럼 복잡한 야구 규칙과 전문적인 용어와 약어, 속어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며, 응원하는 재미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낙에 만족해야 했던 분들이 많을 것이다.
중계방송은 플레이가 일어난 짧은 순간, 한정된 시간 내에 상황을 설명하고 다음 플레이 설명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상황 설명을 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30년 넘게 야구중계를 해 온 허구연 해설위원은 30년이 지난 프로야구 현장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여성 팬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생각으로『여성을 위한 친절한 야구 교과서』를 쓰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던 건 고등학교 동창을 따라서였다. 친구가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어서 나도 파란색 풍선을 들고 열심히 응원했는데, 그 날따라 허무하게 무너져 7회부터 응원석이 비기 시작하더니 경기 끝무렵엔 우리와 몇몇 무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시작이 좋지 않아서인지 그 후로 야구장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는데, 그랬던 삼성 라이온즈가 2011 시즌까지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는 유일한 팀이라는 대단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 속에는 각 프로야구구단의 역사와 성격부터 시작해, 야구의 기본 룰부터 전문가들도 헷갈려하는 야구 규칙, 각종 작전에 대한 지식과 흥미로운 뒷이야기까지 야구의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아마도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한 것에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하나님도 야구의 승부는 모른다’, ‘지나가는 거지도 야구에 대해선 한마디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야구의 승부는 끝나는 순간까지 묘한 흥미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또한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이 확연히 다른 스포츠가 야구다. 룰과 작전 등의 지식 없이 보면 그저 공을 치고 달리는 단순한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지식이 쌓이면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긴장된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방금 뭐였냐고’ 물었지만 남자친구가 침묵하는 분, 어떤 상황인지 물었다가 홈런을 놓치게 해 죄책감 느꼈던 분, 한창 경기에 몰입한 친구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분, 야구를 제대로 알고 더 재미있게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 여성을 위한 친절한 야구 교과서 허구연 저 | 북오션
한국 프로야구의 여성팬이 300만 가까운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팬들이 단지 잘생긴 선수를 쫒아다닌다거나,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 야구장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들도 충분히 야구를 심도 있게 즐길 수 있다. 이 책은 전문 해설위원 허구연이 여성들뿐만 아니라 야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야구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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