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TV를 마주하면 고민이 많아집니다. 여기도 오디션, 저기도 오디션이라 어떤 프로를 봐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오디션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있는데요. 입소문을 타는 것은 비단 지원자들뿐이 아니라 멘토로 출연한 가수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윤상 역시 최근 들어 다시 조명을 받는 뮤지션인 것 같네요. 오늘은 세계음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던 그의 세 번째 앨범, < Cliche >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영미 팝음악에 질질 끌려 다니는 우리 음악에 대한 신물 혹은 반발”
군대 전역 후에 자신의 히트 곡들을 제3세계 음악인들과 다시 작업한 < Renacimiento >(1996)을 통해 윤상은 음악 성향의 전환을 꾀했다. 같은 해에 신해철과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노땐스(Nodance)의 완연한 일렉트로니카 앨범이 워낙 많은 관심을 받은 탓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적게 받았던 < Renacimiento >의 의미가 희석됐지만, 그는 4년 뒤에 ‘본격’ 월드뮤직을 실현한 3집 < Cliche >을 발표하면서 명실 공히 월드뮤직 전도사로 급부상하게 된다.
절친한 음악동료 박창학과의 교류 속에서 끊임없이 영역 확장을 모색했던 그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질적인 음악 장르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별의 그늘」과 「한걸음 더」(1991)부터 < 2집 part1 >(1992)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와 「너에게」, 그리고 「이별 없던 세상」의 < 2집 part2 >(1993)까지 전자음악의 휴머니즘을 주장하던 그는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 계열의 음악을 더한다.
리키 마틴을 위시한 라틴 팝의 인기가 국내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시절이기도 했으며, 영미 지역 이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에 나온 윤상의 < Cliche >는 미국의 잘 가공된 라틴 리듬이 아닌 원산지의 ‘날것’을 받아들이되 낯설지 않았다. 신시사이저로 인간적인 음악을 구현하겠다던 외고집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괴리감을 현명하게 최소화했던 것처럼, 브라질의 리듬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그는 치밀했다.
그룹 페이퍼모드의 멤버였던 김범수(「보고싶다」의 김범수와 동명이인)가 드럼 프로그래밍 한 「바람에게」는 시사이 밴드(Sisay Band)의 참여로 남미 사운드를 물씬 느낄 수 있고,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너에게」는 반도네온(Bandneon)을 사용한 탱고 음악이다. 상기했듯이 그는 너무나 다른 스타일의 병존(竝存)을 구현한다. 원초적이고 열정적인 음악을 정제해 지극히 논리적인 기존의 윤상 음악에 접목, 감성과 이성의 동시 포획을 일궈내는 것이다.
주로 박창학의 도움을 받은 노랫말은 동시대성을 반영한다. 사이버 세계와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을 느끼는 현대인을 그린 타이틀곡 「Back to the real life」, 도시인들의 지나친 경쟁 심리를 조용히 타이르는 「City life」,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소중한 지금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내일은 내일」 등, 온화한 화법을 구사한다.
비판도 질책도 아니었다. 걱정과 회유(懷柔)였다. 그가 본 문제점을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지만 강경한 어조는 없다. 진작부터 자신의 음색과 보컬 역량의 범위(아니면 한계)를 설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목소리는 잔잔한데, 강성 발언이 오가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래서 윤상의 음악이 더 매력적이다. 그는 늘 자기 구역 내에서 최대치의 상상력을 위해 고민한다.
1987년 김현식 4집 수록곡 「여름밤의 꿈」의 작곡가로 데뷔한 이래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꾸준하게 신뢰를 얻어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Cliche’가 ‘판에 박은 문구’ 혹은 ‘진부한 표현’이란 뜻이지만, 음악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대중가요의 매너리즘과 창작력 부재에 대한 카운터 펀치였다.
비록 군 입대 이전의 인기는 잃었지만, 이 앨범과 함께 그를 음악작가로서 신임하는 팬 층은 더욱 두터워 졌다. 라틴 리듬은 「한걸음 더」, 「남겨진 이야기」 등, 데뷔 적부터 비트 감각이 남달랐던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과 다름 아니었다. 더욱 충만한 리듬 생명감은 한국 가요의 새 진입로를 열었다.
윤상은 탐구를 계속했다. 인간적인 신시사이저는 그의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으며, 미국과 영국 팝음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스도 찾아야 했다. 그 고민과 연구의 산물인 < Cliche >는 윤상 음악의 심화(深化)과정이었으며, 밀레니엄 한국음악계의 화두였다.
All songs written by 윤상 & 박창학
프로듀서 : 윤상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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